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날개가 있다
송승원(송영일)
당찬 야성 내려놓고 발에 익은 길을 따라
날갯짓 접어둔 채 귀뚱거린 몸짓으로
달뜨는 도시의 하루 쪼고 있는 도도새*
날아 오른 시간들을 깃털 속 묻어 두고
쿵쿵 뛰는 심장소리 뉘도 몰래 사그라진
그만큼 섬이 된 무게, 어깨를 짓누른다
화석에 든 아이콘이 무젖어 말을 건다
푸드덕 홰를 치는 한 마리 새 나는 행간
앙가슴 풀어헤친 채 물음표를 집어 든다
* 도도새: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 서식했던 새. 천적이 없어 날개가 퇴화
돼 날지 못하다가 1505년 포르투갈인들이 포유류와 함께 이 섬에 들어
오기 시작하면서 멸종됐다, 현실에 안주해 변화를 바라지 않는 사람을 '도도새의 법칙'으로 비유해 일컫기도 한다.
-<2013.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극야의 새벽
김재길
얼붙은 칠흑 새벽 빗발 선 별자리들
붉은 피 묻어나는 눈보라에 몸을 묻고
연착된 열차 기다리며 지평선에 잠든다.
황도(黃道)의 뼈를 따라 하늘길이 결빙된다
오로라 황록 꽃은 어디쯤에 피는 걸까
사람도 그 시간 속엔 낡아빠진 문명일 뿐.
난산하는 포유류들 사납게 울부짖고
새들의 언 날개가 분분히 부서진다
빙하가 두꺼워지다 찬 생살이 터질 때.
제 눈알 갉아먹으며 벌레가 눈을 뜬다
우주의 모서리를 바퀴로 굴리면서
한 줌의 빛을 들고서 연금술사가 찾아온다.
황천의 검은 장막 활짝 걷고 문 열어라
무저갱 깊은 바닥 쿵쿵쿵 쿵 울리면서
안맹이 번쩍 눈 뜨듯 부활하라 새벽이여.
*극야: 밤만 계속되는 시간을 말함. '백야'의 반대 현상.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번지점프 해송 현애(懸崖)
송필국
한 점 깃털이 되어 허공 속을 떠돌다가
치솟은 바위틈에 밀려든 솔씨 하나
서릿발 등받이 삼아 웅크리고 잠이 든다
산까치 하품소리 따사로운 햇살 들어
밤이슬에 목을 축인 부엽토 후비작대며
아찔한 난간마루에 고개 삐죽 내민다
버거운 짐 걸머메고 넘어지다 일어서고
더러는 무릎 찧어 허옇게 아문 사리
뒤틀려 꼬인 몸뚱이 벼랑 끝에 매달린다
떨어질듯 되감아 오른 힘줄선 저 용틀임
눈 이불 솔잎치마 옹골찬 솔방울이
씨방 속 온기를 품어 천년 세월 버티고 있다
* 현애: 벼랑에 붙어 뿌리보다 낮게 기우러져 자라나는 나무
-<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연어
김완수
오년 전에 허물 벗듯 훌쩍 떠난 금실네가
가을날 지느러미 찢긴 채로 귀농했다.
세 식구 돌아온 길에 자갈들이 빽빽하다.
땅과 마주하는 법은 손에서 놓은 지 오래
도회의 수년 배긴 굳은살이 아른거려
금실이 아버지 눈은 흙마저도 시리다.
지게질도 해 보고 바닥에도 서 봤다.
시골이나 도시나 아찔하긴 매한가지
온 식구 해묵은 삶은 아가미도 헐었다.
댐처럼 가슴이 막혀 오는 두렁의 기억
금실네는 잃어 버린 편린들을 찾기 위해
혼탁한 모랫바닥을 퍼덕거려 가야 한다
-<2013.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천수만 청둥오리
김윤
지축을 뒤흔드는 수만 개 북 두드린다
오색 깃발 나부끼는 천수만 대형 스크린
지고 온 바이칼호의 눈발 털어놓는 오리 떼
아무르강 창공 넘어 돌아온 지친 목청
오랜 허기 채워 줄 볍씨 한 톨 아쉬운데
해 짧아 어두운 지구 먼 별빛만 성글어
민들레 솜털 가슴 그래도 활짝 열고
야윈 목 길게 뽑아 힘겹게 활개 치며
살얼음 찰랑 가르고 화살처럼 날아든다
-<2013.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
바둑 두는 남자
김샴
쉰다섯의 전장까지 판판이 패자였다
실패한 한 중년의 마지막 한 판 승부
밀리면 더 갈 곳 없는 종점에 서 있었다.
이겨도 얻어내는 전리품은 없었지만
함몰된 눈알 가득 불꽃들이 살아 튄다
세상에 남길 유흔이 살아있는 눈빛이듯.
마지막 외통수가 비수로 남았을 때
찌르지 못한다면 찔려야 했었기에
파르르 손이 떨리던 일대기가 끝났다.
여름옷 입은 채로 한 겨울에 발굴됐다
바둑 두는 남자의 노숙터 부장품은
살아서 빛나던 한때 아버지란 칼 한 자루.
-<2013.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당선작>
바람의 풍경
김석인
억새의 목울대로 울고 싶은 그런 날은
그리움 목에 걸고 도래질을 하고 싶다
있어도 보이지 않는 내 모습 세워놓고
부대낀 시간만큼 길은 자꾸 흐려지고
이마를 허공에 던져 비비고 비벼봐도
흐르는 구름의 시간 뜨거울 줄 모른다
내려놓고 지어야만 읽혀지는 경전인가
지상에 새긴 언약 온몸으로 더듬지만
가을은 화답도 없이 저녁을 몰고 온다
-<2013.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