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타 10 - 센슈공원에서 옛 구보다성 표문을 보고 내려오면서 아키타견을 만나다!
2022년 10월 31일 아키타역 (秋田駅) 동구에 있는 호텔에서 나와 걸어서 옛 구보다성
해자로 오테몬노호리 (大手門の屈) 라는 연못에 핀 연꽃 을 구경하며 언덕길을
올라가 동문인 구로몬(黑門 흑문) 으로 센슈코엔 千秋公園(천추공원) 으로 들어갑니다.
센슈코엔 공원에 엣날에는 건물들이 늘어섰지만 지금은 빈 뜰을 지나니 정원 이 보이는데.... 한 가운데에
고케쓰 연못 이 있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잉어들도 많이 보입니다.
여기 산 언덕에 자리한 센슈코엔 千秋公園(천추공원) 은 17세기 초 에도막부 시대에 사타케 씨의 거성
이었던 구보다성 久保田城跡 에 자리잡은 공원인데, 혼마루를 구경하고는 다시 언덕길을 올라가
성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적을 방어하는 요새 였다는 구보다성의 오스미 야구라 망루 를 구경합니다.
오스미 야구라 망루 (御隅櫓 어우노) 입장료를 받지 않는지라.... 윗층으로 올라가서는 전망 을 보고
내려오면서 성의 역사를 전시하는 그림 들을 구경하고는 나와 호젓한 산길 을 걸어 내려 옵니다.
혼마루 에서 구보타번 초대 번주 사타케 요시노부 佐竹義宣 의 조카로 2대 번주가 되어
구보다번(아키타) 을 중흥했다는 사타케 요시타카 佐竹義隆 의 동상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하치만 아키타 신사 를 보고는 다시 아래쪽에 자리한 성의 정문인 "구보다성
표문(表門)" 을 구경하는데, 남문에 해당하는 성문은 언덕을 올라 오다가 가파른
급경사에 지어졌으니.... 앞쪽에 지그재그로 통로 를 만들어 방어망 을 형성한 걸 봅니다.
가파른 언덕 위에 지그재그 통로로 따라 올라와 성문을 공격하자면 공격군은 엄청난 희생 을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1868년 메이지유신 무진 전쟁 의 일화가 떠오르니 아키타시 남쪽에 신조번 新庄(신장)
은 신정부군(천황파) 편으로 돌아섰다가 막부측 쇼나이번(야마가타)의 공격 을 받고 성이 함락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동북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측 오우쓰 열번동맹 은 아이즈번, 요네자와번, 쇼나이번과 센다이번등 5만 의
대군이었으나 나가오카번과 니가타번이 신정부군에 함락 되어 버리니... 무기 공급처를 잃어 쇠약해 집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아키타번은 당시에는 구보다번 이라고 불렸는데 역시 오우쓰 열번동맹 이었으나
전쟁 중에 탈퇴해서 신정부군(천황파) 편 으로 돌아서자 아이즈번 에서 사자를 보내니
살해하자 막부측 모리오카번이 배신자라고 힐난하면서 구보다번의 오다테성을 공격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9월 4일 막부측 요네자와번 우에스기 나리요리가 조슈번(야마구치), 사쓰마번(가고시마),
히젠번(사가현), 도사번(시코쿠 고치) 이 주축인 신정부군(천황군) 에 항복 하니 9월 10일
센다이번도 뒤따라 항복하고 9월 22일 아이즈번에 이어 쇼나이번 도 9월 24일 항복하게 됩니다!
언덕 위에 견고하게 생긴 표문(남문) 을 구경하면서 1868년의 무진전쟁 을 회상하다가
다시 문을 통과해 그 아래 돌계단을 내려가는 대신에 오른쪽으로 구부러진 좁은
비탈길로 들어서는데..... 실은 지도상에 보이는 "다실 선암" 을 보기 위함 입니다?
그런데 한 건물에 이르러 위치로 보자면 다실 같은데..... 홍보 사진에 나온 연못 이
보이지 않는지라 지나쳤더니, 그 앞쪽에는 비슷한 건물이 없는 것이
분명하니 다시 되돌아가서확인해 보니 아마도 연못의 물이 말라버린 모양입니다?
표문 아래에서 옛 다실 을 구경하고는 걸어서 내리막길을 접어 들어
지도를 보며 "다카노 마쓰" 라는 오래된 소나무 를 찾고 있는데......
이때 가슴은 희고 등은 갈색인 진돗개 비슷한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선 아가씨를
마주칩니다. 내가 사진 을 찍어도 좋으냐고 물으니 쾌히 허락하고 포즈
를 취해 주기에 찍고는 이 개가 바로 "아키타개" 가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답니다.
"아키타 개" 는 우리 진돗개나 풍산개 처럼 아키타산 명물로 리처드 기어 주연으로
영화 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일본 첫 여행시 도쿄 시부야역
에서 보았던 유명한 동상으로 "충견 하치코" 는 바로 여기 "아키타 개" 라고 합니다.
"아키타 개" 는 몸집이 큰 탓에 전후 "식량부족" 으로 곤란을 겪던 시절 멸종 되다시피 했는데.... 한국의
가난한 농촌에서 늦봄 보릿고개로 굶주리며 고된 모내기와 김메기를 하고나면 허약해진 몸으로 무더운
여름철을 날 때 집에서 기르던 개는 쇠약해진 몸을 보충하고 원기를 회복 하도록 했지만, 일본인들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조차 먹지 않았던지라 보신탕 문화가 없으니 개는 쓸모가 없는지라 굶겨죽인 것입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일본에서는 아키타견이 거의 멸종됐지만 다행히 미군들의 사랑을 받아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으며 지금은 아키타현에서 보존운동 도 벌이고 있다는데, 전후 극심한 빈곤 속에 사람도 먹을게
없어 굶어죽어 가는데 식량을 많이 축내는 덩치 큰 아키타개는 천덕꾸러기라 멸종 되다시피 했던 것이라?
사람도 굶어죽는데 개를 키울 염치 가 어디 있느냐던 시절을 생각하니.... 불현듯 세기의
요정 이라고 불리는 여배우 오드리 헵번 의 날씬한 몸매 와 우아한 용모는, 실은
세계대공황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굶주림으로 인한 병마의 흔적 이라던게 떠오르네요?
오드리 헵번의 아들 루카 도티 는 “내 어머니 부엌에 대한 추억” 에서 헵번이
굶주렸다는건 요리를 해주던 어머니에게서 들은 어릴적 얘기 라고 합니다.
도티는 "밥상머리 전기" 라 이름 붙인 이 책에서 어머니는 평생 전쟁 을 끌어안고
살았다며 나치 치하에서 굶어죽은 네델란드인이 2만 2천명 에 달할 때....
어머니는 튤립 구근 까지 캐먹으며 39kg 체중 으로 "살아남는데 성공" 했다나요?
그 때문 일까요? 그녀는 나이 들어서는 아프리카등 굶주리는 아이 들을
위한 봉사에 평생을 바치는...... 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때 공소리가 들리고..... 마눌이 여학생들이 테니스 를 치고 있다기에 내려와 보니
테니스는 아니고 말랑말랑한 고무공 을 사용하여 경기하는 연식정구 입니다?
내 취미가 첫째 테니스, 둘째 여행, 셋째 바둑, 넷째 독서인지라 참새가 방앗간을.....
19세기 말에 일본 사람들은 테니스의 용구난과 비싼 가격, 그리고 왜소한 체격 으로 인해
경구(硬球) 대용품으로 고무공을 고안하여 테니스를 했으니 연식 정구 라고 불렀는데
모방의 천재 라는 일본인들이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것을 변용한게 정구뿐만은 아니고...
나가사키 짬뽕 은 인천의 자장면 처럼 규슈 나가사키 차이나타운의 화교들이 만들었으니 그렇다
치고 불교와 영농 때문에 1,200년간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지 않던 일본인들이 육식 을
하면서 고안한 것이 돈까스에 함박스테익, 카레라이스, 오무라이스, 고로케, 단팥빵, 라면 등....
아키타 여고생들이 정구연습 을 하는걸 철망 너머로 오래토록 지켜 보는 것은 내 취미가 옛날에는
전국의 산이라는 산은 다 올랐던 등산이었으나, 지금은 여행에다가 테니스, 바둑, 독서 그 중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열중하는 것이 테니스 라..... 그 형제 종목인 "정구" 라서 그런가 봅니다?
아키타 여고 건물에 “和魂洋才 (화혼양재)” 란 문구를 보는데 19세기에 서양문물 이 밀려
오자 중국에서 “중체서용 (中體西用)” 에 뒤이어 일본에서 나온 말 입니다.
서양의 물질문명 은 기꺼이 수용하겠지만 "동양의 정신적 가치" 는 포기하지 못하겠다는?
일본의 “和魂洋才 (화혼양재)” 이어 조선에서도 "東道西器 (동도서기)" 라는 말이 생깁니다.
동양의 정신(道) 과 서양의 기술(器) 을 결합하자는 주장인데, 유교국가 중국과 조선은 실패
하고 일본이 근대화 성공한건 정신문명과 기술문명 이 애초 부터 구분될 수 없기 때문 일까요?
중국과 조선은 유학이 나라의 근본이고 목적 인데 비해.... 일본에서는 통치 수단 이었으니
서양 의학 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음양 오행을 기반으로 한 동양 의학 을 버려야 하고
서양의 정치 제도를 받아들이기 위해선 동양의 유교 왕정체제 를 버려야만 하는 것이라....
성을 둘러싼 서쪽 해자 를 지나면서 보니 저만치 멋진 호텔 이 보이는데 예전에 왔을
때는 밤이었던지라..... 저 호텔 정문에 햇불이 타오르는 모습 이 인상적
이었다는 기억이 떠오르는데 저기서 묵으면 성을 바라보는 전망 또한 훌륭하겠네요?
일본은 기독교도 숫자가 1% 에도 미치지 못하는지라 드물게 보는 성당 을 지나..... 다시 남쪽 해자 를
걷는데, 연꽃 무리를 지나니 성 동쪽과 만나는 지점에 성의 정문인 오테몬 (大手門 대수문) 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아키타역으로 돌아와 기차를 타고 오야스코 온천으로 가기 위해 먼저 유자와 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