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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시 여산면에 자리잡은 천호동굴은 천연기념물 제177호로 지정돼 있다. 1965년 발견된 이 동굴은 호남지방 유일의 석회암 동굴이다. 약 2억5000만∼4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굴 안의 냉기가 대류(對流)해 춘분 후에는 바람이 구멍에서 나오고, 추분 후에는 바람이 구멍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4계절 모두 은은한 뇌성이 울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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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둥굴의 백미 수정궁 전경 |
동굴내부 |
굴 내부에는 다양한 종유석과 석순 등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천호동굴의 백미는 수정궁이라는 동굴 내 광장이다. 거대한 석주과 석순, 지하천수(地下泉水) 등이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천호동굴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천호동굴은 발견된 지 5년만에 폐쇄됐다. 정부는 동굴 탐방객들이 늘면서 무분별하게 종유석과 석순이 잘려나가는 등 자연석을 무단반출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동굴 보호를 위해 1970년 3월31일 긴급 폐쇄조치했다. 이 조치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천호동굴은 2011년 문화재청에 의해 10필지 5만117㎡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호남 유일의 석회암 동굴
천호동굴은 1965년 황성호 목사가 동굴 내부의 신비를 알아보기 위해 굴의 입구를 파괴하고 들어가 굴 내부를 답사하면서 그 비경이 세상에 알려졌다. 동굴의 총 연장 길이는 약 904m다. 동굴 입구에서 100m 거리인 지굴과의 분기점에서 다시 150m를 들어간 곳에 있는 수정궁(水晶宮)이라 불리는 광장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높이 12m의 석주가 무리를 이룬다. 바닥에는 직경 5m에 달하는 석순들이 떠오르는 구름처럼 깔려 있다.
천호동굴 2구역 내부 모습
이 동굴에 대한 기록은 일찍이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고산현에서 서쪽으로 흘러오는 내가 있는데, 호산 기슭으로 새어 들어가 땅속으로 흘러 호산 서쪽으로 나와 내를 이루었다. 물이 나오는 구멍은 한길 남짓으로 속칭 용추라 전하며 가물면 비오기를 빈다”라고 했다. 이미 수 백년 전에 이 동굴의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천호동굴 위치
천호동굴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 호산리에 있다. 금마면 사무소에서 1번 국도를 따라 여산면 사무소 방향으로 약 8km 정도 가면 우측으로 외사, 호월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 약 2.5km 정도 이동하면 익산석회석공업사(현재 휴업상태)가 있으며, 이곳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약 150m 지점에 천호동굴이 위치하고 있다.
여산면은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돼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여산은 농경시대에 유용한 숫돌이 많이 나는 산으로 불리었다. 마한시대에는 여래비래국으로, 백제시대에는 지량초현으로, 통일 신라부터는 여량현 여산현으로 이어져 왔으며 조선조 고종 33년부터 여산군이 여산면으로 불려졌다. 충남 논산시 연무읍과 경계를 이루고 남으로는 왕궁면, 서로는 금마, 낭산면, 서북으로는 망성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우기 하천수로 생성된 석회동굴
석회동굴의 형태를 지배하는 지질구조는 층리, 단층, 절리, 습곡 등이다. 동굴이 생성되는 초기단계에서는 주로 지하수면 근처에서 석회암이 용해되어 동굴이 생성된다.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절리, 층리, 단층 등과 연결되어 지하수의 흐름이 증가하게 한다. 석회동굴의 형태는 동굴류의 수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동굴류가 외부 지표의 하천으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경우에는 단일동로(單一洞路)의 석회동굴이 발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표에서 침투하는 빗물이 동굴류를 발달시키는 경우에는 지굴이 많이 발달한다. 돌리네로 스며드는 빗물은 최상류의 지굴을 만들며, 이러한 지굴들은 하류로 내려감에 따라 서로 결합하여 넓은 통로를 만든다.
천호동굴 내부 전경
천호동굴 주굴은 폭이 좁고, 꼬불꼬불한 경향이 있으나 대체적으로 평평하다. 지역의 엽리와 절리 방향으로 발달한 것은 우기에 유입된 하천수에 의해 주굴이 형성되었음을 시사한다. 구불구불하며 많은 지굴을 갖는 형태를 보이는 것은 주굴이 형성된 후 건기에 동굴 주변의 엽리나 절리와 같은 약선대를 따라 지하수가 주굴로 흘러 들어 오면서 지굴이 형성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수정궁과 같은 동굴의 폭이 넓어지는 곳에는 상부가 타원형이며 하부가 수직인 구조와 낙석이 발견된다. 이는 상부로부터의 지하수 유입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천호동굴의 백미 수정궁
입구로부터 수정궁까지의 좌우 벽면과 천장에는 무수한 동굴생성물들이 분포돼 있다. 10m 전방에는 동굴수가 외부로 유출되는 통로가 존재하며,통로의 천장에는 유석들이 보인다. 지하수 유출 지점에서 13m 전방의 우측 벽면에는 남동방향으로 지굴이 뚫려 있다. 이 지굴은 20m에 이른다. 처음 8m 정도의 지굴 천장에는 종유관이 발달해 있다. 이곳부터 벽면과 천장에는 유석과 동굴산호, 종유관, 톱니형 베이컨시트 그리고 휴석이 자리잡는다. 바닥에는 동굴진주를 찾아 볼 수 있다.
수정궁에서 지굴로 통하는 입구통로
지굴과 주굴이 만나기를 되풀이하다 낙석과 낙반으로 이뤄진 통로를 통과하면 수정궁이라는 동방이 존재한다. 천호동굴에서 가장 다양한 동굴생성물과 가장 큰 석주와 유석이 발달하는 곳이다. 좌측 바닥면은 유석으로 이뤄져 있으며 유석의 윗 부분에 성장하고 있는 석주와 유석이 돋보인다. 우측의 북동방향으로 발달하는 작은 통로에는 휴석소와 휴석소 내부에 발달하는 동굴팝콘,동굴산호, 석순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후 높이 0.4m, 폭 1.4m 정도의 동굴수가 흐르는 6m의 협소한 수로를 따라 주굴의 통로가 연결된다.
뒤늦게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
천호동굴은 발견된 지 반세기가 됐지만 일반 국민들은 동굴 내부를 관람할 수 없다. 천호동굴 입구에는 출입금지 안내문이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을 뿐이다. 동굴이 발견되자 마자 무분별하게 동굴출입이 이뤄지면서 희귀한 종유석과 석순 등이 마구 채취돼 사라졌다. 정부는 동굴보호를 위해 쇠문을 달고 입구를 폐쇄했다. 동굴이 발견된 지 5년만이었다. 지금도 그 상흔은 그대로 남아서 원상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천호동굴 입구는 철문이 닫혀 있고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문화재청은 2011년 방치되다시피 한 천호동굴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동굴주변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희귀 석회암 동굴로서 협곡과 같은 통로 등 미세한 지형이 발달해 있고, 가리비 조개 모양의 침식구조와 동굴 한 가운데 수정궁 광장의 거대한 백색 석주 등이 보존가치가 큰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간 동굴 주변의 오염된 지표수와 축산폐수로 인한 위협 가능성에 마음을 졸여온 문화재 관계자들은 한 숨을 돌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익산시와 협조해 동굴 정화사업 및 보호구역 매입 등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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