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엔 5시에 일어났다.
네팔에 와서 단한번도 밤에 비가 내리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지난밤엔 비가 오지 않았다.
아침 5시 15분쯤 영 잠이 안와서 일기나 쓸겸 노트북을 들고 2층에 있던 숙소 앞에 있던 야외테이블에 앉았는데
내 시야 앞으로 순간 구름이 사라지더니
어제 오후에 구름속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였던 안나푸르나가 완전한 형체를 드러내었다.
갑자기 현깃증이 났다. 그리고 경외감이라는 것이 생겼다. 어찌나 웅장하고, 도도한지-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보여주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나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어제,오늘 나처럼 남편도 새벽이면 잠이 깨어진다고 한다.
순간 순간의 구름이동 때문에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하는 안나푸르나는 찰나를 놓치면 전체를 보기위해
또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어젯밤 버럿이 내일은 날이 좋을거라고, 그렇게 되면 안나푸르나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했는데 정말 그말이 맞았다.
그래서 비가 올까하여 채양 안쪽에 말렸던 빨래를 다시 햇볕 잘드는 곳에 옮겨놓고,
여전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안나푸르나를 아이들을 깨워서 함께 보았다.
어젯밤 비가 오지 않은 관계로 아침 일찍 해가 떠서 그동안 축축한 상태로 있었던 빨래를 너느라
짐을 정리하고 출발한 시간이 또 예상보다 1시간이나 늦어졌다.
이곳의 태양은 뜨자마자 온세상을 달구기 시작했다.
포카라의 붓다 템플의 오전 태양에 이미 나는 한밤중 가로등 밑에선 구분될 수 없을 정도로 타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까맣게 되는 것에 어느정도 초월해가고는 있었지만
오늘 아침 모처럼 모습을 드러 낸 이 태양을 보자마자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이들이 얼마 걷지 않아 씩씩거리기 시작했고- 드디어 종하 종은이는 울상이 되었다.
등 뒤에서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에 어지러움증까지 느끼는 종은이는 토할것 같다며 얼굴이 벌겋다.
뒤에 따라오는 종윤이 아빠도 아이들이 걱정이 되는지, 속도를 늦추라고, 자주 쉬라고 이야기 했다.
앞서서 걷던 종윤이와 버럿은 그 덕분에 우리를 기다리느라고 한자리에서 30분 이상을 쉴때도 있었다.
이곳은 마리화나가 많이 피어 있었다.
날렵한 잎사귀와 가느다란 줄기가 우리나라에 피는 야생화와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버럿이 마리화나라고 알려줘서인지 유독 다른 풀들보다 키가 커 눈에 잘 띄었다.
분명, 마리화나(하시시-속어)를 아는 사람에겐 아주 쉽게 눈에 뛸것 같았다.
마리화나가 많이 피어있는 곳에서 잠깐 쉬면서 버럿은 네팔인들이 싫어하는 나라가 있다고 농담섞인 말을 건넸다.
제일 싫어 하는 나라가 둘 있는데 그 하나는 이즈라엘이고 그 하나는 미안하게도 한국이라고 했다.
이즈라엘을 싫어하는 이유는 네팔을 방문하는 이유의 90%가 마리화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즈라엘 사람들이 마약에 취하여서는 자살을 하기도 하고, 공격적이기도 하고, 좋지 않은 행동도 거침없이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곳 네팔 사람들도 용골이라는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오랫동안 하고 있어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제정신들이 아니라고 했다.
두 번째로 싫어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인 이유는 바로 무조건 깍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가 만난 어떤 여행자들은 로컬인들이 부르는 가격의 대부분 허리를 쳐서 흥정을 시작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할때는 그들이 부르는 가격의 30-40%에서부터 흥정을 시작하라고까지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전에 발품을 팔아 그 물건의 가격과 품질도 잘 알아보고,
우리가 외국인임을 인정하여 적당한 선에서 흥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하튼 여행초기에 만나는 여행자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을 보면서
내심 별것 아닐 것 같은 문제에 어려움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로컬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사람이 싫은 이유가
무조건, 터무니없이 물건값을 깍으려해서 싫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이런 여행자들간의 상거래상 문제는 어느 여행지에서나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유독 물건값의 흥정에서 문제가 생기는지 의문스러웠다.
구매하는 사람도 물건을 볼줄아는 안목이 있을테고,
파는 사람 또한 좋은 가격에 흥정되기를 원할거라는 당연한 필요충분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지 못해 인상을 쓰고, 억지를 쓰고,
상대를 모욕하는 과정을 겪고 있으니 우리 이후에 여행 할 후배들을 위해
로컬 사람들이 씌우는 상습적인 바가지에만 몰두할게 아니라,
기분좋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할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하겠음에
책임감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에 예상한 두시간을 넘어 두시간 30분이 되어서야
우리가 아침을 먹자고 예상한 촘능(chumrong)에 도착을 했다.
식사를 주문하고 나서 버럿이 우리의 오늘밤 숙소를 손으로 가리키는데 무척 가까워보였다.
이젠 식사를 주문하면 적어도 1시간이상 걸리는 이곳의 사정을 잘 아는 우리는 다시 빨래를 널고,
책을 펴고, 카드놀이도 하고, 식사가 나올 때까지 우리가 언제 고통스러웠냐는 듯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이곳에서 먹은 음식은 지금까지 먹어 본 음식중에 제일이였다. 물론, 먹어 본 것중에 비교할수 있는 것은
계란 볶음밥이지만 여하튼 제일 우리 입맛에 맞았고,
꿀하고 찍어먹은 구릉브레드라는 것도 정말 맛있었다.
종하는 이 아줌마를 한국에 데리고 가서 장사를 해도 잘될거라고 했다*^^*.
오늘 우리는 네팔인들이 먹는 특별음료에 도전해 보게 되었는데
버럿 말로는 우유를 상온에서 오랫동안 숙성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숙성시킨 것에 씨앗을 갈아 넣고 먹으면 아주 영양만점의 드링크제가 된다고 추천하면서
조금 전에 이곳의 아주머니가 버럿에게 준 음료를 우리도 먹어보라고 권해 주었다.
‘으잉! 우유를 오랫동안 상온에 두면 상하지 않나?’
버럿의 권유대로 먹어 본 그 음료는 푹 상한 걸쭉한 쉰맛에, 곡식이 갈려있었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긴 했지만 버럿의 호기심어린 눈빛에 우리 가족은 죄다 시큼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맛있는 척 꿀꺽 삼키었다.
그러고보니 포카라 시내에서 붓다템플가는 날,
이른 아침 사람들이 우유를 사기위해
우리나라 정수기 위에 꽂는 큰 물통같은 크기의 함석통을 들고 줄을 서는 것을 봤다.
‘우유를 꽤 많이 한번에 사가네- 냉장고도 없는 사람들이-’ 했는데
버럿 말대로라면 이런 음료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갑자기 또 쏟아지는 비 때문에 부랴부랴 널었던 빨래를 다시 싸가지고
2340킬로미터의 상시누아(up sinuwa)를 향해 내리막길의 계단을 따라 신나게 걸어내려갔다.
계속 되는 내리막길을 내려오며 우리는 그곳에서 제주도를 보았다.
제주도처럼 돌로 밭주위도 쌓아 놓고, 집 주변 담도 시멘트 흔적하나 없이 돌로만 아주 잘 쌓아 놓았다.
거기에 초록색의 벼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져 낯설지 않은 풍경이 너무 정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윤이가 초등학교 3학년때, 종하가 1학년때, 막내 종은이가 5살 때
우리 아이들보다 형님인 조카들 셋까지 데리고 제주도 공항에 내려 2주일간 제주도 일주를 하고
제주항에서 배 타고 서울로 왔었던 그 제주도를 이곳 네팔에서 다시 볼수 있었다는 것에
우리 부부는 그 때의 이야기로 한동안 또 행복해졌다.
아침에 수영을 하고, 점심을 해먹고, 아이들을 잠시 재우고 3시나 4시에 출발해서
다음 해수욕장이나 텐트장까지 8시간 정도를 걸어야 했던 제주도,
천제연 폭포 근처의 리버사이드 호텔 바로 옆 공원에 텐트쳤다고 사복 경찰이 왔었던 일,
서귀포 휴양림까지 올라가면서 종은이가 졸리다고 징징대었던 일,
천지연폭포를 바다로 수영해서 봤던 일, 한라산을 등반하면서 봤던 사슴,
13일째 텐트치는 폴대소리를 들으며 가족 모두가 헛멀미를 했던 일등...
이렇게 제주도 닮은 네팔의 안나푸르나의 작은 동네를 통해
또 우리가족은 생각지도 않은 귀한 추억거리를 꺼내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누아에는 딸들도 많고, 사진도 많고, 수다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그 시누아 주인장은 자기도 아들 하나에 딸 둘이 있다고 흐뭇해했다.
이 시누아는 지금까지의 숙소와 달리 수용소 같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훵한 맨 시멘 바닥에 뚝 떨어진 침대 2개- 문을 열자마자 찬바람이 부는 게
아까 낮에 봤던 동네 아저씨의 두꺼운 잠바가 오늘밤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일기를 정리하고 난 후,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식사준비를 위해 피자2개에, 스파게티1개, 달밧을 주문했다.
이런 산골에 왠 어울리지 않는 핏자, 스파게티 하면서도
잘 모르는 메뉴를 주문하고 막상 먹으면서 고생스러운 것보다는
이런 패스트푸드 메뉴들이 갖는 공통적인 맛을 기대하며
점점 고지가 높아지면서 가격도 따라 높아지고는 있었지만 피곤한데다 입맛도 잃어가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오늘은 익숙한 이름의 특별 메뉴를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다행히 피자도 스파게티도 맛있었다.
우리가 먹었던 바삭하고 쫄깃한 맛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맛 때문이었는지 아이들은 순식간에 접시를 뚝딱 해치웠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종윤이 아빠는 약간의 몸살기가 있다며 금세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지가 높아질수록 수분보충을 잘 해야한다는 버럿의 충고대로
우리는 100루피를 주고 3.5리터 보온병에 팔팔 끓인 물을 주문했다.
그래서 나는 떨어져가는 생수 대신 홍차를 우려 빈병에 담았다.
내일은 이 물로 갈증을 해소해야 할 것 같다.
밤이 깊어지자 종윤이 아빠는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며 본격적인 몸살을 앓고 있었다.
혹시나 상태가 더 나빠질까 염려하여 간단한 몸살약을 권해보지만,
평소 왠만하면 약을 먹지않고 스스로 자가진단하여 회복하던 습관대로 걱정하지 말라고,
내일아침이면 괜찮을거라고 침낭을 끌어당겼다.
부디, 오늘밤, 잘 자고, 내일은 잘 걸어야 하는데-
빗소리에 새벽 5시쯤 눈이 떠졌다.
어제 오후부터 내린비가 점점 무거운 소리를 내자 혹시 이상태로
어디 침수나 산사태가 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일었다.
남편 이마를 짚어보니 다행히 열이 내려져 있었다-
일어난 김에 일기나 쓰자하고 바깥으로 나가니 그 빗속에 부지런한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어제 그 이쁜 딸들었다.
“Are you going to school?"
"Yes.."
뒤이어 일어난 버럿에게 물었더니 원래는 어제가 개학일이었는데 국경일이어서 학교를 쉬었고, 오늘부터 개학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6시간을 걸어서 버스가 오는 큰길까지 가고, 다시 그곳에서 포카라가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야 했다.
“They must be late.”
그랬더니 버럿이 그렇다고, 그래도 할 수 없단다.
아이들이 채비를 다하고 산을 내려갈 때쯤, 이런 저런 당부를 하던 아빠는 딸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앞으로 6시간이나 산길을 걸어가야 하는 딸들이 안쓰러웠는지
하던 일을 멈추고 급히 채비를 서둘러 아이들 뒤를 쫓아 내려갔다.
어느 나라건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 다 똑같은 것 같아 보여 덕분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아버지와 큰딸은 언제나 연인같습니다.
이 빗속에 걸으면서도 항상 아빠의 든든한 응원 덕분에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다는 유혹을 받긴 하지만 종하는 또 기운을 내어 걷습니다.
역시, 사랑보다 더 큰 리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안나푸르나 등반하면서 얻은 가장 맘에 드는 사진입니다.
남편 재식씨는 우리 아이들이 혹시나 뒤로 쳐질까봐
앞뒤로, 우리보다 두배씩 빠르게 왔다갔다하며
우리가족의 대장으로써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 아이들의 어린사진은 괜히 미소를 불러 일으킵니다.
이 귀여운 모습의 아이들이 이젠 멋진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세월 참 빠르죠- 그쵸?*^^*
첫댓글 꿈을 키운다는 것이 쉽고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특히 더 높은 꿈을 키우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이 필요한가 봅니다. 이제는 청소년이 된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을 꼭 이룰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찮아도 매일의 기도는 꿈을 더 깊게 하기인데,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돌아오니까 다시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네요. 정말 아침에 눈뜨고 아침먹었다 싶으면 저녁이 되는...세월이 너무 빨라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요즘 그런 생각이 드네요- 몽랑님이 계시는 몽골도 하루가 빠르지요?
몽골에 온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8년... 참 빠릅니다. 그런 세월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이루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도움이 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글씨가 조금 크게 쓰여졌으면 읽기에 덜 불편할것 같아요. 소인이 전번주에 돋보기 밎췄거든요. 근디~~~, 쓰기가 영 ~~~불편허네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