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쓰기 위한 낙서
오 봉 옥
1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바쳐라
……
술 마시고 싶을 때 한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보아라.”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한다. 시야말로 목숨을 걸고 써야 한다는 것을. 한편의 시가 죽어 가는 이를 살려낸다고 한다. 죽어 가는 이를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아름다운 시를 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아픔이 없어서는 안된다. 시는 정말이지 그런 것이어야 한다.
시
초겨울 바람에 부르르 떨고 보니
시 쓰고 싶다
그 옛날 콜레라에 걸린 아이처럼
덕석말이로 마당 한가운데 누워
피가 질질 흐르도록 덕석만 할퀴다가
제 몸 위를 소가 쿵쿵 뛰어다니는 소리에 다시 놀라
까무러치기도 하다가
끝내는 온통 땀에 젖은 작은 몸으로
그 무서운 병을 툴툴 털고 일어나 히히 웃는
마치 그런.
2
서정의 특성은 개성적이라는 데에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고도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이 다르게 나타난다. 노동자로서 보는 달과 자본가로서 보는 달은 느낌이 다른 법이다. 또한 같은 노동자라 할지라도 내성적 성격을 갖고 있는 사람과 외향적 성격을 갖고있는 사람의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의 특성이 개성적인 것만큼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다르다는 것이다.
통일에 관한 시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어쩌면 통일을 생각하는 느낌이 그렇게나 비슷한지. 진달래가 어떻고 백두와 한라가 어떻고 등등. 자신의 생활 속에서 깊이 있게 통일을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서정의 개성을 살리지 못하고 시를 관성적으로 쓰는 탓이다.
3
흔히 시평을 읽으면 ‘사상성’이라는 개념이 눈에 띈다. 시에서 ‘사상성’이란 무엇일까? 노동자의 생활을 다루면 사상성이 충실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상성이 불투명한 것인가? 사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문제는 생활 속에 담긴 사상에 있다. 다시 말해 생활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사상을 어떻게 하면 올곧게 끄집어내어 정서적으로 잘 표현하는가에 있는 것이다. 그것의 성공 여부가 ‘사상성’ 운운으로 되어야 한다.
4
시에 있어서 상징어는 생동감을 보장하기 위하여, 비유는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내기 위하여, 그리고 반복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시각.청각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내 독자를 시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좋은 시일수록 이러한 시적 장치가 잘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5
시적 정서란 무엇일까?
시인이 생활 속에서 한 계기를 만났다 치자. 그래서 충동을 느꼈다 치자. 외치고 싶은 충동을, 춤이라도 추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치자. 그럼 그 정서적으로 느낀 충동이 시적 정서일까? 맞는 말이다. 반쯤은 맞는 말이다.
반쯤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충동의 삭이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다. 삭인다는 것은 그 충동을 자기의 것으로 되게 하는 것이며 모두의 것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삭임이 끝난 그 어떤 정서적 표현이어야 비로소 ‘시적 정서’가 아니겠는가.
6
시에서 생활 반영의 진실성은 어떻게 구현될까.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듯이 옮겨놓으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것을 시인 자신이 내화시켜낼 수 있어야 그것은 가능하다. 내화시킨 뒤의 정서적 토로라야 생활 반영의 진실성을 보장한다.
7
우리가 흔히 현실을 왜곡시켰다고 하는 것은 현실을 잘못 그렸다는 것만은 아니다. 넓게는 생활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했다거나 생활의 본질이 아닌 이러저러한 현상만을 나열하는 식으로 그린 것은 물론 현실을 과장되게 묘사하는 것까지를 일컫는다. 그러한 것은 모두 사람의 요구와 지향을 묵살하는 데 공통점이 있다. 우리 현실 속에서 자연주의적 경향은 그러한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폭로하는 데 있어서도 ‘대안없는 폭로’를 우려하는 까닭은 거기에 있다.
8
시의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일차적으로 형상화의 높이를 보아야 한다. 다음으로는 내용과 형식의 대중적 성격을 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의 평가는 사상의 관점이나 주제의 방향이 얼마만큼 서정 속에 적절히 녹아들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모두 시 속에서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9
시들을 보면 종종 생각한다.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에 의해 더욱더 선명하고 절실하게 문제를 전해주는 데 반해 또 어떤 시는 절실한 문제를 형상적 비유의 실패로 인해 더욱더 불투명하고 왜곡되게 문제를 전해주고 만다는 점이다. 왜일까?
창작적 사색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사상학습이 부족한 결과로 자신 스스로가 생활과 사상의 연결 끈을 정확히 포착하지 못한 탓일 터이다.
10
담시와 서사시는 어떻게 다를까.
서사시가 이야기 구조를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면 담시는 이야기의 핵심적인 부분만을 잘라내 보여준다는 데 그 차이점이 있다. 또한 서사시보다는 보다 더 서정적 측면을 담시는 가지고 있다. 시인의 정서가 보다 더 직설적으로 관통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뛰어난 담시 하나 보고 싶다.
11
시에서 서정을 느끼는 주체가 독자임은 당연한 사실이겠다. 때문에 독자가 요구하는 정서에 깊이 파고드는가의 문제는 서정시에 있어서 관건이 된다. 독자의 구미를 파고들지 못한 시는 제 아무리 보기 좋은 시라 하더라도 실패작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그럼 독자 즉, 다수 민중의 구미에 맞는 내용이란? 다수 대중의 구미에 맞는 형식이란? 창작자의 고민은 한사코 거기에 있다.
12
시는 생활의 한 단면을 충격적으로 보고 느낄 때 쓰는 것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세상 사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은 느낄 그 충동이 시를 쓰게 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지언정 종착점까지를 보장해 주진 못한다. 문제는 충동을 주는 그 대상의 구체적인 내면 세계까지를 정서적으로 충분히 공감했을 때 비로소 감동을 주는 시가 쓰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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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같은 시들이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고 싶은 시 말이다. 그것은 일정한 흐름을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느껴진 것이다. 깊은 뜻을 아우르고 있으면서도 쉽고 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터이다. 어느 한 시가 박자를 머리 속에 그려지게 만든다면 그 시는 명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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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얼마 전에 가뭄이 극성을 떤 적이 있다. 논바닥이 갈라지고 농부들은 일손을 놓고 한숨만을 내쉬기에 바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그때 TV에 비친 농부들은 비를 손바닥에 받으며 “아, 쌀이 옵니다”, “이것이 돈입니다. 지금 수천만 원이 내리고 있어요” 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러한 농부들의 표현이야말로 정서적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아, 지금 태양의 복사열을 받아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을 이루어 떠돌다가 높은 곳에서 찬 기운을 만나 중력의 가속도로 인하여 물방울이 되어 비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라고 했다 치자. 물론 농부라면 그럴 리도 없겠지만 말이다. 이 때의 표현은 생활정서로부터 벗어난 논리적 느낌?표현이 된다.
정서적으로 느끼고 표현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그런 것이다. 논리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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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모르고서 시를 안다고 할 수 없다. 시를 모르고서 음악을 안다고도 할 수 없다. 시와 음악은 쌍둥이와 같은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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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응당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갈 때 보게 되는 비디오의 삼류영화를 보고도 울 줄 알아야 하고 저 숱한 뽕짝을 듣다가도 평펑 울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사소한 것에도 웃음을 풍기는 사람이 시인이다. 가족과 주위의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즐거움에도 함께 할 수 있어야 진짜 시인이다. 결국 시인은 감정의 폭이 큰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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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가보면 가끔씩 벽시가 눈에 띈다.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학생운동에 관심이라도 가져줄 것을 호소하는 목적으로, 당면 투쟁의 의미를 정서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벽에 붙이는 것이다. 그런 벽시는 대부분의 경우 문예일꾼들이 조직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꽤나 세련된 시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나는 못쓴 시라 하더라도 일반 학우들이 써서 붙인 것을 보고 싶다. 자신들이 그것을 즐기면서 이용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문학예술의 주체와 향유자는 결국 민중 일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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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정시는 길이가 짧은가, 여운을 주기 위해서이다. 생활의 작은 세부를 통하여 전체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작은 사실로 많은 것을 연상시켜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읽어볼수록 새로운 여운을 느끼게 하는 것이랄까. 그래서 그 감동적 충격을 오래오래 기억되게 만드는 것이랄까. 아무튼 그런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들을 보면 너무나도 길기만 함을 느낀다. 산만함이 감동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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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시인들은 ‘이야기 시’를 많이 쓰고 있다. ‘이야기 시’란 하나의 사건적인 이야기를 통해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적 주인공의 정서를 보여주기 위해 이야기를 빌려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야기 시에 등장한 인물은 시인이 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잠시 빌려온 인물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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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시라는 게 있다. 우리 시대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밝혀 주면서 사람들을 고무?추동해내는 시 말이다. 그런데 선동시라고 쓰여진 시들을 보면 하나같이 개념이 남발한다는 점이다. 개념이 남발하는 곳에 감동은 없는 법이다. 감동이 없는데 선동이 될 까닭이 없다. 문제는 생활정서를 얼마나 잘 선동적으로 보여주는가에 선동시의 특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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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장에서 낭송시를 들으면 흔히 느끼는 일이다. 비교적 형상화가 잘된 시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을 때가 있고 시적 형상화에 서툰 그 어떤 시가 오히려 대중의 심장을 흔들어 놓을 때가 많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것일까?
우선은 시적 호흡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호흡률을 가져야 대중은 꿈틀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시적 소리의 문제이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정서적 시어를 가져야 호소력을 얻게 된다.
우리의 시단도 낭송시의 영역을 개척해야 될 때가 온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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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된 시들을 보면 객관적 실재를 묘사하면서 그 속에 시인 자신의 목소리를 집어넣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시인 자신의 정서적 토로와 객관적 실재의 묘사를 결합시켜내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는 말이다. 이것도 시를 쓰는 한 방법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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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그때 눈물을 흘리기는커녕 쿵쾅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해야 했다. 호흡은 호흡대로 가빠져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손을 심장 위에 올려놓고 길게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면 나는 필시 짧게 끊어치며 넘어가는 반복적 형식으로 시를 쓸 것이다. 그 상황을 옳게 반영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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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시들이 있다. 한 폭의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그려내는 것도 있고 반대로 두리뭉실하게 굵게 그려낸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시적 대상을 생동감 있게 묘사해내는 장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의문이 머리를 스치는 것은 또 무엇인가, 시가 생활의 한 단면을 정서적으로 느껴서 그것을 안으로 삭인 결과로 일반화시켜내며 또 그 결과로 정서적 토로를 하게 되는 것이 서정시의 근본특성이라면 위와 같은 방식은 그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다시말해 생활은 그림처럼 선명하게 그려내지만 서정시라는 근본특성은 잘 살려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나 이런 생각도 함께 든다. 그림 같은 시 중에서도 감동을 주는 경우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서정의 특성을 비교적 잘 살렸기 때문이며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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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를 배우기 위해서는 생활 속에서 민중들의 요구와 지향을 내용으로 배우고 민중들의 호흡법?말법을 그 형식으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시적인 기교를 연마할 수 있어야 한다. 시적인 기교를 말하고 싶은 바를 가장 적절히 표현해 내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 속에서 우리만의 시적 재부로 내려오고 있는 바를 습득해내야 한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일종의 그런 것들이다.
26
풍자시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형태이다. 포악한 자에게 비웃음을, 간사한 자에게는 야유와 멸시를, 누리는 자에게는 통렬한 조소를 보내기 위한, 그래서 그것을 읽는 사람들에게 통쾌함을 주기 위한 것이다. 최근 어느 한 시인의 풍자시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통쾌함은 느껴지는데, 왜 가슴 한켠에 아쉬움이 남는 걸까.”
새로운 실험적 형식으로 쓰여진 그 풍자시는 다름아닌 서정성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간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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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80년대는 정치적 격변기였다. 그래서일까. 80년대 시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전투적 서정시가 많이 쓰여졌다는 사실이다. 내용만을 보아도 그렇다. 감상적인 내용보다는 과학성을 앞세운 내용이 훨씬 더 많았다.
이제 90년대이다. 90년대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시단은 80년대의 관념적인 경향을 극복하고 서정시의 본령을 찾아나가자는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서정을 제대로 찾아나가는 것이 아닌 본 뜻도 없는 잘못된 서정으로, 정서적 표현으로 흐르는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내용이 정서적으로 표현되어야 서정인 것이지 요즘의 풍토처럼 그럴싸한 미사여구식의 시가 남발하는 것은 서정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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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교포가 왔다. 그가 말하기를
“이제부터는 우리 문학을 일어로, 영어로 번역해 많이 많이 소개하겠습니다. 밖에 있는 우리가 할 일이 그런 것인 거 같아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소설은 몰라도 시는 전문성을 요구할 듯합니다. 우리의 시어를 외국어로 옮기기가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정말이다. 우리 말처럼 표현이 풍부한 말도 드물다. 더구나 시란 게 백 마디의 말을 한 마디로 줄이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는 것이고 그 한 마디의 표현일지라도 그 표현에만 맞는 고유한 색깔이 있는 것이어서 그것을 표현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듯 싶었다. 이를테면 운율을 살려내기 위한 ‘줄임말’은 얼마나 많으며 반대로 ‘늘임말’은 얼마나 많은가. 표준어와 사투리의 다른 맛은 어떻게 할 것이며 현재 쓰는 말과 옛말의 다른 맛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29
오늘 나는 결혼식장에서 축시를 읽었다. 그런데 풍자적 요소를 도입한 축시였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배꼽을 잡고 웃는 것이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곧바로 후회했다. 축시의 특성을 살리지 못한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신랑?신부에게 미안했고 또 한편으로는 그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축시는 응당 묵직하고 밝은 것이어야 한다. 순결성과 숭엄성이 흐르는 것이어야 한다.
30
우리는 흔히 시인이 말하고 싶은 바를 정서적으로 토로한 시들을 접하게 된다. 호수가의 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방식으로 쓴 것도 있고 태풍을 동반한 바닷물처럼 격정적으로 다가오는 식으로 쓴 것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러한 것들을 적절히 결합하여 굴곡을 이루는 방식으로 쓴 시들도 많다. 서정시의 특성을 가장 잘 살려내는 이러한 방식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방식인 것 같다.
31
내가 좋아하는 한 선생이 말하기를
“평론에 그만 관심 쏟고 창작에 더욱 더 매진하시지요. 창작자가 갖는 고집은 중요한 재산입니다.”
내가 그 선생에게 대답하기를
“어디 우리 풍토가 그러나요. 비평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보니 엿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맞는 말이에요. 창작자가 가져야 할 창작적 고집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겠지요. 비평을 엿보다 보면 작품을 관념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이나 그런 것 같아요.”
비평을 엿보면 엿볼수록 관념적인 작품을 쓰게 된다? 넌센스이다. 우리 시대의 넌센스.
시 쓰기, 삶의 터전에서부터 출발하자
안 상 학
향토시를 알아야 시를 안다
지역문학을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으면 나는 버릇처럼 중국의 장계를 들먹입니다. 그는 단 한 편의 시를 남겼을 뿐인데도 아주 유명한 시인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풍교야박(楓橋夜泊)>이 바로 그 시입니다. 내친 김에 소개하자면 이렇습니다.
月落烏啼霜滿天
달 지고 까마귀 우니 고향 하늘 쪽은 서리만 가득하고
江楓漁火對愁眠
풍교 다리 아래 고기잡이배의 불빛은 잠 못 들어 하네
故蘇城外寒山寺
고소성 저 멀리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만 나그네 뱃전에 들려오네
내 멋대로 풀어 써 보았습니다. 내용인 즉 그렇습니다. 글쓴이는 혼란한 세월 어쩌다 고향을 떠나서 이리저리 떠돌다 한산사가 있는 근처 풍교 다릿목에 배를 대고 하룻밤 묵게 됩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뱃전에 나갔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타관의 객고가 더할수록 고향을 그리는 정한이 깊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매력이 듬뿍 담긴 시입니다.
이 시는 한산사가 있는 근처에 시비로 서 있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시를 애송하고, 또 이 시를 관광상품으로 개발해서 각종 기념품에 새겨 넣어 팔기도 합니다. 시비의 형태나 글씨를 그대로 살려서 만듭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중국관광을 다녀 올 때 더러 여행가방에 우겨 넣어 오는 것을 더러 볼 수 있습니다. 한문을 쓰는 중국과 우리 나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진 시이죠. 이렇게 되기까지는 우선 이 지역 사람들이 이 시를 아끼고 사랑한 결과라고 나는 봅니다. 물론 시적 성취도가 뛰어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안동에도 시비가 여럿 있습니다. 역동 우탁 시비는 역동서원 앞에, 농암 이현보 시가비는 도산서원 입구에, 퇴계 이황의 '청량산가'는 청량산 입구에, 육사 이원록 시비는 안동댐 민속박물관 조경지와 그의 고향 마을 원촌에 있습니다. 신승박 시비는 영호루 숲길에 있고 한양명의 '사향시비'는 임동 중평신단지에 있습니다. 이 밖에도 몇 기의 시비가 더 있지요. 어쩌면 지역에 비해 시비가 너무 많은 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시비들 중에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결코 장계의 시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드라마틱한 인생이 없는 것도 아니지요. 역사성이 없는 것도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왜 자랑하며 남들에게 내놓지 못하는 것일까요.
최근 이육사 문학상이 다른 지역에서 제정되었습니다. 심히 못마땅합니다. 물론 이육사가 안동 출신이기 때문에 기득권을 가져야 한다는 협소한 시각으로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육사를 기념하고 추모하는 단체가 오래 전부터 활동을 했고, 또 이육사 문학상 제정을 위한 준비 모임도 여러 차례 한 줄 아는데 결론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 더 생긴다고 해서 그리 탈 날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일이 더딘 점에 대해서는 공적인 활동 단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문학상을 안동에서 제정했다고 해도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닙니다. 문학상 난립은 오히려 그 이름의 주인공을 욕되게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느림보 활동으로는 무슨 일을 꾸미든 신뢰하기 어렵습니다. 이육사 생가터를 묻고 그 위에 시비로 짓눌러 놓은 것이라든지, 한적한 시골 마을인 시인의 고향에 어울리지도 않는 기념관을 거창하게 짓는 것도 재미있는 일은 아닙니다. 그 많은 시비 하나 자랑하지 못하는 현실을 두고 자꾸만 일을 벌이기만 하는 것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시비 때문에 건 시비지만 시비는 가려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오늘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여성으로서 힘겨운 살림살이를 피해서 온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시를 배우고, 써서 무슨 낯을 내려고 온 것도 아닐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신 것은 아무래도 시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시에 대한 소양과 관심이 있는 것이겠지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중 지역문학작품에 대해서는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요. 지역문학보다는 서울 중심의,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을 선호하고, 또 많이 찾아서 읽지는 않는지요. 그래요. 저는 그것이 나쁘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아닙니다. 취향도 다르고 선호도도 저마다 다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지역에서 생산된 시와 시인들의 동향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왜 시를 배우려는 안동 지역의 어머니에게 왜 하고 많은 문학작품 중에서 지역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할까요. 그것은 단순합니다. 삶의 기반이 같기 때문입니다. 같은 자연환경과 인문지리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지역의 시인들이, 혹은 출신 시인들이 어떻게 우리 안동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가. 우선, 이것을 눈여겨보는 것이 시를 배우는 지름길이 아닐까 합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동창회 하나쯤은 참석하고 있을 겁니다. 어떠세요.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동창회를 가장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요. 왜 그럴까요. 그것은 6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함께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하나는 순수한 어린이의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깨벗고 서로 나누고 다독이고 더러는 싸우기도 하며 자란 기억은 여러분을 지금도 동심으로 돌려놓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지금 만나도 여자 동창생한테서 머시마가 어떻고 하는 막말을 듣습니다. 그래도 하나 기분 나쁘지 않거든요. 아마도 그것은 한 고향에서,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지역 출신의 시인들이 쓴 작품에는 우리가 아는 산천과 사람과 삶이 녹아 있기 마련입니다. 시가 곧 삶의 반영물이기 때문이지요. 또 여타 장르에 비해 삶의 진정성과 인간에 대한 애정, 세상의 희망이 진솔하게 들어 있습니다. 시를 배우려는 단계에서 같은 지역 시인들의 작품을 찾아 읽는 것이 시를 이해하는 데 훌륭한 반면교사가 되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섯달에도 보름께 달발근밤
앞내강(江) 쨍쨍어러 조이든밤에
내가부른 노래는 강(江)건너갓소
강(江)건너 하늘끗에 사막(沙漠)도 다은곳
내노래는 제비가티 날러서갓소
못이즐 게집애나 집조차 업다기에
가기는 갓지만 어린날개 지치면
그만 어느모래불에 떠러져 타서죽겟죠.
사막(沙漠)은 끗업시 푸른하늘이 덥혀
눈물 먹은 별들이 조상오는밤
밤은옛일을무지개 보다곱게 짜내나니
한가락 여기두고 또한가락 어데멘가
내가부른 노래는 그밤에 강(江)건너 갓소.
-이육사. 「江 건너간노래」.1938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이육사 시인의 고향 마을인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앞에 흐르는 강이 떠오릅니다. 설사 이 강이 낙동강이 아니고 압록강이라도 좋습니다. 그러나, 강의 이미지는 이미 어린 시절 발가벗고 뛰어 놀던 고향의 강으로 시인의 미의식 속에는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안동 출신이라면 어디 가서 무슨 강을 보더라도 우리가 보고 자란 낙동강과 자꾸만 결부시켜 보게 되지 않던가요. 낙동강은 이런데 섬진강은 이게 좀 그래, 낙동강은 저런데 금강은 좀 어떻고 하면서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저도 이 시를 보면 자꾸만 그의 고향 마을의 강을 떠올리곤 하지요.
사람과 사람 사이
길이 이어졌다
대를 이어 엮은 마음과 마음을 닦아
사람들 골목 가득히
인정을 반짝였다
눈이 부셨다
손을 맞잡았다
아름드리 나뭇가지마다 새순이 돋아
울담을 뛰어 넘어온
숱한 정이 빛났다.
-조영일. 「솔뫼리 사람들 6」.1998.
여러분들이 시를 배우는 조영일 시인의 시입니다. 솔뫼리는 다름 아닌 조영일 시인의 고향입니다.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곳이지요. 우리는 이 시를 이해하기에는 누구보다 빠를 것입니다. 자 생각해 볼까요. 이 시는 과거형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적어도 옛날에는 솔뫼리가 서로 도와가며 마음을 나누며 인정스럽게 살았다는 이야깁니다. 담장 너머로 음식을 나누며, 감나무 가지 하나쯤은 넘어와도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맞잡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과거형으로 쓰여졌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만큼 이 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이 시가 쓰여진 1998년 이전에 그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 수가 있잖아요. 맞아요. 그곳에는 안동대학교가 옮겨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지금은 학교를 중심으로 상가와 하숙촌, 독서실 등이 들어차서 솔뫼리라는 농촌 공동체가 붕괴된 것입니다. 시인은 그 빛나던 과거를 생각하며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땅값이 올라 졸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상가를 차려 이웃과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팝니다. 자본이 끼여들면서 인정이 사라지고 만 것이지요. 그래서 시인의 눈에는 현실이 아름답지가 않습니다. 아름다움에 민감한 시인은 그 빛나던 과거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동 사람이 아니고 대구 사람이라면 우리가 아는 만큼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답은 아니올시다 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리 지역의 시인들은 어떻게 삶과 싸우면서 시를 만들고, 어떤 자연환경에서 그 이미지를 찾아서 녹이고 있나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앞으로 시를 쓰게 되면 역시 안동의 지역성을 담는 시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역에서 생산된 작품이 여러분의 창작에 얼마간의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럼 지역성을 담기만 하면 좋은 시가 될까요. 널리 읽힐 수 있을까요? 하고 물을 지도 모릅니다. 저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생각해 볼까요.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 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 「목계장터」.
이 시는 어떻습니까. 민중들의 끈질길 삶의 생명력과 고난찬 삶의 질곡을 이기고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돋보이지 않나요. 이 시를 읽으면 우리는 생면부지 목계나루를 환하게 그릴 수 있는 착각에 빠집니다. 이 시는 건강한 지역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으면서도 감동의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좋은 시입니다.
그럼, 지역성만 확보하면 좋은 시가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생각해 볼까요. 목계장터, 우리는 과연 이 곳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여기서 목계에 가 본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보세요. 목계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이 시는 감동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래요, 목계는 신경림의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조그만 소읍이지요. 시인은 어려서부터 봐온 곳, 그곳에 모이고 흩어지던 사람들을 노래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여기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는 시인이 쓴 시여서 공감의 폭이 큽니다. 그러나 단순히 지역성만 노래했다면 이 시가 널리 애송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지역성과 향토성을 삭히고 녹여서 이 땅의 민중들의 보편적 정서에 맥을 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의, 지금 여기만의 노래가 아닌 우리 모두의 노래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시적 완성도도 높고, 무엇보다도 감칠맛 나는 살아있는 운율이 수반되었기 때문에 훌륭한 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지요.
아무튼 지역성과 향토성이 물씬 풍기는 정서적 바탕 위에 이 땅의 보편적인 사람들의 정서를 입힐 때 건강한 시가 태어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지역문학을 공부하라는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물론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도 시적 수준을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습니다. 지역성이란 게 그렇습니다. 인체의 물과 같은 것이지요.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디에도 물의 형상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녹아 있는 것이지요. 피와 살과 뼈에 말입니다. 지역성이 인체의 물과 같습니다. 시에 녹아 있는 70%를 만들어갈 때 좋은 시를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본 강과 하늘, 내가 만난 사람, 내가 아는 삶의 이야기, 뭐 이런 것으로 버무린 정서 말입니다.
시는 아름다움의 처음과 끝이다
지역성을 이기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이 아름다움의 문제입니다.
시가 아름다운 것은 시를 쓰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표현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삶,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시는 아름다운 자연과 아름다운 삶 그 자체를 노래하기보다는 오히려 아름다움을 누릴 수 없는 데서 태어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드는 사람은 몰라도 나는 사람은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소중하고 귀한 사람이라 할 지라도 가까이 있을 때는 그 사람의 가치를 모르다가 가까이 없으면 그 사람의 가치는 물론이고 숨소리, 버릇 하나까지도 보고 싶고 그립고 생각나기 십상이죠. 더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 그 슬픔은 훨씬 커지는 것 같습니다.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달이 암만 밝아도 쳐다 볼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달이 설움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 김소월「예前엔 미처 몰랐어요」1925. 12
개 눈에는 똥밖에는 안 보인다고 했던가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마냥 즐겁게만 지내다 보니 그런가보다 했겠지요. 그러다가 어떻게 헤어지게 되었겠지요.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사랑을 나누던 밤에 쓸쓸히 혼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거지요. 자, 이쯤 되면 죄 없는 달이 원망의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달덩이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을 때만 해도 달이 뜨는지 지는지 알게 뭡니까. 금이야 옥이야 보듬고 쓰다듬다가 어느 날 문득 혼자가 되고 보니 비루먹은 보름개처럼 달보고 짖을 수 밖에요. 내 사랑 돌리도(돌려줘), 내 사랑 돌리도, 하며 울 수 밖에요. 술 먹고 맨날 노래 부른다는 것이, 허구헌날 -귀밑머리 쓰다듬던 맹세는 길어도-어쩌고 하며 가슴 칠 밖에요.
김소월인들 예외는 아니었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갔지요, 허구헌날 술에 빠져 탄식하고 살다보니 가슴은 점점 아파오지요, 어디 하소연 할 데나 있겠어요. 답답한 가슴 치다가 또 몇 날이 갔겠지요. 아픔도 곰삭아 지칠 대로 지칠 때쯤에서야 정신을 차려보니 참 달도 무진장 밝았겠지요. 문득, 달덩이 같은 애인의 얼굴이 휘영청 밝은 달에 겹쳐지는 것이 아니겠어요. 시인은 옳다구나 싶었겠지요. 그래, 저 달에게라도 내 마음을 전해보자. 하고 죄 없는 달을 끌어들여 사랑을 잃은 외로운 심정을 찬찬히 노래한 것이겠지요. 적당한 대상을 찾은 셈이지요.
시인은 참 아름다움에 약한 사람인가 봐요. 사랑하는 사람도 물론 아름다웠겠지만 그 사람을 노래하는데 적절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끌어들일 줄 아는 것이지요. 이 시에서 그 대상을 달이 아니고 늑대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요.
봄가을 없이 밤마다 우는 늑대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렇게 사무치게 그리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늑대가 암만 울어도 귀기울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이제금 저 늑대가 설움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후후. 김소월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늑대를 사랑하는 사람에 비유했겠습니까만, 아름다운 사람을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달에 비유해서 대화를 나누는 시인의 모습 또한 아름답지 않습니까. 답답한 가슴을 달래줄,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어줄 저 달이 없었다면 아마도 김소월은 미쳐 버렸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랬으면 혹 모르죠. 이렇게 위의 예처럼 시를 썼을 지도. 하여간, 김소월은 아름다움이 뭔가를 아는 사람이었겠죠. 그런데 둔한 사람은 둔한 사람이었나 봐요. 달이 밝은 줄, 달이 설움인 줄 뒤늦게야 알았으니. 아니, 어쩌면 아예 달에 대해서 몰랐으면 더 좋았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다독거리며 아름답게 살았으면 말이에요.
세상에 아름다움이 어찌 연인과의 사랑뿐이겠습니까. 가족간의 사랑이라든지, 이웃간의 사랑이라든지 서로 나누고 걱정하고 다독이고 힘 보태어 살아가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신살구를 잘도 먹드니 눈오는 아츰
나어린 안해는 첫아들을 낳었다
人家 멀은 山중에
까치는 배나무에서 즞는다
컴컴한 부엌에서는 늙은 홀아비의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인다
그 마을의 외따른 집에서도 산국을 끓인다
―백석「寂境」1936
적경, 어떤 한갓지고 조용한 마을에 사는 어느 새신랑의 아내가 첫아이를 낳았나 봅니다. 여기엔 어떤 복선도 내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축하할 하객이라고는 까치밖에 없는 한적한 산골에서 입덧을 하여 살구를 잘 먹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고, 혼자 사는 홀아비 시아부지가 미역국을 끓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집에서도 어떻게 알았던지 산국을 부조하려고 끓이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이렇게 보면 시도 참 싱겁기 짝이 없는 것이죠. 혹, 모르죠. 이런 것도 시라면 나도 쓰겠다고 자신 만만해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곰곰 새겨보면 무언가 가슴 짠한 감동이 스멀거리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얼핏 보면 하루 일을 틈틈이 메모해 둔 것 같은 데 무엇이 이렇게 가슴 밑바닥부터 저며 올까요. 도대체 여기에는 무슨 아름다움이 있기에 그럴까요. 비밀은 행간에 있습니다. 시인이 언어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드러난 이미지에 속속 배어 있는 삶의 아름다운 숨결이 숨어 있지 않습니까.
자, 시대는 백석이 이 시를 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요. 일제의 침탈이 극에 달했고, 민족은 사분오열, 뿔뿔이 먹고살기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대도시의 공장으로 만주로 흘러갔겠지요. 더러는 독립운동을 하러 떠나기도 했겠지요.
그럼 고향은 어찌 되었을까요. 대대로 이웃하며 피를 나누고 쌀을 나누며 살아온 터전은 나날이 빈집만 늘어만 갔겠죠. 정을 나누며 살던 이웃들도 각박한 살림살이에 서로 반목하는 일도 잦아졌겠지요. 한 마디로 공동체적인 삶의 기반이 와해되고 삭막한 천지가 되었을 거예요. 일제의 분열정책에 휘말려 같이 하던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버렸겠지요.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현실이 아름다울 리 있겠습니까.
그런 현실 속에서 쓰여진 시입니다. 어여쁜 아내가 귀여운 아이를 낳았건만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남편은 대처로 돈 벌러 갔거나, 나이가 어린 것으로 봐서 징용을 피해 조혼을 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남편은 부재중으로 나오지요. 시아버지도 혼자인가 봐요. 처량하게 미역국을 끓이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래도 다행한 것은 먼 이웃이지만 소식을 듣고 멀건 미역국이라도 끓여 보내려는 심정은 가슴 저미는 감동으로 전해 옵니다.
그러나, 이 시의 아름다움은 딴 데 있습니다. 시인은 어떤 게 아름다운 것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행간에는 이런 말이 있었을 겁니다. 비록 산골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아이를 낳으면 이웃에서 산파가 오고, 또 이웃 할머니가 와서 물을 끓이고, 한 쪽에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남편은 사립짝을 돌며 두 손을 마냥 비비며 설레발 쳤겠지요. 또 어느 한 쪽에서는 그저 순산하기를 정화수 떠놓고 빌고 있겠지요. 다른 방에서는 아이들이 동생을 기다리며 귀신놀이를 했을 지도 모르고요. 이 얼마나 정겨운 풍경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시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풍경이 쓸쓸하기만 하군요. 그렇습니다. 백석 시인은 그 옛날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아픔을 노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언제나 모여서 그렇게 정을 나누며 서로를 걱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시의 행간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은 그런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 시가 한층 감동으로 다가올 법한 것이지요. 말이 많다고, 아름다운 시어를 쓴다고 시가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한 메모 같은 시지만 거긴 절절한 아픔과 그리움이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에 담겨 한층 빛나고 있지 않나요. 그래서 시는 아름답기만 해서는 부족한 것이지요. 진솔한 삶의 진정성이 녹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시가 말장난이냐고요. 아니죠. 인간과 삶의 진정성이 담긴다면 단순한 언어놀음으로만 보기는 어렵겠지요. 자, 여러분, 아름다움이 2% 부족할 때 시를 읽으세요. 더 부족하면 직접 써 보세요. 아름다움의 갈증이 해소될 거예요.
오늘은 어머니 여러분 앞에서 하는 이야기니 만큼 여성이 등장하는 시로 이야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이어서 한다면 이런 시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女人이 팔려간 나라
머언 山脈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 이용악「北쪽」1937.
이 시도 '寂境'과 같은 시대에 쓰여진 것입니다. 앞의 시는 스산한 산골마을에 남은 여인 이야기고 이 시는 여인이 어딘가에 팔려간 낯선 타관의 이야깁니다. 이용악 시인은 이 시에서 어떤 아름다운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아름다움이 지금은 없어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을 노래한 것일까요. 어떤 즐거움이 사라져 시름으로 변해서 마음은 늘상 그 생각에 여념이 없다는 말일까요.
여기서 ‘고향’은 이용악 시인 자신의 고향인 평안북도 경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무렵 시인은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풍문으로 고향 소식을 들었겠지요. 첫사랑의 여인일 지도 모릅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만주로 팔려간 것 같기도 하고요. 유곽에서 술을 따를 수도 있겠고, 몸을 파는 여인이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시에는 그런 여인이란 것을 은연중에 내보이고 있습니다. 시인은 그 여인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로맨스가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 이웃하는 소꿉동무였을 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시인과 이 여인은 범상치 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죽하면 바람이 얼어 붙는 겨울에도 다시 풀리는 봄날에도 마냥 마음이 그곳에 가 있을까요.
시인은 여기서 그리워하는 것은 그 소녀와의 어떤 아름다운 추억 때문인 것 같아요. 남의 나라에서 공부를 하며 청춘을 낭비하고만 있는 것 같은 심정도 보이잖아요. 그런 자괴감은 그 여인의 소식에 더 몸서리치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시인은 무얼 기다릴까요. 이 얼토당토 않는 현실의 불합리한 것의 끝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해방이 아닐까요. 그러면 팔려간 여인도 돌아올 수도 있겠고, 식민지의 지식인으로서의 괴로움에 벗어나서 다시금 그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요. 그래요, 이 시도 그 여인과의 아름다운 기억이 없었다면 이렇게 짧은 몇 마디 말로 절절한 심사를 표현할 수 있었겠습니까. 겉만 봐서는 아픈 것도 없고 괴로운 것도 없습니다. 그런 표현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최소한의 말로 큰 울림을 자아내는, 아름답고 즐거운 말을 숨기면서도 그랬을 것이라는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시가 된 것입니다. 시가 아니었으면 적국의 심장에서 어떻게 죄의식을 표현할 수 있었겠으며, 시가 아니라면 또 어떻게 마음의 짐을 부려 놓을 수 있었을까요.
아들이 나오는 올겨울엔 걸어서라두
청진으로 가리란다
높은 벽돌 담 밑에 섰다가
세 해나 못 본 아들을 찾어오리란다
그 늙은인
암소 따라 조이밭 저쪽에 사라지고
어느 길손이 밥 지은 자쵠지
끄슬은 돌 두어 개 시름겨웁다
―이용악「강가」1939.
여러분 어떠세요. 이 시에서도 위의 시와 같은 감동이 잡히지 않으세요?
지금까지 시라는 몸의 7할인 지역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시에 대해서 여차저차한 이야기가 많습니다만, 저는 여러분들이 우리 안동 사람들이라는 점을 들어서 지역정서를 중심으로 그 위에 아름다운 시선을 곁들여 말씀 드렸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우리는 무수한 감동의 자리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 시에 기대어 마음의 짐을 부리며 한숨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게다가 진실할 수 있다면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입니다. 그 나머지는 갈고 닦아서 얻을 수 있는 기술적인 측면만 남아있을 겁니다. 그런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원고는 2003년 4월 15일. 안동문화원 <조영일 시창작교실> 특강 때 발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