본문 : 로마서16장17~27절
제목 : 마지막 교훈과 문안과 송영
바울은 거짓 교훈을 전하는 자들을 떠나라고 권면하면서 거짓 교사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을 선언합니다.
바울은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계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그들을 견고하게 하실 하나님께 영광을 비는 기도로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1. 마지막 당부와 교훈(17~20절)
1)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로부터 떠나라(17~18절)
(1) 잘못된 교훈에서 속히 떠나야 합니다(17절)
“[17]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 사도는 밖으로부터 들어온 거짓 교사들로 인해 위험에 직면해 있는 로마 교회를 위해서,
본 서신을 끝마치기 전에 분명하고도 직접적인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스러'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배운 복음의 진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진리를 대적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이렇듯 그들이 로마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지금까지 배운 바 그 교훈을 거스려 행동하게 하는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로마 교회 안에 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 선생들은 거짓 진리로 성도들을 현혹하여 배운 바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여 교회의 분열(分裂)을 조장하고 획책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거치게 하는 자들. - 거짓 선지자들의 성격을 묘사해 주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을 잘못가게 해서 죄에 빠져들게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성도들의 분열을 조장하여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결국은 저희가 가르치는 교훈을 따르게 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치명적인 죽음의 함정으로 빠지게 합니다(Lenski).
이들의 배후에는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공중의 권세잡은 자, 즉 사단의 세력이 숨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절에 나타난 거짓 선생들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자들을 가리키는가 ? 이에 대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골로새서에 나타나는 영지주의자(Dodd).
② 도덕 폐기론적 자유인(Lightfoot).
③ 유대교적 열심분자들(Godet, Hendriksen).
여기서 ③번의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적 열심분자들은 항상 율법과 복음을 혼합하여 사도들을 대적하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력으로서 복음 진리를 곡해(曲解)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 거짓 선생들에 대한 성도의 올바른 태도는
'살피고 떠나는'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이 거짓 선생들의 본질과 본성을 알았으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즉각 돌아서라는 의미입니다.
2)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18절)
“[18]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 거짓 선생들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기의 주(主)로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 자신을 섬깁니다.
거짓 선생들은 자기 욕망에 가득차서 복음을 구실삼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Bruce).
'섬기나니'는 '종노릇하다'의 의미로 쓰이지만, 크게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두 가지로 구분하여 쓰입니다.
여기서는 나쁜 의미로서 '자기의 욕망이나 본능을 절대화(絶對化)하여 그 노예가 되어 섬긴다'는 뜻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이러한 삶의 양태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것으로 특징지워집니다(약 3:15).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이처럼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거짓 선생들의 심각한 위협 아래 있었습니다
(Godet).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 - 이처럼 거짓 선생들은 감언 이설(甘言利說)로써 성도들을 유혹하여 속이는 데에 아주 능수 능란한 자들이다(고후 4;2;엡 4:14, Murray).
순진한 자들 - 그들은 남을 속이고 기교를 부리지 않으므로 타인에게서도 그런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다(J. Murray).
미혹하느니라(에크사파토신) - 거짓 교사들은 순진한 자들을 명망케 하는 악한 계교를 꾸미며 기만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는 이런 자들에게서 즉시 떠나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2) 로마 교회 성도들의 순종을 칭찬하고 격려함(19절)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 바울은 엄중한 경고를 한 후에 이제 로마 성도들의 헌신과 신앙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Dunn).
또한 로마 교회가 높은 평판에 걸맞게 거짓 선생들의 거짓된 궤휼을 올바로 분별하고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고 바울은 확신하고 있습니다(Harrison). '순종함'(휘파코에)이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로마 교회 성도들이 그 받은 교훈에 서서 행하는 믿음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Lenski).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 두 단어 '지혜롭고'(소푸스)와 '미련하다'(아케라이우스)는 거짓 교사들의 계교에 대해서 민감하고 식별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습니다(Murray).
즉 로마의 성도들이 선한 것을 따르는 데에는 '지혜롭고' 악에 이끌리는 데에는 '우둔함'으로써 거짓 선생들의 미혹(迷惑)에 넘어가지 않기를 강력하게 주의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고대 형용사로 '악과 섞이지 않은', '순수한'이란 뜻입니다. 이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다'(마 10:16)에서 '순결하다'(아케라이오이)와 같은 단어로서 원래 순수하여 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이와 유사한 의미로서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나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고 권면한 바 있습니다.
3) 하나님의 평화와 예수의 은혜를 빔(20절)
“[20]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아무 두려움 없이 사단과 싸울 것을 권면하면서
확실하고 신속한 승리가 그들에게 주어질 것임을 약속하고 있습니다(Calvin).
한편 '평강의 하나님'(15:33;고후 13:11;빌 4:9;살전 5:23;살후 3:16;히 13:20)이라는 말 속에는 자기 백성들을 분열시켜 불안을 조성시키는 악한 세력들로부터 보호 하시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이 마침내 승리를 주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말은 여자의 후손 곧 그리스도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창 3:15)이라는 말씀을 비유하여 사
용한 것으로서 사단이 성도들에게 거짓된 교훈을 가지고 올 때 하나님이 성도들의 발 아래서 사단을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Lenski).
평강의 하나님께서 사단에 대하여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실 것이라는 축복된 약속을 강하게 시사한다(Robertson).
즉 종말에 믿는 자가 얻는 궁극적인 승리는 믿는 두 가지 요인,
곧 하나님의 요인('하나님께서 상하게 하시리라')과
사람의 요인('너희 발 아래서')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내려 주시지만 그 힘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말씀은 17-19절에 기술된 거짓 교사들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 당시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를 거스려 어리석고 허탄(虛誕)한 교훈을 퍼뜨림으로,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딤후 3:8;4:3, 4).
그리하여 성도들과 사도들은 복음의 진리를 지키고자 거짓 선생들과 영적 싸움을 하였는데, 바울은 본절을 통해 그와 같은 싸움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로 하여금 결국 승리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요일 3:8;계 20:10).
2. 문안(21~23절)
1)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21절)
(1) 나의 동역자 디모데
디모데는 고린도 교회의 교인이 아니고 오히려 바울의 복음 전도 사역에 협력한 전도자이며 바울의 동역자로 수고하였다.
그는 경건한 가정에서 성장한 믿음의 아들로서(딤후 1:5;3:15)
바울의 제2차 전도 여행시 마게도냐와 아가야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고(행 17,18장) 고린도 교회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을 도운 바 있습니다(고전 4:17;16:10). 또한 바울은 때때로 디모데를 서신의 공동 집필자(執筆者)로 대우하기도 하였습니다(고후 1:1;골 1:1;살전 1:1;살후 1:1).
바울이 여기서 디모데를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그의 동역자로 가장 먼저 소개하는 영광을 허락한 것은 그가 믿음의 아들로서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있었으며 사도와 함께 복음을 위해 헌신적으로 수고하였음을 암시합니다.
(2) 나의 친척 - 누기오, 야손, 소시바더
이들 세 사람을 바울은 '나의 친척'이라고 지칭하고 있는데 앞절에서(7, 11절)처럼 헬라어로 '슁게네이스'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문자 그대로 피를 나눈 친척을 의미하기보다는 '골육'(9:3)이라는
말로 한정되어 동족인 유대 민족을 지칭합니다.
본장에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사람은 모두 여섯 명입니다(7, 11, 21절).
① 누기오 (행13:1)
누기오를 가리켜 바울이 '나의 친척'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가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임에 분명합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같은 견해를 지지하여 누기오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지자나 교사(敎師)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사람으로 '구레네인 누기오'로 알려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Hendriksen, Dunn, Godet).
또한 누가는 이방인 의사였으므로(골 4:14) 누기오와는 구별되는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② 야손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중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했을 때 바울과 바울의 동행인들을 대접한 집 주인과 동일 인물로봅니다(행 17:5-7, 9).
유대인들이 달려와 바울을 찾다가 없음으로 야손을 대신 잡아가서 매질하여 바울의 핍박을 대신 받은 사람으로 그후 계속 바울 전도에 동행했던 것 같습니다.
③ 소시바더(소시파트로스)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됩니다(행 20:4, Meyer).
그는 당시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연보한 구제 헌금을 전달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15:25-27;고후 8:18).
2)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22절)
“[22]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그는 로마 독자들에게 알려진 인물로서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으면서 바울의 편지를 대필해 주었습니다.
그는 신약성경 다른 곳에서는 언급되지 않다가 갑자기 여기서 제1인칭으로써 자기 자신이 직접 로마 교인들에게 문안하는 표현을 취함으로써 로마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만 이것은 바울의 권면으로 필기자 더디오 자신의 인사말을 직접 기록한 것일 것입니다.
바울은 보통 서신의 끝부분을 제외하고는 서신을 남에게 대서시키는 것이 습관이었는데(고전 16:21;갈 6:11;골 4:18;살후 3:17) 대필자의 이름이 그의 서신에 직접 기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본서신의 대필자 더디오에 관해서 더 자세한 언급은 없어서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알 수는 없지만 짐작하건대 그는 필사에 능하여서 바울의 구술을 필기하는 일을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3) 나와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관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23절)
(1)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
여기서 '가이오'는 마게도니아의 가이오가 아니며(행 19:29),
더베 사람 가이오드(행 20:4),
요한 삼서에 언급되어 있는 가이오도(요삼 1:1) 아닙니다.
본절의 '가이오'는 대부분의 학자들이 행 18:7의 '디도 유스도'와 동일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여 고린도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로 봅니다(고전 1:14).
그러므로 가이오는 바울의 고린도 전도 사역에서 첫번째 회심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 머물러 있었던 집 주인이기도 합니다.
본절에서 그를 가리켜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에게 당시 어느 정도 재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며 또한 그의 집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집회 장소로 개방되었음을 암시하며 아울러 가이오의 집이 고린도를 방문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개방되고 있음을 말해 주기도합니다.
특히 여기서 바울이 가이오를 자기가 머물렀던 집 주인으로 언급한 것은 이 서신을 고린도에서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바침하고 있습니다.
(2) 에라스도
'에라스도'는 고린도 시의 '재무관'으로 여기서는 '도시의 재산 관리인'이라는 뜻으로 쓰여졌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고린도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입니다.
(3) 형제 구아도
바울은 그를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에라스도나 더디오의 형제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의 형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1:13;고전1:1;고후1:1;갈1:2;빌1:12;골1:1;살전1:4;살후1:3).
구아도에 대해서는 본 절에 기술된 것 이외에 더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기록이 더이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과 같은 본절에 언급된 사람들은 모두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로서 특별히 고린도시에서 영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송영(24~27절)
24절의 내용이 한글 개역성경 본문에 실려있지 않고 다만 난 하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25절)
먼저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위탁하심으로 전파된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나의 복음'은 바울이 믿고 있고 전파하고 있는 메시지를 가리킵니다(2:16;딤후2:8).
그가 여기서 '나의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해서 그를 자기 중심적이거나 배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다만 바울의 경우에 그 복음이 직접적 계시로 왔다는 것(1:1;갈 1:12)을 암시해주고 있다고만 이해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바울의 복음은 모든 기독교적 선교사역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구속 사건을 선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고전 15:1-3).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포된 말씀'(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긴세월 동안에 걸쳐 숨겨져 있었던 것이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역사상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 곧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직역하면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구원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이 영원한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역을 통해서 드러났고 또한 성령에 의해서 충분히 계시되어졌습니다(고전2:7-12).
'감취었다가'란 말은 구체적으로 '창조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시대'를 두고한 말이다(히1:1).
그 여러 시대에 걸쳐 '선포된 말씀'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에서 여러 모양과 여러 형식을 통해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오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비로소 온전히 계시된 것입니다(1:2;엡 3:3-5;골 1:26-28).
2)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26절)
“[26]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
이는 율법에서 복음으로, 옛시대에서 새시대로,
즉 하나님의 경륜의 비밀함이 감추어져 있던 데서(25절)
이제 온전히 드러나게 된 역사의 전환점을 선언하는 중요한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베일에 가리웠던 것이 베일을 벗김으로써 나타나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또는 '그늘에 있던 것이 밝은 햇빛에 의해 드러났다'는 말로서 영세 전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이 밝히 드러난 복음의 역사적 확실성을 명시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이제는 감취어진 것이 아닙니다.
즉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역사의 한 가운데 모두가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점진적으로 계시되어 오던 것이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명백하게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사도는 다시한번 천명한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좆아 - 계시의 커다란 변화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된 것입니다(딤전 1:1;딛 1:3).
이는 복음의 우주적 전파에 대해 권위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바울 자신이 헌신하고 있는 사명도 포함하고 있다.
즉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속 역사를 담당하시고 직접 명령들을 내리시는 것에서 자기 자신의 임무의 근거를 찾습니다(1:1, 5;골 1:25-27;딛 1:3).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 이것은 '구약성경의 예언서'를 가리킵니다. 물론 신약 시대에도 선지자들은 활동하였으며 그들은 권면과 안위(安慰)뿐 아니라(고전 14:3) 계시도 하였습니다(고전 14:29, 30;엡 3:5).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말로 행해졌다.
복음은 이처럼 점진적인 계시의 역사성과 통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더더욱 자신이 전파한 복음의 내용, 구원 진리는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은' 것이라 하여 구약에서부터 시작한 복음의 역사성과 통일성을 힘주어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가 본서의 첫머리에서 이미 밝힌 것이다(1:2).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 바울은 서론에서도(1:11) 자기가 로마의 성도를 견고케 하기 위해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하루속히 방문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취지를 말한바 있습니다.
이제 그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이런 결과를 가져 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
'지혜로우신'이라는 말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계획으로써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송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내용은 앞에서 계속 언급한 바있는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25, 26절)된 구원의 비밀의 계시를 의미합니다.
즉,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감추었다가 이제는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내심으로써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구원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구원 섭리의 오묘함을 뜻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이러한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에 대한 찬양의 첫 발성입니다(11:33).
그렇게 오랫동안 구원 비밀을 간직했던 침묵이 이제 마침내 드러나 그 구원의 실체와 그 결과를 목격하면서 사도는 그 일을 이루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끝없는 찬양과 영광을 돌리면서 본 서신을 끝맺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그의 언급은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이 지혜로우신 하나님께(고전 2:6-13) 영광을 돌리는 일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15:6;시 22:23;벧전 4:11).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사탄을 성도들의 발에 짓밟히게 하십니다(20절).
사탄이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물어 상하게 했고 이제는 그를 따르는 성도와 교회를 공격합니다.
사탄의 최후 발악이 매섭겠지만, 성도의 승리는 확정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내한’ 성도와 교회에 최종 승리를 안겨주시고, 평강을 선물해주실 것입니다.
2) 모든 민족을 “믿어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으로 부르십니다(25~27절).
하나님은 이 일을 그리스도의 신실한 순종으로 이루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인류 구원의 계획이며, 오랜 세월 감추어 두셨던 비밀입니다.
이 비밀은 예언자를 통해 알려졌고,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선포되며, 전도자들을 통해 땅 끝까지 전파될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온 땅 곳곳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 백성을 세울 것입니다. 나는 복음 안에서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는 의의 백성입니까?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선한 일에 지혜로운 자가 되고, 악한 일에 미련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도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자들이 있습니다(17~19절).
그들은 유창하고 매력적인 말로 순진한 자들을 속여 추종자를 삼습니다. 그런 자에게 속아서는 안 됩니다.
뱀처럼 지혜롭게 그들의 의도를 간파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돌보고 하나 됨을 이루는 일에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 분주히 참여하되, 사욕을 채우는 일이나 이웃을 비난하는 일이나 분쟁을 만드는 일에는 무지한 사람처럼 관심도 두지 말고 말도 섞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일에 지혜롭습니까?
2) 바울은 디모데를 동역자로 소개합니다(21~23절).
디모데뿐 아니라 바울의 친척들, 이 편지를 대필한 더디오, 교회를 물질로 섬기던 가이오, 그리고 에베소의 재무관인 에라스도와 구아도도 모두 바울의 동역자입니다.
바울의 선교는 바울 개인의 선교가 아니라 교회의 선교이며 성도들의 선교입니다. 직분과 직위는 다르지만, 모든 사람이 복음을 위한 동역자입니다.
기도
공동체-모든 민족을 믿음과 순종의 새 백성으로 창조하실 지혜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열방-중국 정부는 도시 젊은이들 가운데에서 기독교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기독교는 국가에 대한 위협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