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이승만 초대 대통령
국가보훈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보훈부가 1992년 이달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하기 시작한 지 32년 만이다.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의 업적이라고 하면 1948년 제헌국회 의장으로서 대한민국 국호와 헌법을 제정하고,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끌어냈다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일제로부터의 광복이 국제적으로 보장되고, 나아가 국가 건설을 통한 독립을 성취하는 데 그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전 대통령은 젊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나 5년반 만에 미 최고 대학들에서 정치학-국제법 박사학위를 땄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통령을 맡았으나 임시정부 내 공산주의자들과 갈등을 빚었다. 무장투쟁 중심의 독립운동 한계를 깨닫고 홀로 미국에서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미국 내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두루 만나며 대한 독립을 호소했다. 1941년 저서 『일본 내막기 (Japan inside out)』에서 일본의 미국 침략을 예측하고 고발했으며, 한국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 해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이 책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미국 지도층에 한국 독립의 우호적 여론이 형성됐다.
1943년 2월 23일 미국 대통령 F. 루스벨트가 라디오 연설에서 “일본의 가혹한 압제에 한국 국민이 당하는 노예 상태”라고 언급하자 이 전 대통령은 기뻐하며 백아관에 서한을 보내 충칭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과 원조를 요청했다. 5월 25일 비서실장 에드윈 왓슨으로부터 루스벨트 대통령이 서한을 접수했고 ‘섬세한 주의’를 받았다는 답변을 받기도 했다.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선 그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됐다. 그 해 12월 카이로선언 특별조항에 한국의 자유와 독립이 명시된 것이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우리는 일제 통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이것이 곧 독립을 의미한 건 아니었다.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1945년 10월 그는 조국으로 돌아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힘썼으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됐다.
지금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이 달의 독립운동가 선정’이 우리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들여다볼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