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6월 29일
1944년 6월 29일 오늘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명이었던 만해 한용운 선생의 서거일입니다.
한용운의 출가
만해 한용운 선생은 1879년 8월 29일 충남 홍성군 결성면에서 아버지 한응준과 어머니 방씨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1892년 부친의 뜻에 따라 전정숙과 결혼하고 서당에서 교육에 종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1896년 홍성의 의병을 보고 난 이후 고향을 떠나 상경하다가 불교에 뜻을 두고 여러 사찰에서 수양하였습니다. 이후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수계를 하면서 정식 승려로서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용운의 불교계 활동
한용운 선생은 조선 불교의 독립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습니다.
1908년 이회광을 중심으로 형성된 원종 교파가 일본 조동종과 연합을 시도하면서 일본 조동종의 한국 사찰 장악 시도에 대항하여 활동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1911년 박한영 등과 임제종운동을 전개하면서 임제종 설립을 시도하고 1914년에 다시 조선불교회, 불교동맹회 설립을 시도하는 등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일본 불교에 대항하였습니다.
또한 한용운 선생은 사상적으로 당시 불교계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불교의 혁신과 대중화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선생은 1913년 조선불교유신론을 통해 당시 불교의 현실을 비판하고 자유와 평등주의에 입각한 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불교대전’ 및 ‘채근담’ 등 서적을 발간하며 승려로서 불교 사상을 정립하였습니다.
3.1운동과 한용운
한용운 선생은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으로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독립선언서와 일본 및 국외 주요 인사에게 보내는 탄원서 등의 작성에 참여하는 한편 다른 종교계 인사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만세운동을 준비하였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계 16인, 천도교계 15인, 불교계 2인 등 많은 종교계 인사들이 민족대표로서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한용운 선생을 포함한 민족대표들은 만세시위 때 피체되어도 정정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또한 한용운 선생은 피체 전에 미리 변호사 선임 금지, 사식 금지, 병보석 요구 금지 등 3대 원칙을 제시하는 등 민족대표로서 매 순간 당당하고자 하였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옥고
한용운 선생은 피체된 이후부터 판결을 받기 전까지 일제 경찰, 검사들로부터 조사를 받았지만 시종일관 의연하고 당당하게 옥중 투쟁을 전개하면서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논리적으로 밝혔습니다.
오히려 겁에 질려 나약한 태도를 보이던 다른 민족대표들을 질타하기도 하면서 일제의 사법당국에게 그 기개를 보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체포된 이후로도 당당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조선의 독립운동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주장하였습니다.
특히 1919년 7월 10일 작성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는 당시 한용운 선생이 가졌던 독립선언의 동기와 이유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이후 한용운 선생은 1920년 10월에 보안법, 출판법, 소요죄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12월 가출옥하였습니다.
출옥 후 한용운의 활동
한용운은 출옥 이후에도 불교혁신운동을 다방면으로 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불교를 바탕으로 사회의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불교사회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1922년 3월에는 대장경 국역사업을 위한 법보회를 발기하고 1923년 1월 조선불교청년회 및 1931년 후신인 조선불교청년총동맹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한용운은 출옥 이후에도 비타협주의와 노선 통합을 주장하면서 6.10 만세운동, 신간회 창립,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에 적극 참여하는 등 사회개혁과 독립운동에 종사하였습니다.
한용운 선생은 일제의 감시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창씨개명과 학도병 출전에 반대하며 기개를 유지하다가 1944년 6월 29일 성북구 심우장에서 서거하였습니다.
“각 민족의 독립자결은 자존성의 본능이요, 세계의 대세이며, 하늘이 찬동하는 바로서 전인류의 앞날에 올 행복의 근원이다.”
한평생 조선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믿고 독립운동을 전개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사상은 그의 시 '님의 침묵' 과 그가 작성한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 등에서 선명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만해 한용운 선생을 기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참고문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편찬위원회,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특별판 2』, 독립기념관, 2019
고병철, 「만해 한용운 연보의 쟁점과 주요 사례」, 『한국학』 38(3), 2015
김광식, 「만해 한용운의 간화선과 대중불교론」, 『불교학보』 (80), 2017
김순석, 「한국 근대 불교계의 민족인식」, 『불교학연구』 21, 2008
사진출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do?searchWord=%ED%95%9C%EC%9A%A9%EC%9A%B4&reSearchWord=&searchType=all&index=1&id=624
첫댓글 오늘의 역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의 역사 감사합니다~지기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오늘의역사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