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9일 토요일 흐림. 야산에 핀 진달래
몇일 동안 원고를 교열하는 딱딱한 작업을 계속하여 힘들었기 때문에, 오늘은 거실의 소파에 들어 누워 좀 느슨한 자세로 좀 가벼운 책을 읽었다. 최근에 서울의 학고방學古房이라는 출판사에서 낸 《파리에서 보내온 합죽선》이라는 중문과 교수 8인의 수필집이다. 10여년전부터 우문회右文會라는 중문 동호인 수필 모임을 만들어 놓고, 매월 한 번씩 모여 근작 수필을 발표하고, 몇 년에 한 번씩 그렇게 모인 수필에서 정선하여 책으로 내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이모임의 네 번째 수필집이다. 나는 대구에 살다가 보니 서울서 모인 월례 모임에는 한 번도 참석치 못하였으나 매번 책을 낼 때는 글 1편씩을 투고하였다. 그런대 이번에는 한 사람이 글을 7편까지 낼 수 있다고 하여 여러 편을 보내어 주었더니 다 실어 주었다.
앞서 나온 이 수필집들을 보면 수필이라고 하기 보다는 대개 전공인 중국의 시나 고전에 관한 학식을 자랑하는 어려운 이야기가 많아서 누가 이런 책을 읽을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 실린 내용을 읽어 보니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많이 줄고 그 대신에 자기의 신변잡기, 여행담 같은 것을 매우 재미있게 쓴 글이 많아 진 것 같아서 그래도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쉬운 책으로 생각되니 다행이다.
이번에 나온 책의 또 한 가지 큰 특색은 그런 수필 속에 가끔씩 자작自作 한시원문과 번역을 적어 넣어, 딴 분야의 사람들이나 비록 중문학을 전공한다고는 하지만 한시를 짓는 일이라면 어렵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히 생각도 못할 특별한 수준을 보여주는 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는 점이다. 김성곤(방통대 교수), 유종목(서울대 교수), 이남종(방통대, 서울대 강사), 이영주(서울대 교수) 같은 사람들이 쓴 글이 그렇다.
이렇게 후배 교수들 중에서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한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의 중국문학 연구자들의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음을 뜻한다. 우리 선배들 중에는 한시 같은 것을 지을 수 있는 분들은 대개 현대중국어를 잘 못하였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은 대개 한문에는 약하였다. 그러나 이런 후배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 일어, [또는 독어나 불어] 같은 외국어 책도 대개는 다 별 지장 없이 읽어낸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이렇게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쓴 글일수록 대개는 읽기가 더 쉬우니 앞으로 이 모임에서 내는 수필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은은한 향기를 낼 것으로 기대하여 본다.
오후에 거실 창밖을 내다보니 야산에 진달래가 피었다. 쫓아 나가서 야산을 1시간 가까이 쉬엄쉬엄 걸어 다니면서 구경을 하였다. 참나무 사이에 잡목을 모두 제거하는데 어쩌다가 한두 포기 정도씩 놓친 것인 듯, 대개 다 뛰엄뛰엄 자라서 외롭게 꽃을 피우고 있다. 보기에 좀 애닲을 정도이나, 참나무는 작년 가을에 잎을 떨어 떨어트린 뒤에 아직 줄기만 앙상하게 서있는 이 적막한 산속에 이런 꽃이라도 피기 시작하니 매우 신비한 감이 든다. 가끔 노란 빛을 지닌 생강나무 꽃도 피기 시작한다. 작년 이때도 이런 꽃들이 이 야산에 피었을 터이지만 본 기억이 전혀 없다. 그 때는 더 높은 산만 찾아 다녔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