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밀매음 기생녀, 학생 중에도 그 정체를 모를 측"(1931년 7월 3일자)이라고 썼다.
1923년엔 충남 보령군수가 웅천면(熊川面) 무창포 해수욕장을 만들기 위한 진입로 공사에 농민들을
동원하려 하자 농민들이 "해수욕장은 인민에게 아무 이익이 없는 일"이라며 집단 반발해
1400명이 군수에게 보내는 항의성 진정서에 도장을 찍은 사건도 있었다.(1923년 4월 10일자)
초창기 해수욕장 풍경에서 오늘날과 가장 다른 것은 수영복, 특히 여자용 수영복의 모양이다.
당시 조선일보에 보도된 여자용 '해수욕복' 사진들은 반바지 같은 하의에 반팔 상의를 입는 평상복 스타일이 많다.
속옷 느낌이 아니라 겉옷 같은 수영복이었다.
얼마나 옷감이 많이 들어갔는지 "헌 여자 해수욕복 하의로 어린이 잠방이(가랑이가 짧은 한복)를 만들고,
상의는 어린이용 블라우스를 만드세요'라는 기사가 '생활의 지혜'로 소개되기도 했다.(1940년 7월 9일자)
'모던 뽀이' '모던 걸'들에게 해수욕장은 욕망의 해방구였지만
보수적인 어른들에게는 천하에 위험한 공간이었다.
조선일보 기사엔 "피서라는 것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의 노릇…미쳐 날뛰는 푸른 바다에,
입으나 마나 한 해수욕복을 입고서 물과 싸우는 것"(1931년 7월 3일자)이라는 표현도 있다.
해수욕장을 '여성들의 타락을 유도하는 위험한 공간'으로 묘사한 기사가 자주 보인다.
1931년 7월 3일자 부인면 톱으로 게재된 '온천·해수욕장 피서지, 위험한 지대'라는
기사는 (해수욕장에서) 마음이 허한 여자는 자연의 위력과 자기 자신의 미에 도취하여 가지고
방탕하게 변하는 수가 많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정조의 유린까지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라고 썼다.
1935년 8월 1일자 '여름 피서지 유혹…경계해야 할 이성관계'라는 기사는 피서지에 불량배들이 들끓고 있다며
"이러한 곳에 순진하고 아무 분간없는 어린이들을 어른의 감독이 없이 그대로 내여놓는 것은 마치 이를
갈고 있는 맹수의 앞에 살진 고깃 덩어릴 내던지는 것과 같습니다"라며 자녀들을 보내지 말라고 충고했다.
첫댓글 분수에 맞는 피서를..ㅋㅋㅋㅋㅋㅋㅋ 지당한 말씀..ㅋㅋㅋ
저희 20대 초반때도 열차 [ 비둘기호 ] 타고 친구들과 여름피서나 무전여행 갈때 인파 장난 아니었었지요 .그때는 포항이나 영덕쪽으로 비둘기호 열차타면 시간이 엄청걸려서 의자 밑에 들어가서 자기두 했어요 ㅎㅎㅎ^^
광나루인파 인상적이네요
지금그대로 남았더라며 생각만해도~
오랜 세월이지난 ... 흑백사진 ... 인상적인것 같아요 ~~~ 천년만세님 ^^
대한~뉘으스....맞죠!ㅋㅋ
해운대 파도가... 겁납니다...특히 이안류,ㅋ~
80년초중반때 만해도 ... 해운대 해수욕장 ... 모래사장 폭이 꽤 넓었는데 지금은 많이 좁아진것 같아요 ~~~ 발보아님 ㅎ ^^
^^ 팥빙수 !! 요즘 저렇게 만드는 곳 없겠죠?
지금은 없겠지요 ㅎㅎㅎ
저러고 가고 싶지는 않다;;
그시절엔 다 저렇게 다닌것 같다는 ㅎ
밭에서 금방따온 참외와수박을 원두막에서 먹는맛이란 !! ~~~ㅋㅋ
꿀꺽 꿀꺽 ~ 생각만해도 군침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