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다섯 번째 - 2)
(보성 득량면∼고흥녹동, 2023년 6월 24일-25일)
瓦也 정유순
전통천연염색작가 한광석 장인(匠人)의 작업장은 문덕초등학교 용암분교(폐교)를 개조하여 만들었으며, 교실에는 그의 예술을 전수 받고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남도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이자 천연염색 명장인 한광석(66) 장인은 우리 땅에서 기른 쪽풀을 삶고 찌고 띄우고 썩혀서 긴 시간 속에 담궈 내 사람 손으로 빚어내는 색을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 수 없는 감탄에 마지않는 색감이 우러나게 하면서 전라도를 지키고 전라도의 색을 뽑아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한다.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입구>
젊어서 한참 일을 벌인 때는 서울 학고재 등 국내 최고의 화랑에서 전시도 여러 차례 개최하여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게 물들인 조선 무명으로 고급 옷을 만들게 하여 신라 호텔, 하얏트호텔, 힐튼호텔 등에서 패션쇼도 열었다. 이 때 양장과 한복이 어우러지는 패션쇼를 열어 전통염색 천을 사용한 옷의 값을 유명 명품 옷값에 버금가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하였다.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건물>
한광석 장인은 20대 중반부터 쪽 염색을 시작했다. 1982년께 고향 벌교의 논에 쪽 씨앗을 심었는데,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실패를 반복하다가 1993년에 자기만의 ‘쪽색’을 뽑아냈다. 염색을 한 계기는 농담처럼 하는 얘기로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어서 선택’ 했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밥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선택된 것이다.
<한광석 장인>
봄에 씨앗을 뿌려 쪽풀이 자라나 꽃대가 올라오기 직전 베어서 큰 옹기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돌멩이로 눌러 썩혔다가 썩은 잎과 줄기를 걷어내면 푸른색 물만 남는데, 여기에 석회를 넣으면 석회와 색소는 바닥에 가라앉게 되고 물에 콩대, 메밀대, 찰 볏짚 등을 태워 만든 재로 4~5배 희석해 섞어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실온에 보관하면 진한 쪽빛깔이 우러나온다. 여기에 흰색 무명베를 담갔다 말리기를 반복하여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 까지 수없는 반복 작업이 필수적이라고 한다.
<쪽빛으로 물들인 무명베>
전통이란 말에 빠지면서 특수한 직업으로도 생각했고, 또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전통에 더 충실하기 위해 전통을 깊이 공부했고, 여러 가지 분야를 더 넓게 파고들었으며, ‘전통’이란 말에 더 충실하기 위해 전통을 깊이 공부했다. 전통을 위해 모 대통령 취임식 광화문 문화 행사 때는 오방색(五方色) 큰 복주머니를 만들어 선보였다가 지역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도 했다고 한다.
<쪽빛 염색 무명베>
전시실 벽에 걸린 고쟁이가 눈길을 끈다. 고쟁이는 한복에서 속곳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여름용 여자 속옷이다. 남자 바지와 비슷한 모양이나 밑이 터졌고 가랑이의 통이 넓다. 감은 무명베·모시 등을 사용하여 홑으로 박아서 만든다. 입을 때는 오른편에 아귀를 내고, 허리에 달린 앞 끈을 뒤로 돌려 앞으로 오게 하여, 뒤 끈을 앞으로 가져다 서로 잡아맨다. 요즘은 거의 입지 않고 수의(壽衣)로 쓴다고 하는데 벽에는 안동지방의 살창고쟁이와 전라도지방의 고쟁이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주지방 고쟁이>
특히 살창고쟁이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여자들이 입던 여름철 속옷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입었는데, 안동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랫동안 전통복식의 풍습이 이어졌다. 밑이 트인 개당고 형태로 주로 뒤쪽으로 트인 구멍의 형태가 살창 같다 하여 살창고쟁이고 불렀다. 살창고쟁이의 뚫린 구멍으로 신부의 흉이 새어나가 시집살이가 수월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시댁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여러 겹의 속옷을 입어야 하는 딸이 안쓰러워 친정에서 신부의 혼수품으로 챙겨 보냈다고 한다.
<안동지방의 살창고쟁이>
다른 방에는 달항아리에 우리의 전통 물감을 형형색색으로 입히는 작업과 전시를 한다. 달항아리는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규모가 커서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만든 사람의 손맛에 따라 둥근 형태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항아리에 백자 외에 쪽빛 등 여러 색을 입히는 작업이 단순하고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
<형형색색의 달항아리>
시간에 쫓겨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한광석 장인의 깊은 속내를 알아보고 싶다. <갤러리 Re>를 빠져 나온 발길은 고흥군 대서면 안남리 장선해수욕장 해변이다. 고흥군(高興郡)은 벌교(筏橋) 부근에서 뻗어 내린 지맥이 바다에 가라앉아 생긴 고흥반도와 유인도 23개, 무인도 207개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순천만(順天灣)을 건너 여수시와, 서쪽은 보성만(寶城灣)을 건너 보성군·장흥군과 접하고, 남쪽은 다도해에 면한다.
<고흥군 대서면 안남리 해안>
대서면(大西面)은 동쪽은 남양면(南陽面), 북쪽은 보성군 조성면(鳥城面)과 고흥군 동강면(東江面)에 접하며, 서쪽과 남쪽은 득량만(得粮灣)에 면한다. 면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봉두산(鳳頭山, 427m)을 최고봉으로, 북동쪽이 높고 남서쪽이 낮은 지형을 이루며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다. 면의 남쪽 득량만으로 흘러드는 강의 하류를 제방으로 막아 넓은 평야가 형성되었다. 해안에서는 넓은 간석지를 이용하여 굴·바지락 등의 조개양식도 활발하다.
<안남리 들녘>
대서면 안남리(雁南里)는 남해 바다를 향해 돌출된 부분에 위치한 해안 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장선, 화천, 신기, 안동, 봉계가 있다. 장선은 이 마을에 백사장이 길게 형성되고 있어 신선이 살았다고 하여 장선이란 이름이, 화천은 화려하고 빛이 난 냇물이 이 마을에서 합류하여, 신기는 새로 생긴 마을, 안동은 마을 지형이 기러기(雁)와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봉계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 개척된 마을 뒤에는 봉두산이 있어 봉계라 했다. 안남리에는 장선(長善) 해수욕장이 있다.
<장선해수욕장>
대서면 안남어촌체험마을은 광활한 갯벌 등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전통적인 반농반어 마을이고,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곳이 많아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지역으로 청정갯벌이 펼쳐져 있으며 득량만 해역에서 생산되는 굴, 바지락, 꼬막, 키조개 및 각종 자연산 해조류 등 친환경 수산물로 유명하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개막이체험, 뻘배타기체험, 머드놀이체험, 바지락 캐기 등의 다양한 갯벌체험이 있다고 한다.
<신기 거북이 어촌체험마을>
<신기 거북이 어촌체험마을 표지판>
대서면 안남리 산75-1번지 임야에는 ‘우림원(祐林園)’이란 정원이 있다. 이곳은 15년 전만 해도 경제성이 없는 야산으로 방치된 상태였으나, 독림가 송동하씨는 산림경영계획 숲 가꾸기 인가를 받아 잡목을 제거하고 기존에 자생하던 소나무를 가꾸어서 지금의 경제성 높은 아름다운농원으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이 농원의 인근에 있는 태양광발전소는 멀쩡한 숲을 들어내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 터전에서 살아가던 생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림원 표지석>
<우림원 정원>
괜한 걱정을 하면서 발길을 이어가는데 어느 울타리 밑에는 치자나무가 하얀 꽃을 피워 걱정을 하지 말라한다. 치자나무는 어머니가 주황색 열매를 찧어 하얀 무명베에 치잣물을 드리던 모습이 아련하고, 옛날 명절 때 노란 물을 우려내서 녹두 빈대떡을 예쁘게 물들이시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치자라는 이름은 열매 모양이 손잡이 있는 술잔과 비슷하여 유래되었으며, 열매를 위주로 하여 잎이나 뿌리도 한약 및 생약재로 널리 쓰인다.
<치자꽃>
조선시대 강희안(姜希顔, 1417∼1464)은 <양화소록(養花小錄)>이라는 책에 치자나무 특징을 첫째, 꽃 색이 희고 기름지다. 둘째, 꽃향기가 맑고 풍부하다. 셋째, 겨울에도 잎이 푸르다. 넷째, 열매를 물들이거나 한약재로 쓴다고 네 가지로 정리한 기록이 있다. 옛날에는 군량미를 오래 두고 먹기 위해서 치잣물에 쌀을 담갔다가 쪄서 보관하였다고 한다. 치자나무는 꽃에서 향료를 추출해 쓰거나 화전이나 생식도 가능하다.
<치자나무>
치잣꽃은 양성화로, 6∼7월에 피고 흰색이지만 수분(受粉)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황백색으로 되며 가지 끝에 1개씩 달린다. 이와 비슷한 인동초(忍冬草)도 하얀 색으로 꽃을 피웠다가 수분이 되면 ‘저 결혼 했어요’라고 표시하며 노란색으로 변한다. 그래서 인동초를 금은화(金銀花)라는 예쁜 별명을 갖고 있다. 인동초는 혹독한 겨울이 와도 잘 견디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동초 - 금은화>
<우림원 송무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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