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지그랑하다
박 계 화
“휘~이~이~~”
해녀 금덕이 토해내는 숨비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간신히 바닷물 위로 토해내는 숨소리. 생명을 부르는 가스의 분출인가.
“욕심 내멍 죽고 사는 건 사람 일이라. 살리는 건 바다 몫이고.”
해미 짙은 모래밭에 쓰러져 끝내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동생 미자를 향한 탄식에 내 숨도 멎는다.
제주도 구좌읍 종달 마을에 자리한 ‘해녀의 부엌.’
20년 전 만해도 해녀와 어부, 바다가 어우러져 북적였던 활선어 위판 장이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했다. 어촌 인이 줄고 판매도 뜸해져 추레해진 창고에 청년 예술인들이 모여 해녀의 숨을 불어넣었다. 예약한 식객들의 입장이 완료되자 불은 꺼지고 창고는 순식간에 파도가 철썩이는 바다로 변한다. 썰렁한 모래사장에 넋을 잃은 여인이 긴 한숨을 토해낸다. 배를 타고 나갔던 남편을 풍파로 잃은 금덕이 삶의 끈을 놓으려하자 같이 물질하던 동생 미자가 언니를 부둥켜안고 운다.
“언니야, 엄마도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도 우리를 키워냈잖아.”
우리도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미자의 말에 다시 삶의 끈을 벼리는 금덕. 가뭇없는 망망대해 속으로 물질을 나서는 해녀들을 따라 내 마음도 뛰어든다.
물안경 속 미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뿔소라도 감지덕지인데 항차 전복이라니!
거센 해류에 흔들리면서도 바위에 붙은 전복 따기에 여념이 없는 미자. 금덕은 그만 올라가자며 연신 사인을 보낸다. 수압이 점점 심해지고 숨은 차오르는데 전복이 떼어지지 않는다. 허먼 멜빌 소설 ‘모비딕’의 향유고래처럼 난폭하게 빗창으로 전복을 달구친다. 자식 학비 걱정에 ‘조금만 조금만 더......’
그러나 전복에만 골똘하던 미자는 끝내 여울 속 심연으로 떨어져간다. 가까스로 물 위로 올라와 밭은 숨을 토해내는 금덕. 동생도 남편도 아버지도 삼켜버린 바다를 망연자실 바라본다. 바다는 언제 그랬냐싶게 푸른 물결만 출렁거린다. 내 마음도 허허롭다. 애잔해 눈물이 흐른다.
해녀 인생의 뒤안길엔 삶의 의지와 한이 순환되는 듯하다. 마음에 수평저울을 달고 사는가. 슬픔을 삭이고 또다시 바다로 뛰어드는 해녀들. 희망 사냥을 위해 제 목숨을 바다에 맡기는 이들의 삶은 수수께끼를 남긴다. 무슨 연유일까.
불이 켜진다. 검은 해녀복에 하얀 물적삼을 입은 이 마을 최고령 해녀 권 할머니가 부력도구 테왁을 옆에 끼고 무대로 오른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젊은 연기자들이 펼쳐낸 연극을 보고 감회에 젖었다며 눈물을 훔친다. 식객 한 분이 해녀에게 묻는다.
“가족을 다 잃은 그 바다에 뛰어들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까닭이 무엇인가요?”
“우리 시절엔 똘로 나민 공부를 안 시켜서. 물질을 시켰주. 경허난 우리가 헐 줄 아는 건 물질 뿐이라. 나 새끼들 멕여 살리젠허민 바당으로 나갈 수밖에 어섯주.”
수수께끼가 풀린다. 딸로 태어나면 공부는 안 시키고 물질만 시켰단다.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바다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는 그녀의 이마에 굵은 삶의 물결이 파도를 탄다.
‘해녀의 부엌’에 차려진 밥상. 60세 젊은 해녀가 자신이 물질해온 해산물로 차린 음식들을 홍보한다. 요즘 자연산 전복은 거의 없다며 제주 뿔소라를 맛보라고 눙치는 말본새가 가히 유혹적이다. 현무암 구멍에 뾰족한 뿔을 끼워 거센 파도를 버텨낸 뿔소라를 먹으면 해녀의 강인한 생명력을 먹는 것이라나. 절망을 잘라내고 희망의 살을 발라 요리한 뿔소라 꼬지와 군소무침. 눈물방울을 비벼 맛본다. 분위기를 감지한 해녀가 퀴즈를 낸다.
“군소의 맛은 제주어로 ‘베지그랑하다’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을 맞춰보세요.”
식객들이 유추해 보지만 누구도 맞추지 못한다.
“푹 고은 사골국물을 식혀서 쭉 들이켰을 때 배가 든든해지는 맛을 뜻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오죽 배를 곯았으면 ‘베지그랑하다’ 라는 표현을 썼을까. 군소를 씹으니 불현듯 세월의 더께가 쌓여 구부정해진 손으로 만든 어머니의 식혜 맛이 느껴진다. 오랜 병 수발도 헛되이 하늘로 떠나간 아버지. 청상이 되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자식 일곱 남매를 공부시키느라 무던히도 힘들었을 내 어머니의 삶. 해녀들 풍랑의 세월 같았으리라. 어머니는 밥이라도 배가 든든하게 드셨을까.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해녀의 눈물에 공감하며 식탁에 앉으니 배지그랑한 맛을 알 것 같다. 파도가 높고 폭풍우 몰아쳐도 희망을 안고 뛰어드는 물질. 해녀로 살아온 생존의 내공은 테왁이 떠있는 바다를 바라만 보아도 베지그랑하리라.
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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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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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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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지그랑하다~
모든 부모의 마음이고,
불보살님 마음이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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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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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