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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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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각을 심어 주는 그림 작가 이형진 |
공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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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앞두고 선생님을 뵈러 가는 마음이 마치 새해를 맞으려 기다리는 시간처럼 설레입니다. 올 봄에 이사하여 살림집 아래 작업실을 꾸몄다는 이형진 선생님 댁은 과천시 중앙동 향교말길 골목 안 붉은 벽돌집입니다. 집 뒤안으로 난 작업실 문을 여니 온통 하얀 빛입니다. 부드럽게 솟아나는 하얀 빛으로 가득한 작업실 안은 새로운 탄생을 기다리는 알처럼 순결해 보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려 마련했다는 커다란 하얀 탁자 앞에 앉아 선생님을 뵙습니다. 새 책을 준비하신다는 말씀을 들었기에 그 이야기부터 여쭈었습니다. 작업실로 가시더니 인쇄된 종이를 갖고 오십니다. 제목은 ‘끝지’입니다. 글을 다 읽고 나니 가슴이 아립니다. 글을 읽는 동안 선생님이 갖다 둔 그림이 하얀 탁자 위에 있습니다. 표지에 쓴 ‘끝지’라는 까만 제목이 강렬합니다. 그림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방금 읽은 글을 떠올립니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원한과 소통과 사랑과 정과 갈등이 뒤섞여 마음이 뒤죽박죽이 됩니다.
선생님은 여우 누이를 ‘끝지’로 막내 오빠는 ‘순돌이’로 하여 여우 누이 이야기를 새로 썼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요괴인 여우를 죽이러 3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순돌이가 원수이자 정든 누이인 끝지를 만나는 첫 장면부터 시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태껏 알던 여우 누이 이야기와는 이야기를 펼쳐 가는 과정이 전혀 다릅니다. 여우 누이인 끝지도 원수를 죽이러 돌아온 순돌이도 제각각 마음이 아픕니다. 동물과 사람이 적과 적으로 그려지던 전래 동화와는 해석 방법이 사뭇 다릅니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갈등과 아픔을 어루만지려는 선생님의 넓은 마음이 가득 담겼습니다.
“자신을 키워 준 정을 무시하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끝지나 요물을 죽여야 하는데 같이 살았던 정 때문에 망설이는 순돌이 모두 마음 아픈 주인공이죠. 강렬한 문장 구사보다는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썼어요. 그림은 강렬한 이미지를 강조하면서 여백을 살려 간단히 그렸지요. 두꺼운 스노우 화이트 종이에 검은 색 밀랍으로 그렸어요. 이번 작업에 쓴 밀랍은 재료 자체가 성격이 강하고 시원시원해요. 제가 그림을 강하게 그리는 편인데 저와도 잘 맞고 이번 이야기와도 잘 맞는 것 같아요. 끝지의 경우 캐릭터의 특징을 몽골리안 원형의 얼굴을 그리는 데 두었어요. 『끝지』 그림은 글에 맞춘 실험적인 시도를 해 본 그림입니다. 독자들이 이야기에 빠질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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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돌이가 집으로 돌아와 누추한 끝지와 만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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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지를 죽이지 않으려고 구슬 주머니를 들고 달리는 순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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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에 숨이 막혀 구슬을 잡으려는 순돌이를 바라보는 끝지 | 사람들이 이 책을 보고 상처를 위로받았으면 좋겠어요. 여우누이를 새로 쓴 『끝지』는 지금 느림보 출판사에서 편집 진행중이고, 심청이 이야기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도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펴 내기로 했어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는 호랑이와 사람을 바꾸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려 합니다. 짐승들로부터 위협을 받던 시절의 사람들 이야기, 여성에 대한 편견이 들어 있는 전래 동화를 다시 써 보려 해요.”
책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면 누구보다 열심히, 숨 쉴 틈도 없이 그려온 선생님이지만 이제부터 한 이삼 년 정도는 여유를 가지고 선생님의 마음에 맞는 책만 내려 한다고 합니다. 그림만 그리는 그림 작가가 아니라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로 새롭게 탄생하려는 순간입니다.
“저는 늘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 글에다 그림을 그리는 게 제게 더 맞는 것 같아요. 물론 어떤 그림 작가는 글을 잘 받쳐 주는 그림을 그리죠. 하지만 저는 그런 작업보다는 제 글에 그리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했고 스스로도 잘 그린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중학교 다닐 무렵부터 제 그림이 다른 친구들의 그림과 조금 다르다고 느꼈어요. 잘 그리는 또래 아이들이 그린 그림, 특히 열정을 가진 친구가 그린 그림은 내가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더군요. 세월이 지나면서 제가 잘 하는 게 뭔지 알았어요. 그건 바로 생각하면서 그리는 그림이더군요.
글은 그냥저냥 조금 쓸 줄 알았어요. 글 쓰는 공부를 계속했다면 훨씬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생각하죠. 여태까지는 못 썼지만 앞으로는 쓸 겁니다. 저는 강렬한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특히 조용한 얘기를 하는 중에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는 그런 글을 좋아해요. 앞으로 창작 그림책 두 권과 전래 동화 그림책 세 권을 낼 계획이에요. 창작 그림책의 글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얀 탁자 위에 놓인, ‘명애와 다래’라는 제목을 단 글을 읽습니다. 다래는 주인공인 손녀의 이름이고 명애는 할머니의 이름입니다. 아픈 할머니 때문에 놀이공원에 놀러가지 못하던 다래가 할머니와 단둘이 놀이공원에 놀러 갑니다. 할머니 등에 업혀 놀이공원을 다니는 다래 앞에서 할머니는 나이를 벗습니다. 마침내 다래와 명애는 친구가 되고 다래는 명애를 꼭 껴안아 줍니다. 시간과 관념을 뒤집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틈새를 메워 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명애와 다래’는 수채화로 그릴 것 같습니다. 할머니하고 다래가 높은 데 올라가 봄을 바라보는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그릴지가 가장 고민입니다. 새해에는 『명애와 다래』 같은 책도 내고 발랄한 책도 내고 싶어요. 어린아이와 영유아를 위한 책도 내고 싶고요. 전래 동화를 다시 쓰는 심청이 이야기도 수채화 물감을 써서 그릴 겁니다.
이번에 하려는 작업들은 글 작가가 쓴 글에 그림을 그리던 그림 작가가, 글을 한번 써 보고 싶어서 하는 작업이 아니라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이형진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제겐 아주 중요한 일이죠. 사실 책에 그림 그리는 일을 시작한 것도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거든요. 산업미술과를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픽 디자인과 광고 쪽에서 일을 많이 하는데, 저는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어요. 대학 삼사학년 때는 만화를 해 보고 싶기도 했는데, 이쪽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죠.
그림을 그리면서 글을 만지는 게 즐거웠어요. 가슴이 찢어지는 글을 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런 기회가 잘 안 오더군요.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써 봐야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이번 작품은 문학 작품으로 접근을 해 보았어요. 누가 안 보더라도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창작 그림책을 내고 싶었거든요.”
가슴 속 깊은 곳에 그런 뜨거운 소망을 간직한 채 선생님은 많은 그림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떤 책에는 온 면이 그림으로 채워져 있기도 하고 또 어떤 책에는 여백이 눈부십니다. 고양이 놀이에 빠진 개구쟁이들의 마음을 그린 『고양이』가 바로 그런 책입니다.
“『고양이』를 그리면서는 기법을 많이 연구했지요.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캔을 받아서 컴퓨터로 색을 조작했어요. 제일 신경 썼던 게 옛날 이야기라는 점이었어요. 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인데 아이들은 그런 시대 배경 묘사를 원하지 않을 것 같고 해서 아이들의 현재에 의미를 두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문학 작품으로 봤을 때 동물로 동일시되는 심리 묘사가 주요하다고 봐서 배경을 빼고 아이들만 그린 거지요.
초기에는 여백에 대해 신경을 못 썼어요. 여백이란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쉬는 여유 공간이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여백을 주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 그림은 꼼꼼함보다 발랄함과 재치가 특기라고 생각하거든요. 발랄함 속에서 글도 살리고 독자에게도 잘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비우고 가자, 여유 공간을 두고 가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는 여백을 더 강조할 생각입니다.”
선생님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책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우리 창작 동화나 학습 그림책뿐 아니라 번역서에도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많은 책에 그림을 그리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일이라면 숨이 막힐 정도로 해 왔습니다. 국내 작가의 글이든 국외 작가의 글이든 크게 의미를 두고 작업하지는 않아요. 오랫동안 많은 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짧으면서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나 느끼게 되었습니다. 좋은 문장을 만나도 반갑지만 구조가 재미있는 글을 만나면 즐거워요. 『전화로 들려주는 짤막동화』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작업을 너무 많이 한다고 하는데, 저는 내가 필요한 만큼 욕심껏 번 뒤에 내 작품을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사람들은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작품을 열심히 해서 내 생각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수밖에 없지요.
저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 의뢰가 오면 즐겨 글을 읽고 핵심을 얼른 찾아내어 그려 내는 편이에요. 책에 그림을 그리던 초기였어요. 어느 날 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안녕 시리즈’와 ‘코앞의 과학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그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독자와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죠. 그 일은 글 작가를 배려하고 독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앞의 과학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저는 과학 지식을 몽땅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과학에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관심만 갖게 만드는 거죠. 과학 그림책은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과학이 풀어져 끼어 들어가는, 과학에 관심을 갖게 유도하는 입문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린이 책에 고정된 사고를 전해 못 박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는 처음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 사람이니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콜라주 작업을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민아네 집』 『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알락뱀의 멋내기』 『아주 바쁜 입』 『움직이는 건 뭐지?』 가 콜라주 작업을 한 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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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아네 집』 표지 |
『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표지 |
『알락뱀의 멋내기』표지 |
『아주 바쁜 입』표지 |
『움직이는 건 뭐지?』표지 | “콜라주는 예술적으로 재미있다 싶을 것 같으면 많이 써 봐요. 아이들에게 어, 내가 아는 건데 이렇게 하니까 요렇게 나왔네 하는 새로운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알락뱀의 멋내기』는 잡지 책 스무 권 정도를 갖다 놓고 작업했어요. 그랬더니 작업실이 엄청나게 어질러지더군요. 그래서 『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를 작업할 때는 방법을 달리했어요. 아크릴 물감을 써서 재료로 쓸 것을 그린 다음에 스캔을 받았어요. 그런 다음에 포토샵에서 색을 넣고 잘라 썼지요.”
선생님이 그린 책을 보다 보면 노란 색을 많이 쓴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장승이 너무 추워 덜덜덜』 『아기소나무와 권정생 동화나라』 『하늘이 이야기』 『새봄이 이야기』 『아주 바쁜 입』 『곰 세 마리』 등 여러 책에서 노란색이 눈에 띕니다. 『고양이』에 쓰인 노란 색은 얼마나 장난스러우며 『잠꾸러기 불도깨비』에 쓰인 노란색은 또 얼마나 강렬한지요. 선생님은 노란색을 쓰면 안정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노란색은 다른 색이 모자라도 그 색을 충분히 채워 주는 것 같아서 노란색을 즐겨 쓴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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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이 너무 추워 덜덜덜』표지 |
『곰 세 마리』표지 |
『잠꾸러기 불도깨비』표지 | 또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은 캐릭터의 코 선에서 볼 수 있습니다. 뾰족 뾰족 날아갈 듯한 코와 두루뭉실 주먹코, 콧구멍이 뻥 뚫린 것 같은 뻥코 등이 눈에 띕니다. “이야기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캐릭터를 그리다 보니 툰탁한 선보다는 날아가는 듯한 선을 쓰게 되어요. 전체 선을 가볍게 쓰다 보면 그런 코 선이 나오죠. 글이 서양풍이거나 번역물의 경우에는 그런 선을 쓰죠. 『물딱총』이나 『메주 도사』 『방귀에 날아간 절굿공이』 같은 책의 그림에서는 한국적인 선, 둥글둥글한 선을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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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야기』 표지 |
『새봄이 이야기』 표지 | 이렇게 많은 책에 그림을 그린 선생님이지만 대학에 진학할 때는 집안에서 반대도 심했다고 합니다. 대학의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한 선생님은 2학년 때 일러스트레이션을 알게 되고 3학년 때는 만화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진짜 사람 얘기를 담아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만화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졸업 후에도 취직을 안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웅진출판사 디자인 팀에 취직했던 선생님은 1년 2개월 뒤에 회사를 나와서 일러스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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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딱총』표지 |
『메주 도사』 표지 |
『방귀에 날아간 절굿공이』표지 | “그 후로 계속 이 길을 온 셈이죠. 이제 글을 어떻게 엮어야 하는지 좀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려 책을 만들면서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즈음 경원대와 한겨레 문화 센터 일러스트레이션 학교에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학생들을 만나면서 학생들과 대화를 해야 하고 학생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학생들을 만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참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 아니라 이 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어요. 글은 기호를 만들어 내는 일이지만 그림은 내 몸의 움직임으로 나오는 결과물이어서 더욱 특별한 즐거움을 주지요.
저는 그림이 들어가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문학 작품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구체화된 상황이 아니라 어떤 사물 하나를 보여 줌으로 해서 글을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오래된 소설책 속에 끼워진 엽서를 보면 마치 그 엽서가 그 글에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잖아요.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그림, 이야기에 탄력을 주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고양이』와 『꼭 한 가지 소원』에는 선생님의 그런 마음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고양이』는 어떠한 상황 설명도 없이 아이들의 놀이를 그린 글에 맞추어 배경 없이 아이들의 놀이와 노는 아이들의 마음을 그림으로 드러냅니다. 자신들의 놀이 외에는 아무런 것에도 관심 없는 아이들의 심리 상태는 선생님이 마련한 마음 그림자와 비어 있는 공간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여백이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웠을 아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렇게 『고양이』의 그림은 글과 그림이 한 몸처럼 어울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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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본문 | 반면 『꼭 한 가지 소원』은 문학 작품과 함께 가는 그림이면서도 글과 그림을 전혀 따로 읽게 구성해 놓아 어린이들에게 새로운 미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때로는 글을 받쳐 주고, 때로는 글과 헤어져 또 때로는 글 밖에서 시치미를 떼고 어린 독자의 마음 문을 가만히 엽니다. 흐르는 음악에 몸을 맡기듯 글과 그림에 마음을 맡기라고 속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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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가지 소원』표지와 본문 | “좋아하는 화가요? 글쎄요, 굳이 꼽으라면 두 사람을 꼽고 싶어요. 정신이 들어간 데생을 한 케테 콜비츠와 자유로우면서도 놀라운 기교를 구사한 마티스. 아, 만화 작가로는 우라사와 나오키를 좋아하죠. 그의 『마스터 키튼』을 참 좋아해요. 그 시리즈 중에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 원작과 나치 독재 시대를 엮어서 그린 만화인데 무척 독특합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하루에 밥을 두 끼만 먹는다는 선생님이 밥을 드시는 시간은 낮 열두 시와 저녁 여덟 시나 아홉 시라고 합니다. 남들이 점심 밥을 먹을 때쯤 한 끼를 드시고 일을 시작해서 새벽 네다섯 시까지 꼬박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채광 상태가 안 좋으니 주로 불을 켜고 작업하게 되는데, 난반사가 될 때도 있지만 편안하게 작업하는 편이에요. 작업은 주로 서서 하고요. 종이는 스노우 화이트 200그램을 즐겨 써요. 안료를 흡수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 종이죠.”
그림 그리는 도구들은 책꽂이에 정리되어 있기도 하고 뚜껑 덮인 정리함에 담겨 있습니다. 워낙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무엇이든 정리하여 눈에 띄지 않게 두는 모양입니다. 작업실 전체가 여백의 미를 풍깁니다. 그런 작업실 벽에 수채화처럼 맑은 그림 두 장이 아래위로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동요 그림책에 들어가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나뭇가지를 잘라 아크릴 물감으로 선을 쳐서 그린 그림입니다. 연잎도 아이들도 모두 싱그러워서 물방울처럼 그림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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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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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아, 나랑 우리 집에 갈래?” 아줌마가 웃는다. “하! 너희 아버진 네가 미처 ‘옛날에 제프는’이란 말을 하기도 전에 쟤를 쫓아내 버릴걸.” “그으래요?”
나는 느릿느릿 대꾸하면서 생각을 굴려 본다. 냥이를 집에 데려간다는 건 그저 한번 해 본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아버지와 진짜로 한판 붙어 보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제프와 토끼몰이 추억을 가지라지. 난 호랑이를 가질 테다. 케이트 아줌마는 고양이 먹이 한 깡통과, 냥이를 내 방에 두도록 고양이집을 준다. 엄마가 어쩌면 동물에게서도 천식을 일으킬지도 몰라서. 냥이와 나는 집으로 간다.
우리를 본 아버지는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고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자칫 마주 화를 내게 될까 봐 대응을 삼가고, 나는 묵묵히 냥이를 내 방에 내려놓는다. 그리곤 냥이를 내 방에만 둘 것과, 엄마 손이 가지 않도록 털을 내가 쓸겠노라 약속한다. 아버지는 마지막 으름장을 놓는다. “이제 쥐잡기 훈련을 시작하시겠지. 저 귀하신 동물 이름은 뭐라고 지을 거냐?” “뭐, 나도 쟤가 고양인 줄 알고 쟤도 자기가 고양인 줄 알잖아요. 그러니까 이름도 그냥, 냥이로 할래요. 설사 아빠가 존 폴 존스 장군이라는 이름을 짓고 그렇게 부른다 해도, 냥이는 아빠한테 가지 않을 거고 손을 핥지도 않을 거예요. 아셨죠?” “핥기만 해 봐라! 당장 놈의 엉덩짝에 불을 내줄 테니까.” 아버지가 냅다 소리친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때로 아버지의 잔소리는 끝이 없어서 차라리 한 대 후려 맞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절대로 때리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날은 무승부로 일단락 짓고, 나는 냥이를 얻는다. (본문 18~19쪽)
이십 년이라. 남동생과 말도 안 하고 지내기엔 이십 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전화 한 통에 십 센트면 되는 거리에 살면서 말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이유 없이 남남으로 살게 되지는 않았겠지. 서로에게 몹시 화가 났었음에 틀림없어. 또, 온 세상에 대해서도. 그들의 부모는 어떤 분이었을지 궁금해진다. 한 사람은 커서 고양이만 사랑하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돈만 살아하게 된다니 말이다.
아줌마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늙은 수고양이의 양귀 사이를 쓰다듬고 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아줌마가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구나. 심지어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나도 고양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만일 내게 소중한 사람이 없다면, 고양이만으론 살기 힘들 것이다. 나는 조용히 “안녕히 계세요.”하고는 밖으로 나온다. (본문 2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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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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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년과 서툰 아버지가 대개 그렇듯, 열네 살 데이브는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칩니다. 아버지는 데이브가 좋아하는 음악, 텔레비전 프로그램, 머리 스타일, 이 모든 것이 못마땅하고, 자신이 소년시절에 개를 데리고 토끼몰이를 하며 뛰어다녔던 것처럼, 아들도 애완동물을 키우려면 당연히 개를 기르는 것이 훨씬 사내답고 교육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데이브는 고양이를 기르게 됩니다. 오로지 아버지에게 어긋나고 싶어서 말이지요. …… -옮긴이 최순희 | |
출판사 편집자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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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개가 매우 교육적인 동물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난 고양이를 기르기로 했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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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살아가는 한 사춘기 소년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들이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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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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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작품이다. 대도시 생활을 그린 성장동화 중 최고의 작품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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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림이 안보여요., 생활동화는 역시 재미둥이 생활동화로 생각하거든요.. 다음번 책 알아보는 중이라..그림 좀 보려했더니 아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