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五章 : 무극신공(無極神功) 5
맹주부의 정원.
아운은 오랜만에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아운의 옆에는 무림맹의 군사인 서문정이 따르고 있었다. 아운과 나란히 걷고 있는 서문정은 얌전한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불과 얼마 전 보았던 대전사와의 결투가 아직도 그녀의
뇌리에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결투 이후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반항을 하고 있었는지 다시 한 번 깨우쳤다. 마음속으로부터 항복을 하고나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그녀였다.
서문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재 파악된 정보에 의하면 모두 오십여 명의 동심맹 고수들이 몽골과 손을 잡고 그들의 그늘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보고를 받는 아운은 표정의 변화가 전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서문정은 문득 자신이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혹시 이것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
최소한 어느 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저기 몽골의 전사들과 싸우기 바쁘고 그 외의 시간은 무공을 수련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아운이었지만, 알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확한 정보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동심맹엔 개방도들도 상당히 있었을 테니 그 정보는 하오문을 통해 들어온 정보인가보군."
"그렇습니다. 맹주님."
그녀는 대답을 하고 아운을 바라보았다.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묻는 표정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한 운명이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들은 도저히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자들이오. 형평성을 위해서도 그들을 용서 할 순 없소."
서문정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대문파의 체면 어쩌고 하는 말은 씨도 안 먹힐 사람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괜히 힘들여 반대하지 않았다.
"계획은 있으신가요?"
"그들은 인과응보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깨우칠 것이오. 그리고 이 기회에 분명히 말하겠소. 무림맹이 존재하는 한 또 다른 사조직은 절대 용서할 수 없소. 그것은 그런 사조직으로 인해 무림맹과 각 문파내에서 파벌 싸움이 벌어질것을 미리 막자는 뜻에서 한 말이니 반드시 명심해야 할것이오. 사람은 요상해서 두 명만 모이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타인을 배제하는 심보를 지니고 있소, 처음엔 순수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닌 것을 놓지 않으려는 것은 물론이고 남의 것도 가지려는 욕심을 부리게 되는데 그로 인해 어떤 순수 단체든지 뒤에는 변질되게 마련이오."
서문정은 아운이 대정회를 두고 하는 말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정회는 해체 할 것입니다. 이는 나대협과도 이미 협의를 마친 상황입니다. 맹주님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정회에서 가진 직책이 아니라 나대협이라고 한 것은 이미 대정회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잘 한 일인지는 나중에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동심맹의 일은 나에게 맡겨 두시오, 어차피 시작한것, 마무리도 내가 하겠소. 군사는 무림맹의 체계를 세우고 극락원을 완전히 소멸하는데 힘써 주시오. 그리고 각 문파의 체질개선을 하는데도 도울 수 있는 한 도와 주시오. 각 문파나 세가는 이제 새로 태어나야만 하오. 그래서 그들이 진정한 정파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자리를 잡아야 무림이 평안해질 것이오."
"명심하겠습니다."
아운이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서문정을 바라보았다.
서문정이 놀라서 아운을 바라본다.
"대정회 건은 참으로 고맙소."
아운의 갑작스런 말에 서문정은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아운에게 처음으로 듣는 감사의 말이었던 것이다. 왠지 감동이란 불필요한 존재가 그녀의 가슴을 박차고 올라와 눈물이 핑 돈다.
"아‥‥ 아닙니다."
"그리고"
"예?"
"듣자하니, 우리 금룡단의 야교두와 열애중이란 소문이 무림맹에 전부 퍼졌던데. 언제 혼인식을 할 것이오."
서문정의 표정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 그런 소문이 어떻게?"
"이미 무림맹에서 그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소, 아마도 무림 전체에 다 퍼져 나갔을 것이오. 소문에 의하면 두 분이 밤마다 좋은 시간을 가진다던데?"
서문정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다행이라면 밤마다 하는 해괴한 짓이 그냥 운우지정 정도로 소문이 난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들어 그녀도 은근히 중독되어 가는 중이었기에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그것마저 소문이 나면?
그녀는 당장이라도 을고 싶은 심정이었다. 자칫하면 앞으로 시집은 다 갔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아운은 조금 의아한 시선으로 서문정을 보면서 말했다.
"설마 모두 헛소문이란 말이오? 하긴 개방의 혈전 이후 야교두의 인기가 높아 여자들이 많이 따르다 보니 소문이 조금 와전된 모양이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안 것 같군."
아운의 말을 들은 서문정의 표정이 조금 흔들렸다.
"야 공자님의 인기가 좋은가 봐요?"
"당연하지 않소. 지금 야교두의 나이에 그만한 무공을 지닌 사람이 몇이나 있겠소. 오전에도 보아하니 당가의 낭자와 함께 소곤거리며 걷는 것 같던데."
서문정의 눈에 시퍼런 독기가 어렸다.
'개자식 나한데 그런 이상한 짓이나 시켜 놓고 다른 여자들을 집적거린단 말이지.'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이런 소문이 확 돌고 있으니 앞으로 야한이 아니면 시집가긴 그른 상황이었다.
서문정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놓으면서 말했다.
"저‥‥ 전 잠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시오."
"그럼 전 이만. 나중에 찾아뵙겠습니다. 맹주님."
서문정은 서둘러 맹주부를 떠났다.
아운은 그녀가 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맹주부 안쪽에서 흑칠랑과 한상아가 나란히 걸어 나왔다.
흑칠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봐 호적수, 어때 내 말이 즉효지? 저렇게 해 놓았으니 이제 야한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겠지. 흐흐. 그래도 내가 맘이 좋아 사실대로 소문을 안 냈지, 그렇지 않았으면 야한 고놈과 저 밉상의 군사는 그 날로 아주 끝장일 텐데."
아운은 흑칠랑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흑칠랑과 한상아의 부탁으로 서문정을 자극하였지만, 내심 우습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원래 사랑은 유치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운이 가볍게 웃자, 흑칠랑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자네는 지금 상황이 유치한가? 하지만 오래전에 자네가 북궁제수씨에게 한 짓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흐흐"
아운이 흑칠랑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무슨 말이라니. 몰라서 묻나?"
"모르니까 묻지."
"뭐 종이책에다가 다 적어 놓으라고? 돌아오면 전부 혼내 주겠다고? 쯧쯧 그게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지 성인으로서 할 짓인가?"
말을 하면서 흑칠랑은 어때 좀 창피하지 하는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아운을 바라보았지만, 아운은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유치하다니, 난 진실이었네."
흑칠랑의 표정은 황당 그 자체였다.
"지.. 진실! 큭 이봐 내 유일한 호적수. 혹시 자네 권왕씩이나 되면서 자신의 여자에게 집적 거렸다고 주먹질을 하겠단 말인가?"
"그럼 자네라면 그냥 있을 텐가?"
대답을 하려던 흑칠랑은 갑자기 옆구리가 시려오자, 흠칫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한상아가 옆에서 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흑칠랑은 자신이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그 결과가 아주 참혹해질 수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크험, 아니 내 말은 말일세, 겨우 주먹질인가? 나라면 모조리 목을 자르고 말았을 것일세 암 그래야지."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들 기세였다.
아주 몹시 분개한 표정이었다.
한상아가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흑칠랑의 검은 얼굴이 더욱 검게 변했다.
"정말이라고. 누가 감히 우리 이쁜 상아에게......"
"흥 됐어요, 나중에 두고 보죠, 정말 그러는지."
그래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내심 안도하면서 흑칠랑은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말인데."
"뭐, 믿어 줄게요. 그건 그렇고 야한 도련님과 군사와의 관계는 어쩌자고 여기저기 다 떠벌리고 다닌 거예요?"
흑칠랑이 멋쩍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말이오. 생각해 보시오. 상아, 내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야한 그 놈이 언제 장가를 가보겠소. 이렇게라도 해야 서문군사가 꼼짝 않고 그 놈에게 안길 것 아니오. 이게 다 후배를 사랑하는 너그러운 선배의 마음이란 것이오."
"혹시 떠벌려 놓고 미안하니까? 서둘러 도움을 청한 것은 아니고요?"
어째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흑칠랑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 놈이 좀 얄밉게 굴었다고 내 어찌 그런 만행을 저지르겠소, 절대 아니오. 암, 그렇고말고, 난 오로지 아끼는 후배 한 명을 구제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계산 끝에 한 행동일 뿐이오 절대로 그 놈이 얄밉거나 그래서 한 짓은‥‥‥"
"그러니까? 야한 도련님이 얄미워서 그랬단 말이죠. 대체 야한 도련님이 뭘 잘못했기에?"
"절대 그런 것이 아니래도."
'그 후레자식 덕분에 끝까지 아운 저 미친놈과 싸우게 되었는데 이 정도 골탕은 작은 거지.'
흑칠랑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한상아 앞에서는 끝까지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이 속 좁다는 것을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내 보일 순 없었던 것이다.
보고 있던 아운이 흑칠랑에게 말했다.
"내가 부탁을 들어 주었으니 이제 내 부탁도 들어 주겠지?"
아운의 말에 흑칠랑과 한상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말해보게 이 흑칠랑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지."
"살수에게 부탁할 일이란 것이 뭐가 있겠나. 당연히 청부지."
"청부?"
흑칠랑과 한상아는 호기심이 어린 시선으로 아운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구를 죽여 달라는 말인가? 아운은 흑칠랑과 한상아에게 전음으로 무엇인가를 부탁하였다.
다 듣고 난 추 흑칠랑은 가볍게 미소를 지은 후 말했다.
"걱정 말게 그 정도야 별로 어렵지도 않지. 그 보다도 자네에게 줄 것이 있네."
아운이 흑칠랑을 바라보았다.
주다니? 뭘 준단 말인가?
흑칠랑은 품안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아운에게 내밀었다.
아운은 흑칠랑이 건네 준 책자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흐흐 너무 감격해 하지 말라고. 내 호적수가 겨우 광풍전사단 따위에게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 도와주는 것뿐이니까?"
'으으, 내 상아와 야한의 강요에 못 이겨 전해 주지만, 제발 이기지 말고 그냥 광풍전사단과 싸우다 죽어다오. 아니면 반만 죽어서 오던지.'
흑칠랑은 속내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호기롭게 웃고 있었다.
"정말 고맙네. 이건 큰 도움이 되겠어."
아운은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삼대 살수가 아운에게 전해 준 것은 의외로 큰 도움이 될수 있는 것이었고, 쉽게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운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을 본 한상아는 정말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호호, 이렇게 돼서 이제 천하제일인과 한 가닥의 확실한 끈을 만들어 놓았다.'
한상아는 아운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도와 준 것이 후에 자신과 흑칠랑에게 얼마나 큰 이득으로 돌아올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살수이기 이전에 여자였다.
흑칠랑과는 달리 천하제일 살수 같은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물론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가정이었다.
사랑을 안 살수는 이미 살수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긴 후에도 음지에서 생활하는 것은 그녀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양지에서 떳떳한 부모로 자식을 키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 고 있었다.
아운의 힘이라면 자신과 흑칠랑의 과거 정도는 가볍게 덮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의도한 대로 아운의 곁에 머물면서 연인인 흑칠랑이 무림의 영웅으로 거듭나지 않았던가? 그것만으로도 한상아는 아운에게 근 빚을 진 것이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었다.
아운은 받은 책자를 살펴 본 후에 말했다.
"이왕 도와 준거 하나면 더 도와주게."
아운의 말을 들은 흑칠랑의 눈이 역 팔(八)자로 곤두섰다.
"뭐라고‥‥‥"
"형수님 도와줄 수 있으십니까?"
"허허, 혀....형수?"
흑칠랑의 눈이 보름달보다 더 커졌다.
"호호호, 말씀만 하세요."
"감사합니다. 자네는 어떤가?"
"으하하, 당연히 도와야지, 암."
"고맙네. 그리고 너무 좋아하지 말게. 내가 형수님이라 부른 것은 한소저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서 적당히 부를 말이 없어서 그리 부른 것 뿐일세."
"뭐 ‥‥ 뭐야?"
흑칠랑의 얼굴이 구겨졌다.
한상아가 얼른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 싫다는 말이에요?"
팔에 그녀의 보드라운 피부가 느껴지자, 흑칠랑은 다시 흐물흐물해지고 말았다 사실 그가 무슨 배짱으로 한상아의 말을 거역하겠는가? 그 정도의 배짱이 있다면 그녀에게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노총각으로 남아 있었으리라.
"싫은 것은 아니고."
아운은 속으로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었다.
아무리 봐도 미워할 수 없는 호적수였다.
사실 적수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맹주부 밖으로 나온 서문정은 씩씩 거리면서 금룡각을 향해 달리다시피 걸어갔다.
"꽝!"
벼락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서문정이 금룡각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 고아하기 이를 때 없는 서문정이 거칠게 안으로 들어오자, 훈련에 열중하던 금룡단원들이 놀라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훈련에 열중하는 금룡단원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한쪽 풀밭에 누워서 오수(午睡)의 평안함을 즐기고 있는 야한에게 다가갔다. 금룡단원들은 이미 야한과 서문정의 소문을 듣고 있었지만, 설마 하는 심정들이었다. 그런데 서문정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야한에게 다가가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자고로 남녀의 일엔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야한에게 다가간 서문정이 발길로 야한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녀에게 있어서 야한의 엉덩이는 치욕의 상징이자, 지금의 상황을 만든 원흉이었다.
"퍽! "
"컥!" 야한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이렇게 갑자기 발길질을 할 줄은 생각도 못한 야한이었다.
눈을 번쩍 뜬 야한은 놀라서 서문정을 바라보았다.
"야! 이 나쁜 놈아. 네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나를 망쳐놓고 이젠 다른 여자랑 놀아나. 너 솔직히 말해 우리 사이를 고의적으로 소문낸 것이 너지?"
야한은 놀라서 서문정을 바라보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야한이 아무리 대차다고 하지만 이런 경우를 당해 본적은 없었거니와 설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문정이 따지고 들리란 생각은 전혀 해 본적도 없었던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이 변태로 소문이 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소문이라니?
"아‥‥ 아니 서문낭자 그게 무슨 말이오?"
서문정은 눈물이 글썽한 시선으로 야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무슨 말이라니, 몰라서 물어요?"
"글쎄, 모르니까 묻는 것 아니오?"
"나를 희롱한 것도 모자라. 이제 다른 여자랑 놀아나다니, 정말 파렴치하군요."
"헉!"
야한은 안색이 노랗게 뜨고 말았다.
금룡단원들이 주변으로 하나 둘 모여들고 있었다.
"내 ‥‥ 내가 언제?"
"이미 소문이 다 났는데, 무슨 변명을 하려는 것이죠. 저질러 놓고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소문을 내다니 이 파렴치한 자식."
생각하니까 분한 듯 다시 서문정의 말이 거칠어졌다. 그리고 결국 성질을 못 이긴 서문정,
"철썩!"
서문정의 손바닥이 야한의 뺨을 과격하게 가격하였다. 너무 놀란 야한은 그 손바닥을 피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안 피했을 수도 있고.
"대 ‥‥대체 ...... "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빨리 말해요."
한마디로 여기서 사생결단을 내자는 말이었다.
여자가 수치고 자존심이고 다 버리고 덤비면 그건 정말 무섭다. 야한은 기가 질려서 대꾸도 하지 못했다.
"책임 못 지겠단 말인가요?"
서문정의 눈에 새파란 번개가 번쩍거리자, 야한은 기겁을 해서 고함을 쳤다.
"채‥‥ 책임지겠소. 정말이오. 내가 책임지겠소. 시키는 대로 다 하겠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다.
"그럼 이제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 행동 똑바로 하세요.
알았죠?"
"아 ‥‥ 알겠소."
야한은 자신도 모르게 차렷 자세를 하고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