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을 끝내고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신문을 펼쳐든 참이었다.
웨이크보드를 타러 차를 몰고 나간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하고는 했는데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이 시간에 전화라. 뭔가 석연치않은 느낌이 들었다
웬일인고? 아직 도착 안했을텐데?
엄마 일냈어 가드레일을 박았어 어떻게 해?
딸아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지만
마음을 추스려야했다.
너는? 괜찮은거니? 안 다쳤어? 다른 사람은? 상대방은?
주말마다 차를 끌고 다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고 참으로
운전을 안전하게 잘하고 있다고 우리는 딸아이를 칭찬하고는 했다.
운전에 익숙해질 무렵이 사실 제일 위험한 때임을 누누이
딸아이에게 듣기 싫도록 강조하였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천안으로 들어가는 길에 커브가 심해서 운전석
옆에 놓아두었던 커피가 엎질러진거야. 그걸 잡으려는 순간
차가 가드레일을 박았어 나는 괜찮은 것 같고 다른 차랑 부딪치지는
않았어. 차 범퍼하고 옆쪽하고 바퀴에 문제가 생겼어. 비용이
만만치않을것 같아. 어떻게 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도 운전경력 삼십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렇다할 사고는 없었다. 우리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였다.
네가 제일 소중해.너 안 다쳤으면 됐으니까. 괜찮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보험사에 전화해. 마음 가라앉히고.
다음부터 더 조심하라는 경고 아니겠니
그렇게 어른스럽게 말하는동안 내 가슴이 얼마나 벌렁거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는 잔걱정이 많은 축에 속한다. 걱정도 많으셔. 아이들이
내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다. 일처리가 되는대로 딸아이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왔으면 싶었다. 딸아이 얼굴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렉카가 달려와 정비소로 데려갔고 보험사에서 와서 처리가 다 되었노라는
전화가 왔다. 망가진 가드레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단다. 일사천리로
신속하게 처리되었단다. 정비소에서 사고난 차를 정비하는 일주일동안
차를 빌려준다니 사람들과의 약속 장소로 일단은 가겠단다. 가깝단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나? 저는 말짱하다나? 딸아이는 그렇게 말했으나
걱정이 많은 나는 걱정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집으로 그냥 오지?
그러기를 바랬다.
웨이크보드는 타지 않고 하루저녁 푹 자 본 뒤에 몸이 괜찮으면 아침에
한번 타겠단다. 아침이 되니 몸도 좋고 물도 좋아서 너무 재미있단다.
저녁에 한번 더 타고 늦게 올라온단다. 나쁜 딸. 제 어미 걱정하는 건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밤 11시가 넘어도 오지 않는 딸아이를 기다리느라 나는 전전긍긍이었다.
괜찮아서 잘 놀고 있다는데 나는 왜 걱정으로 가슴이 답답해진단 말인가.
11시가 넘어서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하고 너를 기다리는지
모르는거냐. 빨리 와야할 거 아니야. 가슴이 터질 지경이다.직접 집으로
와야지 교대역은 왜 들렀다오는거야?
이럴 때 내 목소리는 악마의 소리가 난다. 어디서 그렇게 높고 크고
괴물같은 소리가 나는지 나도 나를 모를 지경이다. 잘 참아내다가도
결국은 풍선처럼 어느순간 펑 터지고 마는 내가 나는 싫다. 밉다.
참고 기다렸다가 딸아이를 안아주면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음주터 조심하라고 토닥여주었으면 얼마나 근사하고 속이 깊은 엄마인가.
창피해서 혼났다니까. 함께 있던 사람들이 엄마 흥분한 목소리 다 들었단
말이야. 그 정도 사고에 대해서는 사람들 무덤덤하던데. 엄마만 난리야. 흥!
나도 그런 내가 사실 너무도 창피했지만 아닌 척 잡아떼야 했다.
왜 다들 들으라고 했다 왜? 왜? 사고난 딸 걱정하는 엄마 맘이다 왜?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