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오는데 1층에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면이 있는지라
"추운데 어디 갔다왐수광?"
"약국에 갔다왐주."
하얀 비닐 속에 약봉지가 보였다.
할머니는 4층에서 내렸다.
그날도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는데 할머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있는데
할머니는
"고맙게시리...."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오지랖 넒은 나는 또
"어디 갔다왐수광?"
"응, 드림타워에서 茶 마시고 왐주.
도두에 땅 나온 게 있어서 손님들이랑 상담해신디
잘되면 수수료만 10억이라.
경헌디 중국 애들은 믿을수가 없어서..."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요새 제주도 땅값은 어떵햄수광?"
"팡팡 내렴주. 이녁도 땅 팔 거 있으면 나한테 말해여."
할머니는 명함 하나를 꺼내 주셨다.
집에 와 명함을 들여다보자 좀 혼란스러웠다.
할머니 행색을 보면 큰손 같아 보이지는 않고 명함을 보면 몇 십년 부동산소개업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제주 부동산계의 숨은 고수일지도 모르겠고....
고급 승용차가 할머니를 태우고 가는 것도 몇 번 봤던지라 고개를 갸웃하며 명함을 서랍에 넣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미니리를
위, 아래층 어르신들께 나눠드리고 4층 할머니께도 드렸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나와
"고맙다."며 받으셨다.
돌아서 나오는데 왠지
"내가 잘못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몸도 불편한데 미나리 반찬을 만들수는 있을까?
그냥 무침이라도 만들어 갖다 드릴 걸....
한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길래 관리실 여직원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이사갔수다.
민원도 막 들어오고예."
"무슨 민원?"
"할머니가 쓰레기통을 뒤져
뭔지 막 주워가고 주위도 어지럽히고예.
아들이 모셔간 것 같수다."
예전에 앞집 동생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의자를 분리수거하려고 내놓고 스티커를 붙이려 가 봤더니 의자가 사라졌더라고.
나중에 알고보니 할머니가 가져갔더라며 치매기
있는 어머니를 모시지 않는 아들도 문제라고 궁시렁거렸었다.
척박한 섬에서 조냥정신(절약정신)으로 살아오신 할머니가 쓸만한 물건 보이면 무조건 챙기는
습관이 문제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몇 달 뒤,
앞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이삿짐을 옮기는 사람들 소리에 문 열어보니 할머니가 보였다.
언젠가 할머니가 하소연 했었다.
'나는 마당 있는 집에 살고싶은데 아들은 교통 편리하고 병원 가까운 데가
좋다고 해서 여기서 살지.'
할수없이 할머니는 또 이 아파트에 오셨다.
어제는 인사가 늦었다며 바나나와 고구마 한 팩을
들고 찾아오셨다.
할머니가 진짜로 큰 건 하나 잡아서 10억을 받았으면 좋겠다.
'어쩜 나한테도 콩고물이 떨어지지 않을까?'
혼자 실없이 웃어본다.
첫댓글 제주도 고유의 말 잘 배웁니다
제주도말도 우리의 고유유산입니다
수수료가 10억이면 물건이 5,000억정도 하는 모양입니다
할머니의 건풍(?)인가 생각했었는데
돈을 많이 번 건 확실하더라구요.
밀감 밭과 특작하는 땅도 많고.
복도에 밀감 20여 상자 늘어놓고
주소를 붙이는데 글씨가 달필이라 놀랬습니다.
병원 가까운곳이 좋기는 해요
제주도 사람들도 늙기는 늙나봅니다 좋은환경 살면 덜늙을까 햇더만 ㅎㅎ
뭐니뭐니해도 병원이 가까워야죠.
버스 정류장도 가깝고
사우나도 가까우면 좋지요.
제주도 할망들이 좀 장수하는 건 맞는 건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