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때 부터 오랬동안 친구로지내온 제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몇달전에 그 구제역 폐농가 이야기를 접하고
용기를 내보고 싶다고 하기에
제가 이야기를 듣고 글을 적었습니다.
친구는 엄마. 아빠 동생 친구까지 4가족이였는데.
초등학생때 부모님께서 이혼하셔서
아버지와만 지내고 있습니다.
몇안되는 어릴적 기억중에
새벽에 받은 친구의 전화에 놀랐던 기억도 한켠에 끼어있습니다.
저는 언니와 함께 여름방학동안 할머니댁에서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날 새벽에 본가로 올라와서 늦게 잠든 바람에
꽤 늦은 새벽인데도
전화 벨소리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 새벽에
엄마 아빠가 이혼한데.
아빠가 날 데려간데..
나 이제 어떻게해...하면서 우는데..
뭐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진짜..얼레벌레.... 뭐라고 위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화끊고서도.. 계속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다가.
방문 아래 틈으로 주방 불이 켜진 것을 봤고
곧 어머니께서 아침준비를 하시는 소리가 밖에서 들리는것 같길래
부엌으로 나가서
어머니께
그 친구 얘기를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저희가 할머니댁에 내려가있던 동안에 친구네 집에 불이 크게 났었다고 합니다.
근데 불이난게.
친구 어머니 실수였다고 합니다.
가스렌지에 불을켜두고 그냥 밖으로 나가 산에올라가셨다더라고요
친구, 친구동생 이렇게 둘이 집에 있었는데
다행히 시민분의 신고로 구출됐었데요.
어쨌든 친구어머니께서 잘못하신게 커서
그래서 이혼하시는게 아닐까하고. 얘기해주시더라고요.
이건 나중에 듣게된건데
친구어머니께 신병이 있었다고하더라고요.
신을 받지않으면 몸이 막 아프기도하지만. 갑자기 막 밖을 돌아다니거나. 산을타거나 하기도한데요.
친구어머니는 신을 받고싶지 않으셔서
그래서 버티시다가
불이나서 친구와 친구동생이 죽을뻔한이사단이 난거고요
결국 이렇게 갈라서게 된거라고. 나중에 친구가 들려준 얘기를 들어보면. 그랬어요
옛날엔 이혼이 그렇게 흔하진 않았거든요. 학교에도 소문이 퍼지고. 마을사람들도 수군거리는바람에.
친구가 그일로 상처가 많았어요.
아무리 이혼했다고해도. 한달에 한번은 자녀를 만날수 있데요.
그런데 아버지는 할상 친구를 집앞에 내려주고 들어가진 않으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주치기 싫으셨을수 있죠.
친구는 1학년때부터 달에 한번씩 어머니집에서 자고왔다고하더라고요.
동생이랑놀고. 엄마밥도먹고하면서요.
그때 불이났던 그집을 다시 고쳐서 살고 계셨다고하더라고요.
친구는 아버지와함께
아버지 회사근처 오피스텔에서 살았고요.
처음엔 엄마와 동생이 보고싶다고 밤마다 울고 그랬는데 커서그런지. 아니면 시간이 지나서 좀 익숙해진건지
나중엔 무덤덤해서 그냥 좀 멀리사는 느낌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엔 아버님 역할이 컸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1학년이면 한창 엄마손이 필요할 때잖아요.
아버지께서 애가 맨날 학교에서 놀림받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니까.
일 미루시고 아침밥 먹여서 학교 데려다 주시는건 물론이고
문화센터가서 머리 묶는 방법 배우시고.
알림장 매일매일 확인해서 준비물. 숙제 챙겨주시고.
심지어는 학부모들 모임에 나가셔서
딸과 친한 친구들 생일을듣고 달력에 기록해두시고. 딸 친구들 선물까지 챙기시는 거에요.
제가 그때 받았던 100색 색년필이 아직도 기억나는데.
제가 받고싶어하는 선물을 저희 어머니께 여쭤보시고 사주신거라고 들었거든요.
이정도로 아버님게서 챙기시니까
친구도 거의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데요.
그래서 달에한번씩 가던 어머니집도 나중엔 좀 뜨문뜨문 가족행사정도 있을때나 갔다고 하더라고요.
동생은 그때 화재로 화상을 입었는데 햇볕을 받으면 흉진다고 해서 방에서만 회복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따로 뭐 메신저나 전화같은건 안한것 같아요.
사실 친구가 초등학교5학넌부터 예술 중학교를 준비하느라 주변에 신경쓸 시간도 정신도 없었거든요.
그러니 자연히 더 멀어졌던 것도 같네요.
친구아버지께서 친구한테 항상 나는 우리 딸이 텔레비에 나와서 유명해졌으면좋겠다.
이런말을 달고사시기도 했고
친구도 그쪽으로 아예흥미가 없었던건 아니라서
연극영화쪽으로 준비하게 됐다고 그러더라고요.
중학교가 친구네 집과는 거의5시간 거리라서
이사를 가게 됐고. 그후론 엄마와 전화나 연락은하지만 만나러가진 않았다 그러더라고요.
초등학생때 4학년땐가 문화센터에서 같이 어린이 연극클럽도 같이하고 엄청 붙어다녔었는데
중학생때 그친구가 예중을 가며 이사를 가서
자연스래 연락이 끊어졌어요.
그러다가
같은 예술고등학교에서 만나게 된거에요.
저는 미술과였는데. 뭔가 타과 애들이랑 친하면 부러움을 사는 그런분위기도있고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기도하고해서 같이 다니게됐어요.
3년정도 떨어져있었지만 붙어있으니 옛날 생각도 많이나고 금방 편한사이가 돼서
3년 내내 줄곧 붙어다녔어요.
여러번 기획사에 들어갔다 나왔다 했다곤 들었는데
가로수길에보면 이름모를 작은 기획사들 많거든요.
메이저급 기획사는 아니였고. 그냥 작은 기획사를 전전하면서 대사한줄 있는 종업원역할이나 학교물에서 주변에 않아있는 학생1 이런 역할들로 여기저기 영화에 출연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언젠가는 이름이있는 역할을 맡는게 꿈이라고 했었어요.
저희 생일이 7월둘째주로 같거든요.
이틀밖에 차이가 안나요.
그래서 저희는 고3일때
민증발급받으라는 우편을 받고 같이 수령하러 가기로 했어요.
친구는
등본을 뗄줄 모르더라고요.ㅎ..
그런 서류들은 언제나 아버지께서 철저하게 혼자 해결하셨데요.
이번엔 자기도 어른될거니까. 혼자해보고 싶다고.
알아서 잘 뽑아갈테니 걱정말라고 하길래
뭐 요즘은 인터냇어 치면 다 나오잖아요.
등본어떻게 뽑는지정도는.
그래서 알았다고하고 만날 시간을정했죠.
그런데 만나기로한시간보다.한시간쯤 일찍.
친구에게 전화가 왔어요.
이상하다고.
자기가 등본을때려고 했는데
얼마전에 콘서트 가려고 청소년증 방급받을때 아버지께서 등본을 인쇄해 주신게 생각났데요.
혹시 아버지께서 떼 두신게 있나 싶어서
아버지 서재 컴퓨터에
그 내컴퓨터에보면 파일 검색하는거 있잖아요.
거기에다 가족관계등본을 쳐보는데
파일이2개가 나오더래요.
그래서 아 있나보다. 이거 인쇄하면 되겠네 하고
첫번째 파일을 클릭해서 열어보니까ㅡ
자기등본이 아니라.
아버지 이름으로 땐 등본이였던 거에요.
그래서 갑자기 이혼하면 가족관계 증명서는 어떻게 나오나 궁금했데요.
그래서 찬찬히 살펴보는데
아 저도 그때 안건데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이혼사실이 기제되진 않는다하더라고요.
등본이 일반이있고 상세가 있거든요.
일반 증명서 였는데 아버지이름. 배우자. 자녀이렇게 있는데
자녀칸에 친구는 있는데
동생이 없는거에요.
그래서 친구는 이상하잖아요.
동생이 왜 없냐구요.
친구는 이상함을느끼고 나머지 다른 파일도 열어본거죠.
그건 상세 가족관계 증명서였는데
그 증명서에는 동생이 자녀 칸에 있었데요.
그런데. 동생이름옆에 내모 박스치고 사망 이렇게 써있었다는거에요.
이게 자녀가 죽으면 가족관계증명서 일반에선 아예 삭제되어버리고. 상세를 받아야 이런식으로 사망 표시해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좀 오래 집에 안가긴했지만 동생이 죽었다니요.
저한테도 전화하면서 얘기하는게 바로 며칠전에 어머니랑 통화했는데.
그때 분명 동생이랑 방금 밥먹었다고 그런얘기도하고 어쨌거나 엄마를 통해서 계속 동생 소식을 전해 받고 있었다는 거에요.
이게 무슨 드라마도아니고... 살아있는 애를 사망처리할순 없는거잖아요.
그래서 어머니께 전화해서 확인해보라고 얘기했죠.
어머니께서 동생이랑 같이계시니까요.
친구는 알았다고하고 끊었는데.
그후로 연락이 안와서 민증 발급은 좀 미루게 되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듣게된 이야기는...정말..
무서운것도 무서운거지만 좀..이해가 안간다해야하나.
친구가 저랑 전화끊고 바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고해요.
어머니께 전화해서 동생 뭐하고 있냐 잘있냐 물어본거죠.
전화했을때 동생은 지금 엄마랑 집에서 책읽고있다고 했다더라고요.
너무 엄마 말투가 평소랑 똑같기도했고.
진짜 옆에 있는것처럼 무슨책인지 확인해서
무슨책인지도 얘기해줬다더라고요.
그래서 친구는 아버지께 물어보기로하고 아버지가 퇴근하실때까지 기다린거에요.
아버지가 오시고. 아까본 가족관계증명서를 보여드리면서. 여쭤본거죠. 이거 뭐냐고.
동생이 왜 사망처리되어있는거냐고.
친구 아버지께선 그 서류를 보시고선
한숨을 푹 쉬시고 이젠 얘기할때가 된것 같다며 컴퓨터앞에 앉으셨다고해요.
친구가 성인이 되면 얘기해줄생각이였는데 이왕 본김에 말해준다고요.
컴퓨터에서 다른 서류를 몇가지 뽑았는데
그건. 동생의.. 사망진단서였데요.
동생은 죽은게 맞았던 거에요.
그것도. 5살때.
그 불났을때요...
제 친구는 8살때였는데 같이 낮잠을 자다가 봉변을당한거죠.
그날의 사고를 다시한번 정리해보면.
어머니께서 감기에 걸린 친구를 위해 따뜻한 물을 끓이고 계셨고. 동생은 친구랑 한방에서 같이자고 있었데요. 5살이면 낮잠잘 나이잖아요.
그러다가 친구 어머니께서 신병이 올라서
몸을 뒤틀며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가 버리셨고.
집안엔 아이들 둘이 남은거죠.
그 끓고있는 물과 함께요.
친구는 매캐한 연기때문에 잠에서 깼고.
이건 친구의 아버지의 가정이겠지만
아마 동생을 찾을 수 없었을 거랍니다.
매캐한 연기도 연기지만.
친구는 보조장치가 없으면 귀가 잘안들렸거든요.
동생은 친구가 자고있던 침대 아래에서 불이 다 꺼지고 나서야 발견되었데요.
어린아이들의 특성이라는데 우선 눈에 불처럼 위협적인게 보이면 숨박꼭질하듯이 숨는데요.
그게 안보이면 안전할거라고 생각하는거죠.
어쨌든 친구는 눈을떠보니 엄마는 안보이고 문밖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는데 또. 동생은 안보이니까.
패닉이온거죠. 8살이면. 만으로 따지면 6살애기잖어요.
연기때문에 숨이 안쉬어지고
앞도 뿌얘서 안보이는데도 이방 저방 다니면서 막 동생을 찾아다녔나봐요.
들어온 소방대원들이 돌아다니고있는 친구를 발견해서 구조할수 있었던 거라고 해요.
친구는 구출되면서도 동생있다고 동생있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그랬데요.
그래서 소방대원들이 몇차례나 불길속으로 들어가서 동생을 찾았지만.
어린애의 체구로나 겨우 기어들어갈수 있었던 침대 밑은 안보였던거죠.
소식을 듣고 아버지께서 현장에 도착하셨을땐 친구는 기절해서 응급실로 이송된 상태였고 불은 거의 진화되고 있는 상황이였다고 하더라고요.
아랬집까지 옮겨붙으려해서 소방관들이 기를쓰고 물을뿌리고 냉각수하고하나 그런것도 뿌려보고 애를 쓰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간동안 친구 엄마는 아직도 산을 헤매고 있었고요.
불이꺼지고 나서
진입허가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야
잔해속에서 다 타버린 동생을 발견한거죠..
아버지는 동생의 시신을 보셨다고해요.
소방대원들이 못들어오게 했지만.
지금 불난 집에 아들이 있는데 어떻게 아버지를 막겠어요.
아버지 말로는 정말 눈에 뵈는게 없었다고 했데요.
그냥 주변이 다 흐릿하고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타버린 집에 5살배기 아들이 살아있을리 없다는건 아는데
받아들여지지가 않더래요.
그냥 다 밀치고 들어가서 동생이름을 부르면서 헤치고 다닌거죠.
동생은 타버린 침대 뼈대 밑에서 까맣게 타서 바닥 장판에 눌러붙어있었다고하더라고요...
지금같은 플라스틱 장판이아니라 고무같은 소재라서 녹으면서 아이와 붙은것 같은데.
아이 시신을 보는 순간. 친구 아버지는 웃음이 나더래요.
경박스럽게 웃는게 아니라. 하... 하...하는 그런 웃음..
친구 아버지를 말리던 소방관들도 잠시 충격으로 가만히 서있었다고하더라고요.
동생을 장판에서 땔때 그 저저저적 소리를 듣고서 아버지께선 선채로 낮부터 드셨던걸 다 게워내셨다고 해요.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내아들 시체를보고 토한건가.하는생각에 스스로가 내가 괴물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해요.
천천히 담담하게 말씀을 해주셨다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게 되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가 생각하니까.. 친구도 같이 눈물이 나더래요.
이미 동생은 알아보기 힘들정도로 타있었는데.
동생손목에 옛날에 유행했던 케릭터 시계를 차고 있었나봐요.
소방대원들이
그 시계랑 잃어버리지 말라고 채워준 번호쓰인 금목걸이랑해서 아버지께 돌려주고 동생을 담요로 싸서 싣고 갔다고하더라고요.
친구 아버지께선 그 시계를 만지작 거리시는데
시계 버튼이 완전이 들어가서 망가져있었데요.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시계였는데.
그 시계는 친구 아버지께서 동생이 너무 졸라서 사주신 거였데요.
신나서 며칠을 갖고 놀다보니 금방 베터리가 다된거죠. 동생이 매번 건전지를 사달라고 부탁했다는데.
어머니는 신병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셨고.
아버지께서도 자주 잊으셨나봐요.
근데. 애가 그 침대 틈에서
연기때문에 순이 안쉬어지고.
지금 엎드려있으니까 폐가 눌리잖아요.
옛날에 그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동생은 천식이있었다고해요.
애가 목소리는 못내겠는데
어떻게든 자기 위치를 알리려고 그 시계 버튼을 부서져라 눌렀던 거에요.
그 시계를 쥐고서 동생을 떼어내고 남은 동생 피부 조각들을 보면서 몇시간동안 우셨데요.
자기때문인거 같다고.
계속. 만약에 . 만약에하면서 만약을 생각하게 된데요.
애가 죽으면. 부모님은 .그게 다 자기탓같데요.
만약에 내가 조금만더 빨리왔더라면.
아니.. 건전지만 사줬어도.
내 아들이 늦게라도 발견되어서 어쩌면 살수 도 있지 않았을까.
그 건전지... 그걸 못사줘서 내 아들이 죽은게 아닐까..
애초에 신병으로 재정신이 아닌 아내를 애들과 두고 일을나간 자기가 잘못이라며.
엎드려서 그생각을 끊임없이 하셨데요.
거의 한시간인가 있다가
어머니가
그제야 돌아오신거에요.
아버지는 지금 아들을 잃었고. 그 끔찍한 시신까진 본 상황이잖아요.
진짜.제정신으로 어머니를 볼수가 없더래요.
울면서 어머니다리를 붙잡고 소리를 질렀데요.
너때문이라고 너만아니였으면
너만아니였을면 이렇겐 안됬을거라고
당신은 지금 당신 아들이 타죽고 있을동안 어디서 도데체 뭘한거냐고
어머니는 그얘기에 충격을 받고 혼절하셨다는데.
아버지는 그때 진짜 어머니를 죽여버리고 싶었데요.
그래서 그냥 그 대로 두고 친구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고해요.
친구는 동생을 찾으며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탓에 기도에 화상을 입었고. 문고리를 돌리다가 손에 화상을 입은걸 제외하면 크게 다친건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충격으로 기절한것 같으니 금방 의식이 돌아올거라고.의사가 말해줬다고 합니다..
아마. 자식을 잃은 아버지를 위한 배려일테지만.
동생이 죽은건 아마 연기때문이였을거라고. 불에 타서 죽은건 아닐거라고도 말해줬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냥 친구 손을 잡고서 아무생각도 않고
계속 친구 얼굴만 바라보고 6시간인가... 서있으셨데요.
친구가 깨어나서 나 왜 여기있어? 하고 묻는 순간.
안심과 미안함과. 자신에대한 분노가 뒤섞여서 친구 손을 얼굴로 가져가셔서 막 만지르면서 우셨대요.
참았던 말을 다 쏟아내시는거죠.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너가 깨어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너무 미안하다고
그러는데 친구가 진짜 의아한 얼굴로
왜그래 아빠 하면서 막 위로를 해주려고 하더래요.
의사분들이 달려오셨고
친구는 사고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은 상태였던 거에요.
어릴수록 더 그렇다는데 뇌에서 정신에 큰 충격을 줄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 사건을 잊어버리는 기억 왜곡을 시킨다고 해요.
드라마처럼 갑자기 머리가 막 깨질것처럼 아프다가 기억이 막 떠오르고 그런건 다 연출된거고.
그런경우도 있긴하지만. 살다가 비슷한 상황에 처하거나 보거나 듣는것 만으로도 아! 이렇게 기억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는 지금가지도 그 기억을 완전히 잊고 살아온거에요.
아버지는 그때 결심을 하셨데요.
자기가 지금 느끼는 아들에대한 자책감. 미안함. 이 사무치눈 괴로움과 슬픔은. 내가 지고 가야겠다.
잊어버린애한테 다시 동생의 죽음을 알린다면 그 자리에 없던 나도 이렇게 힘든데.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구하지 못했다는 자첵감이 얼마나 크겠나.
게다가 동생을 죽인 불은 제 어머니가 냈다는걸 어떻게 설명할까. 해서.
친구에게는 비밀로하고.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동생이 우주비행사 되고싶어했던거 기억하냐면서. 그거 도와주려고 미국에 친척집에 갔다고 그런얘길 걔속 해줬데요.
친구는 아버지가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한거죠.
자기가 병원에 있는건 학교에서 뭐 검사한게 이상해서 와본거란식으로 둘러댄것 같더라고요.
불에탄 집엔 돌아갈수 없으니 아버지와 친구는 퇴원후 호텔로 갔고.
어머니 소식은 들을 수 없었데요.
그 가끔 친구와 캠핑갔던 그 고모들 있잖아요.
그 고모들이 호텔에서 친구를 봐주셨다는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고모들이 친구를 봐준 그 3일은 아마 동생의 장례식 기간이였을거에요.
친구를 위해서 주변인들은 거의 안부르고 가족들끼리만 조촐하게 했다고하더라고요.
동생은 지금 미국에 가있는걸로 하기로 했잖아요.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 동생이 죽은걸 알면 친구에게 얘기할수도 있고 하여튼 일이 복잡해지는거죠.
친구 아버지가 말씀하기로는 장례식장에 친구 어머니도 오셨다하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 이 살인자야 하면서 내쫒는데
어머니께서도 막 우시면서 내잘 못 맞다고 백번 말해도 할말없더고.
사라진동안에 신받고 왔다고.
나 이제 꿈다 포기할거니까. 딸만보고 살테니까.
용서해달라곤 못하는데. 제발
내딸 엄마로는 남게해달라고
그렇게 무릎꿇고 비셨데요.
아버지는 사실 어머니를 죽어도 용서할순 없었데요.
하지만. 어린 딸이 계속 엄마를 찾았고.
아버지도 딸에겐 엄마가 필요할거고.
안그래도 혼란스럽고 힘들애한테
이혼까지하면 안될것 같아서. 참기로하셨데요.
아버지는 동생이 죽었던 그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께서 그집이 아니면 절때 안된다고 절박하게 울면서 매달리셔서 아버지께서도 이게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는 방식인가보다.
그 집에서 아들을 추억하고 싶나보다 싶어서.
결국엔 집을 고쳐서 살기로 하셨데요
동생이 죽은 집이기도 했지만. 두분이 신혼때부터 친구와 동생이 태어나고 함께 쭉 살아온 첫 집이였거든요.
그리고 집이 고쳐지고 돌아간날.
친구가 집에 딱 들어가서 그때 그방문을 열더니 동생이름을 부르면서 허공에다 막 얘기를하고 안고 손잡는 모션을 취하는거에요.
어머니도 그 친구 모습을보면서 오랜만이라 좋지?이러고 있고요.
아버지만 안보이는 것처럼. 그 곳에 마치 아들이 있는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데요.
말이안되잖아요. 죽은 시체를 아버진 봤는데
친구는 자기 아버지가 동생이 미국에 갔다고 거짓말친이유를 궁금해했고.
아버지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더래요.
같이 밥을 먹을때나. 앉아서 티비를 볼때도.
부인은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밥을 챙겨주고 반찬을 언져줬고.
딸은 동생이 보고싶어하는 만화를 틀어야한다며 티비 체널을 돌리는거에요.
아버지는 안그래도 아들이 보고 싶어 미칠것 같은데
자기만 외딴 섬에 떨어져있는것 같아서
같이 있는데도. 너무 외롭고.힘들더래요.
자긴 빨리 아들을 보내주고 싶은데 주변에선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아들 이름을 부르고 대화하고 안고. 아들과의 추억이 담긴얘기들을하니까.
아버지는 그 속에서 버틸수가 없었던 거에요.
어머니가 신을 받으셨잖아요. 근데 이 신기라는게 유전인가봐요.
할머니와. 고조할머니께서 신을 안받으시고
텔런트? 그러니까 예능쪽으로 가셨거든요? 근데 그게 지금 어머니와 친구한테까지 이어진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도 죽은 동생을보는거죠.
친구어머니거 그렇게 동생이 죽은 집에서 살아야한다고 고집한 것도. 그 혼이 죽으면 지박령이라고 죽은 자리에서 못벗어나는 그런게 있잖아요.
친구 어머니께서는 신기가 있어서 동생이 보이니까
그 집에서 그냥 동생의 혼을 아들로 같이 살 생각이셨던 거죠.
그 의사말대로 타죽은게 아니라 연기로인한 질식사였는지. 친구가 위화감을 안느낄정도로 깨끗했나봐요.
아버지가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여긴점이 그거였데요.
그 미칠것 같은 정신나간 상황에서. 아 그래도. 불에 타는 고통으로 죽은건 아니였나보다하는생각에
너무 안도감이 몰려와서 방에서 혼자 막 몰래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동생 시체를 보고 아버진 계속 인터넷에다 불에타서 죽을때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검색해보고 찾아보고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그 상황을 어덯게든 버텨보려고하셨지만 그 캐릭터 시계있잖아요. 동생의 유품으로 받아온거랑 비슷한 기능의 장난감 시계였데요.
거기에 어머니가 건전기를 넣고 보이지 않는 아들에게 채워주는데 거기서 노래소리가 나면서 불빛이 반짝이는걸 보고
더이상은 못버티겠다...싶으셨나봐요.
아마 그사이에 친구 동생 사망진단서도 혼자 떼시고.
동생이사라진. 본인 가족관계증명서도 그때 떼신거겠죠.
나중에 크면 아파트얻어서 잘살라고 동생이름으로 들어둔 청약이나. 보험같은것도. 다 아버지께서 혼자 정리하셨데요.
그날로 이혼을 통보하고.
또 이런 환경에서 딸을 키우는건 오히려 딸을 망치는거겠다 생각이 드셔서 딸은 내가 데려갈테니 너는 그 귀신이랑 살라고 그렇게 된거죠.
친구는 갑자기 아버지랑 어머니가 이혼한다고하니까.
저한테 전화해서 울었던 거고요.
친구는 아무것도 몰랐잖아요.
그렇게 친구는 아버지를 따라 가게됬고.
달에한번씩 그집에가서 지박령인 동생을 만난거에요.
살아있는 자기 동생이라고 믿고요.
이게 어떻게 못알아챌수가 있냐 하실수도 있는데
친구는 한달에 한번 가는거기도했고. 8살부터 12살 그러니까 4년정도만 한달에 한번씩 갔고
5학년부턴 예중 준비하느라 안찾아갔으니까.. 그럴수도 있었겠다...싶기도하고요..
그리고 그동안 어머니께 얼마나 많은 가스라이팅을 당했겠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내 눈앞에 이 귀신이
살아있는 내동생이다 이렇게 생각한거죠.
그 집에서 아직도 허공에대고 혼자 말하고
혼자 책읽어주고. 혼자 밥먹여주고 있을 친구 어머니를 생각하니까..좀.. 섬짓한 느낌도 들더라고요...
친구아버진 어머니쪽 그러니까.외할머니를 만나서 얘기를해본끝에
외할머니도 신을 안밭고 텔런트 활동을하셨잖라요.
그갓처럼 친구를 연예계쪽으로 시키면 그런것들을 안보게 될거라고 얘기를 들으신것 같아요.
친구가 그쪽에 좀더 흥미를 느끼도록 4학년대 그 문화센터 연극프로그램 같은데도 보내시고 한거죠.
생각해보면 친구가 예중가고부터 집에 안갔다고 했잖아요.
예중 들어갈때 서울에서 기획사하나에 들어갔거든요.
아역배우같은걸로요.
그래서 뭐 아동복 모델 같은걸 잠깐했었는데
그 이후론 아마 집에가도 동생이 안보이게 될거고.
혼잣말하며 허공과 눈맞추고 대화하는 어머니를 보면 충격받을게 분명하니까. 아마 친구 아버지께서 그 집에 못가게 하신것 같떠라고요.
가족행사가있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시거나 그날로 약속을잡아서 못가게했다고 들었어요.
친구 아버님께선. 아들을 보내줘야하는데. 누구와도 얘기할사람도 없고. 혼자 아침마다 눈뜨면 아들이 죽었단걸한.. 몇초간 잊고있다가.
아 맞다..죽었지하고 떠오른데요.
그러니까. 매일 아들이 죽었단걸 그런식으로 기억해 오신거에요.
아직도. 동생이름을 부르면서. 죽었다고 말씀하시는게 너무 힘들었데요.
아버지는 30살 40살 50살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데. 아버지께는 아들은 영원히 5살의 그 기억만 있는거에요.
아버님의 아들에대한 기억은 5살때 알아보기 힘들정도의 까만 시체로 기억하고 있지만.
친구는 9살까지의 동생에대한 기억이 있는거죠.
아버지말을 들으면서
파파밧하고 기억이 돌아온다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릴때다보니
완전히는 아니지만. 불아 났던 기억은 났데요.
이 얘기를 사실 들으면서도 무슨 영화스토리 아닌가 싶을정도로 현실감 없는데. 본인은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게 아귀가 딱딱 맞아서. 다른걸로는 설명이 안되더라고요.
..
고민 정말 많이하고 적는 글인데.
사실 제 이야기입니다..
친구인척 쓰긴했는데
역시 솔직한게 나을것 같네요.
아버지께는
어떻게... 13년을 속일수가 있지 싶어서 배신감이 들지만.. 다르게보면 그걸 숨기기 위해서 아버지께서 부단히 노력하셨구나 싶어서... 좀 애매한 마음이긴해요.
글을쓰면서도 뭔가..의식적으로 아버지를 두둔하게 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직도 아버지를 어떻게대해야할지.
어머니는 계속연락이오는데.. 어떻게해야할지..
전 아직도..동생이 살아있을것 같은걸요...
연기자가 되고싶었는데. 현실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갑자기 영화인지도 몰랐던 현실에서 깨어난 느낌이에요.
으아 어떻게 마무리해야할지 모르겟네요. 그냥 많은사람들에게 생각을 구해보고싶네요. 어떻게보면 몇십년을 속인건데..
그동안도 분명 얘기할수 있는 타이밍이 얼마나 많았는데...
하.. 저는 아버지와 어떻게 지내야할까요...
긴글 읽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안믿으셔도 괜찮습니다.
첫댓글 와...마지막까지 소름 돋았던 썰 이었네요
와 진짜 영화같아요..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해요
아 너무 슬퍼요ㅠㅠㅠ
쓰기까지 정말 고민 많이 하시고 어렵게 쓰셨을 것 같아요 차마 누구에게 꺼내기 힘든 일을 겪었잖아요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이렇게 긴 글을 한번에 쓸 때엔 맞춤법 검사기를 돌린 후 올리는 게 어떨까요? 아마 이런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많이 피곤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인터넷 글은 글의 진정성이나 짜임새를 위해 어휘가 중요할 것 같아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아버지랑 좋은 관계 이어갔으면 좋겠네요 햄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