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테니스를 배우게 된 동기는 우연한 기회였다. 1974년 7월 보병 제 37사단 신병교육대 중대장으로 취임한 후였다. 중대 행정병 손 일병을 만난 것이 인연이었다. 손 일병은 충청북도 테니스 대표선수로 키는 작달막하지만 전국체전에서 상위그룹에 속하는 베테랑 선수였다. 중대장님! 테니스 배우시죠. 그 말한마디에 테니스에 꽂히기 시작하였다. 사단 정구장 세개가 나란히 신병교육대 부근에 마련되어 있어 여건은 좋은 편이었다.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면서 테니스를 친다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의 눈치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염치불문하고 일요일 늦은 오후에 손 일병으로부터 테니스의 기본기를 착실히 익혔다. 테니스 라켓 쥐는 법, 포핸드, 백핸드, 발리, 서버하는 요령 등이다. 라켓으로 공을 상대방의 코트로 넘기는 단순한 경기이나 격열한 운동으로 스피드와 힘,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운동신경이 발달되어 날이갈수록 시나브로 발전해 나갔다. 우리나라가 테니스 붐이 일기 시작한 1970년대 초부터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다. 테니스는 귀족들의 오락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 별명은 귀족 스포츠라고 불린다.
1970년만 해도 테니스는 부유한 사람들만의 소유물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그림의 떡이었다. 1년 간 수련한 결과 기본기는 완전 숙달한 상태였다. 2차 중대장과 대대참모 시절에는 테니스 칠 기회가 없었지만 육군대학교 입교(1979-1980)한 후에는 매주 토,일요일마다 동기생들과 테니스 경기를 하였다. 그 당시 비약적으로 실력이 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군사령부 참모장 보좌관, 2사단 작전보좌관 시절에는 공백기였다. 그러다가 대대장 재임시절에는 일과가 끝난 후에는 연대장과 테니스 경기를 자주 하였다.
연대장은 갑종출신으로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어느날 연대장과 경기를 하는 도중에 내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가까운 BOQ로 옮겨져 30분간 드러누워 있었다. 그리고나서 화장실에 갔는데 온통 검붉은색이었다. 내가 혹시 위암이 아닌가 벌컥 겁이 났다. 사단 의무근무대에 가서 진찰받은 결과 십이지장 위궤양이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이것이 나의 첫번째 건강 위험신호였다. 그로부터 5년 가까이 테니스를 칠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연대장 시절에는 테니스 경기를 자주 하였다. 군 재임시절에 테니스를 가장 많이 꽃피운 시절은 부사단장 직책을 수행할 때였다.
사단장과 테니스 경기를 할 경우도 많았지만 정구병과 단식 경기를 주로 하였다. 그 당시 내 나이가 50세 초였다. 지칠줄 모르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 듯 온 힘을 다하였다. 그리고나서 영내 샤워장에서 샤워하고 나면 피로가 확 풀린다. 현역시절에 육사 동기생 민병노와 짝을이뤄 성사현, 황종구 동기생 조와 자주 복식경기를 하였다 그러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호각지세였다. 육사총동창회 테니스 대회 동기생 대표로 참가하여 좋은 성적을 이룬 적도 있었다. 전역한 후에는 정구보다는 골프에 올인하였다. 골프를 처음 배우기 시작한 때는 1990년도 였다.
골프는 신사의 스포츠라고 불릴 만큼 격식과 매너를 갖춘 운동이다. 필드에 나와서 녹색 잔디위를 걸으면서 싱그러운 공기와 자연을 마음껏 즐기면서 골프의 향연을 펼치는 모습은 골프인들만이 느낄 수 있는 멋이다. 골프는 기본기부터 착실하게 배워야 하는데 골프채널과 골프책을 통하여 이론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골프는 실전 경험을 쌓아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바로 골프다. 골프는 멘탈 운동이기 때문에 감정을 잘 통제하여야 한다. 필드에 나서면 골프를 잘 쳐야하겠다는 중압감과 긴장감을 갖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완벽한 골프는 없다. 완벽주의를 버리면 마음이 편안하고 불안감을 줄일 수 있다. 골프에 입문하고 부터는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질 정도로 골프광이었다. 골프 없는 인생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그 이상이었다. 골프는 주로 고등학교및 육사 동기생들과 어울려 계절에 관계없이 26년간 즐겼다. 지나간 필드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 봄부터 자전거로 전환하였다. 성동고등학교 16회 자전거동호회(Bikeholics)가 창립되고 10년 되던 해였다. 내 나이가 고희로 접어들 즈음이었다.
자전거를 타게 된 동기는 고등학교 절친한 친구인 손창인 동문의 적극적인 권유와 내자의 몸 건강이 좋지않았기 때문이었다. 손창인 동문은 자전거 예찬론자이다. 골프보다도 한단계 위를 보고있다. 성동고등학교 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 동호회 멤버는 초창기 에는 25명이 참여하였으나 지금은 고작 7명 수준이다. 자전거는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탈 수가 없다. 건강해야만 지속적으로 탈 수가 있다. 자전거는 내 인생의 황혼기에 마지막 스포츠로 배우자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애지중지 여긴다.
나는 자전거 동호회 두 팀에 가입되었다. 또 다른 팀은 육사 자전거 동호회이다. 성동고등학교 16회 자전거동호회는 매달 1,2,4 주차 일요일에, 육사 27기 자전거동호회는 매달 3주차 일요일에 탄다. 육사 27기 자전거 동호회 '대열쟌차'는 내가 회장직을 맡고 있다. 성동고등학교 16회 바이콜릭스(Bikeholics) 동호회와 육사 27기 대열 잔챠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목표는 일단 85세까지 정하였다. 이 나이는 육사 27기 대열동기회 활동에 맞춰졌다. 문제는 회원들의 건강상태다. 회원들의 건강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
96세 할아버지는 지금도 자전거를 타고 계시다. 열정이 대단한 할아버지시다. 내가 자전거를 타는 진짜 이유는 쏠쏠한 재미와 행복이 충전되기 때문이다. 행복을 앉겨주는 것은 다름아닌 동기생들이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보면 가파른 고갯길이나 다양한 상황하에서 힘이 부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문제가 되지않는다. 회원들 모두 전기자전거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자전거 타기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이다. 라이딩 도중 사고가 발생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사고를 당한 회원은 트라우마로 자전거를 멀리하게 된다.
이래저래 손해가 크다. 그래서 자전거 탈 때는 파밭밟듯 항상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특히 가파른 내리막길이 가장 위험하다. 팀의 리더역할이 중요하다. 성동고 16회 바이콜릭스 동호회 회장은 의사출신으로 안전을 최우선시 한다. 믿음직스런 회장이다. 나는 사랑스런 자전거와 동기생들과 함께 기력이 다하는 순간까지 동행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