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逆) 남파랑길(다섯 번째 - 3)
(보성 득량면∼고흥녹동, 2023년 6월 24일-25일)
瓦也 정유순
그저께 밤늦게 도착하여 이틀을 잔 곳이 보성군 벌교읍이다. 벌교읍(筏橋邑)은 보성군 동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은 순천시, 서쪽은 율어면(栗於面)과 조성면(鳥城面), 남쪽은 고흥군에 접한다. 백제 때는 낙안군(樂安郡)의 일부였으며, 고려시대 낙안현으로 개칭하였다. 1915년 벌교면으로 개칭하고, 1937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지역 특산물인 꼬막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유명하며, 보성군에 속해 있지만 인구 규모와 상권이 군청소재지인 보성읍보다 크다.
<벌교읍 전경>
벌교에는 소설가 조정래(趙廷來, 1943∼ )의 태백산맥을 주제로 조성한 ‘소설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새벽에 눈뜨자마자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과 <현부자네 집>을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입장은 못하고 밖에서만 둘러본다. 2008년 11월 21일 개관한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은 작가 조정래가 쓴 전 10권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문학적 성과를 기리고 이를 관광자원화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입간판>
2개 층의 전시실에는 총 142건, 621점이 전시되어 있다. 1층에는 <태백산맥> 전 10권의 육필 원고 1만 6500장을 비롯하여 작가의 취재수첩과 카메라, 작가가 직접 그린 벌교 읍내와 지리산 일대의 약도 등 작품의 탄생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옆에 1층 전시실과 마주보는 옹벽에는 분단의 종식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대형 벽화 <원형상-백두대간의 염원>이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조정래 태백산맥문학관>
문학관 우측 뒤로 올라가면 <현부자네 집>이 있다. <현부자네 집>은 중도 들녘이 내려다보이는 제석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며 박씨 문중의 소유다. 한옥을 기본 틀로 삼고 곳곳에 일본식을 가미한 색다른 양식의 가옥으로, 한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흥미로운 건축물이다. 마루는 조선식, 천장은 일본식이며 안채에 양변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있고, 지붕 아래 서까래에는 벚꽃 무늬 단청이 되어 있다. 문간채에는 누마루가 있고 앞에는 연못을 배치하였으며, 대문채 2층에는 누각을 설치해놓았다.
<현부자네 집(밖)>
<현부자네 집(안)>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는 소설 첫 장면에 나오는 현부자네 집으로 묘사되었는데, 조직의 밀명을 받은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하여 새끼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이곳을 은신처로 사용하게 되면서 현부자와 이 집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펼쳐진다. <소화의 집>은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애틋한 사랑을 키웠던 방 3칸에 부엌 1칸인 소박한 기와집이다.
<소화의 집>
조반 후에는 벌교읍내에 있는 홍교를 보기 위해 이동한다. <벌교홍교(筏橋虹橋)>는 조선시대의 화강석 석교(石橋)로 보물로 지정 (1963년 1월 21일)되었다. 길이 약 27m, 홍예(虹霓) 높이 약 3m. 3칸의 홍예를 연결, 축조한 석교다. 벌교홍교는 남아 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지금도 주민들이 내를 건널 때 이용한다. 이 홍교는 순천 선암사 승선교와 함께 그 구조 형식이 가장 뚜렷하다. 홍교는 다리 밑이 무지개처럼 반원형으로 쌓은 다리를 말하는데, 홍예교·아치교·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벌교 홍교>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던 곳으로 1980년대 초에 보수공사를 하여 옛 다리의 모습과 새로 고친 흔적이 대비된다. 아치 아래 중간에는 용이 머리를 내밀고 있는데, 건축학적으로 이 자리는 아치를 만들 때 마지막 돌을 넣어 전체를 고정시키는 중요한 자리다. 여기에 물을 다스리는 동물로 용을 형상화함으로써 물난리를 예방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 옛날에는 용의 코끝에 방울을 달아놓아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났다고 하는데 지금은 종이 없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벌교 홍교 용두>
발길은 다시 가까이에 있는 <김범우의 집>으로 돌린다. 올라가는 고샅길은 뚝뚝 떨어지는 장맛비에 좀 스산하고 무슨 이런 곳에 저택(邸宅)이 있을 까 하는 마음이었으나, 양쪽으로 담쟁이가 빽빽한 외대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안은 제법 넓다. ‘일(一)자’형으로 된 안채가 제법 품위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관리 주체가 누구인지 몰라도 보수와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안채 외의 다른 건물들은 일부가 떨어져 나간 것처럼 을씨년스럽다.
<김범우의 집 대문>
원래 이 집은 대지주 김씨 소유의 집으로, 작가 조정래와 이 집 막내아들과 친구였다고 한다. 소설 태백산맥에서는 품격 있고 양심을 갖춘 대지주 김사용의 집으로 그려진다. 사랑채, 안채, 창고자리, 장독대, 돌담 등 그 모든 형태와 규모들이 대 지주의 생활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안채 오른쪽 앞부분 귀퉁이에 있는 돼지우리는 아무리 대지주라 하더라도 음식찌꺼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려고 돼지를 길렀음을 알 수 있다.
<김범우의 집>
<관리가 안 되는 안대문>
벌교에 가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 한 분 계신다. 바로 그 분은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115에서 태어난 나철(羅喆, 1863∼1916) 선생이시다. 나철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때 과거에 장원 급제했다. 벼슬길에 올랐지만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우리나라에 침략의 손길을 뻗어 오자 <유신회>라는 비밀 단체를 만들어 동지 몇몇과 함께 일본에 가서 “두 민족이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면서 함께 발전해 나갑시다.”호소했지만 일본은 나철의 말을 무시했고 곧 을사늑약을 체결해 외교권을 빼앗았다.
<나철 영정 - 보성군>
나철은 이에 분노하며 일본 천황과 대신들에게 우리나라의 독립을 주장하였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 이완용·박제순·이지용·권중현·이근택을 5적으로 정하고 이들을 없앨 계획을 세웠으나, 이 계획은 실행에 옮기기 전에 탄로가 나고 말았다. 많은 동지들이 체포되자 나철은 동지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홍암 나철선생기념관 지도>
이때 나철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백성들을 하나로 묶는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감옥에서 풀려난 후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 나라를 지키기 위해 1909년에 ‘단군교’를 일으켰다. 그리고 음력 3월 15일을 어천절이라고 해서 단군 승천 기념일로 삼아 큰 제사를 올렸다. 단군교는 환인과 환웅, 환검의 삼위일체인 한얼님을 받들어 민족 기운을 바로 세워야 비로소 나라가 바로설 수 있다고 일어선 것으로, 이듬해에 <대종교(大倧敎)>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철 선생 생가 대문>
나철과 민족 지도자들은 대종교를 퍼뜨리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강연을 했다. 그리고 대종교를 통해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항일 정신을 북돋웠다. 그리하여 많은 동포들이 신자가 되었다. 특히 나철은 교육을 통해 우리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해 수십 군데에 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대종교를 종교 단체로 인정하지 않고 독립 운동 단체로 여겼다. 대종교를 중심으로 백성들이 하나로 모였기 때문에 대종교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심한 감시와 탄압을 했다.
<나철선생 생가 - 네이버캡쳐>
활동이 어려워지자 나철은 단군의 유적이 있는 구월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본총리와 조선총독에게 한국을 침략해 약탈한 것과 대종교 탄압을 각성하라는 훈계를 남기고 순교했다. 나철이 죽은 뒤 대종교는 독립 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서일, 현천묵,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을 비롯한 청산리 대첩을 이끈 독립군 대부분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틀을 세운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등이 모두 대종교의 교인이었다.
<홍암 나철 선생 기념관 개천문 - 네이버캡쳐>
<홍암 나철선생 기념관 - 네이버캡쳐>
창시자 나철의 고향인 보성군 벌교읍에 그를 기념하는 <홍암 나철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지만 이건 독립운동가 나철 개인을 기념하는 성격이 더욱 강한 반면, 대종교 등 민족종교를 통한 독립운동사(獨立運動史)나 조직과 자금 지원 등은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민족종교 말살정책과 외래종교의 우대정책의 영향으로, 그 당시 사이비 또는 유사종교로 낙인(烙印) 찍혀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 민족종교를 유사종교 또는 사이비종교로 오해하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다.
<홍암 나철 선생 유적비 - 네이버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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