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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rus Cultu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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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신동일 스크랩 신동일(1965): 작곡마당 그리고 국악 ("한국창작음악사"에 수록)
신동일 추천 0 조회 49 17.11.10 18: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최근 발간된 <한국음악사>(전인평 저 / 아시아문화)에 수록된 저의 글입니다. 저자이신 전인평 선생님 요청으로 작성했습니다.

 

 

신동일 (1965): 작곡마당 그리고 국악

 

1. 작곡

작곡이 처음 나에게 다가온 것은 창작 활동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내가 음악에 열정적으로 빠져들기 전에 작곡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께서 마련해 두신 전축이 집에 있었다. 누구나 즐겨 듣던 대중가요 외에도 경음악, 우리 민요, 클래식 음악 등 이런 저런 음반들이 몇십장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다가 음악도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것이 바로 작곡이라는 작업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누군가 음악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곧바로 따라하고 싶어졌다.

음악에 깊이 빠져들다가 연주도 해보고 결국 작곡의 길로 들어서는 많은 작곡가들과 달리, 나는 음악과 조금 다른 길로 작곡이 내게 다가왔다. 돌이켜 보면 이것은 내게 유익한 영향과 해로운 영향을 모두 끼쳤다. 처음부터 작곡 자체에 주로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것이 내가 작곡가로서 뚜렷한 개성을 갖는데 도움이 되었던 반면, 내게 맞는 작곡 활동을 개척해 나가다 보니 연주 능력이 좀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아무튼 작곡은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단순히 공부나 직업을 넘어서 내 일상이고 삶 자체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 국악

청소년기에 들어서자, 나는 작곡에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시작하면서 동시에 민족주의 성향을 갖기 시작했다. ‘작곡이라는 것이 워낙 서양음악에서 출발한 개념이었기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지만, 작곡가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같이 하게 되었다. 마침 클래식 음악 전문 라디오 방송이 처음 생겨서 나의 음악과 작곡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폈고, 적은 시간이나마 편성되어 있던 국악 프로그램도 의식적으로 열심히 들으면서 어떤 마음으로 작곡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국악에 더 가까이 가고 싶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가 올 듯 말 듯 몇 차례 스쳐지나가곤 했다.

 

 

3. 미국 시절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은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로 진학했다. 미국에서는 일단 대학원에서 작곡해야 할 작품들에 우리나라와 관련된 요소들-음악적 요소 외에도 문화, 예술, 역사 등-을 어떤 식으로 반영할 것인가를 주로 고민했다. 대학원 시절 작품들 중에서 언급할 만한 것들로 한글 창제와 글자 형성 과정을 작품의 틀로 잡아서 작곡했던 타악기를 위한 <한글>, 신라 향가를 영역한 시를 가사로 작곡한 <번역된 3개의 향가>(소프라노와 첼로를 위한 작품), ‘산조에 개념적으로 접근하면서 가야금 산조 음형을 부분적으로 차용했던 바이올린 독주곡 <산조를 생각하며> 등이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뉴욕시와 뉴저지주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는데, 비슷한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음악가들과 음악모임 열림을 결성해서 몇 년 동안 한국의 창작곡들을 연주해 나가기도 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곡들은 주로 서양 악기로 우리나라의 민요이나 전통적인 스타일의 선율을 보다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는 작법을 주로 연구했다. 이런 고민들이 녹아있는 작품들을 소개하자면,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쾌지나 칭칭>, <새야 새야>, <어떤 이야기>, 피아노를 위한 3부작 <멀리, 멀리서>, 피아노를 위한 <허튼 가락 제1> 등이 있다.

 

 

4. 국악계에 발을 들여놓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국악기를 위한 작곡은 소리꾼 김용우를 통해 이루어졌다. 민족음악연구회 창립 준비위원회에 참여했던 나는 미국 시절에도 인연을 이어가다가, 귀국 후 소리꾼 김용우, 해금 연주가 강은일, 거문고 연주가 허윤정 등 나와 비슷한 연배의 국악 연주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소리꾼 김용우는 2집 음반을 준비하면서 같이 작업하자고 제안을 해왔고, 5집 음반까지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결국 김용우와의 작업을 통해 국악계에 이름을 알렸고, 국악작곡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김용우 2괴나리<천안도 삼거리><만드레 사냐>, 3모개비<정선아라리-엮음아라리>, <엉겅퀴야>, <풍구타령>, 4질꼬냉이<진진진><나 홀로 길을 걷네> 등을 편곡했다. 이 중에서 특히 <풍구타령><천안도 삼거리>가 주목 받았다.

2000년에는 국립국악원의 창작음악축제 새가락 삼일야에서 <피리와 장구를 위한 두 개의 장면>을 발표했고, 이어 2001년에 한국창작음악연구회 위촉으로 21현 가야금 협주곡 <인연>을 발표하면서 국악계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5. 국악기를 위한 초기 작품들

2001년 한국창작음악연구회로부터 가야금 협주곡을 위촉받으면서 이후 국악기를 위한 작품을 많이 작곡하게 된다. 2001년 국립국악원 위촉으로 박목월 시에 곡을 붙인 동요 <깨어진 새알 껍지>를 국악동요제에서 발표했고, KBS FM이 제작한 천년을 이어주는 우리노래라는 음반에 소리꾼 김용우가 <처용가>를 부르게 되면서 작곡을 맡았다. 같은 해 국악FM이 개국하면서 제작한 새 음원 시리즈 중 오늘, 내 곁으로 온 민요는 경기민요를 선곡하여 3명의 작곡가(강상구, 이태원, 신동일)가 실내악곡으로 편곡한 음반이었는데, 이 중에서 <군밤타령>, <천안삼거리>, <노래가락>, <양산도>, <방아타령>을 편곡하기도 했다.

2002년부터는 국악관현악곡 작곡도 점점 늘어났다. 서울시국악관현악단 위촉으로 <서울에서 꿈꾸다>를 발표했고,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김소월 시를 소재로 한 작품을 위촉하여 <김소월 시에 의한 3개의 국악관현악 소품>을 초연했다. 부산국악관현악단 위촉으로 소리꾼을 포함한 국악관현악곡 <바다 물결>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음악회를 위해 작곡한 대금과 마림바를 위한 <()>, 정가악회 위촉으로 작곡한 <사랑이 머문 자리> 등의 실내악곡도 있다.

국악기를 위한 초기 작품들은 최대한 전통음악의 음악 어법을 따르려고 하는 한편, 서양음악 기법 중에는 대위법을 넓은 개념으로 적극 활용하여 기존의 국악기를 위한 작품들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주었다. 학창 시절부터 국악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도 실제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악기와 작곡법들이었고, 당시에는 국악기에 대한 지식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표현이나 작곡기법이 조심스러운 면이 있었으며, 다소 모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텍스추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소리꾼 김용우 음반에서 작업했던 것을 비롯하여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혼합하는 경우에는, 미국 시절 서양악기들로 우리 민요나 전통음악 스타일의 선율을 자연스럽게 연주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던 것을 바탕으로 적용해 보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었고, 이후 좀 더 구체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간다.

 

 

6.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

어린이를 위한 음악을 해야겠다고 의도 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몇 가지 계기를 거쳐 지금은 어린이를 위한 음악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되었다. 나 스스로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음악 스타일도 아이들과 잘 통하고, 공연에 대한 어린이 관객들의 직접적인 반응을 보면 늘 감동을 얻는다. 내가 만드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은 단순히 동요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의 확장을 목표로 한다. 또한 특정 장르에 매몰되지 않고자 하는, 음악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린이를 위한 음악에도 잘 나타난다. 결과적으로 나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 작품들은 국악과 서양음악 어법이 혼재되어 있다.

국내에서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에 한 동안은 피아노 음악 작곡가로 많이 알려졌다. 글이 없는 그림책으로 글 대신 피아노 음악으로 각 장면과 이야기를 표현했던 그림책 CD-BOOK <노란우산>(류재수 그림)은 뉴욕타임즈 2002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었고 지금까지 해외 6개국어로 라이센스 출판되는 등 한국 그림책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어서 내놓았던 피아노 음반 <즐거운 세상>은 각 곡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레이션으로 들려주고 피아노 곡으로 연결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추후에 12장면은 그림도 같이 제작한 바 있다. <즐거운 세상>2005년 일본 전음악보출판사에서 <World Full of Colours>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동시에 피아니스트 타카하시 다카꼬의 피아노 연주와 나레이션으로 CD가 발매되었다.

<노란우산>이 출판된 후 2001년 하순 쯤에 우연한 기회로 임석재 동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동시를 몇 편 접하고 젊은 동시 작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1998년에 95세로 타계하신, 우리나라 민속학 분야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는 학자였다. 조사를 해 보니 해방 후 인간문화재 제도를 만드는데도 기여를 하셨고, 평생 전국을 돌아다니며 설화, 민담, 민요 등을 채집하셨다. 이렇게 채록한 전국의 설화가 임석재 전집(10)에 담겨 있다. 임석재 선생은 생전에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셔서 매일 저녁이면 사랑방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고 한다. 동시도 무척 많이 남기셨는데, 대부분이 전래 동화, 전래 동요 등을 소재로 하여 재창작한 것들이다. 소재가 기존의 전통 문화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니 아동문학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임석재 동시는 어느 것이나 노래로 불릴 수 있도록 쓰여졌고, 시대를 거슬러 대단히 감각적이고 현대적인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2003년 임석재 동시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상한 밤>을 작곡하고 이 노래를 중심으로 같은 제목의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를 가진 뒤, 2004년 임석재 선생을 모델로 이야기 할아버지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임석재 동시에 더 많은 곡을 붙여서 놀이노래극 <이야기 할아버지의 이상한 집>이라는 음악극을 발표한다. 나는 이 작품의 제작, 작곡, 지휘를 맡았는데, 연습과 공연을 포함한 2~3개월의 제작 과정을 거치면서 국악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또한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함께 다룰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심도 있는 공부가 되었다.

2004년 초 경기문화재단에서 그림책 원화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전시되는 그림책에 적당한 음악을 붙여 행사 중에 공연하기를 원했다. 이 때 몇몇 후배 작곡가들과 작품을 나누어 작곡했는데, 내가 작곡한 곡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이었다. 그림책 작가 권윤덕 작품으로, 제주도 전래동요를 각색하여 텍스트로 삼았던 그림책으로, 말꼬리를 이어가는 말놀이 동요였다. 이 곡은 각 소절을 선창자가 노래한 뒤 합창이 따라부르는 식으로 구성했는데, 관객들이 노래를 곧바로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공연하려는 의도였다. 따라서 선율도 매우 간단한 음형이 여러 차례 반복되다가 적당한 곳에서 바뀌고 또 반복하기를 되풀이 하면서 끝난다. 몇 달 지난 뒤, 출판사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시리동동 거미동동>의 독자적인 원화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 그림책으로 애니메이션도 제작하여 공연장에서 상영하기 위해 노래를 녹음하자는 제안이었다. 전시회가 지방이어서 가보지는 못했지만, 애니메이션은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다.

이듬해인 2005년 초, 이야기 콘서트 <시리동동 거미동동>을 초연했다. <시리동동 거미동동>과 같은 출판사의 다른 두 가지 그림책을 음악동화로 만들었고, <이상한 밤>을 포함한 임석재 동시에 붙인 곡들을 활용하여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어린이 음악회였다. 이야기 콘서트 <시리동동 거미동동>은 매우 성공적인 공연이었고, 지금도 계속 공연되고 있다.

2003<이상한 밤> 음악회에서 처음 발표했던, 이상교의 동시에 곡을 붙인 <빈 집>2007년 한병호의 그림이 더해져 그림책 CD-BOOK으로 출판되었다. 어린이합창의 노래와 해금, 피리, 플륫,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타악, 피아노가 반주하는 특색 있는 동요였는데, 음반 구성을 위해 동시에서 나타나는 장면들을 발췌하여 각 장면에 맞는 짧은 기악곡들을 추가했다. 각각의 기악곡은 피아노 반주의 각 선율 악기가 독주하는 곡들이었다. 그림책 <빈 집>도 꽤 주목 받았는데, 현재는 출판사가 바뀌면서 음반은 책에서 제외되었다.

 

음악동화는 내가 작업해 온 어린이 음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이다. 음악동화는 대학 시절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늑대>, 스트라빈스키의 <병사 이야기> 등의 영향을 받아, 우리말로 우리 이야기를 전하면서 현재 관객들의 호흡에 맞는 흐름을 갖는 음악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21세 때 작자 미상의 해외 동시 <할멈과 돼지>를 피아노 연주 중심의 음악동화로 만들어 학교와 주변 사람들 상대로 발표했었다. <할멈과 돼지>는 이후에 제작한 여러 가지 어린이 공연을 통해 자주 활용해서 연주하곤 했다.

내 음악동화 개발의 중심지는 민족음악연구회 산하 피아노소모임에서 매년 개최하던 피아노 한마당이었다. 1999<드라마가 있는 피아노 한마당>에서 <할멈과 돼지>에 영상을 추가하여 발표했고, 동화는 아니지만 음악동화와 비슷한 포맷의 나레이션과 피아노를 위한 <뉴욕의 초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어린이를 위한 피아노 한마당>을 통해 <노란우산><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등 그림책과 결합한 음악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하여 여러 공연에서 다양한 편성의 음악동화를 발표했고, 이후 어린이 음악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음악동화는 마침내 국악관현악과 함께 연주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2004년 민화국악관현악단 위촉으로 작곡한 <두 형제>가 그 첫 걸음이었고, 이 작품은 2004년 한 해 동안 10여 차례 연주되었다.

2005년에는 이야기콘서트 <시리동동 거미동동>에서 <시리동동 거미동동>(권윤덕 원작), <내 동생>(주동민 글, 조은수 그림), <넉점반>(윤석중 시, 이영경 그림) 등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혼용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그림책 원작의 음악동화를 발표했다.

국악관현악을 위한 두 번째 음악동화는 2012년 작곡한 <구렁덩덩 신선비>ARKO 한국 창작음악제를 통해 발표되었다. 좀 더 널리 알려진 전래동화를 텍스트로 삼았고, 초연 이후 매년 한 두 차례씩 재공연 되었다.

 

 

7.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

작곡마당은 장르와 전공을 초월하여 작곡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기반 단체로 2001년 시작되었다. 온라인에서 모인 다양한 이력의 작곡가들에게 발표의 장을 열어주는 사업을 주로 하였다. <신동일의 작곡마당>이라는 타이틀로 총 20회 발표회를 열었고, 현재는 <포럼 작곡마당>이라는 타이틀로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작곡마당의 효과는 크게 3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마추어 작곡가들의 특별한 재능과 열정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기성 작곡계에 자극을 주었고, 아마추어 작곡가들이 작곡을 보다 적극적인 취미로 발전시켜 자기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작곡마당을 통해 뒤늦게 작곡 전공을 하거나 대학원을 작곡으로 진학하여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었다.

둘째, 작곡을 전공했으나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젊은 작곡가들에게 실험과 훈련의 마당이 되어 주었다. 작곡마당을 통해 작곡가로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작곡과 졸업생을 종종 발견한다.

셋째, 작곡마당의 발표회를 통해 창작음악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고, 보다 새로운 음악 문화를 꿈꾸는 음악가들과 청중을 하나로 엮어내고 있다.

 

작곡마당은 해를 거듭해 나가면서 소그룹이 결성되거나 내부적으로 또는 외부의 제안을 받아 기획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성공적이고 오랜 기간 지속했던 공연이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였다.

당시 대학원에서 우리 민요를 연구하던 김정희 회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토속민요를 공부하면서 민속악을 중심으로 우리 음악의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공부하고, 축적된 공부를 바탕으로 우리 민요 가락을 테마로 하여 창작 실내악곡을 작곡, 발표하는 사업이었다. 민요 공부에는 회원 작곡가 뿐 아니라 연주가, 음악학도 등 상당히 많은 인원이 참여했고, 2007CTS 아트홀에서 <18회 신동일의 작곡마당>민요, 작곡마당에 서다라는 부제를 달고 첫 공연을 가졌다. 신동일, 김정희, 박기현, 오소린, 이소정, 이지연 등 회원 작곡가들이 남한 지역 8도의 민요를 한 두 곡씩 선택하여 이를 테마로 작곡한 실내악곡들을 발표했다. 이후 2008년에는 각 지역의 뱃노래를 주제로 하여 <한반도의 뱃노래>, 2009년에는 각 지역의 유흥요를 주제로 하여 <캥마쿵쿵 놀아보세>를 각각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공연했고, 2010년에는 의례요를 주제로 하여 <느시랑거리며 왜 왔댔나?>KOUS 한국문화의 집에서, 2011년에는 <여기도 하나>를 제목으로 하여 남산국악당에서 공연했다.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는 공연 중 원곡 민요를 일부 들려주고 해설을 곁들인 뒤, 이를 테마로 작곡한 실내악곡을 연주하는 포맷으로 교육적인 효과도 컸다. <한반도의 뱃노래><캥마쿵쿵 놀아보세>는 특히 주목을 많이 받은 공연이었다.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의 또 하나의 성과는 5년 동안 같은 연주자들이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했다는 것이다. 몇몇 연주자들은 민요 공부부터 참여하기도 했고, 해마다 한두명 씩 변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첫 공연에 참여했던 연주자들 대부분이 이 프로젝트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매년 연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민요, 작곡마당에 서다>는 처음에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서양악기를 혼합하여 작곡하다가 점차 국악기만으로 작곡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갔는데, 서양음악 전공 작곡가들이 주로 참여하고 있었기에 국악기를 다루는 부분에 대하여 점점 어려워하면서 참여가 줄어들고 5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8. 2011년 이후

<국악관현악을 위한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이 국립국악원 작품 공모에 당선되어 2011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이즈음에 가장 많이 생각하기 시작한 점은, 국악기를 위한 구조적인 작품을 작곡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작곡이란 작곡가 개인의 작품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것은 기본적으로 서유럽에서 전래한 것이다. 서유럽의 작곡법은 구조주의로 귀결되고, ‘구조주의 작곡법소나타 형식으로 완성된다. 물론 소나타형식이 구조주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주의 작곡법은 음의 관계성을 연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한 곡에서의 각 부분, 각 악절, 각 악구, 동기와 음형들이 모두 연관성을 갖고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도록 작곡된다. 모티브와 테마가 완성되면 이후 나타나는 모든 음악적 요소들에는 합당한 이유를 갖고 나타나게 된다. 작곡가의 아이디어는 곡의 큰 틀에서 세부까지 영향을 미치며, 곡의 표면에서 숨겨진 이면에 이르기까지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짜여진다.

서양음악의 구조주의 작곡법은 여러 가지 형식으로 정리되었고,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제시된 형식들에 맞춰 하나 하나 연습으로 작곡을 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구조주의 작곡법을 익힐 수 있게 된다. ‘개인의 작품이라는 개념의 작곡을 익히기 위해서 구조주의 작곡법의 훈련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 음악에는 이러한 구조주의 전통이 없다. 우리 음악의 기본은 즉흥연주(improvisation). 음악에 있어서 개인의 작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국악작곡가들은 개인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곡을 해야 한다. 더구나, 국악작곡과 또는 한국음악 작곡과 학생들은 처음부터 곡의 구조를 스스로 만들면서 작곡을 해야 한다. 아무런 연습 없이 처음부터 대가(大家)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국악기를 위한 구조주의적인 작품을 작곡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국악기를 활용하여 소나타 형식과 같은 수준의 구조주의를 구현할 수는 없다. 국악기의 구조와 개념은 서양 악기와 전혀 다르다. 그리고 서양음악에서 구조주의가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은 바흐(J.S. Bach)가 평균율 조율법을 고안해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조율법이 다른 국악기에 서양음악과 같은 방식의 구조주의를 적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서양의 구조주의 작곡법 중에서 국악기에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발췌해서 적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 서양음악 작곡법의 일부를 국악기를 위한 작품에 적용하는 방법이고,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서양음악 작곡 전공을 하고 국악기를 위한 작품을 많이 작곡하는 작곡가들 중에서 구조주의를 부분적으로 적용하는 작곡가들이 있다. 이런 기법들이 축적되고, 전통음악에 대한 연구가 좀 더 깊어지면서 국악기를 위한 구조주의 작곡법이 좀 더 정확하고 깊이 있게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구조주의를 기반으로 작곡한다고 해서 단지 교육적이거나 학문적인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명곡들이 대부분 구조주의에 기반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구조주의 작곡법의 중요성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이 가장 처음, 그러나 다소 느슨하게 반영된 곡이 바로 <국악관현악을 위한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이다. 이 곡은 악기 편성에서부터 서양음악의 것을 변형했다. 서유럽에서 바로크 시대에 많이 작곡되었던 합주협주곡(Concerto Grosso)”은 반주를 하는 합주 부분에 대하여 하나의 독주 악기가 아닌, 여러 개의 독주 악기들이 그룹을 이루어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착안하여 <국악관현악을 위한 합주협주곡>에 적용한 악기 편성은, 각 선율악기마다 독주와 합주로 나누는 것이었다. 대금, 피리, 해금, 아쟁, 25현 가야금, 거문고를 독주와 합주로 나누어 편성했다. 독주 악기끼리 그룹이 만들어지고, 합주가 독주 그룹에 대응한다. 독주 악기끼리의 중주는 실내악의 효과를 낼 수 있고, 합주 파트와 결합하면 관현악이 된다. 독주 악기들이 관현악 반주 위에 실리면 당연히 협주곡이 된다. 곡의 전체 2악장으로 나뉘고, 각 악장은 또 크게 2부분씩 나뉜다. 그리고 1악장의 첫 주제가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이후 2014ARKO 한국창작음악제를 통해 발표한 국악관현악을 위한 <Sinfonietta No.1>이 국악기를 위한 구조주의를 가장 본격적으로 도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서양음악의 구조주의를 국악관현악에 최대한 도입하면서 전통음악 스타일을 유지해보려고 했다. 물론 전조와 곡의 구성 등은 전통음악과 매우 다르고, 서양음악과는 유사한 점이 있으면서 다르다.

이후 최근의 국악기를 위한 작품들에서 구조주의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적용해 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9. 음악극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마음으로 작곡가의 길을 개척해 왔다. “장르의 벽을 넘어서를 내 음악의 지향으로 삼았고, 작곡 기법이 내 음악의 정체성을 결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기법은 내가 작곡가로 살아가는 도구일 뿐이다. 나는 기법에 종속되지 않는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한 가지 좁혀지는 생각이 있다. 내 관심이 점점 음악극을 향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장르는 상관없다. 뮤지컬, 오페라는 물론이고 소리극, 국악뮤지컬, 복합장르음악극 등 극과 결합된 음악 작품에 점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어쩌면 음악동화가 그 출발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음악극작업이 가장 재미있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노래에 국한해서 생각해 봐도, ‘서정가곡이라든가 대중가요등 일반적인 노래를 솜씨 있게 작곡하는 편이 아니다. 작품 수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을 노래에 실어서 공연하면 관객들 반응이 특별하다.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실험과 연구도 있었다. 앞으로 내 작품 활동의 중심은 음악극이 될 것이다.

몇 년 동안 복합장르 음악극을 제작했던 나는 2006년 즈음부터 본격 음악극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첫 결실이 2011년 나타났다. 어린이국악뮤지컬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라>와 코믹오페라 <테이크 아웃>이었다. <문지기 문지기 문열어라>2012년 제1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 아동청소년 부문 음악상을 수상했고, <테이크 아웃>은 창작오페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연 8회 공연을 이어가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두 작품을 발표한 뒤, 실제로 나에게 음악극 시대가 열렸다. 국립국악원에서 제작했던 어린이역사음악극 <그 아이, 유관순>, 부평아트센터의 어린이창작음악극 <할락궁이의 모험>,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카메라타 오페라 리딩 공연을 통해 발표했던 <로미오 대 줄리엣>, <검으나 흰 땅>, <달나라 연속극> 3편의 오페라, 서울시국악관현악단 50주년 기념 음악극 <금시조>, 절대가인과 소월아트홀이 제작한 <꽃이 피네 꽃이 지네>, 극단 꼭두광대와 수년간 작업하면서 CD까지 발매했던 연희음악극 3(<우주 이야기>, <눈자라기>, <왼손이>), 남산국악당에서 초연한 가족국악뮤지컬 <삼단합체 한글>, 세종문화회관에서 기획한 <모차르트와 모짜렐라의 마술피리 이야기>, 숙명가야금 연주단의 <맹인악사 매우씨전> 등이 이어졌고, 현재도 여러 작품을 계속 작업 중이다. 서양음악과 국악, 어린이 음악극을 아우른다.

 

음악극의 시작은 말과 음악이었고, 완성은 드라마와 음악이었다. ‘말과 음악을 책상 위에서의 연구였다. 사전을 뒤지고, 혼자 실험해 보고, 이미 발표된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드라마와 음악은 실제 무대와 현장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극을 올리기 위해 한 달, 두 달 씩 연습을 하고, 무대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느끼고, 설문 조사를 하고, 지속적으로 새 작품을 만들면서 축적된 결과물이다.

말과 음악에서는 언어 자체가 갖고 있는 액센트, 운율, 고저장단 등을 고려했다. ‘드라마와 음악10년 이상 경험하면서 언어의 사전적 속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 갔다. 사람들은 사전에 정해진 대로,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말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음악극 연구가 시작될 때 가장 중요하게 지적된 부분이 음악의 시간과 말의 시간은 다르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한 사실이다. 음악의 시간은 말의 시간보다 느리다. 내 목표는 음악극 안에서 음악의 시간과 말의 시간을 최대한 좁혀보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노래로 대화를 하지만, 관객들은 마치 실제 대화를 듣는 것처럼 느껴지길 원한다. 관객들이 내 음악극을 통해 말과 드라마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특별한 재미를 느끼기를 기대한다. ‘음악극은 작곡가로서 남은 내 생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 분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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