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김영준 동지.
이 시대가 생명과 평화를 파괴하는, 문명의 이름으로 반문명적 파괴를 일삼는 시대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걸세. 또한 이 정부가, 노태우 정권이 저 '1989년 여름날의 전교조 대학살'을 자행했던 것처럼 2004년 겨울, 노동 3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는 공무원 노조원들에게도 꼭 같은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함께 목도하고 있네. 그러므로 자네가 이 정부를 '괴물'로 지목하면서까지 분노하는 심정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네. 자네도 나도 바로 노태우 정권이라는 '괴물'의 폭력으로 학교를 쫓겨난 1500여 해직교사중 하나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네가 우리 시대를 '파괴와 괴물이 판치는 세상'으로 비유 내지 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지는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네.
"(이런 세상에서) 전교조가 무사한 게 이상하지 않은가?"
요컨대 현재의 전교조가 '위기'에 처해 있다면(자네도 여기에는 동의하는 듯 하네만) 그 위기는 어디까지나 '파괴'와 '괴물'이 판치는 세상 즉 외적 상황 때문이지 내적 문제, 전교조 자신의 문제 혹은 자기 성찰의 결핍과 같은 이유 때문은 아니라는 뜻으로 우선 읽히니 말일세.
어떤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차분히 안팎을 두루 살필 필요가 있음은 자네도 부인하지 않을 걸세.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 자네의 질문 속에는 '엄혹한 상황 논리'만이 절대적 우세를 점하고, 그 엄혹한 상황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옳은 것인지, 우리 자신의 내적 조건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부차적으로 밀려나 있거나 괄호 밖으로 밀려나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네.
자네는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 이른바 '참여정부' '치하'에서도 노동자가 고공크레인에 올라가 죽음으로 절규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공무원 노조에 대한 탄압을 언급하면서 이런 상황에 전교조가 '무사'하기를 바란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함께 투쟁의 대열에 나서는 것 외엔 달리 어떤 길도 없다고 소리쳐 말하고 있네. 과연 자네의 '외침과 분노'는 정당하며 그 투쟁의 대열에 자네는 항상 함께 했고 또 누구보다 앞장 서 있었기에 자네 말의 진정성은 더욱 빛난다고 나는 생각한다네.
하지만 김영준 동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묻고자 하네.
지율 스님의 '투쟁'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와 공무원 노조의, 며칠만에 막을 내린 그 '투쟁'을 제대로 평가하고 연대 방안 모색이라는 과제와 타워 고공 단식 '투쟁'에서 우리가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그 무엇이 모두 꼭 같이 '강력한 투쟁' 이라는 하나의 슬로건으로 수렴되어도 좋은 것일까?
예컨대 지율 스님의 '투쟁'은 '불교, 부처님의 가르침, 궁극의 깨달음, 모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기 위한 '자신과의 투쟁'이란 점에서 여타의 정치투쟁이나 노동 운동과는 차별성을 가지는 것 아닌가? 그것은 자네가 일컫는 '괴물' 조차도 한 가슴에 안는 그런 철학을 기반으로 한 투쟁 아닌가? 바로 여기에서, 필요할 경우 가장 '레디칼한' 투쟁도 나오는 것 아닌가?
전태일 열사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분신 투쟁'이 아니라 다른 무엇보다 고귀한 그의 휴머니즘, 약하고 아픈 이웃에의 아낌없는 사랑, 관념이 아닌, 살아 숨쉬는 노동의 철학임은 자네도 잘 알 걸세.
내가 정녕 우려하는 것은 '엄혹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요구되는 철학과 투쟁 전략과 전술의 빈곤 때문에 단기 처방과 눈앞의 전과에 급급함으로서 결국엔, 아(我)도 피아(彼我)도 함께 살리기 위한 우리의 투쟁( 자네도 우리의 투쟁이 我만을 위한 투쟁이라 생각하지 않으리라)이 오히려 我마저 고갈케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네.
나는 자네의 짧은 글을 보고 지난 번 양정 교육정보원 강당에서 만난 기호 1 번 황옥주 수석부위원장 후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네. 황 선생님은 자신이 스스로를 비유했듯 진정 '시골쥐'의 소박함과 인정미를 갖춘 분이었네. 거기에다 그분은 '촌놈' 특유의 강단과 뚝심이 가능케 한, 필설로는 다 말하기 힘든 눈물겨운 투쟁 경력을 그 자그만 체구에 다 담고 있었네. 당신이 재직하고 있는 지독한 사립학교와의 투쟁에서 그녀는 마침내 승리를 이끌어냈다 했으니 그 가시밭길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연단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줄곳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황선생님의 연설이 내게 '감동'으로 다가온 까닭을 달리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그러나 황선생님이 "현 집행부가 뭘 그리 잘못했단 말입니까? 우리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비판당하고 욕을 먹어야 합니까?" 이렇게 눈물로 항변했을 때 나는 내 가슴의 한 모퉁이가 조용히 무너지는 걸 느꼈음을 밝히지 않을 수 없네. 또한 연설의 말미에서 '오로지 투쟁만이 승리를 가져다 준다'고 힘주어 말했을 때 내 감동은 오히려 반감되고 말았다는 것도 말해 두어야겠네. 왜냐하면 거기엔 승리를 가져다 줄 우리의 앞으로의 투쟁이 '어떤' 투쟁이어야 하는지, 그런 투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함께' 무얼 어떻게 준비하고 점검하고 가다듬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적 성찰은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네.
황선생님은 '조합원 동지들이 나처럼만 투쟁하면 안 될 일이 없을 텐데' ... 하는 안타까움이 너무나 커서 어쩌면 냉냉한 무관심으로 보일 뿐인 10만 조합원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침묵의 호소'의 실체를 살필 혜안을 놓쳐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네.
자네도 잘 알고 있다시피 나는 전국 교직원 '노동 조합'의 '참교육 운동'이 현장에서 넓게 퍼져나가고 그 성과들이 성숙되는 과정이야말로 궁극적으로는 지율 스님의 투쟁에 보다 깊이 동참하는 일이 될 것이며, 전공노와의 보다 강고한 연대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 될 것이며, 또한 조합원 선생님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절규에 관심을 가지고 그 정당한 투쟁을 지원할 마음을 내게 하는 밑거름이라고 믿는 사람들 중의 하나일세. 역설적으로 말해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천리(牛步千里)의 지혜가 더욱 절실해지는 까닭은 이 시대가, 보는 이에 따라선, 자네의 말마따나 파괴와 괴물이 판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기 때문이 아닐까?
댓글이 길어졌네. 몇 마디만 덧붙이고 이만 줄이려네.
전두환 노태우 군사 정권이 무너지고 마침내 김영삼,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을 때 우리가 잘 했던 말들 중 하나를 자네는 기억할 걸세. 벌거벗은 정치 폭력이라는 적이 일정 정도 사라지고 나자 그보다 더 지독한 자본이라는 적이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고. 요컨대 더 싸우기 힘든 적과 마주하게 되었다고, 정체가 밝혀진 세균과의 싸움이 변화무쌍한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옮아간 꼴이라고 말이네. 그러기에 우리의 운동도 보다 정치해지고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전망이 요구된다고.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앞으로 우리 전교조가 바람직한 교육과 사회를 위해, 생명 존중의 사회, 평화의 세계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고 또 불가피하게 싸워야 한다고 했을 때 우리를 더욱 괴롭힐 적, 우리가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진정한 적은 무엇이겠는가? 현정권이 지난 정권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는 조합원 선생님들도 없지 않은 것으로 나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군사정권까지 거론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적'이 현정권이 되었든 더욱 노골적이면서도 교묘한 신자유주의 자본(노동조합을 만드는 일 자체가 민주화 운동이고 반정부 투쟁이었던 시절과 강력한 노동조합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다반사가 된 오늘의 현실을 동시에 떠올려보세)이 되었든, 전쟁과 반 생명, 환경파괴의 주범이나 공범자가 되었든 그것들이 우리의 '타자'로서 '명백한 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하네.
오늘 나는 다시금 '나의 생명 자체가 타인의 생명에 대한 폭력에 기초해 있다'고 갈파한 한 선인을 생각해 보네. 그리고 소망해 보네. 우리 교직원 '노동조합'의 '참교육 운동'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무형 무형의 모든 폭력을 작은 걸음으로나마 근본적으로 극복해 나갈 단초를 학교 현장에서 마련할 수 있기를 말일세. 왜냐하면 교사로서의 나는 학교 현장에서 비로소 구체적으로 존재하며 참된 변혁의 불씨는 언제나 '나'로부터 또 내가 밥 벌어먹고 사는 터전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일 뿐 아니라 그래야만 자네가 타기해마지 않는 저 '파괴와 괴물이 판치는 세상'을 변화시킬 힘도 투쟁의 전선도 견실하게 이룩되지 않겠는가?
자네와 나의 이 같은 대화는 전적으로 전교조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하네. 건투를 빌며 이만 줄이네.
20여년간 고난의 시대에 나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준 윤지형동지의 좋은 글과 어울리지 않는 칭찬 고맙네.
나야 필력이 모자라 길게 잘 쓰지 못하여 뜻이 왜곡되거나 올바르게 읽히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네.
윤지형 동지,
선거때문에 조금 바쁜 시간을 보내다가
전날 저녁에 뵌 스님과 작금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생각하며,
'파괴와 괴물'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네.
겸손한 마음으로 내적 성찰을 하고 이와 어우러지는 분노와 실천을 이야기하고 싶었네.
언제 좋은 곳에서 시간을 내어 차분히 이야기하고 싶어지는군.
그대의 건강이 이 땅의 건강임을 명심하고
우리 같이 건투하기를 바라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이상석 선생님! 윤지형 선생님!
끄덕끄덕, 그리고 고개 푸욱........ 그랬습니다. 늘 같이 내놓고 이야기하고 djdj rkqwkrl dlrl d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