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뉴스를 보다 보니 첫눈내린 전국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빈번했다고 한다.
급강하한 기온 때문에 도로가 얼어붙어 빙판길이 되어버린 현장에선
그야말로 아수라장의 교통사고가 참으로 처참해 보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지난 주에 본의아니게 뒷차에 들이받힌 기억이 떠올라 순간 부르르 떨려왔다.
아니 교차로 방향이라 우회전하는 차량들이 전부 슬슬 운전을 하거나 앞차를 보내기 위해 정차중임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
미친듯이 달려와 차를 들이받고 자기 차량이 반파되고 동승인으로 있던 차량은 뒷부분이 망가진 어이 없는 사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리굿이었던 차량사고에 비해 부러지거나 입원해야 할 만큼은 아닌지라 치료받으며 별 탈이 없이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름하여 오지라 불리우는 이 산골짜기에 올해 2023년에 첫눈이랍시고 내린 한줄기 눈발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한창 기대에 부풀 나이는 아니었어도 그렇게 짧게 내리다마는 눈발에 대한 감정은 배반감.... 배신감이었다.
또한 약간의 설렘과 첫눈에 대한 동경에 대한 반칙인 거다.
뭐 굳이 첫눈이 내리면 만나자는 혹은 어느 장소라고 지칭되어 기억될 추억과 감성이입은 딱히 없으나
그래도 첫눈에 대한 아스라한 기대치는 있는 법....그런 얄팍한 기대감마저 깨버린 첫눈의 신호탄이
겨우 내리자마자 바로 휘리릭 사라져 버리는 것이어서 아쉽기도 했다는 말이다.
사실 산골에 들어와 살면서 부터는 한겨울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눈에 대한 정서적, 감정적 반응이 먼저 오는 것이 아니라
저 눈이 내리면 꼼짝달싹하지 못할테지 싶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함은 물론 내리는 눈발을 보면서
풍경 감상은커녕 다음날 아니 현재상황으로 눈길이 먼저 걱정이 된다.
하여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눈치울 장비부터 챙겨야 하는 것이 우선 순위이고
이어서 눈치울 때 입을 복장을 준비해놓고 눈의 깊이를 살피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그 눈이 쌓이는 눈인지 내리면서 사라질 눈인지 물기가 많은 습식눈인지 건조한 건식눈인지를 살피는 것도
산골지기가 해야할 마땅한 책무이고 그 또한 무설재 쥔장의 옆지기인 마당쇠의 우선 순위 몫이자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내려와 산골아낙이 되면서 부터는 천하에 무섭거나 겁날 것이 없던 쥔장도
눈내린 뒤에 길을 나서는 것이 두려워지고 어찌됐든 구불구불 비포장 길을 간신히 슬슬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저수지 낀 길을 돌아들며 우여곡절의 경사진 도로를 지나는 것이 또 관건이요
쥔장 역시 그 도로에서 빙글 돌아버린 경험이 있어 그 앞을 지나려면 인지된 경험으로 인해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반응한다.
운전대를 꽉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며 발에도 긴장감이 돌아 온몸의 세포는 팽팽하게 신경줄을 늘이게 되고
그럴 때 절로 "트라우마" 라는 단어가 생각나기도 한다.
어쨋거나 눈오는 날을 비롯한 사철의 경계를 눈호강하며 넘나들고 그로인한 온갖 호사와 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십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와중에 전국으로 떠돌며 취재하랴 사진촬영하랴 사람들 만나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랴 숨가쁘게 시간을 분배하며 살았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세상에 겁날 것이 없다고 목소리 높여도 그중에서도 절로 몸사리게 되는 날이 있는 법.
눈내리는 날이 바로 그런 날이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지 못할 일이나 약속을 하지 않는다가 철칙이자 원칙이었어도 눈내리는 날과 그 다음날은 감당이 안된다.
도시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보고 사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그런 광경인 것이요 쥔장 또한 예전에는 그러했다.
눈내린 날의 산골살이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사실 그런 날은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절로 몸과 마음이 움츠러 들어서 예약된 타인들의 이해불가 상황에도 대처를 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눈이 내리고 나면 미필적고의가 적용되어 필수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본의 아니게 실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순간이다.
하였어도 그렇게 힐난하던 사람들조차 어쩌다가 이 산골짜기를 찾아들게 되면 이구동성으로 "못 나올만 하네"로 이해사항으로 돌변한다.
말하자면 모든 상황에 대한 경우의 수를 따질 명분이 주어진다는 말이자 눈내리면 직업적으로 불리할 요소에서 잠깐 비껴갈 요량이 생긴다는 말도 되겠다.
눈으로 보아야 확인사살이 가능한 곳에 산다는 것....행복인지 불행인지.
어쨋거나 별별 상황이나 조건적으로 불합리하고 불리할 요소는 많았으나 용케 벼텨가며 산골살이를 유지하고 있으니
정말 놀라울 일이다 싶어도 그런대로 적응완료 된 셈이다.
도시를 버리고 거주처를 옮겨와 열악함의 극치 속에서도 살아낼 이유는 셀 수 없다.
기본적으로 물좋고 공기좋은 산세좋고 조용한 이곳은 사실 별천지이기도 하니 말이다.
천지간의 순연의 대명사로 도시의 번잡함을 뒤로 하고 속세의 찌듦을 던져버린 채 개울을 건너 물살을 가르는 순간
차량의 바퀴 사이로 물살만 번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사가 뒤켠으로 살아지는 듯한 쾌감을 선사받던 날을 잊지 못한다.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던 곳이나 지금은 세상사와 가까워져 버렸고 현실을 외면 할 수는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우체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던 기억은 이제 추억이 되었고
우편물을 받을 수 없어 비닐 봉투에 쌇여진 채로 개울 건너 자락에 던져진 우편물을 가지러 가던 기억 또한 오랜 기억들이 되었다.
신문을 구독한다는 것조차 언감생심이던 그런 날들을 지나 이제는 자유자재로 문명의 이기를 누리게 되었으니 역시 세월값이긴 할 터.
이제 이곳도 문명을 지나 온갖 혜택을 누리는 곳으로 변모하였지만 여전한 것은 있다.
비포장 도로...처음 산골살이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이유중에 하나였던 도로가 아닌 흙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흙길이 잔존하는 비포장도로가 얼마나 운치있던지...시골살이 텃세쯤 눈감아버려도 좋을만큼 모든 것이 아나로그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다.
반딧불이가 있고 가재가 개울을 따라흘러드는 곳, 별이 쏟아져 내리면 절로 낭만을 노래하게 되는 곳.
낭만에 밥말아 먹을 일은 수도 없이 많았고 그 덕분에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음껏 행할 수 있는 곳.
도농지구이긴 하여도 시내를 지나 마을 입구만 들어서도 확연한 공기와 온도차이가 사람사는 맛을 느끼게 하는 곳.
동물 사육시설이 없는 완벽한 무공해 산골에 거주지를 옮기면서 얼마나 흥분되던지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음택과 양택이 공존하는 곳에서 살고지고 아이들이 성장하고 각자 가족을 이뤄냈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를 되뇌이며 자족하는 삶을 주었던 산골댁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지만 그만하면 됐다.
암튼 첫눈이랍시고 내리던 같잖은 눈발을 보면서 반은 즐겁고 반은 허무했으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나이가 들어서 눈발에 대한, 첫눈에 대한 설렘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련만 왜 시작도 전에 이미 끝나버린다는 건지...참내
에게 꼴랑 이 정도야? 라고 하늘님을 원망해야 할까나?
사철의 즐거움을 누림받는 복된 자로서 욕심이려나?
그래도 첫눈의 눈발을 기대한 죄를 물어야 할까나?
여하튼 올헤 첫눈은 그렇게 흐지부지 날아가 버렸다.....
물론 전국 곳곳에서 다양하게 눈이 내린 곳들은 많았고 그로 인한 교통사고도 많았지만 말이다.
이곳도 사실 마음먹고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너무나 많이 쌓여서 눈을 치울 차량의 손길을 받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니
이만하면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까나?
암튼 꼴랑스럽게 내린 눈을 보며 개인적인 소회 한마디가 길. 었. 다
첫댓글 ㅎ 난 방송으로만 첫눈을 알게되었네요. 눈의 실체는
보지도 못한체... 하긴 농촌살이가 나도 올해로
끝인건가 싶어 감회가 새롭긴
하네요. 남편이 올해로 은퇴라서리...
ㅎㅎ 첫눈을 못느꼈다굽쇼?
서울은 꽤나 온 듯 하더니만...
드디어 시골농촌살이로 부터 해방된 민족이 되겠습니다.
축하축하요.
@햇살편지 은퇴를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구만요~! 서운하고 아쉽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42년간 든 정이라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