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있다. 단병호 위원장한테까지도 체포 영장 발부를 검토 중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체포영장 발부자만 73명에 이른다. 정부는 이들의 "폭력 시위 주도 혐의"를 들먹이고 있다.
6월 2일 일부 노동자와 학생 들이 경찰청과 경총 회관에 계란과 화염병을 던지자 정부와 경총, 전경련 등은 이들이 마치 폭도라도 되는 양 입에 거품을 물고 있다. 경총·전경련은 "불법과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연일 떠들어 댄다.
도대체 누가 폭력과 준법주의를 설교하는가.
이른바 '울산만 작전'으로 불리는 효성 노조에 대한 만행이야말로 폭거다. 자그마치 3천여 명의 경찰은 12일째 파업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들을 연행하려고 벽까지 부수고 들어갔다.
사복경찰, 특공대, 전투 경찰 들이 총망라됐다. 경찰은 변전소에 올라간 노동자들을 연행하기 위해 공중에서는 헬기로, 바닥에서는 소방 호수를 뿌려 댔다. 그 노동자들의 목숨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6월 5일, 울산의 현대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이곳 저곳에서 뛰어 온 노동자, 학생들 2천5백여 명이 모인 항의 집회도 경찰은 폭력 진압했다. 경찰은 시위 참여자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몰아 대며 닥치는 대로 구타하고 연행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까지 죄다 연행했다.
한 여성 노동자는 전경이 휘두른 곤봉과 방패에 맞아 두개골이 깨지기까지 했다.
회사가 용역 깡패들을 동원해 효성 노동자들에게 휘두른 폭력은 또 어떤가. 회사가 깡패들을 무장시킨 것은 무시무시한 살인 도구들이었다. 생선회 칼과 사제총, 야구 방망이와 쇠파이프, 식칼 등이 등장했다. 심지어 회사는 한번 갖다 대는 것으로도 정신을 잃게 하는 전기봉까지 동원했다.
"이 땅에 공권력이 어딨냐"며 파업 사업장에 경찰력 투입을 강력 요청하던 전경련과 경총이야말로 야비한 폭력배다. 그들의 주문에 즉각 응한 김대중 정부는 전경련과 경총의 사냥개다. '공'권력은 바로 기업주들의 사권력이었다.
정부, 그리고 기업주들을 대표하는 전경련·경총이야말로 폭력 집단이다.
산업재해로 하루마다 산 목숨 아홉 명을 죽게 만드는 이윤밖에 모르는 기업주야말로 폭력배다.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빼앗아 그들의 삶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시장 정책이야말로 폭력이다. 고용된 노동자들 중 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내몬 효성 기업주야말로 폭력배다.
무엇보다 효성 노조에 대한 만행은 6월 12일 민주노총 파업의 예봉을 꺾기 위한 것이다. 6월 파업이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효성 만행에 대한 규탄 운동은 확산돼야 한다. 울산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해도 서울에서 항의 운동을 벌일 기회가 눈 앞에 있다. 규탄 집회에 참여해 정부의 기업주들의 만행에 항의하자.
위기에 빠진 김대중 정부 '울산만 작전' 악수를 두다
김대중 정부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점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한나라당 부총재 최병렬은 현 상황을 "경제 위기, 리더십의 위기, 신뢰의 위기, 희망의 위기"라고 꼬집었다.
김대중 정부의 지지율은 집권 이래 최악이고, 개혁이 파탄나지 않은 분야가 없다.
집권당은 지금 심각한 분란에 휩싸여 있다. 봉합되는가 했던 민주당 소장 의원들의 '쇄신 촉구'는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것은 위기의 반영인 동시에, 더한층의 위기를 낳고 있다.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은 인권법에 이어 김대중의 시민 단체 지지 기반을 파괴했다. 이제 환경단체들도 "김대중 퇴진"을 얘기한다.
그 동안 김대중이 가장 칭찬받았던 분야인 대북 관계도 심각한 모순에 봉착해 있다. 남한 정권과 북한 정권 모두 북미 관계의 추이를 살피느라 부시 당선 이후 남북 관계는 답보 상태였다. 6·15 공동선언 1주년을 코앞에 두고도 지난 몇 달 동안 중단된 남북 당국간 접촉이 재개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과거핵 사찰 카드를 꺼내 둔 상태다. 북미/남북 관계의 모순은 북한의 제주해협·NLL '침범'과 이에 대한 남한의 대응에서도 잘 드러났다.
공격의 명분 쌓기
김대중 정부가 효성 울산 공장에 경찰을 투입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였다.
김대중 정부가 위기에 봉착해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르자, 노동자 투쟁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경총과 전경련은 몇 주 전부터 강력 대처를 촉구해 왔다. 경총은 5월 30일 울산 효성과 여천 NCC에 경찰을 투입하지 않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부는 6월 2일 집회에서 일부 시위자들이 월드컵 홍보탑과 경총 정문을 불태운 것을 빌미로 공격의 명분을 쌓았다. '그들은 방화·불법 폭력 집단이다.' 일단 우리를 불법 폭력 집단으로 몰아 붙여 놓으면, 이제 저들의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든 정당한 것이 된다.
김대중 정부는 이를 빌미로 민주노총 지도자들에 대한 검거령을 내렸다. 하지만 6월 2일 시위에 방화와 폭력이 난무했던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완전 부풀리기다. 대부분의 시위 참가자들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6월 4일치 사설에서 폭력이 '난무'하는데 정부가 뭐 하냐면서 "공권력(이) 과잉 위축"돼 있다고 개탄했다. <조선일보>는 '대우차 폭력 사태 후유증을 이제 그만 떨쳐 버리라'고 정부에게 강하게 주문했다.
이 사설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6월 5일 새벽, 김대중 정부는 효성 울산 공장에 대한 경찰 투입 '울산만 작전'을 감행했다.
경찰 투입이 임박한 무렵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NLL '침범'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런 종류의 '국가 안보' 사건이 늘 그렇듯 이 사건은 김대중 정부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했다.
하나는 냉전 우익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효가 옛만 못해 일시적일지라도 노동자들을 공격하기에 유리한 분위기가 된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은 전자에 대해서는 굴복하고 후자는 적절히 이용했다.
6월 3일까지만 해도 북한 상선의 영해 '침범' 사건은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됐다. <한겨레> 6월 3일치 헤드라인은 "영해 통과 긍정 검토"였다. 그런데 하룻만에 정부의 대응은 "영해 침범 엄중 경고"로 180도 돌변했다. 김대중 정부는 제주해협에서 전쟁이라도 난 양 호들갑을 떠는 냉전 우익에게 영합했지만, 진짜 전쟁은 울산에서 벌였다.
14년 만의 파업
계란 몇 개 던지고 경총 정문을 불태웠다 해서 우리 운동 진영 전체를 "방화·폭력 집단"으로 매도했던 김대중 정권은 효성 울산 공장 경찰 투입 과정에서 진정한 폭력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5백여 명의 공장 점거자들이 있는 효성 울산 공장 문 네 곳을 부수고 경찰 3천6백 명이 들이닥쳤다. 여성 노동자들이 경찰에 질질 끌려나왔다.
경찰 투입 소식이 알려지자 울산 시내에서 항의가 시작됐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인근 노동자들이 속속 모여들어 2천5백여 명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대를 향해 사방에서 곤봉을 휘두르며 경찰이 뛰어들었다. 순식간에 부상자가 속출했다. 한 젊은 여성 노동자는 백골단이 휘두른 방패와 곤봉에 맞아 두개골이 파손됐다. 잔인한 경찰들은 119 구급차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러 시위대로 들어가는 것조차 막았다.
그런데도 언론은 효성 울산 공장 진압 과정에서 "폭력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언론은 그 동안 효성 사측이 저질러 온 끔찍한 폭력을 단 한 마디도 비난하지 않았다.
효성 사측은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투쟁을 호소하러 들어가려는 노동자들을 막기 위해 용역 깡패를 고용해 무장시켰다. 용역 깡패들은 쇠파이프, 방패, 사시미 칼, 가스총, 6만 볼트 전기봉으로 조합원들을 구타하고 파업을 파괴하려 했다.
효성 노동자들은 1987년 이래 14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에 나선 것이었다. 6월 5일은 공장 점거 파업 12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효성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을 전환 배치한 뒤 신규 고용을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에 항의해 왔지만, 사측은 노동자들의 주장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협상중에 노동조합 간부들이 연행됐고, 사측은 악랄하게 조합원 총회와 파업 찬반 투표까지 방해했다. 파업찬반투표를 방해하면서 지금 현재의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하면서 폭력 진압에 들어갔다.
노동조합은 이에 항의해 바로 파업을 선언했다. 계속되는 노동조건 악화에 맞서,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쟁에 나선 효성 노동자들의 파업은 완전히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