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0 드려진 산 제물.
https://www.youtube.com/watch?v=JiER_s833FQ 이학권
https://cafe.daum.net/rnjstlgur/9oZC/277 권시혁
생명의 역설은 이거예요. 생명은 지켜야 해요. 죽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생존해야 돼요.
그런데 지키기만 하면 그것은 정말 썩어갈 뿐 아무것도 아니지요. 지키는 이유가 드려지기 위해서요.
생존하는 이유는 생명 되기 위해서요. 그런데 이 드려짐, 드림, 산 제물로 드리라. 그런데 이 드림은 지혜가 필요하지요. 아무것에나 드리면 그건 가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죽어도 좋은 가치.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려라. 우리 생존의 삶 전체를 드려도 아깝지 않은 그런 가치를 만나야 되지요.
그런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의 사랑이지요. 십자가의 사랑을 만날 때 나의 가치를 확증 받지요.
이 세상이 속인 나의 가치.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뭐 성공한 것이 있어? 학력이 좋아? 잘 생겼니? 잘 났니? 등등의 현상의 허무한 존재가 아닌 내 본질의 가치를 십자가 사랑에서 만나지요.
그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깝지 않게 드린 나의 생명을 만나는 거지요. 그래서 십자가를 만났을 때 비로소 나의 존재 가치를 알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것으로 만나요.
이 만물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창조되었는데 이 만물이 다 아파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어요.
롬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전에는 내가 내 가치를 못 느끼는 때는 나에게 급급해서 그 아픔을 하나도 못 느끼다가 내가 내 가치를 확증 받았을 때 이 만물에 아파함이 내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때 나의 혈과 육을 넘어서 이 우주의 아픔, 만유의 아픔과 공감하기 시작합니다. 이 아픔을 공감하면서 내가 죄인 중에 괴수라는 고백이 토해져요.
이렇게 아픈 세상 속에서 이때까지 나의 이익, 나의 계산, 남을 판단 정죄하는 이랬던 죄인 중에 괴수인 내 모습을 만나지요.
그 만남과 동시에 이제는 뭐예요. 이제는 내 만유와 함께 아파하는 공감 empathy가 열립니다.
그때부터 아픔 때문에 아파하는 하나님의 아픔에 내가 드려지는 삶이 시작하고 드려짐은 하나가 되는 삶을 이루는 삶이에요.
그래서 결국 내 삶을 다 살았을 때 나의 죽음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라, 주님의 가슴을 따라 드려진 산 제물로 주님과도 온전한 하나가 되고, 만유와 온전히 하나가 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삶이 죽음에서 열매 맺게 되는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 네 목사님!!! 고맙습니다. 샬롬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