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
운선 님의 책에 대한 느낌을 세 시간 넘게 썼다.
저장하려고 하니 순식간에 날라갔다.
오후에는 문학협회에 사진 제출하고, 서점에 들려서 책 고르는데 피곤해서 일찍 귀가.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에 대한 내 느낌을 다시 쓴다.
여자 나이 스물두 살.
이 나이에 조기 결혼하고, 스물세 살이 첫아이 낳고, 스물여섯에 둘째 낳았다.
앳된 나이 스물여섯에 소박맞아서 첩(나쁜 단어)한테 남편 빼앗겼다. 아장거리는 머슴아 걸리고, 젖먹이 등에 없고는 서울 노량진의 성로원에서 입소하여 어려운 삶을 이끈다.
아홉살 초등학교 2학년이 학력 전부이다. 어머니는 30대 나이로 세상바깥으로 나갔고, 무능한 아버지는 30대에 홀아비가 되었다. 주인공인 나. 아홉살에 부엌데기가 되었고, 열서너 살에 애보개가 되어서, 남의 집 애기들을 등에 엎고 살아야 했다. 등짝에 오줌이 마를 날도 없이... 그렇게 일해서 얻어온 찬밥덩어리. 그 밥으로 가족들이 먹어야 했고...
어린 나이 때도, 결혼 한 뒤에도, 그 뒤 많은 나이가 되었는데도 힘든 삶은 늘 연속이었다. 서럽고, 피곤하고, 억울한 삶인데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내 안의 또다른 나'가 들어 있었다. 자기만의 세상이 있었다.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고, 우아한 여자가 되어 남한테 사랑받는다고 상상해야 했다.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 가공의 이야기를 꾸며내야 했다.
독자인 나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여인보다는 현실적인 여자를 꺼냈다.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라는 산문집에서 섬뜩한 단어를 숱하게 꺼집어 냈다. 작가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는 용어들이다.
'첩, 본처, 축첩제도, 작부, 자유부인, 과부, 남의 서방, 춤바람 남자바람, 소박데기, 부엌데기, 재취, 섹시한 남자, 색시장사, 수작질, 샛서방, 음탕한 요염한, 사랑앓이, 영계, 관능미, 홀랑 벗다, 술상머리, 작부퇴물, 불륜커플, 병신 쪼다, 홀아비, 쥐어 패다, 손찌검, 더부살이, 방세, 세방살이, 세월의 풍파, 할줌마, 가임기, 핏대, 늙수그레한 여자, 살집, 점방주인, 야설 색설, 아이샤도, 썅욕, 생선지게, 남편이란 작자, 뺑삐언니,...'
위 단어, 문구들은 숨이 턱턱 막힐 정도다.
내가 정말로 싫어하는 단어는 있다. 첩(妾), 축첩이다. 내 어머니는 열여섯 살에 동네 머스마와 결혼했다. 섣달그믐이 생일이니 실제로는 만나이 열네 살 가을에 조기 결혼했다. 남편이 객지로 나간 노동자였던 탓일까? 내 엄니도 위 운'선' 작가님처럼 스물여섯 살에 시앗(작은 마누라)을 보았다. 내 어머니는 그때부터 평생 가슴에 응어리를 짊어지고 살아야 했다.
내 어머니는 위 작가처럼 무학자이다. 일제시대, 아버지(나한테는 외할아버지)는 배(어선) 빚 보증으로 망했다며, 소학교 입학 통지서를 가져온 구장을 되돌려 보냈단다. 계집애(내 엄니)는 며칠 간 울고불고 틀었으나 끝내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내 엄니는 동네 야학조차도 하룻 만에 그만 두었단다. 처녀애가 마실 다닌다고 아비(나한테는 외할아버지)한테 혼났단다.
스스로 터득해서 언문을 배웠고, 서방 빼앗긴 설음을 옛날 이야기 책을 통해서 달래야 했다.
내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원만하지 않는다고 오래 전 나한테 말했다. 진짜일까?
내 어린 시절, 엄니는 삼국지 등의 이야기를 숱하게 우리한테 들려주었다. 상산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유선)을 구하는 대목은 정말로 신나는 전투장면이었다.
내 어머니한테는 아픔이 늘 따라다녔다. 어머니가 배 아파 낳은 큰딸은 얻어온 떡을 먹다가 목에 걸려 질식사했고, 똑똑했다던 큰아들은 옴병으로 사흘만에 급사했다. 그 후에 둘째딸과 쌍둥이인 나와 동생을 낳았으나 작은쌍둥이는 스물두 살 때 뱀 물려서 20시간 만에 죽었다. 어머니 나이 쉰한 살 때, 여름방학 때에 시골집에 왔다가...
어머니의 아픔은 6.25 전쟁 때에도 있었다. 시앗네 식구들은 도시에서 시골로 피난 나왔고, 바로 이웃 집에서 살았단다. 어머니는 가슴이 폭폭할 때에는 장터 큰다리로 가서 세 아이를 양팔에 안고 강물로 뛰어들고 싶었단다. 머리 깎고 중이 되려고 숱하게 갈등을 빚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누나와 나, 쌍둥이동생은 흐느껴야 했다.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
작가는 내 엄니보다는 더 힘들게 살았다고 본다. 작가는 일해야만 먹고 자식을 거두고 가르칠 수 있기에.
내 엄니는 재산을 다시 일으켜서 머슴을 둘이나 두고 농사 지었고, 남편인 내 아버지는 객지에서 영세 사업체일 망정 자가용 기사 딸리고 살았기에 위 '운선'네와는 상황과는 매우 달랐다.
나는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를 돌이켜본다. 내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이다.
나는 먹고 입고, 학교 다니고, 돈 쓰는 것에는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내 아버지는 본처를 내쫒지도 않았다. 본처의 자식들도 가르쳤다.
예순여섯 살 폐암 걸려서 먼 길 떠났다. 내가 서른다섯 살 때, 서울에서 직장생활할 때였다.
나는 노동자인 아버지한테는 빚 하나도 갚지 못했다.
어머니한테는 빚을 조금은 갚았다. 내가 퇴직한 뒤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와 함께 둘이서 몇 년간을 살았다. 아흔일곱 살의 어머니가 먼 길 떠날 때까지도 나는 빚을 조금은 갚았다.
오늘이 2017년 3월 17일.
며칠 뒤 내가 시골로 내려가면 지난해에 이어 아비와 어미의 합장 무덤 앞에 상석을 추가로 세울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둘레석, 망두석 등을 세웠고...
모두가 잊어야 할 아픔이다.
나한테는 '내 안의 나는...'이 없다.
배 곯지도 않았고, 서른살까지도 공부할 수 있었기에 현실 도피용으로 상상의 날개를 펴지 않고도 살았다.
하지만 내 어머니한테는 '내 안의 나는 ...'이 들어 있을 게다.
그런데도 내 어머니는 배다른 자식들(5남매)을 용서했나 보다.
3년 전, 어머니 유언장을 작성할 때 내가 슬쩍 물었다.
'대전 애들한테도 재산 나눠 줄 거요?'
'주게 생겼으면 주어야겠지...'
'... ...'
'운선' 이순자 작가한테 고마워 한다.
나는 '내 안의 나는...'를 오랫동안 더 생각해야겠다.
내가 누구인지를 꺼내야 할 이유가 생겼기에.
2017. 3. 17. 금요일. 곰내
이런 경험은 벌써 서너 차례이다.
다른 곳에서 글 쓴 뒤에 여기에 옮겨야 한다는 경험을 얻었다.
중간 중간 저장키를 눌러야 하는데...
한 번 집중하면 오로지 하나만 생각하기에...
저장키 누른다는 그 생각조차도 못하기에...
다시 쓰려면 글이 전혀 어뚱한 방향으로 틀어지는데...
이런 경험은 얻고 싶지 않은데..
허리 아픈 내가 꼬박 세 시간이나 앉아서 글 썼는데...
빙그레 웃는다. 내 삶이란 늘 그렇지 뭐..
시내에 나갔다가 귀가한 뒤 새로 쓰려니 글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뒤틀렸다.
윗 글이다.
첫댓글 아마 글이 자동 저장 되어 있을겁니다, 글쓰기에서 저장 불러 오기 해보시길요 !
글 쓰시다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자동으로 중간 중간 저장 된답니다 ^^
고맙습니다. 그런 기술 모릅니다.
이 카페에서 글 쓰다가...
곰내 님. 허탈하셨겠네요. 자동 저장된 것 불러내 보세요.^^*
고맙습니다.
자동저장? 그런 기능 모릅니다.
이 카페에서 글 쓰다가...
1차로 한글 워드 에 작성해야 띄어쓰기도 검증되고
저장하면 달아날일도 없구 누구나 경험했던 일들이지요~
고맙습니다.
한글워드에 작성하는 게 가장 무난하겠지요.
예전에는 다른 형태의 'word' 글로 썼는데 이게 작동불능... 그 시스템이 사라졌대요
댓글 고맙습니다.
곰내님 곰내님
세상을 살어가면서 위를 보면은 힘들어요
나자신이 견디지 못해요
대신 아래를 내려다 보면 나는 행복합니다
내가 가진것이 더 많기 때문이죠
이것이 인간들에 못된 심보에요
누구나 다 가진 심보
그 것을 깨우칠때 는 그만치 아픔이 시련을 격어야만이
깨우칠수 있는것을
헌데 곰내님은 한편에 책으로 꺠우쳐스니 참 대단 하십니다
저도 그것을 깨우칠떄 까지는 엉청 힘든 고난에 시간들을 보넀지요
내자아는 돈도 명예도 아닌 가슴이 따 뜻해지고 싶은
아주 작은 소망이지만 이제는 조금씩 조금씩
느낀답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로 걸어 들어 갔기에
난 곰내님의 사상이 곰내님의 그 솔찍하심이 좋아요
빙그레 웃습니다.
가시장미님은 사람과 사람 사이, 틈사이로 걸어들어 갔군요.
땀내나고, 때로는 간특하고 교활하고 허세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착하고 선하고 따뜻한 가슴을 지녔다고요.
그 어둠을 헤치고 올곧게 크는 사람을요.
두꺼운 책이라도 단 하나의 단어, 한 줄의 말이라도 많은 것이 들어 있지요.
위 '내 안의 나는...' 이 문구에는 많은 인생관이 들어 있더라고요.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가시장미님이 보고 싶군요.
세계 75억 명의 가운데도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란 고작...
댓글 고맙습니다.
크고 작은 전쟁 이후...
남자가 절대 부족이었던가요?
그 시절엔 왜그리 씨앗이 많았을까요?
나의 시댁인 경주만 내려가도
집안곳곳에 첩의 흔적이 남아 있더군요.
배다른 형제들끼리 남보다 못하게
무덤덤미 살고 있는것을 보고
나의 시아버님은 일찌기 혼자되셔도
평생을 홀로 사시어 그것이 큰 자랑이지요.
운선님이나 곰내님 어머님은 그리도 폭폭한 사람을 살면서도
상대를 원망하지않고 내팔자려니... 하고 사신것같아
웬지모를 억울함이 차 오르네요.
그래도 아드님에게 남은 생을 의지할수있었으니
행복하게 눈을 감으셨을것 같읍니다. ^*^
은선님, 긴 댓글 고맙습니다.
한 세대 저 너머 세상에는 성에 대한 인식이 무척이나 흐려졌다고 봅니다.
남자나 여자도 모두 똑같이...
내 아비, 내 작은엄니...
그 후유증. 나는 아무 말도 안 할랍니다.
가해자, 피해자 셋은 모두 저 너머의 세상으로 떠났고, 나한테는 배다른 형제누이 5명이 아직도...
용서와 배려가 답일까요? 잊혀지는 것도 용서의 한 축일 테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