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오늘이 순례길의 마지막이다.
스페인 카미노에서 1,000킬로씩을 걸었었던지라
8일간의 240킬로는 상대적으로 아주 짧게 느껴진다.
발에 생긴 물집에 일회용 밴드를 붙인 남편은 이제 앞서서 걷는다.
모악산을 감도는 모악산 마실 길과 아름다운 순례길이 거의 일치한다.
이른 아침 모악산 숲속 길과 편백나무 오솔 길은
명징한 공기와 신비로운 아침 햇살로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듯하다.
길도 가파르지 않고 잘 정비돼 있어서 걷기엔 그만이다.
반월 마을 동구 밖 당산나무 정자에서
마지막 남은 라면 2개에 고사리와 드룹을 넣고 끓여
어제 먹고 남아 서 밖에 매달아 놓았던 찬밥을 말아 먹으니
이른 아침부터 한 걷기 운동이 반찬이 되어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렇게 집을 떠나오면 별로 소유한 것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즐거운데...
문득 우리가 버리지 못해서 가지고 사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구이저수지에 이르니 아침 물안개가 신비롭게 피어오른다.
전북도립미술관을 지나니 주황색으로 눈에 띄는 술 박물관이 있다.
토마스 신부님이나 남편이나 술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분들인데...
구이면에 들러서 다시 꿀을 샀다.
꿀을 열심히 먹어서인지 초반에 아팠던 무릎이
말썽 없이 순례를 마치게 되어서 참 다행이다.
두방마을 전통숲에 들어서니 시원한 신록의 고목들...
한 무리의 학생들이 견학을 왔는지 옹기종기 모여서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다시 뚝방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전주시 교외라 그런지 뚝방길에 자전거를 위한 도로가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가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있고 전주로 가까이 갈수록
걷는 사람들도 불어난다.
깨끗하게 보존된 전주천과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싱그럽다.
원당교 신평교 삼천교 효자동교회를 지나서
전주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넜다.
배불뚝이라는 식당에서 곱창전골을 먹었다.
전주에서는 어느 식당엘 가더라도 대체적으로 음식이 맛있고 정갈하다.
신부님도 맛있게 식사를 하신다.
8일간의 순례중 마지막 식사이다.
마전교를 지나 우진문화공간을 찾으려했으나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주시에 들어서니 어디에서도 달팽이를 찾을 수가 없다.
숲정이를 물어물어 어렵사리 찾아냈다.
숲정이를 알리는 탑이 서 있다.
해성중학교는 전에 내가 교생실습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아파트 숲이 되어 완전히 풍경이 바뀌어 버렸다.
서문교회, 객사를 지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비옷을 입고
순례문화연구원에 도착하니
그곳 직원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그곳에서 발급하는 순례완주증명서를 받고 우리가 걸으면서 느꼈던
불편사항에 대하여 꼼꼼히 경청하신다.
더 좋은 순례길을 만들기 위한 열의가 대단하다.
한 번 더 방명록을 적고 남은 사탕을
다른 순례자들을 위해서 그곳에 내 놓았다.
신부님이 나무로 조각한 달팽이 두 마리를 사서
우리에게 하나를 기념으로 주신다.
자기 집을 지고 다니는 달팽이처럼
우리 순례자들도 자신의 짐을 지고 걷는 다는 상징이다.
이곳에서는 순례자들을 느바기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지난 8일동안 우린 느리게, 바르게, 기쁘게 이 길을 걸었다.
아름다운 산과 들 호수 강 뚝방길 정겨운 마을들을 지났다.
지루한 일상에서 쌓였던 권태가 벗겨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환희와 즐거움 속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은 선물을 받았다.
순례원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순례길의 발전을 위해서 꼭 순례기를 올려 달라고 당부하셔서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순례기를 쓰다 보니
메모를 하지 않아서
순간순간 느꼈던 벅찬 감정들을 다 기억해 내지 못했고
사진을 한 장도 찍지 않았으나
고맙게도 신부님께서 앞뒤에서 찍은 우리 사진과 아름다운 경치를
다 보내주셔서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게 됨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아름다운 순례길은 금수강산 우리 산하를 고스란히 볼 수 있고
가끔 만나는 시골 어른들의 따스한 정,
우연히 만난 느바기들과의 동행,
그곳에 스며있는 조상들의 얼과 신앙심을 깊이 체험할 수 있어서
참 귀한 경험이었다.
첫댓글 꿀을 먹으면 무릎관절에 도움이 된믄 군요~~그동안 순례기를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어디서든 거의 같은 교훈을 받는 것 같아요~~오늘도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다~~읽었던 책들을 주섬 주섬 쌓아 봅니다. 언젠가 다시 읽을 듯 가지고 있지만 그럴 시간도 눈도 나빠져서 하나의 부담으로 남겨 있던 책들을 정리해 봅니다.
계속해서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용기 내어 열심히
썼답니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바쁜 와중에도 베아트리체언니의 순례기를 시리즈로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아름다운 순례길에 대한 솔직함과 애정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등도 잘 나타나 있어 감동적이었어요~~^^ 부부 함께 순례길에 올라 여정 모두 감사히 마칠 수 있는 것도 부러웠답니다~~
바쁜중에도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함께 걸을 날을 희망합니다.^^
베아트리체님 정말 잘 앍었습니다
고운님이 계셧길래 저의 부부가 동행 하는 동안 편하게 (?) 순례길을 탐사(?) 할 수 았었습니다
새로 종교의 힘을 맛 볼 수 있는 기회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