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나이에 비슷한 상황 시나리오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납니다.
💗@/@ ( 그곳이 차마 꿈엔들 ) @!@💗
눈을 감으면 아직도 그 산과 들판, 강물이 떠오른다.
초가와 스레트 지붕이 혼재되어 있던 마을.
아이들은 감꽃을 지푸라기에 꿰어 꼬깔콘 먹듯이 빼 먹고,
산에서 소먹이며 망개, 보리포구, 산딸기, 뱀딸기, 산오디, 산머루, 다래를 따 먹던 날들.
때로 복숭아, 사과, 포도 서리에 이어 남의 집 담 넘어 닭서리까지 하던 어린 범죄자의 날들.
밤마다 술에 취해 가족을 때리던 못난 사내들의 떠들썩한 소음이 한 집 건너 울려 퍼지던 야만의 날들.
너나없이 가난한 시절 속에서도 여인들의 삶은 더욱더 고달팠던 날들.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지 못해 울었던 누이들,
노동에 지쳐 돌아와 그 딸들을 안고 같이 울며 가슴 미어졌던 엄마들.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의 기억은 기쁨보다 참혹함이 더 컸다.
그런데 어째서 기억은 봄날 아지랑이처럼 잡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변모할까.
왜 그날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며 미소가 떠오를까.
세월은 화살처럼 흐르고 더불어 세상도 달라졌다.
내 어릴 적 뛰어놀던 산야에는 더 이상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먼지 풀풀 날리며 버스 달리던 신작로는 깔끔한 아스팔트 국도로 바뀌어 자가용들이 질주한다.
초등학교로 바뀐 국민학교는 속속 폐교되어 운동장엔 잡초가 무성하다.
산에도 소먹이는 아이들이 없어져 산길은 수풀로 변했고, 먹을 것이 지천인 세상에서 탐스러운 산 열매는 아무도 따먹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빈집 마당은 민들레가 장악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허물어져 가는 집과 같은 노인들뿐이고, 술주정마저 사라져 밤은 소쩍새 울음만 남았다.
그러나 떠난 사람들의 기억에서 그 시절은 영원히 사라졌을까.
이제는 중년을 훌쩍 넘겨 노년으로 가는 누이들은 아파트 단지 앞에 핀 꽃을 보며 그 먼 세월의 아픔을 그냥 묻어 버렸을까.
비 묻어오는 어느 날 안개 낀 산을 바라볼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TV 드라마에서 시골 배경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옥이 이모>, <은실이>, <형제의 강> 같은 드라마들이 가난하고 정겨웠던 날들을 보여주었고, <전원일기>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가 저녁 밥상을 편안하게 한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고향을 잃어버렸다.
한 세대가 흐르는 동안, 도시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주인공이 되어가면서 우리는 배경조차 희미해져 갔다.
도시의 불빛 아래 청춘 남녀들의 사랑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었고, 그들의 화려하고 달콤한 이야기에 시골은 병풍으로 밀려났다.
이제 누구도 가난하고 칙칙했던 옛이야기를 달가워하지 않고, 그 산야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은 반딧불이처럼 사라졌다.
바뀐 건 풍광과 주인공의 삶만이 아니다.
한때 폭풍처럼 한국 드라마를 휩쓸고 갔던 유행들,
출생의 비밀과 불륜과 복수와 뒤틀린 삼각의 애증이 스크린을 온통 채웠다가 썰물처럼 밀려갔다.
방송사 연속극이 퇴조하고 OTT 기반의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는 현재도 마찬가지다.
더 큰 사건과 음모가 덮쳐오고 무시무시한 격정과 피바람이 사람들의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지루한 걸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유튜브에서 요약본을 보면서 가장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사건의 핵심만 보며 몰입한다.
상승한 제작비만큼 서사는 거대해지고, 휘몰아치는 속도와 영화 같은 스케일이 시청자를 압도한다.
살아온 경험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닌 웹툰이나 웹소설 기반의 판타지가 대세를 이루며 고단한 현실을 잊게 만든다.
그 결과 한국 드라마는 전 세계가 열광하는 반열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화려한 승전보에 덩달아 뿌듯해하다가 어느 순간 쓸쓸해진다.
우리의 진짜 삶은 어디로 가버렸지?
저 엄청난 주인공의 뒤편에 있었어야 할 다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인생은 볼 가치가 없는 것인가?
전쟁은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용맹하게 적을 물리치는 영웅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며 살아왔고,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우리 일상도 전쟁이었다.
아무리 보잘것없이 살았던 사람도 그의 삶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었다.
슬픈 역사를 안고 술주정뱅이 폭군으로 살아야 했던 아버지, 평생 장돌뱅이로 떠돌며 천형처럼 봇짐을 이고 다녔던 어머니, 저 가난을 뚫고 도시로 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형, 슬픔 속에서도 푸른 꿈을 잃지 않으려 했으나 끝내 좌절했던 누이, 그리고 그 모두를 지켜봤던 철없이 천진했던 나까지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이 드라마는 1970년대 말, 그림 같은 풍광의 산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한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보고자 한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이 없는 드라마이자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국민학교 5학년 아이의 가족사가 극의 중심을 이루지만, 회차에 따라 이야기의 주변부에 있던 엑스트라가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이미 그 명망마저 아무런 의미 없어진 양반가의 집성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타성 붙이들.
남아선호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땅에서 딸만 여덟을 낳고도 허허 웃으며 장터를 떠돌던 뻥튀기 장수.
땅 한 뼘 붙여 먹을 자리 없으면서도 노름판에 눈이 벌게져 살다가 끝내 그라목손 농약 먹고 세상 버린 노름꾼과 그의 자식들.
계모에게 갖은 학대당하고 아이들에게도 돌팔매를 맞다가, 어느 날 키우던 소 한 마리 끌며 홀연히 사라진 동네 바보형.
여름철 가뭄에 갈라지는 논에 물 대기 위해 핏발 선 눈으로 서로 멱살 잡고 싸웠던 농부들.
그 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사과밭으로 갈아엎어질 때, 힘센 관에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술에 취해 마누라만 두들겨 패던 못난 사내들.
그 와중에 피어나는 아이의 몽글몽글한 첫사랑, 그리고 그와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던 동무들의 웃픈 이야기.
그 모든 그리움과 애달픔과 산천에 묻힌 추억을 낡은 책장을 펼치듯이 이야기해 보려 한다.
도심의 공원길을 걷다 보면 잘 가꾸어진 꽃들을 본다.
벚꽃이 눈발처럼 날리는 봄 거리에 노랗게 황매화가 피고 지고,
버스 정류장 바구니에는 페튜니아가 하늘거리며 오가는 사람들과 이별하고,
가을 잠자리 아래 항아리에는 바늘꽃과 천일홍이 미소 짓는 도심,
그 너머 거대한 아파트를 보며 다시 어릴 적 그 산과 들판, 강물을 생각한다.
그때 우리 얼마나 고달팠던가.
걸어온 발자취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 날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함에도 우리 얼마나 사랑하며 같이 그 신산을 견뎌왔던가.
그 푸른 산천초목은 기억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슬픔도 아름다웠던 시대.
그 시대를 티 없던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반추해 보고 싶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가 그 시절을 건너온 모든 이에게 바치는 헌사가 되기를 갈망한다.
첫댓글 소싯적 애길 어디채널에서 한단말이요?
아직은 모르지만 T.V / 넷플릭스 비슷한 유형의 상영 😁 확실히 알아서
전달 하겠습니다 👀
아지랭이처럼 어려웠던 옛 시절들이 생각이 납니다.
정도 있고 만나면 반갑고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