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다.
무관심, 외면, 방관, 방치….
세월호 실종자들의 주검 수습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대중과 언론의 애도·추모 발길도 끊어져간다.
세월호 국정조사는 정치권 정쟁 속에서 표류 중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말한다.
“잊지 말아주세요.”
유족들은 호소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발….”
애도의 대화법 [21호] | |
[나들의 초상] 죽은 자가 산 자에게, 산 자가 죽은 자에게 | |
가장 우려했던 시나리오다. 무관심, 외면, 방관, 방치…. 세월호 실종자들의 주검 수습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대중과 언론의 애도·추모 발길도 끊어져간다. 세월호 국정조사는 정치권 정쟁 속에서 표류 중이다. 세월호 희생자들은 말한다. “잊지 말아주세요.” 유족들은 호소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발….” |
우린 여기 있다’ 절망이 연대가 되면 [21호] | |
[나들의 초상] 죽은 자와 산 자의 서신 | |
바틀비는 월가의 서기로 일하기 전에 어느 지방의 우편국 직원이었다. 그가 하는 일은 이른바 ‘데드 레터스’(Dead Letters)를 검사하고 분류하고 소각하는 일이었다. 데드 레터스, 죽은 편지들- 그 편지들은 배달될 수 없는, 도착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편지들 안에는 사랑 고백, 자선헌금 지폐, 용서의 고백, 희망의 소식, 심지어 결혼반지까지 들어 있었다. 생명과 희망, 사랑이 들어 있는 이 편지들은 그러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편지의 수신자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수년간 데드 레터스와 함께 지내던 바틀비는 어느 날 우편국을 떠나 월가로 온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안 하는 게 좋겠어요”(Prefer not to do)라는 말로 임무 수행을 거부하면서 월가의 법률에 저항한다. 그는 월가에서 쫓겨나 감호소에 수용되지만 그곳에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는다. 이번에는 음식을 거부하면서 나날이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리고 마침내 햇빛이 내려앉은 감호소 안 뜰, 잔디가 돌 틈 사이로 비집고 자라난 벽 밑에서 죽는다. 그런데 바틀비는 죽은 걸까? 존경하는 소설가 베르고트가 죽었을 때, 프루스트는 격렬히 저항한다. “죽었다고? 베르고트가 죽었다고?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베르고트는 죽은 게 아니라 저 미지의 세상, 사랑과 정의의 법률이 다스리는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갔다는 걸….” 정말 그 누가 알까? 죽은 자들은 죽은 게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살아서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우리들, 그들을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아파하는 산 자들과 이 세상 안에서 더불어 존재한다는 걸, 그렇게 우리들 곁에서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등의 법률이 온전히 지배하는 또 하나의 세상을 함께 꿈꾸고 있다는 걸, 그 누가 알겠는가? 적어도 발터 베냐민은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적들이 승리하면 산 자만이 아니라 죽은 자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적들은 지금도 승리하고 있다.” 베냐민에게 죽은 자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끝은 끝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여전히 살아서 산 자와 함께 연대하기를 기다린다고 그는 믿었다. 죽은 자들과의 연대, 그것이 베냐민에게는 ‘역사적 애도’였다. 애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절망의 애도’다. 절망의 애도는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모든 것이 이미 끝났다고 아픈 가슴을 달래면서 죽음을 승인한다. 그리고 산 자는 살아야 한다고, 죽은 자도 그걸 원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으로, 일상으로, 시장으로 회귀한다. 그렇게 산 자는 죽은 자에게 이별을 고하고, 이별당한 죽은 자는 망각의 하데스에 남겨진다. 그런데 망각이란 뭘까? 그건 사랑의 정지다. 사랑의 정지는 절망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애도가 있다. 그건 ‘연대의 애도’다. 연대란 무엇인가? 그건 사랑의 지속이다. 사랑의 지속은 저항이다. 연대의 애도는 죽은 자를 잊지 않는다.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을 부당하게 죽은 자로 만들고, 우리 살아남은 자들, 또 우리의 다음 세대마저 부당한 죽음으로 몰아가려는 적들의 세력과 맞선다. 그들의 힘과 승리를 분쇄하고 정의의 법률, 인간의 법률이 다스리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서 깨어난다. 바틀비 또한 죽은 게 아니다. 그는 본래의 직장인 우편국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그는 더 이상 데드 레터스를 소각하지 않는다. 대신 공기처럼 가벼운 우편배달부가 되어 데드 레터스를 우편가방에 싣고 죽은 자들의 주소를 찾아 먼 길을 떠났을 뿐이다. 그는 우리의 편지를 죽은 자들에게 전해주고, 그들이 보내는 답장을 우리에게 배달하기 위해 곧 다시 세상으로 귀환할 것이다. 그리고 바틀비의 우편가방,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편지 두 장도 들어 있었을 것이다.
2. 산 자의 편지 보고 싶은, 너무나 보고 싶은 아들에게 아들, 그동안 잘 있었니? 엄마가 또 이렇게 편지를 쓴다. 지난 편지는 받아보았는지. 답장이 없어서 엄마의 편지들이 너에게 도착하는지조차 모르겠구나. 편지를 써서 보내면 엄마는 늘 걱정이 되고 불안하단다. 왜냐고? 엄마 편지가 너를 찾아가는 중에 누군가 그 편지를 훔쳐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구나. 그래, 우리 아들도 누군가 도중에서 훔쳐가버렸지. 바다 건너 섬으로 배낭을 메고 아침에 떠났던 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건 그 바닷길 어딘가에 숨어 있던 누군가가 너를 감쪽같이 엄마 품으로부터 훔쳐가버렸기 때문이야. 도대체 누가, 무엇이,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 아들을 엄마 품에서 빼앗아가고 또 아들이 엄마 품으로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건지, 엄마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지만,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구나. 그저 억울하고 슬프고 분하기만 해서 어쩔 줄 모르고 화를 내다가 그만 엉엉 통곡을 하고 만단다. 그래 아들, 보고 싶은 내 아들, 엄마는 아직도 네가 죽었다는 걸 믿을 수도 없고 믿지도 않는단다. 그냥 네가 어느 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고, 거기서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고,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그 어느 곳에 도착해서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는 것만 같아. 그런데 네가 거기서 잘 지내고 있구나 안심하다가도, 그렇지만 거기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은재가 없으니 네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에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아파서 견딜 수 없구나. 네가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아침이 생각난다. 제주도는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너는 많이 흥분돼 있었지. 엄마는 지금도 눈에 선해. 배낭을 둘러메고 손에는 가방을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문을 나서던 네 모습이. 그때의 기쁨이 지금은 하늘이 무너지도록 후회스러운 한이 되었구나. 상규 엄마에게서 급한 전화가 온 건 다음날 아침이었지. 학교로 달려가니까 강당에 엄마들이 다 모여 있었다. 엄마들은 모두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고, 상규 엄마·아빠와 우리도 마찬가지였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아닐 거야, 엄마는 아빠 팔을 꼭 붙들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 그런데 무엇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그때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처럼 무서워졌어. 그리고 대절한 버스를 타고 긴 시간 고속도로를 달려서 팽목항-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남쪽 끝 어느 작은 항구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두려움 때문에 미칠 것만 같았어. 그래, 엄마는 그 항구에서 끝도 없이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미 모든 걸 알아버렸는지 모르겠구나. 텅 빈 바다, 흰 이빨 같은 파도, 거꾸로 물속에 박혀 있는 배, 물끄러미 이 모든 것을 바라보는 차가운 잿빛 하늘- 엄마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풍경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어. 그것뿐이었다면 엄마는 이를 악물고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을지 몰라. 엄마를 두려움으로 절망에 빠지게 했던 건, 그 잔인하고 차가운 풍경이 아니야. 그건 그 바다 위에서 벌어지는 구조의 모습이었어. 죽은 고래처럼 뒤집어져서 물속으로 가라앉는 거대한 배의 몸통에 무슨 장난감처럼 매달려 있는 몇 척의 경비정과 구조선들, 잿빛 하늘에서 구경꾼처럼 하릴없이 맴돌기만 하는 헬리콥터, 사람이 죽어가는데 왜 구조를 하지 않느냐고 아빠들이 외쳐대도 이리저리 무선 연락만 주고받는 경찰들. 그래, 그때 엄마는 그만 다 알아버렸단다, 너희는 배 밖으로 나오지 못할 거라는 걸, 너희는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리라는 걸, 그들은 너희를 구조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 구조를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는 걸.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라고 너희는 묻겠지만, 아무도, 엄마와 아빠마저도, 너를, 너희들을 차가운 죽음의 바다에서 구해낼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후 세상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건지.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너희가 하나둘 세상으로 (끌려)나오는 동안, 세상은 온통 미쳐가는 것만 같았지. 기자들이 몰려와 들끓더니 신문과 방송에서는 허위와 과장, 왜곡과 오보가 뻔뻔스럽게 판을 쳤어. 장관들이 내려오고, 국무총리가 내려오고, 대통령도 우리를 찾아왔어. 미안하다고,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책임자들을 찾아서 엄벌하겠다고,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고 약속했지만, 그러나 엄마는 금방 알았어. 그들은 모두 뻔뻔스러운 거짓말쟁이라는 걸. 그래,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려고 찾아왔던 거야. 기자들이 제멋대로 거짓 기사를 쓰는 것처럼 그들도 제멋대로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었어. 그들의 거짓말은 너희가 갇혀 있는 심해처럼 어둡고 차가웠어. 사과와 약속의 말들 속에는 늘 무언가 다른 것, 배신을 연상시키는 어둠이 감추어져 있었고, 항의하는 누군가를 얼핏 노려보는 눈빛도, 할 말을 다 했다며 빠르게 돌려 세우는 등도 얼음처럼 싸늘하고 차가웠어. 그 거짓말을, 그 위선을, 그 오만함을, 그 차가움을 엄마는 참을 수 없었어. 용서할 수 없었어. 그때 엄마는 깨달았지.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두려움이 씻겨나간 자리에 미움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는 걸. 그리고 또 깨달았어. 세상에는 정당한 미움과 분노도 있다는 걸, 그 미움과 분노를 잊지 않도록 가슴에 깊이 품어야 한다는 걸…. …그리고 네가 돌아왔어. 5월5일, 어린이날, 너는 아빠와 엄마 품으로 돌아왔어. ‘215번. 남자. 172cm. 초록 바탕에 빨간 줄이 그어진 아디다스 후드. 검은색에 흰 줄이 그어진 바지. 흰색 나이키 운동화. 검은 가죽띠 카시오 시계 차고 있음.’ 전광판에 떠오른 신원 설명문을 보고 아빠와 엄마는 당장에 너인 줄 알았어. 신원 확인소로 달려가서 너를 만났어. 얼굴이 다 망가져서 이목구비가 없어지고, 고무장갑처럼 부푼 손가락에는 손톱도 없었지만, 그래, 너는 무슨 심해의 물고기처럼 변해 있었지만, 엄마는 금방 너를 알아봤어. 숨이 막혀서 뒤로 넘어가는 엄마를 아빠가 부축했고, 엄마는 기침을 하면서 겨우 다시 깨어날 수 있었어.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네 시계는 살아 있었어. 톡톡 움직이는 초침이 살아 있었어. 그 초침 소리가 너의 심장 소리 같았어. 엄마는 아빠에게 소리쳤어. 봐요, 준호는 죽은 게 아니에요. 준호는 살아 있어요, 라고. 서울로 올라와 발인을 마치고, 너를 하늘공원에 묻고, 네가 그렇게 좋아하던 친구들이 모여 있는 합동분향소 단 위에 네 사진을 세워놓았어. 엄마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 눈물은 너를 잃어버린 슬픔의 눈물만이 아니었어. 그 눈물은, 끝없이 흘러나오는 그 눈물은, 억울함과 분노의 눈물이었어. 그래, 엄마는 더 이상 슬프지 않았어. 그냥 억울하고 분하기만 했어. 그런데 그런 마음은 엄마만이 아니었나봐. 발인 다음날, 분향소를 지키던 엄마와 아빠들이 청와대로 가자고, 대통령을 만나자고, 서울로 달려가서 행진을 시작했어.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을 만날 수 없었어. 대신 청와대로 통하는 길목에서 전경들이 검은 방패를 들고 우리를 무슨 침입자들처럼 둘러싸고 막았어. 엄마와 아빠들이 외치면서 항의했어. 우리는 시위대가 아닙니다. 우리는 대통령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나와주세요, 제발 우리를 만나주세요! 그런데 엄마는 그 외침들이 싫었어.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저만큼 길 끝 무성한 숲 속에 숨어 있는 청와대를 바라보면서 엄마는 간절히 부탁하고 호소하는 아빠들의 외침이 너무 부끄러웠어. 청와대는 어딜까? 우리는 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을까? 대통령은 누굴까? 우리는 왜 그를 만날 수 없을까? 도대체 우리는, 이렇게 호소하고 부탁하는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일까? 아무 힘도 없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보잘것없는, 더러운, 쓰레기 같은, 벌레 같은- 그래, 그들에게 우리는 그런 존재일 뿐이야. 엄마는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서 심한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꼈어. 그날 이후 엄마는 울지 않는단다. 아니, 울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아. 눈물 때문에 세상을 흐릿하게 보아서는 안 되니까. 눈물은 안으로만 고이게 하고 엄마는 메마른 눈으로, 냉정하고 차가운 눈으로, 저들을, 저들이 부당하게 만들어가는 세상을 노려볼 거야. 저들이 또 어떻게 너의 죽음을 모욕하려고 하는지, 엄마의 슬픔을 또 어떻게 모독하려고 하는지 엄마는 반드시 노려보는 눈으로 지켜볼 거야.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 때문에 엄마가 이제야 부쩍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구나. …그래도 아들아, 엄마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단다. 네가 보고 싶어서, 너무나 보고 싶어서, 엄마는 몰래 혼자 울곤 한단다. 꿈속에서라도 너를 만나려고 자기 전에는 오랫동안 기도를 해. 두 발을 맞추고 똑바로 누워서, 두 손을 포개어 가슴 위에 얹고, 이불을 턱까지 끌어 덮은 다음에, 엄마는 오랫동안 눈을 감고 너의 얼굴을 떠올리지. 그렇게 너를 자꾸만 불러. 그러면 잠든 사이에 네가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꿈길을 걸어서 엄마의 곁으로, 엄마의 품 안으로 찾아올 것만 같아서야. 그런데 아들아, 너는 왜 엄마의 꿈속으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 거니? 너는 엄마가 보고 싶지 않니? 엄마를 벌써 잊었니? 제발 한 번만 꿈속으로 찾아와주렴. 한 번만 너를 보고, 너의 목소리를 듣고, 너를 안아보고, 너를 만지게 해주렴, 한 번만, 꼭 한 번만….
3. 죽은 자의 편지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나 준호예요.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나도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가 보내는 편지들도 모두 잘 받아서 읽고 있어요. 엄마는 내게 보내는 편지들이 도중에서 없어질까봐, 누군가 그 편지들을 훔쳐갈까봐 걱정이라고 했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요. 내가 보고 싶어 엄마가 편지를 쓰면, 엄마의 마음 안에서 나는 엄마의 편지를 읽고 있어요. 그래요, 엄마, 엄마가 나를 보고 싶어 할 때, 나는 벌써 엄마 마음 안에 들어 있어요. 그런데 엄마는 그걸 몰라요. 내가 엄마 안에 있는 것도 모르고 나를 먼 곳에서 찾기만 해요. 난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그렇지만 나는 행복해요.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는 못해도 나는 엄마의 마음속으로, 거기 세상으로 건너갈 수 있으니까요. 사실 여기에는 아무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서, 불러주지 않아서 거기로 건너가지 못하고 여기서만 오랫동안 살고 있는 외로운 사람이 아주 많아요. 역사 시간에 배운 사람들, 이름을 말하면 엄마도 다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도 다 여기 있어요. 간첩으로 몰려서 죽은 사람, 고문받다가 죽은 사람, 재산을 다 빼앗기고 죽은 사람, 광주에서 술 취한 군인들에게 매 맞아 죽은 사람- 그 사람들은 모두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었대요. 제가 잘 아는 김 아저씨도 마찬가지예요. 아저씨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원생이었는데, 학생운동을 하다가 간첩으로 붙잡혀서 별별 고문을 받았대요. 그래도 끝까지 자백하지 않아서 다행히 사형은 면했지만, 고문으로 생긴 병 때문에 서른다섯 살에 형무소에서 죽었대요. 그렇지만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픈 얼굴을 하지 않아요. 대신 하루 종일 공부만 해요. 모르는 게 없어서 우리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다 대답해줘요. 아저씨, 우리는 여기서 죽은 거예요 산 거예요? 한번은 우리가 물었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은 숨이 끊어졌다고 죽는 게 아니란다. 사람은 자기 생명을 다 살아야 죽는 거야. 자기가 살아야 하는 시간을, 하늘이 살라고 준 시간을 다 써야 죽는 거야. 그런데 너희는 살아야 하는 시간을 다 살지 못했지. 그러니까 너희는 살지 못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죽을 수가 없어. 그럼 우리는 살아 있는 건가요? 아니, 너희는 살아 있지도 않아. 너희는 시간을 다 빼앗겨버렸으니까. 살 수 있는 시간을 다 빼앗겼는데 어떻게 살 수 있겠니? 그럼 우리는 이제 어떡해야 하죠? 빼앗긴 시간을 다시 찾아야지. 너희의 시간을 빼앗아간 사람들과 싸워서 너희의 것이었던 생명의 권리를 다시 찾아야지. 어떻게요? 어떻게 우리의 것인 생명의 권리를 다시 찾을 수 있나요? 그래, 그것이 문제란다. 그것이 아저씨가 수십 년을 여기서 기다리는 이유야. 아저씨는 쓸쓸하게, 아니 부끄럽게 웃었어요. 그건 우리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란다. 그건 우리가 살았던 저 세상이 우리를 도와줘야만 하는 일이야. 그들이 도움을 청하는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우리를 기억하고, 우리를 알아볼 때만 이뤄질 수 있는 일이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날을 기다리고 있지, 몇 년을, 수십 년을…. 그렇지만 언제 그날이 올지 아저씨도 모른단다…. 아저씨는 또 쓸쓸하게 부끄럽게 웃었어요. 그런데 엄마, 그 쓸쓸하고 부끄러운 웃음은 김 아저씨만 알고 있는 웃음이 아니에요. 나는, 그리고 상규도, 그 웃음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상규와 내가 끝까지 배 안에 숨어 있자고 약속한 것도 그 웃음 때문이었어요. 기다리라는,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까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우리는 꼼짝도 않고 선실에 앉아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배는 자꾸만 더 기울고 나중에는 선실 바닥이 비탈처럼 미끄러워졌어요. 선반에서 짐들이 쏟아져내리고 캐비닛 옷장이 넘어졌어요. 그쪽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머리를 얻어맞고 피를 흘렸어요. 그제야 우리는 배가 완전히 침몰한다는 걸 알았어요. 선실 안으로 조금씩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이리저리 미끄러지면서 우왕좌왕했어요. 그때 옆에 있던 상규가 외쳤어요. 경찰이다. 경찰이 왔다! 나는 상규를 따라서 창에 바짝 붙었어요. 창 앞에 경비정 한 척이 서 있고 경찰복과 구조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흔들거리며 서 있었어요. 그런데 아저씨들은 위쪽만 바라보면서 고함을 치고 있었어요. 상규는 의자를, 나는 철제 서랍을 들고 창을 부수려고 했지만 창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그때 경비정 난간을 붙들고 있던 경찰 아저씨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어요. 아저씨는 아주 잠깐 나를 보더니 다시 눈을 돌려버렸어요. 그리고 경비정은 한 바퀴 빙 돌아서 다른 쪽으로 가버렸어요. 난 갑자기 데인 것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어요. 그건 창피함 때문이었어요. 마치 내가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창피함이었어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될 필요도 없는, 그냥 버려져도 되는 존재 같았어요. 나는 내가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난 사람이 아니었구나, 그럼 나는 뭐지? 벌렌가? 그냥 물속에 빠져 죽어도 되는 벌렌가? 돌아보았더니 땀범벅이 된 상규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어요. 그래서 나는 알았어요. 상규도 창피해하고 있다는 걸,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에요. 그 부끄러움 때문에 벌레가 된 줄 알았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 부끄러움 때문에 갑자기 어른이 되었어요. 벌레가 된 것 같은 창피함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속여왔는지 속속들이 알아버린 어른이 되었어요. 발견되지 말자고, 배 밖으로 끌려나가지 말자고, 끝까지 배 안에 꽁꽁 숨어 있자고, 상규와 내가 약속했던 것도 그 때문이에요. 구조돼서 세상으로 끌려나가면 우리는 또 속을 거라는 걸,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거짓말을 했던 사람들이 또 우리를 제멋대로 속이고 이용할 거라는 걸 상규도 나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난 상규처럼 끝까지 배 안에 숨어 있을 수 없었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상규만 혼자 남겨두고 잠수부 아저씨를 따라 배 밖으로 나왔어요. 상규는 지금도 잠수부 아저씨를 피해서 배 안에 숨어 있을 거예요. 그러다 배를 끌어내려고 하면 먼저 배 밖으로 나가서 바다 멀리로 도망갈 거예요. 아니 어쩌면 벌써 배를 탈출해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지 몰라요. 아마 상규는 영영 찾을 수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상규 어머니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자기가 직접 엄마를 만나러 갈 거라고 약속했으니까요. 그런데 상규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렇게 세상을 탈출해서 어디로 갔을까요? 김 아저씨에게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마 그 애는 우리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갔을 거다. 그래, 우리는 가본 적도 없지만, 떠나본 적도 없는 그런 곳이 있지. 거기서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언제나 거기서 살고 있는 가깝고도 먼 나라가 있어. 그 나라는 여기도 아니고 우리가 살았던 저 세상도 아니야. 그 나라는 아마 여기 세상과 저 세상이 서로를 기억할 때만 도착할 수 있는 나라일 거야. 지난번에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니? 우리가 다 살지 못한 시간을 다시 찾는 건, 빼앗겨버린 생의 권리를 다시 찾는 건, 여기 우리만의 힘이 아니라 저 세상의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때만 가능한 거라고. 그런데 그건 저 세상도 마찬가지지. 저 세상도 정의로운 세상, 사람 사는 세상이 되려면 혼자 힘만으로는 안 돼. 우리가 도와줄 때만 저 세상도 사람의 세상,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어.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저들이 희망이고, 저들에게는 우리가 희망인 거지. 두 희망이 하나가 될 때만 우리는 적들에게 승리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아직도 세상은 모르는 것 같아, 우리만이,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고 저들이 까맣게 망각해버린 우리만이 자기들의 희망이라는 걸. 그래요, 엄마, 김 아저씨 말이 맞아요. 결코 잊지 않겠다고,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사람들은 다짐하고 약속하지만, 그러면서 벌써 우리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걸 우리는 알아요. 외치는 목소리 속에, 흘리는 눈물 속에, 우리는 이미 죽었다는, 모든 것이 이미 끝났다는, 그래서 다 소용없다는, 그런 은밀한 낙담과 절망이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아요. 우리의 이름을 부르지만, 그 호명이 오래된 망각의 어둠 속으로 우리를 밀어내는 추방의 주문이라는 것도 알아요. 우리가 희망인데, 우리와 함께할 때만 꿈을 이룰 수 있는데, 우리와 손잡고 연대할 때만 적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 엄마, 엄마만은 날 잊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날 잊지 않고 기억할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나는 여기 있으면서도 언제나 또 거기 엄마와 함께 있을 거예요. 꿈속으로 찾아오지 않는다고 섭섭해하지만, 엄마가 잠들기 전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나를 부르면 나는 벌써 엄마 곁에 누워 있어요. 오늘 밤에도 엄마가 부르면 나는 벌써 엄마와 함께 있을 거예요. 어린 시절처럼 엄마 곁에 누워서 엄마를 만지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꿈속에서 나를 찾지 마세요. 그냥 엄마 옆에 누워 있는 나를 돌아보세요. 자, 엄마, 나 여기 있어요. 날 안아주세요. 날 만져주세요.
4. 나가면서: 세 개의 인용
적들이 승리하면 죽은 자들만이 아니라 산 자들도, 그들의 아들딸들도 안전하지 못하다. 그런데 적들은 지금도 부단히 승리하고 있다. -W. 베냐민, 다시 쓴 ‘역사철학테제 6’
말타의 어부들은 가끔 먼 바다에서 슬프게 우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건 마라의 울음소리다. 마라는 세상을 구원하려고 이 땅으로 건너온 여자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여자의 목을 잘라서 바다에 버렸다. 이후 마라의 목은 울면서 바다를 떠돈다고 한다. -토마스 핀천, ‘V.’
그들이 찾아온다. 때 아닌 어느 시간에…. -프리모 레비, ‘고통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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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겠다’ 사유의 확장으로 [21호] | |
[나들의 초상] 남은 자와 산 자의 의무 | |
잊혀지는 건 사람과 사건만이 아니다. ‘5월 광주’의 공간은 1997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되레 잊혀짐의 과정 속에 있다. 상징적 공간인 광주는 물리적 공간인 5·18 국립묘지 5만여 평 안에 갇혔다. 그곳은 구 묘지와 달리 거대한 기념탑을 필두로 잘 정렬된 잿빛 묘비들이 종횡으로 각을 맞추고 있다. 정돈된 아름다움이 주는 뭉클함은 정작 규모가 주는 위압감과 형식이 주는 조화로움일 뿐이다. 감동은 방문객들 중 나이 든 사람들이 희생자들과 관계 맺은 민주화의 이미지에서, 30년이 지나 머리가 희끗해진 유족과 동료들의 추모 눈물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매년 5월18일 현직 대통령이 국립묘지를 참배하느냐 마느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누구의 기억이 공적 영역으로 들어갈지를 두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제 제도화된 5월 광주는 박제화된 민주화의 성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잊혀진다는 것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말처럼 가장 두려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다. 과거형인 5월 광주도 현재형인 쌍용차 해고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어디 그뿐이랴.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경남 밀양의 할매,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하청노동자, 활동보조가 필요한 지체장애인 등 우리 사회 곳곳에는 잊혀지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는 피해자들의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몸부림은 어떤가. 꽃다운 293명의 생명이 주검으로 돌아왔고(6월28일 현재 11명의 생명이 아직 차디찬 바닷속에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가 거리에 있고,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할매들이 밀양에 있지만 그들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두 달이 지난 지금 청계광장·청와대 앞 함성은 어떤가? 광화문 광장의 월드컵 응원 함성은 드높기만 하다. 역설적으로, 망각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기억돼야 할 사건의 희생자와 유가족이다. 대형 참사나 학살, 차별의 공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기억할 의무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볼 때 자명하다. 그들의 의무는 오히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픈 경험으로부터 벗어나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는 것이다. 5월 광주의 피해자들이 학살 현장을 잊을 수 없어 악몽을 꾸고,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어 눈물로 말하고, 연좌제의 폭력 앞에 공포를 느껴온 세월에 대한 보상은 망각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작가 프리모 레비나 장 아메리가 생의 끝을 자살로 마무리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수용소를 떠났지만 수용소의 이미지는 평생 그들의 의식을 좀먹는다.
기억될 권리, 기억할 의무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먹고사니즘’으로 바쁜 와중에 우리는 왜 기억할 의무까지 져야 하는가? 도대체 기억할 의무는 어디까지인가? 이는 제48차 유엔인권소위에서 채택한 프랑스 인권변호사 루이 주아네의 ‘인권침해 가해자의 불처벌 문제’ 보고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주아네의 보고서에 담긴 원칙들은 알 권리, 정의를 추구할 권리, 보상에 대한 권리 등이다. 정의를 추구할 권리와 보상에 대한 권리가 피해자의 기억될 권리라면, 알 권리는 직접 관련이 없는 개별자들의 기억할 권리에 가깝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는 개별 피해자 또는 그와 밀접하게 연관된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알 권리는 또한 집단적인 권리로서, 장차 피해가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사에 다가가는 것이다. 알 권리에서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기억할 의무’로서, 국가가 당연히 취해야 할 의무이다. 그 목적은 수정이나 부정의 이름으로 역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겪어냈던 억압에 대해 아는 것은 한 민족의 역사적 유산의 일부이며 그런 것으로서 보존돼야만 한다. 이것이 집단적 권리로서의 알 권리의 주요 목적이다.”3 보고서에 따르면 기억할 의무는 본디 국가의 의무다. 홀로코스트 가해자인 독일의 청산 노력이 기억할 의무를 나름 충실히 이행한 사례다. 1970년 폴란드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바르샤바 게토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사실 브란트는 나치에 저항한 이로 나치의 만행에 사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한 기자는 그의 행동을 이렇게 평했다. “그가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을 필요가 없는 그가. 무릎을 꿇어야 했지만 꿇지 않았던 사람들, 감히 무릎을 꿇을 용기가 없어서, 무릎을 꿇을 수 없어서, 무릎을 꿇지 않았던 사람들을 대신해서.”4 20세기 세계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홀로코스트라면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은 5월 광주일 것이다. 기억할 의무를 대하는 한국 권력자의 모습은 독일 권력자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5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수괴’ 전두환은 지금까지 5월 광주에 사과도, 5월 영령들에 참배도 하지 않고 있다. 되레 구속 2년 만에 죄를 사면받았다. 2205억원의 추징금도 533억원만 내고 “29만원밖에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는 무릎을 꿇어야 했지만 꿇지 않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미디어는 어떤가. 뉴스에서 보도되는 5월 광주의 정신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달라졌다. 권력자들은 5월 광주에 대한 기억을 국가 정체성과 자신들의 지지 기반 강화를 위해 사용했다. 미디어는 권력의 입만 바라보고 그들의 정치적 담화를 마치 5월 광주의 정신인 양 포장해서 생산했다. 그들은 피해자와 중재자·심판자의 정체성을 오가며 파편화된 5월 광주의 기억을 긁어모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다.5 요즘 말하는 ‘기레기’의 과거 버전이다.
권력자의 허언
세월호는 5월 광주의 연장선상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34일 뒤에야 “세월호의 희생을 결코 헛되이하지 않겠다”며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든 책임을 해양경찰·안전행정부·해양수산부 등에 돌리고 표적은 청해진해운·유병언에 맞췄을 뿐이다. 결국 ‘네 탓’으로 일관한 대국민 담화였다. 박 대통령은 기억할 의무를 다할 것같이 말했지만 그 뒤 행태는 허언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극단적인 사례는 ‘인사 참사’다.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으로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그는 6일 만에 ‘수임료 27억원’ 전관예우 논란으로 사퇴했다. 그 뒤 총리 후보로 지명된 문창극은 한 편의 막장 드라마였다. 병역 특혜 의혹, 친일 역사관 논란, 뻔뻔한 해명은 유병언을 제치고 14일간 뉴스를 독차지했다. (박 대통령은 6월26일 끝내 새 총리를 지명하지 않고 정홍원을 유임했다.) 세간에는 청와대가 ‘차떼기’의 주인공인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위해 문창극을 방패막이로 활용했다는 설도 나왔다. 더 가관인 것은 박 대통령이 문창극의 자진사퇴 뒤 한 말이다. “앞으로는 부디 청문회에서 잘못 알려진 사안들에 대해서는 소명의 기회를 줘 개인과 가족이 불명예와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 이 발언의 행간을 짚다보면 권력자 특유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느낄 수 있다. 홍세화 <말과 활> 발행인의 말을 빌리면 ‘사회귀족’6의 이데올로기다. 사회귀족은 정치귀족과 자본귀족, 교육귀족, 언론귀족 등이 카르텔을 형성해 사회 전 부문을 지배한다. 상호 유착을 통해 그 누구에게도 견제당하지 않는 사회귀족이 ‘군림하되, 책임지지 않는’ 뻔뻔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7 박 대통령이 자본·교육·언론의 호위를 받으며 오만과 독선으로 가득 찬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하여 국정 파탄이나 인사 참사에 대해 반성하거나 사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그것이 잘못된 행위이고 사고라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민주공화국 시대에 중세 귀족처럼 행세하며 지배의 성을 쌓고 있을 뿐이다. 다만 여론 앞에 거짓 눈물을 흘려 표를 구한다. 그들은 기억할 의무를 이행하는 것도 선별적이다. 박 대통령이 언론귀족인 문창극을 위한 소명의 기회는 염치없이 챙길지언정, 시민이 피해자인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실 규명에는 소홀한 이유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허언이 아니라 그들의 이데올로기에 바탕을 둔 본심이다.
허언의 결과, 비정상의 정상화
이러한 허언의 결과는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하는 사회다. 김진영 철학아카데미 대표는 이를 “비합리성이 합리성이 되고, 탈시스템이 시스템이 되는 사회”라고 말한다. 김 대표의 말을 더 들어보자. “역설적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시스템이 너무 잘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를 허용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요. 근대 민주주의 국가 시스템은 제법 잘 만들어졌지만, 이 시스템을 배반하는 것들, 이를테면 관료주의의 부패, 공공성의 사유화 등 탈시스템적인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이뤄지다보니 그마저도 총체적인 시스템처럼 보이게 됐습니다.”8 문창극을 총리에 앉히려 하고, 밀양에 행정대집행을 강행하고, 기업들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탈시스템적인 것이지만 사회귀족에겐 정상적인 행위가 된다. 그사이 비명을 지르는 것은 개별자들이다. 이로 인해 독재에 항거했던 5월 광주나 기업의 억압에 대항했던 노동자는 정상이 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배제됐다. 이렇듯 기억할 의무는 본디 국가의 의무지만 국가는 그들을 주변화하고 배제할 것이 분명하기에 이제 개별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는 피해자의 기억될 권리와 개별자의 기억할 의무가 조우하는 지점이다. 또한 ‘잊지 않겠다’는 말이 허언이 되지 않기 위한 산 자들의 실천, 즉 수많은 발화와 응답 과정의 시작이다. 그리하여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권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으로 진화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획일화다. 기억투쟁은 서로 다른 개별자들이 이행하는 실천의 집합이다. 그곳에는 승자와 패자, 다수자와 소수자 등 여러 개별자들이 존재한다. 독일 베를린의회 앞에 홀로코스트 기념물이 세워졌을 때 수용소에서 살해당한 집시가, 동성애자가, 폴란드 실향민이 자신들을 기억하는 기념관도 세워달라고 운동을 시작한 것처럼 여러 형태의 실천이 동반돼야 하나의 기억으로 물화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기억투쟁은 독립 또는 종속 변수로, 즉 결정하거나 결정당하는 대상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결합태로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둬야 한다.9
산 자들의 실천, 사유의 확장
중요한 것은 사유의 확장이다. 이는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는 용기이고, 억압받는 개별자들에 대한 공감이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6월28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또 촛불을 들었다. ‘기레기’ 언론들은 벌써 뉴스에서 세월호를 지웠지만 개별자들은 기억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 규명’ ‘박근혜 퇴진’ 구호가 촛불처럼 반짝인다. 여기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진상 규명은 당연히 밝혀야 할 가치다. 그렇다면 박근혜 퇴진이 궁극적 가치인가? 획일화의 위험이 존재하는 ‘닥치고 퇴진’류는 본질이 아니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가 말했듯이 사회귀족은 “누구 하나 목 벤다고 쓰러질 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청계광장 안에 있다. 세월호 촛불은 박근혜 정부가 쳐놓은 가두리 안의 ‘착한’ 집회다. 나가려는 의지를 거세당한, 말 잘 듣는 투쟁이다. 그래서 청계광장은 제한적인 해방구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인식과 관심>에서 억압과 왜곡된 삶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해방을 상상하라고 했다. “선은 관습적인 것도 아니요 본질적인 것도 아니다. 선은 상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관심, 즉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조건들 아래서 역사적이고 객관적인 것일 수 있는 해방적 관심을 적절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바로 그런 것으로 상상되어야 한다.” 그의 해방 개념을 청계광장에 대비해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그곳에서 나가려는’ 개별자들의 성찰이다. 그리하여 개별자는 인식 주체로 복원되고 사유 확장의 출발점에 선다. 이 시각 세월호에 가린 또 다른 개별자들이 복원을 꿈꾸고 있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 삼성전자 사옥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다. 삼성의 하청노동자인 이들은 번듯한 겉모습과 달리 비인간적인 대우와 장시간 노동, 저임금으로 생계를 위협받아왔다. 무엇보다 무노조 삼성의 폭압적인 노동정책에 신음해왔다. 급기야 지난 5월18일, 경찰은 서울의료원에 난입해 고 염호석 양산분회장의 주검을 물리력으로 탈취했다. 노조는 “정권의 실세와 삼성이 개입돼 있다”고 주장했다. 다행히 개별자들의 복원은 결실을 이뤘다. 이 글을 퇴고하는 6월28일 노사는 합의를 했고, 삼성은 76년간의 무노조 철칙을 포기했다. 이외에 국가와 자본이 공공성과 사유재산 보호라는 명분 아래 개별자들을 억압하고 배제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앞에서 언급한 쌍용차·밀양·소수자부터 강정·용산·콜트콜텍·유성기업·한진중·재능교육·전교조까지…. 그게 ‘세월호 밖 세월호’이든 ‘세월호에 가린 세월호’이든 표현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총체적인 문제들이다. 바로 우리 곁에 엄연히 존재하고, 우리 이웃이 겪고 있으며, 머지않아 우리가 당할 일들이다. 이제 공은 개별자들의 집합인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기억투쟁이 세월호을 넘어 억압받는 모든 것들에 공감할 때 사유의 확장은 완성될 것이다.
글 김원일 기자 nirvana@hani.co.kr
1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 페이스북 인용. 2 이창근, 위의 페이스북 인용. 3 주간 인권신문 <인권오름> 류은숙 글에서 발췌. 4 제프리 K. 올릭, <기억의 지도>, 옥당, 7쪽, 2011. 5 주재원, ‘집합 기억의 재현: 매체 서사로서의 5·18’ 논문. 6 홍세화는 ‘사회귀족’ 용어를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국가귀족’의 개념을 확장해 적용했다. 한국의 사회귀족은 사회 전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관계의 상층만을 차지하는 프랑스의 국가귀족과 다르다. 7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 42쪽, 2008. 8 <나·들> 19호, ‘철학자가 본 세월호 참사 애도’. 9 제프리 K. 올릭, 위의 책 15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