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멸망하는가?
창세기 6장 1절-8절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 그리스도를 몰랐던 사람들 또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멸망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도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예수를 알지 못했는데 모두 멸망하였을까? 모두 멸망한다면 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 사랑에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 인간 그리고 그리스도 밖에 많은 인간이 모두 멸망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1. 성경은 한길 밖에 없다고 했다.
오직 한길
그리스도는 자신이 길이라 하고 그리스도로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했다.(요 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좁은 길 한 길만이 사는 길이라 했다.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눅 13:24-25)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사도 요한과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예수께서는 그리스도 자신을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천하에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자로 이 세상에 보낸 자가 없다고 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한 즉시 구주인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것을 약속 했다.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 안에서 산 자들이 구약시대 성도들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한 분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 분의 이름이 예수(자기 죄를 저희 죄에서 구원 할 자 구주)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멸망시키신 것이 아니다. 인간이 스스로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을 허락하시고 계속 돌아 오라 외치신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고 고집하고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이다.
2. 성경 역사에 이렇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하자 형벌을 선언하시고 그 형벌에서 사는 길로 속죄의 제도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제사이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타난다.
1) 노아 홍수 이전 시대.
가인과 아벨
아담이 가인 아벨 이후 130 세에 셋을 낳고 800년을 지나며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급속이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가인의 후예도 무수하게 번성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이 속죄 받게 하려는 제사 제도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셨다. 그러나 가인은 속죄 없는 제사를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속죄 없는 제사는 받으실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받지 않으셨다. 가인은 속죄 받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동생을 살해하는 죄를 범했다. 하나님은 가인을 불러서 죄를 물었다. 그러나 자신의 죄에 속죄 하는 마음이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항했다. 그리고 끝가지 죄를 고집하고 하나님을 돌아서게 되고 스스로 유리하는 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가인과 후손들이 불신앙을 고집하기에 그대로 버려두신 것이다. 그리하여 가인의 후예들과 그 가인의 길로 가는 자들은 돌아서지 아니하기에 버려두신 것이다. 버림받았다는 말은 하나님이 버렸다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 버림을 받았다는 말이다.
2) 노아 홍수 시대.
노아 홍수
셋의 아들들이나 가인의 아들들이나 하나같이 가인의 길로 가게 되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시기 위해 창조 했는데 창조된 인간이 죄악으로 영혼이 죽어서 버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영혼이 썩어서 못쓰게 된 인간이게 물로 쓸어버리시려고 계획 하시고 노아에게 명하여 살 방주를 지으라고 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다. 오랜 세월 동안을 방주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했고 방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노아와 그 가족 밖에는 돌아오는 자가 없었다. 모두 멸망의 길을 자처하고 고집하고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들을 버려두셔야 했다. 결국 8명의 극소수의 생명만 살게 되고 무수한 생명들이 멸망하게 되었다.
3) 아브라함 시대.
아브라 함
노아의 후손들이 아브라함 시대에 무수하게 번성했다. 바벨탑을 실패하고 흩어진 민족들은 동쪽 메소포타미아로 이동하여 함의 후손은 니므롯을 메소포타미아 주요 성읍(창10:10,) 기스, 구다, 십발, 악갓, 바벨론, 다섯 도성을 건설했고 셈의 후손들은 슈메르를 중심하여 에리두, 라기스, 닙블, 랄사, 움마, 아답, 수르박,등 일곱 도성을 건설했다. 그리고 이 도성들이 끊임없이 영토싸움을 했다. 이 때에 니므롯이 슈멜에 의하여 죽게 된다.
B. C.7000년의 메소포타미아는 앗수르 도성을 중심하여 최대의 도성으로 슈멜 문명이 발전한다. 그러나 B. C. 612년에 메데 바벨론 갈대아 연합군에 의하여 함락되고 하브라비 왕에 의하여 바벨론 통일 왕국이 된다.
(1) 바알종교 탄생.
바알 종교
바알종교는 니므롯의 아내 세미라미스로부터 시작된다. 니므롯의 아내 이름은 유대인의 사전 더 제위스 엔키클로페디아(The Jewish Encyclopedia)에 의하면 세미라미스(Semiramis)라 하는데 그는 당대 미인이였고 음란하고 사악한 여자였다. 니므롯이 슈멜에게 죽고 2년이 채 못 되어 사생아를 낳게 된다. 남편이 없는 분륜에서 태어난 사생아 이기에 왕후로서 지탄에 이르게 되겠기에 그는 죽은 남편인 니므롯이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한 대로 여인의 후손으로 바벨론 제국을 위해 다시 환생했다고 이름을 담무스라 칭하고 퍼트렸다. 그리고 여인이 아들을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하여 여인의 후손으로 온 아들이라고 했다.
담무스가 성장하여 다시 슈멜을 점령하고 바벨론 제국을 회복했다. 세미라미스는 담무스(תָמוּז)가 죽은 남편 니므롯(נִמרׁוד)이 환생했다 하고 다시 아들 담무스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태양이 세상을 비추어 보호하기에 니므롯을 바알(בַעַל βααλ 태양신) 즉 하늘의 아버지로 그리고 담무스를 태양신의 아들로 하늘의 왕자로 신격화 했고 세미라미스는 세상은 태양과 달이 공존하며 보호 한다는 차원에서 자신은 하늘의 어머니 하늘의 왕후 아세라(אֲשֵרָה αλσος 달신(月神)이라 신격화 하고 삼위 일체(三位一體)신으로 신격화 했다. 이 세미라미스의 신화에 근거하여 많은 우상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2) 담무스의 종교정책.
담무스는 바벨론 제국을 세우고 신전을 건축했다. 그리고 담무스의 애곡이란 축제를 정하여 바벨론 제국 안에 모든 여성은 신전에 와서 신에게 제물로 드릴 아들을 의무적으로 낳게 했다. 그리고 바벨론 제국안에 모든 백성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도록 강요하는 종교적책을 폈다. 바알을 섬기지 않은 자들은 바벨론 제국의 백성이 아니므로 제국 안에 살 수 없도록 했다. 이 담무스의 종교정책에 의하여 여호와 종교는 잠식당하게 되었고 아브라함 시대에 아르러서는 여호와의 종교는 모드 잠식당하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만이 가까스로 여호와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바벨론안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번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백성을 형성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선조 노아가 증여해준 땅으로 불러낸 것이다.
담무스는 바알 신전을 세우고 여호와 종교의 제물 송아지보다 더 귀한 인신제물을 드리도록 했다. 그리하여 각 지역의 선정된 남자 아이들을 제물로 바치도록 했다. 그러다가 담무스의 애곡이라는 축일을 만들어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여자들은 그 축일에 신전에 와서 아들을 낳아 제물로 바치도록 의무화 했다.
신전 외벽은 수백 개의 작은 방을 만들어 놓았다. 담무스의 신전에는 남자 사제들이 많이 있었다. 여인들로 하여금 임신기에 신전에 와서 자신을 통하여 아이를 바치게 해주기를 애곡했다. 옷을 모두 벗고 애곡하고 있으면 신전에 거주한 남자 사제들이 와서 동전을 던져주고 그 여인을 사서 결합하여 아들을 낳으면 제물로 바치게 한다. 얼굴이 고운 여자들은 사제들에게 쉽게 선택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여자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을 선택해 주기를 애걸해야 한다. 제물로 바쳐질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면 바벨론 제국의 여자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여성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로 하여금 여호와의 종교는 말살 당하게 된 것이다. 이 축일을 담무스의 애곡이라 한다.
성경에 바알신과 아세라 신 종교를 음행종교라 한 것은 세미라미스가 음행하여 삼위일체 신 바알 신앙이 숭배되었기 때문이며 담무스의 애곡이라는 축제로 하여금 음행이 공공연하게 자행되었기에 음행종교라 한 것이다. 인간들이 음행해서라기보다 세미라미스의 음행으로 기원된 종교이기 때문이고 또한 담무스의 애곡으로 종교 행위가 행해지기 때문에 음행종교라 한 것이다. 그래서 바알 종교를 접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악행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경은 금한 것이다.
바벨론의 바알 종교 정책에 여호와의 종교는 잠식되고 그중에 한 가정 데라의 가정이 남아 있어서 아브라함에 75세가 되어 가장 권을 가지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아들들 8명 중에서도 이삭 한 사람만 선택하셨다. 이삭의 아들 에서와 두 형제 가운데 불신앙인 에서는 버려두고 야곱을 택하여 그의 백성을 이루셨다.
아브라함 당시 수많은 부족들이 많이 번성하여 메소포타미아에 모여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제 갈 길로 가기 때문에 버려두고 아브라함만 불러서 가나안으로 이주 시키셨다.
아브라함 시대에 인간의 타락성이 소돔과 고모라 심판사건으로 잘 나타난다. 소돔 고모라가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게 된 것이다.
[창 18:32-33]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33)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
소돔 고모라 땅은 함의 후예들이 사는 5개 도성이었다. 그 도서에 의인 열 명이 없었다. 그러기에 수많은 사람이 멸망하게 되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 없는 인간은 가치가 없다. 우리가 육신이 생명이 떠나면 미련 없이 땅에 묻어 버린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인간은 생명이 이미 부패하여 가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러기에 심판 때에는 미련 없이 버리시는 것이다.
4) 선민의 시대.
예루살렘 멸망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가나안 땅에 선민의 나라를 수립하여 성막과 성전을 세워 2000여 년간을 선민의 역사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역사가 흐를수록 신앙이 타락해 왔고 결국 여호와의 종교가 모양만 있고 실체는 부패해 버렸다.
B. C. 930년 경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시대에 이스라엘은 분열이 되었다.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두 지파는 남 유다로 그리고 나머지 10지파는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두 나라는 서로의 갈등과 우상종교화 되어 여호와의 종교가 변질 되었고 타락을 거듭하여 B. C. 586년에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되고 이방 땅에 포로 생활로 인하여 여호와의 종교는 실체성이 상실되었고 그리스도 이전 300년 동안은 말라기 선지자를 마지막으로 선지자도 단절해 버리셨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종교는 세속화 되었고 성전 지도자들은 모두 친 로마파인 수두개파의 세속 신앙으로 기울어 졌고 성전은 강도의 소굴로 변모해 버렸다.
메시아 신앙도 세속신앙으로 정치적 메시아로 이스라엘 제국을 세워 인류를 통치할 자로 가르치고 믿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짐승의 희생 제사를 드리는 성전을 헐어 버리시고 새 성전 메시아의 교회를 세웠고 나라는 A. D. 65년-70년에 멸망 시켜버리신 것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민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외적인 모양만 있고 실체는 무너졌기에 그들을 버려두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등진 자들이기에 버려주신 것이다.
5) 단군 신화와 민족 역사.
우리 민족을 단군의 자손이라 말한다. 그러나 신화는 역사가 아니며 진리도 아니다. 단군 신화는 고대 건국역사 신화인데 고대 사람들이 선기는 하늘님 에게 이라 하는 서자 아들이 있었는데 환웅은 땅에서 뜻을 펼치려는 뜻을 가지고 아버지 환인에게 요구하자 3000명의 백성과 함께 땅으로 보내어 태백산 꼭대기 (신령에게 제사드리는 나무)아래에 내려와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이 때에 암 호랑이 한 마리와 곰 한 마리가 한 굴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다. 그러자 황웅은 신령한 약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밖에 햇빛을 보지 말라고 했다.
호랑이는 인내가 부족하여 중간에 밖으로 나와 버렸고 곰은 인내하여 처녀로 환생했다. 환웅은 이 곰 처녀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이다. 우리 한국 민족은 이 단군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인간이 꾸며낸 이야기 신화이지 역사는 아니다. 왜냐 하면 단군 전에도 지상에 인간은 존재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의 우리 민족들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인간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음을 믿고 우리 시조가 아담이라고 믿을진대 우리 민족도 그 어떤 부족의 하나이었을 것이다.
가인의 후예와 다를 바 없는 민족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우리 민족은 단군의 자손이라 말한다. 이 단군 신화는 사실이 아니기에 믿을 수 없다.
신화를 믿지 않는다면 우리 종족은 근원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조가 단이라면 흥미 있는 일이다. 부족사회에서는 족장이 임금이었다. 그런데 이 단이라는 이름이 우리의 민족적인 이름이 아니다. 단군(檀君)이란 제단단(壇) 임금군(君)이다. 제단을 쌓는 임금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왜 우리 조상의 이름이 단일까 ?
인류사 적으로 볼 때에 모든 민족은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번성했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조상 단(檀)이란 사람도 메소포타미아에서 왔다는 것이다.
노아 이후에 단이라는 이름이 무려 16번이 나온다. 단군이란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제단을 쌓는 임금의 후예들이란 말이다. 고대 나라 이름들을 성씨를 따서 그 나라를 칭했다. 단군의 후예들은 선조가 제단을 쌓는 선조임을 당시의 문화적 차원에서 칭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단기라는 연대가 야곱의 시대와 일치한다.
단기(檀紀)는 한민족의 기년이다. 단군조선이 세워졌다고 하는 기원전 2333년을 단기 1년으로 한다. 그레고리력에서는 기원전 1년은 단기 2333년이 되고 서기 1년은 단기 2334년이 된다. 따라서 서기 2021년은 단기 4354년이 된다.
단기에 대한 제안은 고려말 공민왕 때의 백문보가 최초이며, 조선에 이은 대한 제국에서는 연호 이외에 단기 연호를 함께 사용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직후 대한민국을 연호로 쓰다가 1948년 9월 25일에 대한민국 법률 제4호 ‘연호에 관한 법률’에서 “대한민국의 공용 연호는 단군을 기원으로 한다 하여 단기가 공식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킨 후인 1961년 12월 2일에 폐지 법령이 선포되어 서기를 공용 연호로 쓰게 되었고, 1962년 1월 1일 부터는 단기의 공식적인 사용이 중단되었다.
모세 시대를 B C 1,500-2,000년경으로 본다. 야곱의 자손들이 번성하고 애급에서 종으로 산 기간이 400년이다. 야곱의 147세(B. C. 1689년)에 죽었다. 그 이후 종으로 산 기간 400년 계산하면 2089년임을 알 수 있다. 당시의 문화적 수준은 역사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구약 성경 역대 기 기록에 12지파의 기록에 단지파가 없다.
[대상 2:1-2]이스라엘의 아들은 이러하니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과 2) 단과 요셉과 베냐민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더라
구약 성경 역대기는 예루살렘이 멸망후 민족이 포로로 흩어져 살다가 B. C. 586년경에 귀환한 후 역사를 기록한 성경이다. 역대기상 4장에서 8장가지 야곱의 열두 아들 후손들이 기록되어 있다. 역대기상 2장에 단의 이름만 기록되었다. 그러나 4장부터 8장까지는 열두 아들들의 기록들인데 단의 아들들은 기록이 없다. 당시에 이미 단의 후예들은 그 지역에 존재하지 않았음이 추측 된다 포로 귀환시 단지파에 속한 종족은 한 사람도 귀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역대기록에 기록되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존재해 이었다면 기록에 빠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음을 말해준다.
신약 성경을 기록할 당시 요한 계시록에 단지파가 빠져 있다.
[계 7:5-9]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10)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신약 성경을 기록할 당시 사도 요한은 단 지파를 열두 지파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이방인처럼 진정했다고 불수 있다. 그 주변에 이 지파가 없었음을 말해준다.
종교성이 시사한다.
우리 민족은 선민의 후손답게 하나님에 대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해마다 10월이 되면 하늘 제사를 드렸다. 고구려에서는 그것을 동맹(東盟)이라 불렀고 부여에서는 영고(迎鼓)라고 불렀고 예맥에서는 무천(舞天)이라 물렀다. 우리나라가 체육대회를 할 때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단군이 제단을 쌓았던 곳이라 하여 거기에서 성화를 전달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하나님(하늘님)]이란 고유 명사를 예수교가 들어오기 전에 불렀다. 물론 우리 기독교가 칭하는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하늘에 신이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사실이다. 그 종교성에 기독교가 하나님을 전하므로 쉽게 감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신약성경을 기록할 당시 단 지파는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시조는 단 자손 중 하나가 와서 인종을 퍼뜨려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조상이 인종을 퍼트렸지만 하나님을 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대신 조상인 단이 하나님처럼 섬김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인 기록이 없기에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전혀 무근한 말은 아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 민족은 시조로부터 하나님을 스스로 떠난 민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리에 단이 자리하고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짐승 곰과 결합하여 인간이 되었다 했으니 귀한 인간의 생명을 짐승의 조상으로 만들었으니 어찌 그 죄가 크다 하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아담이 타락하므로 인류가 죄인이었다면 우리 민족도 우리 선조가 하나님을 버렸으므로 우리의 죄악의 책임을 우리가 져야 한다는 말이 된다. 성경은 말하기를 아비의 죄를 삼 사대가지 이른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십계명중 2계명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20:4-6)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했다.
조상이 믿지 아니하였을 때에 삼사 대 뿐 아니라 대대에 멸망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에 약속을 믿었던 이스라엘과 약속이 없었던 이방인들이 버림을 당하고 또 약속을 하였는데도 믿지 아니한 우리 단의 자손이라면 멸망당해도 무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 조상뿐 아니라 그리스도밖에 있는 이방인은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할 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아버지는 한 분 하나님이시고 모든 믿는 자들은 그 안에서 참 형이라는 사실이다.
돌아오지 않은 인간을 버려두신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롬 1:22-24]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 1: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롬 1: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인간을 버린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버림받는 길로 고집하여 내버려 두셨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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