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두 주만에 하루 쉬는 우리 부부의 휴일이었다.
매주마다 쉬는게 아니라 격주로 쉬는 우리는 가능하면 개인적인 볼 일들을 몰아서 봐야한다.
주일에는 양로원할머니들과 예배가 있고 점심식사도 내 손으로 준비 해야해서 평일에 쉰다.
아침을 느직하게 먹은 우리 부부는 익숙한 부산에서 시간을 잘 보내는 편인데 그 날도 여전히 부산행을 선택했다.
남편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정기검진을 하는 종합병원도 부산이라 가능하면 부산에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며
휴일을 보낸다..
우리도 이젠 시골 생활도 꽤 되는 시골사람이다.
크게 신경쓰고 옷 입을 자리도 없어서 장만하지 않았던 남편의 봄 옷이 어중간했다.
세일간판이 나 붙은 가게에서 오랜만에 남편의 바지를 몇 벌 샀다. 남편 혼자 봄옷 사기가 그랬던지 지나가는 인삿말로
"당신 옷도 한벌 고르지" 하는 남편의 말에 사양하는 척 하면서 남편 옷을 고르면서 봐 둔 내 옷도 냉큼 골랐다.
당장 봄옷이 없어 외출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이런 호기를 놓치면 아깝지. 뭐 그렇다고 남편의 눈치를 봐가며
옷가지를 사야하는 팍팍한 살림도 아니지만 그냥저냥 대충 입고 살아도 유행에 민감한 할머니들이 아니니
나나 남편도 겉옷에 큰 투자를 안 하며 살았다.
모처럼 극장에서 감상하는 영화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그 흥분을 안고 부산에서 시골 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2시간 거리다. 휴일이니 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좋아 느긋하게 국도를 달려서 돌아오는데 어느 한 곳을 지나다가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신 어떤 분들이 생각나 가슴이 저려왔다. 어쩌면 우리의 지나친 친절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고속도로에 오르지 않고 국도를 달린 걸 후회했다. 갑자기 입안에 비릿한 피비린내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거의 10 여년 전의 일이었다.
우리 집에는 행사가 잦고 크고 작은 공사도 많아서 여러가지 포장지나 철구조물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고물수집을 하시는 분들이 혹시라도 돈 되는 고물이라도 있을까 해서 지나가다 자주 들어 오는 집이기도 하다.
큰 도로에 인접한 건물이라 짐차에 연결한 마이크로 "고물~~삽니다~~" 를 외치는 분들이
서로 고물을 달라고 친절한 웃음을 보이며 들어오곤 했다.
때로는 세파에 찌들고 지친 얼굴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직업적으로 빠르게 돈 되는 물건을 둘러 보는
매서운 눈매를 만나기도 한다.
선입견 때문이었겠지만 험할수도 있는 일이라 그런지 입성들이 좀 허름한 편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났던 그 부부는 둘 다 그렇지 않았고 아주 선하게 생긴 모습으로 그냥 지나치다가
들러봤다며 혹시라도 고물이 생겨 전화 주시면 값을 후히 쳐 드리겠다고 그 날은 그냥 돌아갔다.
누구나 우리 집의 포장박스나 공사하고 남은 동강 난 쇳덩이에 혹하곤 했는데, 그분들은 너무나 신사적으로 운만 띄우고 돌아갔다. 젊은 부부였고 생김생김도 깔끔하고 험한 일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너무 점잖아서 남편은 주고 간 명함을 잘 간수했다가 박스가 좀 모이면 전화를 했다.
부피만 많았지 큰 돈이 안되는 종이는 그냥 가져 가라고도 했다. 그저 주는게 오히려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제법 무게가 나가는 쇳덩이는 주방에 쓸 비누나 두루마리 화장지 몇개만 받고 드렸다.
그렇게 몇번의 만남이 이어지고 부부는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왜 젊은 사람들이 고물상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수다스럽지도 않고 과장되는 부분도 없이 차분하게 풀어 놓기 시작했다.
그 부부는 고물상을 하기 전에는 대구에서 백화점에 납품하는 고급 그릇을 만드는 제법 큰 규모의 공장을 했다.
물건은 납품하고 물품대금이 잘 안 들어오는 관계로 부도를 크게 맞으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지금은 시골의 허름한 빈 터에 고물상이라도 하면서 겨우 하루 밥벌이를 한다고 했다.
밑천이 딸려서 고물을 수거하는 차도 큰 차를 사지 못하고 털털거리며 숨가쁘게 겨우 명줄만 남아있는 1톤 트럭을
몰고 낯설기만 한 골몰골목을 고운 부부가 누비고 다닌다고 했다.
통장이나 모든 은행업무는 아예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다고 했다.
곱게 생긴 외모에 남편이나 아내 둘 다 너무 여리고 가냘퍼 보였다.
1톤 트럭으로 짐을 사러 동네방네 다녀봐도 손으로 모든 작업을 해야하니 덩치 크고 무거운 짐들은 엄두도 못내고
폐업하는 공장을 가야 제법 큰 돈을 만지는데 "하이 카" 라는 차가 없어서 마음 뿐이라고 했다.
신용불량자로 찍혀서 은행대출은 꿈도 못 꾸는 일이라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조곤조곤 자신들의 이야길 했다.
그 모습이 왜 그리도 외롭고 안타깝게 보이던지 명치께가 무직하게 아팠다.
그들을 언제봤다고 가족처럼 마음이 아팠던지....
바로 몇년 전에 우리도 경험없이 했던 사업이 망하고 밑바닥을 쳐 본 지난 날이 있었기에 그 젊은 부부의 안타까움이
꼭 우리 일 같이 와 닿았다.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순간순간이 참 견디기 벅찼던 시절이었다.
무슨 일로 그 부부를 도울 수 있을지 궁리를 해 봐도 우리도 겨우 그 시간을 지난 처지였다.
그 땐 희망의 새 아침이 아니라 악몽처럼 새 날이 밝아왔고 카드대출의 원금과 높은 이자는 시시각각 목을 죄 들어왔다.
안 나가고 안 찾아다니며 조금씩 숨통을 틔우며 지나 온 우리였기에 그 부부의 심정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끼기도 잠깐 우리 일이 바빠 그 부부를 잠시 잊고 지내던 어느 날 밖에 나갔던 남편이 뜬금없이
"나 빚쟁이 되었어" 그러며 들어섰다. 농담 삼아 해 본 소리는 아닌 것 같고 대체 무슨 일로 갑자기 또 빚쟁이가 되었단 말인지.
나하고 상의없이 일 처리를 해서 미안하다면서 그 고물상 부부한테 천만원이나 하는 "하이 카"라고
쇳조각뭉치나 큰 박스뭉치를 들어 올리는 중고 집게 차를 사 줬다고 그러는 것이었다.
은행에서 자기 이름으로 대출까지 내서 사 줬다고 일방적인 통고를 했다.
수 천 만원하는 새 차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내고 중고차였는데도 거의 천만원이나 하는 중장비를 오다가다 만난
얼굴이 선하게 생겼고, 남의 돈 안 떼 먹을 것 같고 양심적으로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출해 준 대책없는 남편이었다.
10 여년 전에 천만원은 제법 큰 돈이었는데 그걸 아내 인 나하고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낯선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그 부부한테 담보물 하나없이 대출해 줬다니 완전 어의상실이었다..
그 당시 그만한 돈은 우리도 갚기 어려운 돈이었고 믿는 구석이라고는 그저 선하게 생긴 두 부부의 모습뿐인데
겁도 없이 덜컥 대출 해 주고 돌아 온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안 갚을 것 같지 않다나 어쨌다나?
고맙다고 몇번이나 인사를 했고 꼭 갚아낼 것이라며 너무나 고마워 하더라는 젊은 부부를 믿을 수 밖에.
이미 천만원이라는 거금은 그 부부에게 전해졌고 남편은 자진해서 대출을 한 사람이고 아차하면 그 돈을
대신 갚아야 하는 채무자였다.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런데도 조마조마한 기분은 별로 안 드는게 오히려 이상했다.
만에 하나 그 부부가 대출금 천만원을 꿀꺽하고 달아 난다면 발등 한번 제대로 찍히자며 우린 기다렸다.
첫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 날짜가 다가왔다.
매일 그들 집 부근을 배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일을 나가는지 야반도주를 하는지 우리는 도통 모를 일이었다.
우린 우리 일만해도 매일매일이 바쁜 일정이라 그 부부 일까지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런 나날이 지나고 드디어 그 날이 왔고, 은행에 가서 통장정리를 해 본 남편이 얼굴이 환해져서 돌아왔다.
우리가 전적으로 믿음 준게 고마웠던지 그 부부는 우릴 실망시키지 않았다.
매달 그 날짜에 남편의 통장으로 원금의 일부와 이자를 입금 시켰고 그 차 덕분에 큰 공장에도 들어 가서
제법 벌이가 쏠쏠 하다고 행복해 했다.
그러면서 객지로 도망 나와서 낯선 지방에서 이렇게 고마운 사람을 만나서 감사하다고 했다.
열심히 잘 살아 꼭 은혜에 보답하겠다며 조금만 지켜 봐 달라며 실망시키지 않겠노라고 웃으면서 그랬다.
우린 착하게 생긴 두 부부의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고 우리가 부자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 부부의 두 딸아이도 마치 인형같이 예뻤다. 좀 여유있는 집에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더 귀하게 보일 얼굴들인데
허름한 콘테이너 박스를 조립한 집에서 두 아이들만 유독 이방인처럼 오도카니 앉아있다.
그렇게 세월은 위태한 듯 평온하게 흘렀고 다달이 통장으로 갚아야 할 돈이 잘 들어 오고 있던 어느 날
그 젊은 부인한테서 말짱하던 하늘을 두 쪽으로 찢어 놓는 듯한 전화가 왔다.
"저 00 집사람입니다....미안한데요....00 아빠가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고물 수거를 하고 돌아오다가 ....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했어요...꺽꺽...
그래도 총무님....그 차값은 ...꼭 갚아드릴께요.....너무 감사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면.... 곧 갚아 드릴께요......고마웠습니다.....너무 염려마세요..으흐흑....."
자기 남편이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죽었다면서 전화를 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이 더 듣는 우리 가슴을 아프게 때렸다.소리없는 망치로 가슴팍을 내려치는 듯 통증이 왔다.
하늘이 갈라지고 지축이 흔들리는 심정일건데도 우리한테 전화할 시간을 찾다니.
통화 도중에 반은 우는 목소리였지만 남편의 사고 후 바로 우리를 안심시키는 부인의 전화에
너무 큰 충격으로 차마 그러라든지 그만두라던지 대답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사고를 이유로 우리 모르게 아주 달아나 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남은 돈은
고스란히 우리가 다 갚아야 할것 같은 현실감으로 , 순전히 우리 빚이 될거라는 불안함이 컸던게 사실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선한 그들에게 일어나야만 하는지 하늘에다 대고 종주먹질을 하고 싶었다.
그 날은 부인에게 남편의 사망 당일이었고 충격이 엄청날 건데도 우릴 안심시켰다.
고맙다고 하기엔 너무 잔인했다.
그렇게 전화를 해 준 그 부인이 소름이 돋도록 침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 그 차를 사 준 원흉일 수도 있었던 우리였다. 우리가 얼마나 원망스러울수도 있었던 일이다.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한테 그 차값 변상을 이야기하는 부인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한 동안 멍 한 상태로 마주 쳐다봤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린 너무 큰 죄인이 된 셈이다.
그 차 "하이카"를 안 사 줬더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냥 작은 차를 몰고 박스나 수거하러 다니면서 적은 돈 벌면서 살았더라면 그 사람이 안 죽었을지도 모르질 않는가.
아...
이렇게 죄스럽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딨단 말인가?
우린 대출이라는 선한 일로 착한 남편을 죽게했고 그들 가정을 파괴한 간접살인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세상 어디에도 이런 경우는 없다.
악한 끝은 없어도 선한 끝은 있다는데 이건 말과는 다르다.
우리가 무슨 댓가를 기대하고 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 가정을 무참하게 짖밟아버린 이건 아니지.
내가 피를 토하고 통곡하고 싶었다.
남편의 사망소식을 알리면서도 그 차값은 걱정말라던 젊은 미망인.
우리를 향한 단 한마디 원망의 말도 없었다.
전화를 받은 남편은 할 말을 잃고 얼굴에는 핏기까지 가신 헬쓱한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렇게 정말 그 부인은 남편의 장례식을 치룬 후 조의금 들어 온 돈으로 차 값을 일시불로 다 넣었다.
그 돈은 젊은 남편의 목숨값이었다.
대출금 잔액을 그만 두라고는 차마 하지 못하고 그냥 받은게 두고두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고맙단 말을 몇번이나 하면서 그동안 살펴 주심을 잊지 않겠노라며 울먹이던 부인의 인사가 우릴 슬프게 했다.
우리는 만약에라도 약속과 달리 그 돈을 못 갚으면 대신 갚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부인은 장례식을 마치고 약속을 지켰다.
고물상의 남은 물건들을 헐값으로 다 정리하고 대구 친정동네로 이사가는 날에도 전화를 했었다.
피붙이들도 희망이 없다며 안해 주던 대출을 생면부지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자기들한테
아무 조건도 없이 선뜻 해 줘서 거듭 감사하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부탁을 하며,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동안 우리 부부는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팠고 고물상 간판만 봐도 울컥거렸다.
오늘 고물상이 있던 골목을 지나오면서 그들은 가고 없지만 10 여년 전의 그 일이 생각나 마음이 새삼 아팠다.
좋게 이어졌던 인연들이 이렇게도 안타깝게 끝나버려서 오래토록 슬픈 추억이 될 줄이야.
아마도 사망소식을 들었던 계절도 오늘처럼 봄날을 기다리던 겨울의 끝자락이 아니었을까 싶다.
마지막 순간까지 쉽지 않은 약속을 지켰다. 아름다운 마음으로 우릴 감동시켰던 그 부인이 예쁜 두 딸들과
어디서건 잘 살아주기를 바란다.
소식이라도 닿으면 다시한번 그 땐 우리가 더 고마웠다고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많이 미안했다고....
첫댓글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넘 감명깊게 읽었어.
글솜씨가 훌륭함.수필가님!
언니는 또....ㅎㅎㅎ
참 안타까웠던 일이었어요.
잘 살아줬으면 좋았겠는데 우리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던 일이었답니다.
가끔은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나 궁금할 때가 있어요.
사랑의 일이란 한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랄락서방님의 선한 눈매는 난 착한 사람이라우
하는것같아. 넘의 왕머슴 사모합니대이.
화날땐 무지 무서운데..ㅋ.ㅋㅋ
아마 어느 곳에선가 잘 살고 있을겁니다 자기을 믿어준 언니 부부을 생각 하면서요
그래 주기만을 바랄뿐이야.
어디 사는지나 알았으면...
슬프고 슬픈 이야기 입니다. 진짜 천사가 계시네요...
우리에겐 너무나 큰 죄책감이 든 사건이었지..후배님.
살아가면서 이런 황당하고 억장 무너지는 일도 있더라구.
아프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트루스토리 잘 읽었데이~ 그사람 그렇게 사고당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부자되어 락이네 든든한 울이 되었을끼라, 우리 법원리 들어가는 입구에 고물상아줌마가 생각나네, 억순이 고물아지매가..
그 아지매 얼굴이 이뿌?
이 아짐은 억수로 이뻤거든.
우린 너무 큰 실수를 한 것 같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람일이잖아요?
저도 십년전에 남편 친구부인에게 애 등록금조로 500만원 빌려준 적이 있는데
삼년 이내에 꼭 갚겠다고 했던 그 돈을 아직 못 받고 있지만
그 애가 졸업을 하고 어딘가 좋은 직장에 취직을 했을 거지만
우리 전화도 받지 않는 그 여인을 그냥 두고 있습니다.
그저 좋은일에 쓰였으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위의 사망사고도 불가피한 운명이었을 거예요.
잘하셨어요.
그럴까요?
끝까지 모른 척 했더라면?????
그런 후회가 참 오랫동안 이어졌었어요.
잘 살고 있겠지요?
슬프게 아픈 추억을 안고.....
정말 좋은 일 하셨는데
잘 풀려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더더욱 좋았을텐데...
세상사 내 맘데로 되는 것 아니니...
랄락님 부부가 자책할일은 하나도 없어요.
정말 대단한 일을 하신거에요.
그래도 많이 미안했고 안타까웠어요.
때론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우릴 시험하기도 하나봐요.
끝내 우릴 고맙다 해 줬던 젊은 미망인이 서럽도록 감사하더군요.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라일락님 두 내외분,,,
그 고마움 잊지 못하고 열심히 살았던 젊은 부부,,,
많이 당하고 살았던지라 두분 넘치는 사랑앞에서 어떤 말에 앞서 그저 숙연해지는군요,,,
끝이 그래서 많이 슬픈 일이었어요.
'그 사람이 보고싶다' 는 프로에 나가서 찾아 볼까요?
꼭 만나보고 싶어요.
저희는 남편의 친한 친구한테 우리 두 사람 월급 고스란히 날린 적도 있었지요.ㅎㅎㅎ
원금 ..아직이구요.
한 동안은 힘들었지만 그 친구가 욕심부리다가 불쌍하게 되어버려 싹 잊고 삽니다.
착한 사람과 착한 사람의 만남이었습니다. 수필은 인생을 잘 산 사람이 써야 되는 것 같습니다.
에구...
부끄러워서.....
아직까지도 마음 한켠이 짠..한 부부 이야기지요.
가슴이 싸아 하니 아프네요 ...젊은 미망인은 어디 가서라도 잘살것 같애요 마음이 바르니까 ..좋은일하고도 여운이 오래도록 ...
역지사지.
입장이 바뀌었더라면 난 어떻게 대처했을까 싶어.
난 선한 사람을 만난거고 그 미망인은 너무 엄청난 현실 앞에서도 냉정하고 침착했어.
우리 복이겠지?
민채아빠 농담 한자락이 일품이시잖어.....
죄의식 갖지마라...
그 아이엄마 어디에선가 바르게 아이들 잘 키우고 살고있을거야....
상대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아주고 그 일을 감사할줄 아는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않을거고
어디선가 자기보다 못한이에게 베풀며 살고있을거야...
그리고 또 그 사랑은 민들레홀씨되어 어디선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쉽지않을일을 선뜻한 그대 쪽쪼기에게 박수를~~~~
나 더 늙으면 창녕가서 개겨야겠다.....ㅎㅎㅎ
신용불량자로요?ㅋㅋㅋ
우리가 언니네 제주도 별장에 가서 개길건데요~`ㅋㅋㅋㅋ
마누라가 엔간히 악처가 아니니 가능하지 않았을까요?ㅎㅎㅎ
내가 지독한 악처였다면 남편도 엄두 못 낼일~
고로 나도 쫌 괜찮은 마누라~`ㅋㅋ
자화자찬.ㅋㅋㅋ
가슴이 먹먹합니다
글들이 한편의 영화인양 눈앞에 펼쳐지듯 돌아 갑니다
이런 삶을 사는 두 분을 글로서라도 알게 된게 참으로 행운입니다
덕분에 내 삶을 반성합니다......
뭐 반성까지야...ㅎㅎㅎ
사는 이야기니까 편하게 쓴 글입니다.
꾸미거나 과장을 하면 사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이지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