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네 번째 - 1)
(회진항∼보성다원, 2023년 5월 27일-28일)
瓦也 정유순
회진항(會鎭港)은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에 있는 국가 어항이다. 조선 시대에는 ‘회령포’라 불렸으며,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명받고 임지로 가는 도중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 받아 전선 12척을 인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되었던 곳이다. 청정 해역과 접해 있어 감성돔, 농어, 갯장어, 낙지 등의 입질 좋은 어종이 많이 잡히기로 유명하다. 갯바위 낚시도 가능하며 선상낚시를 하려는 낚시꾼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회진항 포토존>
<회진항>
회진항 주변의 많은 횟집은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게 하며 이곳의 명물인 된장물회는 특별한 맛을 주는데,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친다. 된장물회는 며칠씩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준비해간 김치가 시어 버려 잡아 올린 생선과 된장을 섞어 먹은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회진항은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 바다로, 소설 속의 정감 어린 장면들을 그려낸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년학>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회진면행정복지센터>
정남진해안도로 주변에는 황금사철나무와 멀구슬나무가 오월 실록의 계절과 조화를 이룬다. 황금사철나무(금사철)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사철나무 중 하나로, 빛을 받으면 고운 금빛으로 변해 ‘황금사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황금사철나무 잎은 멀리서 보면 마치 노란 꽃으로 울타리를 두른 것처럼 황금빛 자태가 너무도 아름답다. 이 나무는 햇빛이 거의 없어도 살 수 있고, 소금기가 있는 곳에서도 자라는 강인한 식물이다.
<황금사철나무>
멀구슬나무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남해안 표고 300m 이하 마을 부근이나 산록에 식재 또는 자생한다. 원산지는 히말라야와 인도이고, 열매는 핵과로 달걀 모양 또는 둥근형인데, 담황색으로 익는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천련자(川楝子)라고 하며 장내 기생충을 제거하고, 뿌리껍질을 고련피(苦楝皮)라 부르며 풍진(風疹)과 개선(疥癬)을 치료하는데 사용한다. 요즈음은 여드름치료제에도 추출물이 함유되어 있고, 친환경 살충제로도 사용한다. 불가에서는 염주를 만드는데 쓰이기도 한다.
<멀구슬나무 꽃>
회진항에서 안산고개를 넘으면 회진면 덕산리 장산마을이다. 덕산리(德山里)는 서남쪽으로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으로, 큰 산 밑이 되므로 덕산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덕산, 기바웃골, 대섬, 용약도, 북바웃골, 피란골마을 등이 있다. 기바웃골마을은 기(게)가 많이 잡히던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며, 대섬마을은 앞에 대섬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용약도마을은 지형이 용이 뛰어 오르는 형국이고, 북바웃골마을은 북처럼 생긴 큰 바위가 있으며, 피란골마을은 피난민들이 정착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산마을 표지석>
장산마을의 형성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700년경 하동정씨가 터를 잡았고, 그 이후 남양홍씨, 해남윤씨, 김해김씨, 광산김씨 등이 입주하였다. 마을의 형국이 ‘긴뱀(蛇)’의 모양과 같다고 하여 ‘장사 또는 장사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지금의 ‘장산’으로 정착 되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마을 진입로공사를 할 때 뱀의 혈(穴)이 잘려 마을에 불운이 자주 발생했는데, 1980년 3월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아치형 도로로 잘린 혈을 이어주자 불행은 사라지고 경사만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장산마을>
장산마을을 지나 정남진해안도로(회진로)를 따라 기바우산(70.5m) 안쪽 고개를 넘으면 우측으로 노력도로 가는 연륙교와 갈라지고, 우리의 발걸음은 회진면 대리마을로 향한다. 회진면 대리(大里)는 고려 말 고씨가 토수 원도청이라 칭하였고 그 후 도청리라 불리다가 1905년경 대리로 개칭하였다. 대리에 있는 명덕초등학교(明德初等學校)는 1933년 5월 대덕공립학교 부설 덕도 분교로 시작하여 그 동안 4,172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현재는 31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대리마을 표지석>
<명덕초교가 있는 대리마을>
대리마을에는 ‘김해김씨 3세 충효정려’가 있다. 김남주(1800∼1872)와 아들 김정현(1819∼1888), 손자 김양규(1837∼?) 등 3대에 걸쳐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지극 정성으로 효를 실행하여 김남주에게는 예조판서, 아들 김정현에게는 호조참판, 손자 김양규에게는 좌승지 겸 경연참찬관을 증직하고 충효정려를 건립하였다. “효는 모든 행동의 근본[효백행지본(孝百行之本)]”이라고 했던가! 핵가족화로 집(House)만 있고 가정(Home)이 사라지는 요즈음에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김해김씨 3세 충효정려>
노력도(老力島)는 장사리(지금의 장산리)가 뱀 형상이고 죽도가 너구리 형국이었는데 뱀이 너구리를 잡아먹으러 오다가 이 섬에 노룡이 있기 때문에 오지 못하고 죽도에 머물렀다고 한다. 그래서 노룡(老龍)이 있는 섬이라 하여 노룡도라 부르다가 노력도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하수가 좋아 노인들이 장수하는 섬이라 하여 노력도라 불린다는 설도 있다. 노력도는 회진면에 위치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주도로 가장 빨리 가는 항구를 가진 섬이다. 지금도 해마다 정월 보름날 당산제와 갯제를 지내는 유일한 섬이라고 한다.
<노력도>
대리를 지나면 소설가 한승원의 생가가 있는 회진면 신상리다. 신상리(新上里)는 동쪽에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지역으로, 신덕리, 상리, 중리를 병합하면서 신상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신상, 땅잿끝, 삭금, 새터, 울바웃골마을 등이 있다. 신상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땅잿끝마을은 당집이 있어서, 삭금마을은 앞에 흰 모래가 깔려있어서, 새터마을은 삭금 밑에 새로 된 마을이어서, 울바웃골마을은 이곳의 큰 바위가 둘로 갈라져 비바람이 몰아칠 때 우는 소리가 근방까지 들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승원소설문학길>
신상리는 1130년경 제주고씨가 마을 북편(빈터)에 터를 닦았으나 성촌하지 못하고 지금의 자리로 옮겨 살았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1600년경 김해김씨가 이웃의 용산면에서 이주하여 마을이름을 ‘잿몰’이라고 하다가 그 후 밀양박씨, 남양홍씨, 수성최씨가 입촌하였다. 1960년에는 농경산업으로 관덕농장이 조성되면서 광산노씨와 평택임씨, 장수황씨가 입촌하여 농·수산업을 주업으로 생활하고 있다.
<회진면 신상리>
신상리 지방도로 819호 도로 옆에 있는 독립자금헌성기념탑은 독립투쟁 당시 장흥군 회진면 명덕을 주축으로 의암 손병희(義菴 孫秉熙) 도주의 교령에 의해 235명의 의사들이 독립자금 모금에 헌신한 것을 기리기 위해 2006년 10월 30일에 세웠다. 모금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 총칼에 의한 식민통치 속에서도 상해로 보낼 독립자금을 모금했다.
<독립자금헌성기념탑>
만일을 위해 헌성자들의 내역을 금액 대신 금동, 은동 훈장으로 명시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독립자금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탑 바로 옆에는 이삼오정(二三五亭)이란 정자가 있다. 처음에는 버스정류장 같아 지나치려 했으나 내부에는 독립선언문과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장식되어 있다. 이 정자는 독립자금을 헌성한 235인의 뜻을 기리고자 세워진 것 같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이삼오정>
기념탑 앞 비석에는 회진면 출신 한승원의 글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발을 멈추고 우리 선인들의 꿋꿋한 발걸음을 읽으십시오. 하늘로부터 열린 태극의 길(道)은 땅과 바다로 명덕(옛 덕도)사람들의 가슴으로 흘러 꽃으로 피어났습니다.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착취, 그 무지막지한 총칼의 세월 혀를 깨물면서 보릿고개 배고픔 속에서도 허리띠 졸라매고 한 줌 두 줌 좀도리 쌀을 모으고 논밭을 팔고 눈물로 마련한 금반지 은반지를 빼고 고추알바람 속에서 건진 김 한 속 두 속 모아 상해로 보냈습니다. 그 가시밭 헤치고 나아간 우리 선인들의 발걸음을 영원히 기리고 청사에 남기고자 후손들은 가난한 호주머니를 털어 이 조그마한 돌을 놓습니다.’
<글: 신덕리(해산) 한승원 문학작가>
<선인들의 혼을 기리는 비>
독립자금헌성기념탑 가까운 곳에는 수령 250년 이상 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당산목(堂山木)으로 마을을 지킨다. 처음에는 방풍림으로 심었는데, 이 나무가 성장할수록 마을이 부해진다고 하여 정월 대보름과 팔월 한가위에 제를 지내고 있다. 나무 모양은 반월형이며, 지상 2m 부위에서 8개의 가지가 뻗어 있다. 수고는 23m이며, 나무둘레는 4m쯤 이다.
<신상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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