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암공 배진희 친필 만사-
부산대학교 소장
부산대학교 해제에 따르면 배진희 선생이 1945년 대눌 노상익을 애도하여 지은 만시로 추정된다고 하였으나
이는 착오이다.
통암공 배진희의 졸년은 1886년이므로 1945년에 노상익의 만사를 지을 수 없다.
만사의 표현 중 성재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는 기록과 舊從遊生이라고 자신을 밝힌 것으로 보아
노상익의 아버지인 극재 노필연(克齋 盧佖淵. 1827~1885)
을 애도하여 지은 만사로 보인다.
통암 배진희와 극재 노필연은 같은 김해출신이며 성재 허전의 문인으로 동문수학 하였으며 詩書로 교류하였다.
*대눌 노상익과 소눌 노상직은 극재 노필연의 아들이다.
배진희(裵晋曦)(1824∼1886)
자는 욱여(旭汝) 호는 통암(通庵), 분성군20世이며 제주목사공(諱克壽)15세손.
김해(현 부산 강서구 송산)출신으로 계당(溪堂) 류주목(柳疇睦1813~1872)에게 사사하고
성재 허전이 김해부사 재임시 종학(從學)하였으며시문에 뛰어났으며 특히 주역에 밝았다.
극재 노필연,율산 홍지수 등과 교류하였으며 김해의 유림 허인, 안민중, 노수용, 안석원, 송은성, 홍병일 등과
향풍(鄕風) 을 크게 진작시켰다.
통암(通庵) 이라는 호는 성재 허전(1797~1886) 선생께서 지어주신 서실(書室)의 이름으로
통암선생이 이를 자호(自號)로 삼았다.
저서에는 유고3권이 있다 하나 전하지 않으며,제현들의 문집과 김해읍지에 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부산 강서구 송산에 생가가 보존되고 있다.
배위는 덕수이씨(德水李氏) 통정대부 방수(邦秀)의 따님이며 묘소는 김해시 장유면 삼문리 월산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