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 앞길은 6년 동안 학창시절의 오솔길. 내 소녀시절의 꿈과 낭만이 아직껏 추억으로 남아있다.
주변에 학교가 많이 자리 잡고 있는 게 특징이었다. 이른 아침, 운현궁 앞 양 갈래의 등교길은 남녀 중고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모교의 베레모는 일명 ‘빵떡모자’라 불리웠는데 남학생들의 관심의 대상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베레모 모자를 쓰고 싶어서 내 모교에 입학하려는 사람들도 실제로 일부 있었다고 전해 들었을 정도다.
여학생들이 얌전히 등교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갑자기 우리 걷는 길을 침범해 베레모를 빼앗아 가는 일이 이따금씩 발생했다. 모자를 빼앗아 돌려주지 않을 듯 잠시 시간을 끈 후, 곧 패스해 돌려주는 식으로 놀려대던 일. 나도 여러 번 당했지만 화를 내면서도 속으론 태연한 체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었지요.
내 모교는 빨간색 벽돌로 지어졌다. 유래가 있다. 지금의 헌법재판소 자리에 여중 여고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학교 주위에 남학교가 다섯 개 원을 그리듯 빙 둘러앉은 설계도를 보듯, 여학생들을 감싸주듯이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고 건물 색깔이 적색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전설적인 얘기를 선배님들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추억의 오솔길을 걸을때면 오롯이 학창시절을 회상케 한다. 다시 걷고 싶은 길을 언젠가 시간 나면 딸과 함께, 손녀딸들과 함께
팔장을 끼고 걸으면서 내 추억담을 전해주고 싶다.
첫댓글 베레모가 탐이 나서 일어난 학창시절의 해프닝들은
이제 아련한 추억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았네요..그 때 그 시절의 추억담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을 정도로!
아련한 추억이죠.
여고 건물이 지금은 송파구 방이동으로 이사했다는데 내부에 수영장도 있고 규모가 커졌지요.
창덕여고..
덕성여고 ..
저도 기억많은곳이구요 지금은 너무변해버린장소죠
기억에남는 장면은 여고생들치마가 얼마나 다리미질을 잘하면 깔끔하게 광이난게 기억에남네요 ㅎㅎ
아, 그렇군요. 주변에 경기고, 휘문고는 가까이 있었죠. 실제로 동창들중에 경기고, 휘문고 출신들과 결혼해서 잘 사는 친구들이 더러 있어요.
운현궁에서 가까운 베레모라면 창덕이군요.
명문이지요.
운현궁에서 가까운 초등학교는 서울교동초교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학교라지요. 윤보선대통령도 상록수 작가 심훈도 거기 출신인데
여하튼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 다니느라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군요. 아, 옛날이여 ~~ 입니다.
석촌님, 잘 아시는군요. 예전엔 학교 근처의 제과점에 가도 정학조치 당하던 엄격한 규율이 있던 시절이었죠. 친구들이 선생님이나 부모 몰래 은근히 연애를 즐기는 동창들이 있었구요.
다애님이 졸업한 베레모
착용 여고
1.창덕 여고?
2.배화 여고?
짚어 보았습니다
안국동 주변 지역에
고등교 많았습니다
창덕여고예요.
@다애 나는 창덕여고
바로 앞 수송전기공고
졸업 했습니다
@산자락 아, 네 알겠습니다.
@다애 수송전기공고
뒤 측에는 중동고 우측에는
숙명여고 있었지요
@산자락 네, 맞아요.
숙명여고에서 예비고사 봤어요.
@다애 창덕여고는 아직도
그 곳에 있습니다
@산자락 송파로 이전한 뒤에 친구들과 한 번 갔어요.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옆이던가 그럴꺼예요
@다애 10년전 안국동 갔을때 그곳에
있었는데
이전 했군요
@산자락 전두환 정권때, 이전한 학교들 많아요
내 큰 딸도
창덕여고 나왔는데요
반갑습니다
올림픽아파트 있는 창덕을요
대체적으로
반듯하고
애들이 공부 열심히 하는
창덕이더군요
옛 여고생들 거의 현모양처형이 많았죠.
꿈이 많았던
여고시절에 좋은 추억들이
많이 있었군요
저는 여학생의 하얀 교복을 보고서
천사같은 느낌을 많이 가졋답니다
교복 입은 남학생들은 씩씩해보였지요.
여학생들 대개 온순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