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에 가면 김좌진장군이 계십니다.
백야 김좌진장군(1889-1930)은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장이며 독립군총사령관이었습니다.
홍성의 천석군 부잣집에서 태어난 장군은 일찍부터 양반과 평민으로 나뉜 신분제사회에서 핍박받는 약자의 처지를 보았습니다.
구한말... 무능한 조정, 일제의 침탈은 평민의 삶을 더욱 가혹하게 하였지요.
선친이 타계하자 장군은 어린 나이에 집안의 모든 토지를 수십명의 종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종문서를 불살라 해방시켰습니다.
그리고 학교를 세워 계몽교육을 시켰습니다.
오씨 부인과 결혼을 하였지만 자녀가 없었습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됩니다.
서울에서 동지들과 힘을 합쳐 친일로 재산을 모은 재산가들의 집을 털어 군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이 과정에 일경에 쫓겨 어느 집으로 숨어들어 3개월을 살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 그 집 처녀와 정이 들었고 그 사이에서 유일한 아들 김두한을 얻지만...
곧 만주로 건너가 무장투쟁을 합니다.
1920년 장군이 이끈 청산리전투는 2500명의 독립군이 약 3만명의 일본군과 맞붙어 일본군 3000여명을 사살했던 최대의 전투였습니다. 독립군의 피해는 100여명의 사상자가 전부였지요.
이 전투 이후로 일제는 김좌진을 잡으려 혈안이 되었고...
결국 장군은 1930년 일제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원 박상실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김두한의 생모 박계숙... 비운의 여인이었습니다.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이 크게 패하자 박계숙은 종로경찰서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 끝에 죽게됩니다.
장군과의 3개월 만남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었던 비운의 여인...
그리고 험난한 삶을 살아야 했던 김두한...
사람의 일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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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에 있는 김좌진장군 생가 안내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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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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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즈막한 야산을 주산으로 해서 자리잡은 장군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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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에서 장군의 생가를 잘 정비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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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삶을 살았던 분의 발자취를 찾아 그 정신을 배우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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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진이라는 문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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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무장을 배출한 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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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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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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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생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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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 기념관.
장군과 관련된 여러 유물과 행적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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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빛나는 청산리 전투...
일제에 분연히 맞서 일어나 정면으로 싸웠던 사내 대장부들의 치열했던 현장입니다.
열악한 장비였지만 강력했던 일본군을 만주 청산리계곡으로 유인해서 섬멸했던 전투였습니다.
이순신장군에 이어 나쁜 일본군을 응징했던 대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암울했던 이 나라 백성들은 김좌진장군과 청산리전투에서 큰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장군의 당당한 모습에서 장부의 기상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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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 이후로 일제는 장군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독립군은 일본군에 쫓겨 이리저리 피해다녀야 했습니다.
일본은 만주에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침략에 열을 올렸습니다.
급기야 1931년 만주사변으로 일본이 만주 대부분을 장악하자 독립군들은 중국본토, 러시아 지역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혼란의 시기에 장군은 일제의 사주를 받은 공산당원에게 암살되고 맙니다.
41세의 한창 나이였습니다.
장군이 순국한지 3년 뒤에 장군의 고향 본처가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비밀리에 만주로 가서
이름모를 땅에 외롭게 누워있던 장군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돌아와 고향에 모셨습니다.
장군의 어머니와 본처... 대단한 여인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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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에서 조금 떨어진 선산에 있는 장군의 묘 안내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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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묘역으로 오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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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같았던 장군이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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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에서 태어나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마다하고...
사회의 약자들을 위해, 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오직 한 길을 가셨던 장군의 의로운 삶 앞에 머리가 숙여집니다.
주님, 김좌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몇년 전 김좌진장군의 유일한 아들 김두한의 일대기를 소재로한 드라마 '야인시대'를 즐감했었습니다.
김두한(1918-1972)... 5살 무렵에 할머니와 함께 만주를 찾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어린 김두한이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
너는 장군의 아들이다. 사내답게 살거라!"
김두한은 청산리 전투 이후 일경에 의해 집안이 풍비박산 된 후 청계천 수표교 거지촌으로 흘러들어가 거지가 됩니다.
만주로 건너가 독립군이 되고자 했지만...
1931년 만주사변과 함께 일본군이 중국 전역을 장악해 가면서 독립군들도 중국내륙으로 더 깊숙히 숨어들 수밖에 없었고,
국내와의 연락도 거의 끊기거나 극히 어려웠습니다.
김구선생님의 임시정부식구들도 극비리에 이리저리 쫓기던 시절...
어린 김두한에게 중국으로 가는 길은 막히고 맙니다.
17살 나이에 김두한은 주먹계로 진출해서 당시 종로 일대를 장악했던 조선 주먹의 황제 구마적 휘하의 쌍칼 부하가 됩니다.
쌍칼은 내심 독립운동에 뜻이 있던 김두한의 마음을 읽고 다음과 같은 말로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종로는 조선의 심장부다. 우리는 조선상인들을 일본의 약탈에서 보호하는 거리의 독립군이다.'
드라마 내용을 전부 믿지는 못하겠지만 일본인에 대한 김두한의 적개심은 적지 않았지요.
당시는 일본 야쿠자가 조선에 진출하여 상권을 장악하던 때... 종로는 조선의 자존심과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구마적이 종로를 호시탐탐 엿보던 일본 야쿠자의 하야시와 협력하려 하자 쌍칼은 반기를 들었고...
쌍칼이 구마적에게 패하고 주먹계를 떠나자 김두한이 쌍칼패의 두목이 됩니다.
타고난 강골에 뛰어난 싸움꾼이었던 김두한은 결국 조선 최고의 주먹 구마적을 물리치고 조선 주먹의 황제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 때가 1936년, 김두한의 나이 불과 18세 때였습니다.
한국주먹계 계보
1. 낭만파 주먹시대(1910-1945)
일제강점기 한국에 진출한 일본 야쿠자의 대표는 하야시(한국인으로 일본 야쿠자 두목이 됨. 한국명 선우영빈)
조선에는 종로를 중심으로 구마적(고희경)을 정점으로 신마적(엄동욱), 쌍칼(김기환)의 3자 구도
1936년 김두한의 주먹계 천하통일
2. 정치깡패시대(1945-1960년대)
김두한이 정계로 진출하면서 명동의 이화룡과 동대문의 이정재로 양분. 이정재 휘하에 임화수, 유지광 등이 활동
이 시기는 주먹들이 정치와 결탁해서 주로 야당테러를 일삼음.
3. 전국구시대(1960년대-1980)
5.16구테타로 정치깡패가 철퇴를 맞자 명동의 신상사파(신상현)가 잠시 천하통일
이후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파, 조양은의 양은이파의 3대 패밀리 구도
지방에서는 부산의 칠성파(이강환), 대구의 동성로파(오대원), 수원의 수원파(최창조), 대전의 옥탑파(김옥태), 이리의 배차장파(김항락) 등이 할거.
이 시기는 주먹시대가 가고 칼잡이 시대로 바뀜.
4. 기업가형 조폭시대
1990년대 이후 기업과 유흥업소로 진출해서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시대로 바뀜.
이름도 주먹에서 조폭으로 바뀜.
태어날 때부터 약자로 살았던 김두한은 약자들의 처지를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해방 후 김두한은 국회의원이 되어 정치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박정희정부의 독재가 시작되고 권력자들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배만 불리는 것을 보고 환멸을 느낍니다.
결국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자,
그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국회에서 당시 증인으로 출석한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똥물을 퍼부은 일은...
아마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유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암울한 시대에 풍운아로 살았던 김두한은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