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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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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매국노 윤석열 스크랩 공안정국 공안 정국? 아니죠. 공포 정치? 맞습니다.
하이리빙네트워커 추천 0 조회 59 08.07.09 10: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인터넷에서 특정 신문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권하고, 그들 신문사에 광고를 게재하는 기업들의 상호와 전화번호 등을 올린 누리인 20여 명에 대해 검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촛불 집회 관련 포스터를 골목에 붙이다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시민은 공무집행방해죄로 구속 영장이 청구되기도 하였다. 평화적인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겠다던 경찰은 돌연 서울광장을 애워싸고 시민들을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텔레비전 토론회에 나온 국회의원이란 사람은 토론 도중 뜬금없이 '북한식으로 살자는 말인가'라는 생뚱맞은 소리를 한다. 청와대는 4개월이 넘도록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봉하마을에 노무현 대통령을 걸고 넘어진다. 지금의 형국은 정부와 여당, 그리고 공안 기관이 혼연일체가 되어 국민들을 '공포 정치'로 밀어 붙이는 모양새이다.

 

  공안(公安)이라는 말은 영어로 하면 'Public Peace' 이다.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편안히 유지되는 상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검찰이나 경찰이 공안 기관인 이유는 바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편안히 유지하는 선봉적인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공안 정국'이라는 말은 대한민국에서 사전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정부와 집권 세력이 국민들의 저항과 성난 민심을 제압하기 위해 공안 기관을 동원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정국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래서 '공안 정국'이라는 말은 내포적 의미로 보면 좋은 의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공안 정국'이라는 이 오래된 표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행태는 말 그대로 '공포 정치'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왕과 귀족들은 끌어내려졌지만, 프랑스의 정치적 혼란은 멈추지 않았다. 소용돌이 치는 프랑스의 혼란상을 극복하겠다고 나선 '쟈코뱅당'의 로베스 피에르는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기요틴(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유명한 '공포 정치'이다. 프랑스 시민들은 '공안(公安)'을 원했지만, 로베스 피에르는 '공포(恐怖)'를 원했다. 그가 만든 것은 '공안위원회'였지만, 그가 행한 정치는 '공포 정치'였다. 프랑스 시민들은 국민들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로 합의할 수 있는 정치를 원했지만, 로베스 피에르는 국민들이 자신을 두려워하여 복종하는 정치를 원했다. 하지만 '공포'를 통해 이루어진 권력과 권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으며, 로베스 피에르 그 자신도 결국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끌어내려져 처형 당했다.

 

  '공공의 적' 시리즈인 영화 '강철중'이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세우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는 경찰과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개선시켜 주었으며, 검찰과 경찰이 '공공의 적'들과 싸우는 진정한 공안 기관이라는 믿음도 강화시켜 주었다. 하지만 2008년 지금, '공공의 적'을 관람하고 나오는 시민들을 기다리는 현실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공공의 적'에 나오는 경찰과 검찰의 모습이 '현실'이라기 보다는 '바람'일 뿐이라는 회의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잔혹한 살인 사건과 엽기적인 사건의 범죄자는 번번이 놓치고 잡지 못하는 경찰이, 높으신 양반들의 파렴치한 범죄에는 한 없이 관대한 검찰이 전단지를 붙인 시민들과 실랑이하다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잡아 넣고, 불매 운동을 벌이는 소비자를 출금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지금 누가 '공공의 적'이고 누가 '공공의 수호자'인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 친한 후배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다가 '검사'가 되기 위해 다시 법학과에 입학했다. 몇 년 전 그 후배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보고 나서 자신도 파렴치한 인간들을 잡아들이는 검사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 거대한 사회 구조도 좋고 시스템을 바꾸는 거창한 일도 좋지만, 자신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 사회를 좀 먹는 자들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런 후배의 다짐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고 박수쳐 주었다. 지금의 '공포 정국'에 대해 우리 사회 수 만의 경찰과, 수 천의 검찰들이 도매금으로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내 후배처럼 정의감과 국민에 대한 봉사 정신으로 무장한 검찰과 경찰도 많을 것이고 아직은 더 많다고 믿고 싶다.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쏘고 방패를 찍어야 하는 말단 경찰들과 전, 의경들 역시 대부분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공권력을 집행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국민에 대한 봉사'보다 '권력에 대한 봉사'가 먼저인 정치 검찰과 정치 경찰들이다. 자신의 출세와 안위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정치 검찰과 정치 경찰로 인해 검찰과 경찰 모두가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으며 '공공의 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슬픈 일이다. 검찰과 경찰 내부에 '바른 목소리'를 내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없어서 더 슬프다. 토론과 합의를 중요시 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던 그 검찰들은 지금 어디로 갔는가? 참여정부 시절 수사권 독립과 경찰 개혁을 외치던 '경대생 출신 간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장 먼저 불의에 저항해야 할 사람들이, 가장 먼저 공포에 굴복한 것은 아닌가? 진정한 의인은 언제나 '난세'에 그 실체가 드러나는 법이다. 공무원의 권익을 높여주고 공무원들을 존중해 주던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의인의 행동으로 존경 받을 일이 아니다. 지금 공포 정치로 국민들을 겁주고 굴복시키려는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당당히 'NO'라고 외치는 검찰이나 경찰 내부의 목소리가 없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결국은 한 통속이구나'하는 절망에 빠진다.

 

  '권불십년'이고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고 '교언영색'하는 자들은 그 권력이 다 했을 때, 권력과 함께 사라지고 댓가를 치를 것이다. '공포 정치'는 국민들의 입을 닫을 수는 있겠지만, 국민들의 마음을 열 수는 없다. 민초들은 밟으면 밟을수록 잡초처럼 강인해지고 용감해진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겁주고 옥죌수록 전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인기는 더욱 커져만 갈 것이다. 권력을 얻는 것은 쉽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한 권력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시민들은 점점 더 정보화 되고 현명해 진다. 이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는 세상이다. 눈과 귀로 다 보고 듣고 알게 된 시민들의 입을 막는다면 시민들은 '행동'으로 나설 것이다.

 

  왜곡과 협잡을 일삼는 언론사에 대한 '불매 운동'을 주장하는 그 입을 막으면, 사람들은 입을 여는 대신 실질적인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다. 미국산 소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면, 시민들은 말보다 더 무서운 실천으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항할 것이다. 색깔론과 종북론을 들먹이며 시민들의 입을 막으려는 정치인들을 시민들은 마음 속 깊이 기억하고 각인할 것이며, 선거가 돌아오면 잊지 않고 반드시 표로써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청와대를 향해 목소리를 높이던 시민들을 향해 정부는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이제 시민들이 청와대를 등지자, 갑자기 어깨죽지를 잡아채며 말을 잘 들으라고 겁을 준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을 멱살을 잡고 '너희가 말을 안 들어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며 해코지만 하고 있는 이 정부가 참으로 한심스럽고 절망스럽다. 국민들을 세뇌시키고 공포 정치를 일삼는 북한을 가장 증오하는 사람들이 오늘도 열심히 북한의 독재자를 닮아가려 한다. 정말 북한처럼 살자는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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