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매표소 → 육담폭포 → 비룡폭포 → 토왕성폭포'의 4km가량을 간 이후 다음 코스를 선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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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토왕성폭포(雪嶽山 土王城瀑布)
수량/면적: 338,740㎡
소재지: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산 41-0
소유자: 대한불교조계종 신흥사
관리자: 속초시
토왕성폭포는 외설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있다. 토왕성은 『여지도서』『양양도호부』고적조에 “토왕성(土王城) 부(府)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있으며, 성을 돌로 쌓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며,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 되어있다. 『양양부읍지』에도 같은 기사가 실려 있는데, 모두 토왕성으로 되어 있다.
토왕성폭포는 화채봉에서 흘러 칠성봉을 끼고 돌아 상단150m, 중단80m, 하단90m로 총 길이가 320m의 3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연폭(連瀑)으로 하늘에서 비류하는 광경은 천상의 절경이다. 마치 선녀가 흰 비단을 바위위에 널어놓은 듯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폭포의 물은 토왕골을 흘러 비룡폭포와 육담폭포가 합류 쌍천(雙川)으로 흐른다.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기관동산수(記關東山水)」에서 토왕성폭포의 기이하고 웅장함을 묘사하였고,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설악일기(雪岳日記)」에서 토왕성폭포를 중국의 ‘여산’보다 낫다고 표현하였다. - 명승 제96호
일에 치여 5월 30일 다녀온 남병산, 정암산 연계 산행기를 6월 6일 완성해 봉 감독에게 보여주자, 처음 반응이 "참 여기저기 많이도 다닌다 ㅎ."였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 설악 토왕폭 하단까지는 한번 가봐야 하지 않겠음?....그지?"였다. 그에 대한 나의 답은 "아니 올라가야지"였고. 사실 설악산 토왕성폭포는 7~8년 전 우연히 TV에서 산행 다큐를 보다가 특별한 장비 없이도 올라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언젠가는 올라가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워낙 사망사고가 자주 나는 지역이라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내 인생 최고의 버킷리스트로 남아 있었는데, 봉 감독이 자극한 거다. 해서 볼 것도 없이 가기로 했으나 시기가 문제였다. 휴일은 단속이 심할 거 같아 평일에 도전하기로 하고 서로 좋은 날짜를 계산해 보다가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다음 주 월요일인 6월 14일 강행하기로 했다.
전날 설악산 근처로 가서 숙박하는 게 여러모로 좋으나, 사정상 어려워 당일 아침 속초행 첫 고속버스를 타기로 하고 6시 30분 차를 예매했다. 그리고 장비는 쓸 일 없기를 바라나, 만약에 대비해 둘 다 보조 자일을 가져가기로 했다. 그 외 장비나 먹거리는 늘 해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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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속초행 6시 30분 차를 타기 위해서는 불광역에서 5시 52분 지하철을 타야 해서 5시 정각에 기상했다. 평소라면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나, 속초에서 봉 감독이 아침으로 김밥을 준비하기로 해 굳이 아침을 먹을 이유가 없어 시간 여유가 있었다. 간편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미리 준비해 전날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었던 디팩에 넣었다. 비상식용 디팩에는 오이, 토마토, 김치, 간편식, 갱, 에너지 바 등이, 그리고 다른 디팩에는 보조자일과 가죽장갑이 들어 있다. 지난 속리산 칠형제봉 산행 시 자일을 잡고 미끄러질 때 장갑 때문에 섬뜩했던 기억이 있어 가죽장갑도 준비했다[산행기]. 하네스도 가져갈까 하다가 그걸 쓸 정도면 포기하고 우회하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에 두고 가기로 했다.
불광역까지 걸어가기 전에 혹시나 하고 버스 앱으로 마을버스 운행 상황을 보니 동명탕 정류장 도착 시각이 4분 남았다. 평일이라 마을버스 운행이 휴일보다 많은 거 같다. 그럼 굳이 불광역까지 걸어갈 이유가 없어 여유 있게 집을 나와 동명탕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1분 정도 기다리자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그 시각이 5시 32분으로 평소라면 나는 아직 잠자리에 있을 시간인데, 버스에 빈자리라고는 두 자리뿐이다. 다들 바쁘게 사는 중이다. 그런데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바람에 불광역에 도착한 시각이 5시 35분으로 애초 타려고 했던 5시 52분 차가 아니라 그보다 10분 이른 5시 42분 차를 탈 수 있었다. 고로 고속버스터미널 도착 시각도 계획보다 10분 일러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가락국수나 한 그릇 하자는 생각에 식당을 찾아 헤매느라 3분 정도 소요했다. 그런데, 의외로 식당은 승차장 앞에 있었다. 해서 가장 빨리 나올 거 같은 김치 가락국수를 주문했으나, 주인장 혼자 대여섯 명의 손님을 상대하느라,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는 차를 놓칠 거 같았다. 해서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승차장으로 갔다.
승차장으로 가자 예상대로 버스는 출발 준비를 마치고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바로 버스에 타 배낭은 옆자리에 두고 패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예정된 시각인 6시 30분 터미널을 떠난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휴게소에서 잠깐 휴식 후 다시 달렸다. 휴게소를 떠난 순간 잠이 들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가 시내로 들어가고 있었다. 해서 봉 감독에게 "도착"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정신을 차리고 창밖을 보니, 속초가 아니라 양양이다. 속초를 거쳐 양양으로 향한다고 알고 있었으니, 이건 심각한 문제다. 내려야 할 속초에서 못 내린 거다. 깜짝 놀라 버스 내를 둘러보니, 승객 상황은 서울에서 출발할 때와 변함이 없다. 해서 버스의 경로를 확인해 보니 서울 양양 간 고속도로를 달린 버스는 양양을 거쳐 속초로 간다. 그럼 속초는 동서울에서 미시령을 거치는 시외버스를 타는 게 더 빠르다는 얘긴데.
먼저 양양 터미널에서 승객을 내려준 버스는 속초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버스 예매 시 소요 시간 2시간 20분과 달리, 9시가 넘어 속초터미널에 도착했다. 계획보다 늦은 도착에 속으로 투덜거리며, 배낭을 둘러메고 차에서 내려 터미널 건물로 들어가자 봉 감독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어느 도로를 따라 달리느냐에 속초까지 소요 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게 수확이라는 얘기를 하며 봉 감독 차로 갔다. 그리고 이번 열여섯 번째 설악산 오지 탐험의 들머리인 신흥사 주차장으로 달렸다. 9시 30분경 신흥사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월요일 오전 9시 30분경임에도 주차장이 거의 다 차, 마지막 남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했다. 하긴 우리도 휴가 내고 평일에 왔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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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 준비를 마친 시각이 9시 33분이다. 이번 설악산 토왕성폭포 산행을 시작한 시각이기도 하다. 매표소를 지나 갈림길에서 토왕성폭포 쪽으로 방향을 튼 시각이 9시 37분이다.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 2.7km! 앞에 보이는 노적봉을 감상하며 쌍천을 건넌 후 천을 따라 폭포 쪽으로 가는데 길이 막혔다. 작년 폭우에 길이 무너져 임시로 가설한 등산로를 따라가야 했다. 상황으로 봐서는 임시가 아니라 아예 등산로를 바꾸는 분위기지만.
쌍천을 따라 만들어진 관광로로 23분가량 가자, 길은 이번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토왕골로 우회하고 있었다. 수량은 좀 부족해 보이는 토왕골을 따라 위로 올라가니 작은 폭포도 반겨주는 게 잘 알려진 세 개의 폭포, 육담, 비룡, 토왕성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했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니 저 위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보이고 그 밑으로 폭포가 있었다. 생김새로 봐서는 육담폭포 같은데. 맞았다. 6개의 포트홀이 있어 육담폭포라 이름 붙여진 폭포다. 폭포 상단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폭포의 조망을 망치는 면도 있으나, 다른 면에서는 폭포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다리에서 폭포의 사진을 남기고 다음 목적인 비룡폭으로 향했다.
육담폭포를 지나 주변의 숲과 계곡을 감상하며 오르다 보니 저기 계곡 중간 바위에 눈에 익숙한 모습의 사람이 있었다. 요원이다! 비룡폭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고 토왕성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고. 이런 상황일수록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은 만큼, 비룡폭으로 향하는 철 데크에서 사진을 찍는 등 여유만만하게 폭포로 갔다. 나야 첫 방문이라 비룡폭과 토왕성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몰라 그저 앞만 보고 갔다. 그런데 멀리서 토왕성폭을 조망하는 전망대는 비룡폭 맞은편에 쉽게 오를 수 있도록 길을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거리는 400m! 일단 비룡폭의 장관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긴 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봉 감독이 속초 버스터미널에서 준비한 김밥으로 늦은 아침을 먹으며 향후 계획에 관해 토론했다. 그 시각이 10시 19분이었다.
김밥을 먹으며 요원의 움직임과 비룡폭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재빨리 폭포 옆으로 올라가면 문제가 없을 거 같았으나, 요원이 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오른다는 건 산악인의 예의가 아니라는 판단에, 토왕성폭포까지의 길을 사전 조사한 봉 감독이 알아낸 Plan B인 토왕성 전망대 부근에서 토왕골로 향하는 길로 가기로 했다. 아침을 다 먹고 짐을 챙겨 계단을 따라 토왕성폭포 전망대로 향했다. 그런데 그 400m에 불과한 전망대까지의 급경사 계단이 쉽지 않다. 헉헉대고 계단을 오르자, 계단 직전 비룡폭포 구경 온 조손의 대화가 떠올랐다. "할아버지 토왕성폭포는 안 봐요?", "할아버지가 저기를 올랐다가 욕만 하다가 내려왔다. 네가 더 자란 후 가봐라!" 뭐 이런 대화! 그 할아버지의 말이 정확했다. 새벽에 출발했다면, 전혀 오를 필요가 없었던 그 400m의 계단을 오르느라 1차로 엄청난 체력을 소모했다.
엄청난 체력을 소모하며 전망대 직전에 도착하자 유심히 주변을 살피며 올라오던 봉 감독이 길을 발견하고 계단 목책을 넘었다. 그런데, 봉 감독이 얘기하는 앞에 보이는 암봉을 넘는 건 도저히 길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전망대는 첫 방문이라 일단 전망대에 올라 저 멀리 토왕성폭포를 구경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전망대 뒤편 목책 너머로 인간이 다닌 흔적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게 토왕골로 내려가는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봉 감독을 부른 후 목책을 넘어 그 길을 따라 암봉에 올랐다. 생각보다 길은 좋았으나, 바로 따라온 봉의 말에 의하면 이건 토왕골로 향하는 게 아니라, 노적봉에 오르는 길이라고 했다. 산세를 보나, 길의 방향을 보나, 봉 감독 말이 맞는다. 해서, 다시 전망대로 돌아가 저 멀리 보이는 토왕성폭포를 배경으로 인증을 남기고 처음 봉 감독이 길이라고 했던 전망대 바로 아래 목책을 넘었다.
그런데 목책을 넘어 봉 감독이 가는 걸 보고 내가 처음에 오해했다는 걸 알았다. 난 앞에 보이는 암봉을 넘어 내려가는 거로 생각했는데, 길은 암봉을 넘는 게 아니라 두 암봉 사이의 계곡으로 나 있었다. 문제는 산사태가 빈번히 나는 지역으로 길이라 부르기 어려웠다는 거. 산사태로 인한 급경사의 너덜을 몇 번씩 미끄러지며 하산하는 건 엄청난 체력 소모를 요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2차 체력소모를 겪으며 15분가량 내려가자 토왕골에 도착할 수 있었다.
토왕골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자 여기저기 나뭇가지에 매달린 리본이 보인다. 생각보다 많은 산악회가 여기를 지나갔다는 얘기다. 하긴 장비를 갖추고 허락을 득하면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 구간이다. 처음 내가 가고자 했던 설악산의 계곡 중에 토왕골은 없었다. 토왕성폭포는 버킷리스트 제일 위에 있었으나, 그 폭포가 위치한 계곡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게 말이 안 되나, 사실이다. 그런데, 이 계곡 또한 여느 계곡 못지않게 계곡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작은 폭포와 이름 모를 나름 큰 폭포를 우회하기도 하며 계곡 리지를 오르는 즐거움! 그렇게 오르다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탁족으로 토왕골 첫 대면 의식을 가졌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올라가다가 길이 계곡 옆 숲으로 이어져 있어, 숲으로 들어가자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이정표를 보고 놀랐다. 경원대 산악회가 개척했다고 해서 "경원대길"이라 불리는 리지 코스를 알리는 이정표다. 사실 허락만 득하면 합법적으로 산행이 가능한 구간이라는 걸 알면 놀랄 것도 아니다. 우리야 경원대길이 목표가 아니라 다시 계곡으로 내려와 계곡산행을 즐기며 토왕성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그렇게 오르다 줄이 설치된 작은 계곡을 건넜다.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나는 밧줄이다. 굳이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위치나, 누군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설치했을 거다. 그 시각이 11시 52분이었다.
그 밧줄이 설치된 구간을 지나자 요란한 폭포 소리와 함께 전면에 협곡이 펼쳐졌다. 폭포는 보이지 않으나 오른쪽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로 봐서 협곡 오른쪽 암벽에 이번 산행의 목표 토왕성폭포가 있는 거 같았다. 그런데 길임을 알리는 리본은 오른쪽 암벽 위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거로 봐서 암벽을 가로질러 길이 있다는 얘기다. 협곡의 모습이 협곡을 따라 위로 가다가 오른쪽에서 쏟아지는 물길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봉 감독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갔다. 그렇게 오르자 앞을 가로막는 소와 바위에 더 오를 수가 없었다. 굳이 가자면 갈 수는 있으나, 물에 빠질 각오를 해야 했다. 봉 감독이 맞았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돌아가는데 왼쪽 암벽에 추모패가 붙어 있는 게 보여 가까이 다가가 확인했다. 역시 사망사고 다발 지역으로 악명이 높아 나로 하여금 산행을 망설이게 했던 구간답다. 그런데 수산대 산악회인데, 어느 수산대일까? 이후 추모패가 박혀 있는 암벽 주위를 둘러보니 기어올라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다면 굳이 봉 감독이 기다리는 곳까지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거라, 암벽을 기어올랐다. 그리고 위에서 봉 감독이 오는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암벽을 기어오르자 암벽 중간에 철봉이 박혀 있고 그 철봉부터 건너편 나무로 밧줄이 매여있는 게 보였다. 문제는 그 철봉까지 가기도 쉽지 않은 거! 봉 감독이 이번 산행 연구 중 첫 번째 위험 구간이라고 언급한 코스다.
봉 감독이 무사히 도착하는 걸 보고 다시 위험한 구간을 위로 오르며 돌자 눈앞에 감동의 장면이 펼쳐졌다. 토왕성폭포다! 그런데 하단에서 중단으로 올라가는 코스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옆으로 내가 처음 협곡에서 올라오려고 했던 물길도 보였다. 그 물길 옆으로 올라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위에서 보고 알았다. 폭포 하단 옆 암릉을 기다시피 올라 12시 25분에 중단 아래에 도착했다. 소원성취하는 순간이다. 중단 아래에 도착해 보니, 자일을 걸 수 있는 체인과 볼트가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사실 오르는 건 어떻게 하겠는데 내려간다면 밧줄의 도움이 있어야 할 거 같았다. 우리야 내려갈 일은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과 동영상을 찍은 후 내가 들고 간 오이와 토마토로 간단히 요기하며 잠깐 휴식했다. 쉬면서 앞을 보니 우리가 토왕골로 내려선 두 암봉 사이의 계곡도 한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기암절벽도. 휴식 후 접근 가능한 모든 방향에서 폭포로 다가가 주위를 둘러보니 우리가 쉬고 있던 자리에서는 안 보였으나, 폭포 옆 암벽에 엄청난 위압의 구멍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토왕성폭포 중단의 절경을 감상하고 12시 33분 중단을 떠나 상단을 향해 폭포 옆 숲을 지닌 급경사의 암릉을 따라 위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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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중단을 떠나 상단으로 향하는 길의 시작은 급경사의 암릉으로 리지를 오르는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으나, 중단 중간 정도에 도착하자 갑자기 짙은 안개가 몰려오더니, 거의 상단에 도착할 즈음에는 10m 전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해서 긴급하게 상단의 모습과 눈에 보이는 장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겼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거 같아서다. 길은 급경사의 암릉에서 급경사의 흙길로 바뀌었는데, 이게 사람을 미치게 했다. 차라리 암릉을 기어오르는 게 낫지, 죽죽 미끄러지는 흙길을 오르는 건 평소보다 체력 소모가 더했다. 더욱이 짙은 안개로 습도가 높아 땀이 비 오듯 해 10m 올라가고 쉬고, 10m 올라가고 쉬기를 반복했다.
흙길이 끝나자 다시 암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가능한 수준까지 기어올라가자 직벽이 나타나고 누군가 위에 설치해 아래로 내려트린 밧줄 두 가닥이 있었다. 그런데 그 직벽은 오른쪽 끝에서 올라가는 게 쉬워 보였으나, 그쪽으로 올라갔다가는 그네 타기 십상이라 어쩔 수 없이 위에서 바로 내려온 왼쪽 끝에서 전적으로 팔심에 의지해 올라가야 했다. 정상에 도착해 먼저 봉 감독의 배낭을 끌어 올린 후 봉 감독도 같은 코스로 올라왔다. 봉 감독이 올라오는 동안 사람 말소리가 들려 그 방향에 있는 암벽을 주의 깊게 살펴보니, 암벽꾼이 바위에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우리가 폭포 중단 아래에서 쉬고 있을 때 계곡에서 들렸던 말소리의 주인공인 거 같았다.
안개에 가려 희미하나마 옆으로 토왕성폭포 상단을 구경하며 헉헉대고 올라가는데, 물의 힘을 보여주는 놀라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애초 폭포라는 게 물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와중에 바위에 구멍을 뚫어 놓은 장면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절경에 감격하며 2분 정도 올라가자 두 번째 밧줄이 내려온 암벽을 만났다. 밧줄이 없어도 올라갈 수 있는 암벽이었으나, 지칠 대로 지친 상태라 밧줄이 반갑기만 했다. 그 밧줄을 잡고 암벽을 올라가자 활짝 핀 함박꽃이 반겼다. 암릉이 끝나고 숲이 나타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 숲을 통과하자 너럭바위가 나타났다. 토왕성폭포 정상이다.
갈림길이기도 한 그 바위에 주저앉아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쉬었다. 습도가 높은 중에 급경사를 헉헉대고 올라오는 바람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마지 폭우를 만난 거 같이 속옷까지 흠뻑 젖어 알탕이 그리웠다. 최근 산행 중 알탕이 그리운 건 오랜만이다. 웃통을 벗어 나무에 걸쳐 두고 주저앉아 봉 감독이 들고 온 참외를 나눠 먹으며 15분가량 쉬었다. 이후 함지박골 갈림길을 지나 숙자바위로 향했다. 노적봉 갈림길을 지나자 안개 사이로 거대한 암봉이 나타났다. 숙자바위다. 정확한 건 아니나, 숙자라는 여성이 등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게 우리의 생각이었다. 이름이야 어쨌든 그 암봉을 기어올라 정상에 도착해 보니 평지나 다름없는 모습에 놀랐다. 암보에 정상이 평지라니. 거기에 더해 곳곳에 물웅덩이도 있었다.
정상 비박지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맨발로 봉 감독이 가져온 빵과 내가 들고 간 간편식 김치 등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 시각이 3시 11분이었다. 늦은 아침에 중간중간 요기를 해 배가 고프지 않았고, 애초 계획이 숙자바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고 충분한 휴식 후 폰을 꺼내 등산 앱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e-산경표라는 등산 앱의 지도가 가장 정확했다. 해서 그 지도를 이용해 숙자바위 사거리에서 노적봉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섰다. 짙은 안개로 전방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곡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데, 앞의 바위에 이상한 게 보여 가까이 가보니 과거 정규 등산로였을 때 사용했던 철봉이다. 즉 여기가 길이란 얘기다. 이 철봉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계곡을 따라 내갔으면 튼 일 날뻔했다.
제대로 길을 찾아 내려가던 중 4시 6분에 집성봉 갈림길에 도착했다. 그 갈림길에서 좌로 방향을 틀어 길을 따라 5분가량 가자 작은 계곡이 나타났다. 소토왕골 상류다. 이제 계곡을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중간중간 폭포가 있어 마냥 계곡을 따라 내려갈 수는 없어 폭포를 만나면 숲으로 들어가 우회해야 했다. 길도 명확하지 않아 길을 만들며 가야하는 정말 힘든 하산이었다. 그런데 요란한 물소리와 우회해야 하는 높이를 고려하면 거대한 폭포가 있는 거 같은데, 안개로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폭포 아래에서 함박꽃 군락이 장관이었으나 계곡으로 내려갈 수는 없어 폭포를 볼 수는 없었다.
급경사의 숲을 헤치고 내려가자 절벽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든 거 같아.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나무에 묶여 있는 밧줄이 보인다. 그럼 맞게 내려왔다는 얘기다. 먼저 밧줄을 잡고 직벽을 내려가는데, 나이론 줄이라 손바닥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해서 중간 턱에 멈춰 배낭에서 가죽장갑을 꺼내 끼고 내려갔다. 물론 위에 기다리고 있던 봉 감독도. 아무 생각 없이 직벽을 내려오고 나서 계속해 경사가 급한 숲을 통과하며 옆을 보니 거대한 폭포다. 폭포 옆 직벽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안개로 정상이 보이지 않는 폭포 밑에 배낭을 벗어 두고 잠깐 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고 의외의 사체에 놀랐다. 토끼와 고라니 어미, 새끼 두 마리의 사체였다. 사체의 구성으로 봐서 폭포 위에서 실족한 거 같았다. 오늘처럼 안개가 낀 날 폭포에서 길을 잃고 추락한 게 아닌가 하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다.
폭포에서 잠깐 휴식 후 다시 하산을 시작하는데 숲 사이로 건물이 보였다. 이 지겨운 계곡도 끝이 보인다. 길을 찾지 못해 아예 폰을 들고 지도에 길이라 표시된 곳을 따라 내려가다가 숲속에서는 미끄러지고 나뭇가지에 걸려 상처를 입기도 해 지도에 표시된 길을 버리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계곡을 따라 내려가자 다시 길이 나타나고 눈앞에 설악산에서 보는 최고의 욕탕이 나타났다. 해서 볼 것도 없이 욕탕으로 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뛰어들었다. 대략 20분 동안 소토왕골 욕탕에서 땀을 씻고 5시 40분경 욕탕을 떠났다. 내가 사용해본 욕탕 중 지리산 칠선계곡의 선녀탕, 옥녀탕, 다음으로 훌륭했다. 그리고 그 욕탕부터는 길도 좋아 빠르게 내려갈 수 있었다.
해서 6시 8분에 우리가 아침에 지났던 쌍천을 따라 난 등산로에 도착했다. 소원성취하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걸 기념해 하이파이브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6시 17분 신흥사 일주문을 통과하는 거로 사실상의 산행을 마쳤다. 이후 편의점에서 평소라면 식혜를 사 마시는 거로 갈증을 해소했을 텐데, 웬일인지 요구르트 슬러시를 사 왔다. 봉 감독 말대로 의외로 갈증 해소에 좋았다. 슬러시로 갈증을 해소하고 주차장으로 갔다. 아침에 주차할 때만 해도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차량이 다 빠지고 봉 감독 차 하나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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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 감독이 용대리에 있던 “갓시레기국밥”집이 이 동네로 이사했다는 문자를 받았으니 오랜만에 그 식당에서 저녁을 먹자고 해 그 식당으로 향했다. 6시 55분 식당에 도착해 주인장과 반갑게 인사 후 왜 이사했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답은 KTX가 개통되고 나서 손님이 줄어 어쩔 수 없이 이 동네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자리를 잡고 앉아 정식과 이슬이를 주문했다. 이 집의 특성인 깔끔한 밑반찬과 주메뉴를 안주로 이슬이를 마셨다.
다른 친구와 내가 이슬이 3병을 마시는 동안 운전을 해야 하는 봉 감독은 고향의 맛이 난다는 찬 콩나물국을 계속 퍼다가 마셨다. 다섯 번 다시 채웠나, 여섯 번인가? 해서 보다 못해 내가 주인장에게 작은 접시가 아니라 대접으로 가져오라고 부탁했을 정도였다. 봉 감독은 콩나물국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이슬이 세 병을 마신 후 8시 35분경 식당을 나와 덕소역으로 향했다. 덕소역에 10시 20분경 도착해 봉 감독과 작별하고 서울로 향하는 거로 이번 소원성취 산행을 마쳤다.
봉 감독의 계획에 따라 '신흥사 주차장 → 매표소 → 토왕성폭포 갈림길 → 육담폭포 → 비룡폭포 → 토왕성폭포 전망대 → 노적봉 갈림길 → 토왕골 → 토왕성폭포 하단 → 토왕성폭포 중단 → 토왕성폭포 정상(함지박골 갈림길) → 노적봉 갈림길 → 숙자바위 → 칠성봉 사거리 → 집성봉 방향 → 노적봉 갈림길 → 소토왕골 갈림길 → 소토왕폭포 → 소토왕골 → 쌍천 → 토왕성폭포 갈림길 → 매표소 → 주차장'의 10.19km(트랭글 기준), 8시간 49분의 토왕골, 소토왕골 오지 탐험이었다. 이동 6시간 26분, 휴식 2시간 23분!
버킷리스트 최고의 소원을 성취한 산행이었다.
일기예보에는 없던 짙은 안개로 토왕성폭포 중단 이후 보이는 거라곤 안개밖에 없어 아쉬웠으나, 소원성취의 기쁨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만족할 수 없어 기회를 봐 다시 탐험할 예정이다.
다음에는 함지박골로... 아니면, 안개로 실체를 보지 못한 소토왕폭포?
첫댓글 김창흡이 토왕폭을 중국의 여산폭포보다 낫다고 표현했구만. 난 이 분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김창흡은 기사환국 이후 벼슬을 멀리하고 세상을 떠돌았는데 영시암을 세우고 그곳에 은거하였다가 밥해주던 일꾼이 호랑이에 물려 죽는 바람에 그곳을 떠났다고하네. 금강산,설악산에 관한 글을 많이 남겼다고. 대승폭포 우측 대승암터 인근에 한시 '宿大乘菴' 본적 있지? 그 시를 쓴 사람이 농암 김창협이고 김창흡은 그의 동생. 그 당시 설악산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해봄...
날좋고 폭포 물이 넘실거릴 때 토왕폭에 한번 더 가자~~. 하산코스는 내가 생각해놨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