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 위만조선]이라고한 임 기환 "동북아역사재단" 지도작성의 책임연구원?에 대한 질타는 끝이 없는 "사이코월드역사학자"의 본보기입니다.
도종환의 역사코미디?? - 신라가 사로국인 줄도 몰라?
이는 과거의 이 덕일 소장의 어린 시절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일로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으로 즉 '이 병도"의 삼한설, 원삼국시대"에 대한 것으로 "삼한설" 삼한중 "진한내 附庸國인 사방 100리 "사로국"과 가야 사방 50리가 변한 12국/6국이라고 해도 사방 50리로 "한반도"남단에서 시작한 것이 맞냐고? 즉 "삼한설,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에 의한 원삼국시대"는 "이 병도"의 사이코월드 사이코역사인데 어디에서 사방 4000리가 사방 400리로 그것도 "사로국 사방 100리가 전 신한 12국이고 변한 12국 1 소읍이 사방 100리면 사방 600리 즉 "6가야"면 사방 600리지 어째서 사방 50리냐는 것을 질문하고 기본 "삼한설, 원삼국시대"는 僞史로 이병도 사이코월드사다 이를 부정한다는 것을 질의한 것인데 기독교 사이코 언론기자는 이를 가지고 "문구" 즉 신라가 "사로국"이라는 것도 몰라?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할 수 있냐고 비아냥 됩니다 문제 질문의 핵심이 아니고 "이 사이코패스증" 감염자들은 사회독소 유태쪽발이 증후군들로 격리수용이 필요한 중증 사이코 패스들이다.
임기환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신라와 백제를 그렸는데요. 3세기 이전에는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백제국과 사로국으로 표시를 했습니다. '삼한 소국의 분포 151~251' 안 지도를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도종환은 임기환의 답변 내용을 알아듣지 못한 채 "왜 서기 300년에도 신라·백제·가야가 왜 표시돼 있지 않느냐"고 다시 질문을 한다. 임기환도 다시 강조한다.
"저희 지도 마한에서 백제의 성장 251년도의 백제 영역이 그려져 있습니다."
기자가 도종환의 위 질문들에 대해 경악한 8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도종환은 "백제·신라가 처음부터, 혹은 건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광역 단위의 영토를 가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행정력과 강역의 상관관계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사이코월드와 이야기하는 것 같다, 우선 "삼한설 원삼국시대"는 "삼국의 건국시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쓰다 소키치의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으로 신라의 고대국가형성은 박씨왕조 기원전 57년 ~ 기원후 356년 내물마립간의 김씨세습전까지는 부족사회집단정도로 보고 "진한"으로 표기하고 금성을 "사로국"으로 전 강역이 우선 사방 100리로 그리고 있습니다 물론 "동북아역사재단"은 좀 더 크게 그렸네 아니네 하는 문제가 아니고 개념설정이 사이코 패스 "이병도"의 삼한설에 기초한 현행 국사 교과서들로 이 덕일 소장의 과거 지도도 전부 "이 병도"의 사관으로 물들었던 것을 말하고 이를 "바로 잡자 잡아야만 한다"는 도종환의원의 질문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1세기 경, 원삼국 판도. |
즉 삼한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으로 그린 "삼한 원삼국시대" 1세기 전후의 국사 교과서로 이러한 현행 국사 교과서 집필에 있어서 이러한 기본 틀을 깨고 '대륙삼한설"로 그린다면 인정을 받지 못학 폐기해야합니다.
차이가 있는 이야기로 과연 저 그림 지도가 고조선 퍠망, 위만조선 패망후 사방 6000리에 삼한 사방 4000리의 사방 1만리 급의 지도냐 어림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부는 빼고 즉 "삼한설" 馬韓[韓]으로 기준이 번한을 위만에게 빼앗기고 번한 夫餘를 빼앗기고 위만에게 기원전 194년후에 "남으로 가서" 馬韓을 국명으로 세운 것이 마한으로 이 안에 삼한인이 대거 내려와서 "해"를 기준으로 재서는 54국 마한으로 재동은 12국 신한으로 재남은 12국 변한 총 78국 혹은 72국으로 일정한 '국가 형태"가 아니고 오직 "마한만" 국가 형태고 그 이외에는 小邑으로 난립상태로 이주 지명으로 봐야 한다입니다.
《통전(通典)》의 기록을 보면, “조선에 남아 있는 백성은 모두 70여 나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나라 모두가 사방 백 리였다”고 했다. 《후한서》에는 말하기를, “서한(西漢)이 조선의 옛 땅에 처음에는 네 군(郡)을 두었다가 후에는 두 부(府)를 두었는데, 법령이 점점 번거로워지자 78나라로 나누게 되었고 나라가 각각 만호(萬户)였다. 마한(馬韓)은 서쪽에 있어 54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모두 나라라 불렀고, 신한(辰韓)은 동쪽에 있어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마찬가지로 각 읍을 나라라 불렀으며, 변한(卞韓)은 남쪽에 있어 12개의 작은 읍을 차지했는데 각각 나라라 불렀다”고 했다.
시대는? 한나라가 연나라를 멸하고 "번한 부여"를 친 기원전 194년의 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위만조선의 "번한 조선/부여" 지지 수천리 사방 4000리로 "현토, 임둔, 낙랑, 임둔"의 4국을 찬탈이후 기준이 海를 건너 남하 한수이남으로 가서 馬韓을 건국한 일을 두고 말합니다.
연나라 사람 위만(魏滿)이 망명하여 천여 명의 무리를 모아서 동쪽으로 요새를 빠져 달아나 패수를 건너 진(秦)나라의 빈 땅의 아래위 보루에서 살면서 진번 ·조선의 만이(蠻夷)들과 옛 연나라 · 제(齊)나라의 망명자들을 점차 복속하게 하고, 왕이 되어 왕검(王儉)[56] 을 도읍으로 삼았다.[57] 이기(李寄)가 말하기를 왕검은 지명이라 하고, 신하(臣下) 찬(讚)[58]이 말하기를 왕검성(王倹城)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 한다. 병사로써 위협하고 침략하며, 그 이웃의 소읍들을 항복하게 하니, 진번(真畨) · 임둔(臨屯)이 모두 와서 복속하였고 사방이 수천리였다.[59
연나라 진개의 만번한 사방 2000리를 공격한 일도 기원전 221년 북부여 해모수 19년으로 위서라는 환단고기 북부여기 등에 秦介로 나오는 것으로 이는 번한 부여내의 료동지역으로 현 산서성 남부의 사방 1-2000리이 오군설치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즉 한서지리지 유주의 군들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이 유주는 중국아이들의 말 "유주=하북성"이라는 것이 거짓말라로 료주-심주 그리고 유주- 연주의 순이다, 위에서 남으로 료주- 심주 산서성 그리고 산서성 남단 황하를 걸치고 하남성이 낙랑 유주의 지역으로 최근의 내용은 '한사군"을 설치된 바 없는 것으로 지명 "현토[옥저], 임둔[동옥저/남옥저], 낙랑[하남성]일대와 진번[濊/동예]로 진번이 예맥/동예로 "낙랑+진번 즉 예맥과 조선"으로 일컬어지는 곳으로 사방 4000리 4국을 사방 2-300리의 군으로 漢四郡은 대참패 당해 전원 시기형 당한 한나라가 대참패당한 것이지 이를 승전으로 말하는 것은 사이코월드의 쥐새끼들 이야기다.
즉 이 만번한+진번한 = 번한 부여/조선으 사방 6000리로 료동[료하의 동쪽]으로 산서성과 하북성을 기점으로 한 낙랑지지는 산서성 남단과 하남성으로 황하북부 하남성지지의 강역이 "낙랑"지지다는 그 아래가 기 준이 남하한 馬韓[韓] 사방 4000리다.
"정미년(丁未年, 기원전 194년) 한(漢) 혜제(惠帝) 때 연(燕) 유민들의 우두머리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차지했다. 이에 번한(番韓)의 왕인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고조선[대부여]를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우선 국호모독죄를 계속하는 유태쪽발이 사이코 강단사학자, 동북아역사재단, 젊은 역사학자 모임 마르크스 박헌영역사문제연구소 및 사이코 언론 유태사이코 쪽발이 어용기자들까지 전부 "국호모독죄"가 적용된다는 엄중한 경고를 합니다.
고조선의 후기에 대부여로 국호를 개칭하다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위서이건 아니건간에 "古朝鮮"은 국호로 朝鮮은 경인년 기원전 2311년 "國號"로 "나라를 달리불러" 천자의 천지로 "단군천자의 표상문"으로 大明天地로 나라를 상징하는 국체 정체국호 "천자의 천지 천자국' 나라로 古는 명실상부 우리의 나라이름 國名 古입니다 다른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엿 조선 옛조선 故朝鮮하여 헬조선 한 것들은 전부 국호모독죄에 한국인이 아닌 쪽발이 간첩죄가 적용되는 국교에 관한 법률위반자들입니다.
즉 고조선이 국호로 古里로 古國으로 불리는 것은 마음대로 짱개이나 朝鮮은 천자국호로 "천자의 누리"라는 정체국호로 사용된 것으로 천자 아짐[我朕] 朝로 지금까지 장난 한 것에 대한 벌은 충분히 검토하여 그 죄에 대한 상응한 벌은 "반민족행위자"로 처벌을 면키 어렵습니다.
대부여로 국호입니다 夫餘는 북극성 천자의 표상이 역시 夫로 夫餘란 천자의 천지/누리로 朝鮮과 같은 국호 정체국호로 국명은 大로 내용으로 보면 韓이고 三韓이다는 내용입니다.
수 188년 기원전 425년에 개칭하고 기원전 238년 폐관한 것으로 이를 포함하여 전부 '고조선'으로 수 2096년으로 기원전 2333년 무진년에서 기원전 238년 계해년에 폐관한 고조선으로 폐관 고조선 패망년도라도 "기원전 238년"으로 그 이후 위만조선이 고조선 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이를 계속하는 것은 국호 국명 팔이 사이코패스로 "정신과 병원"에 격리수용해야할 중증 환자입니다 그게 임 기환입니다.
기자의 의문사항으로 백제는 기원전 18년 계묘년에 건국한 것으로 대방군지에서 시작하여 온조왕 기원후 9년 "마한"의 쳐서 우선 마한 청주 한씨의 목지국 등을 정복한 것으로 나옵니다, 여기에서 백제족은 삼한족 신한+번한+마한족이라는 삼한족이 아니고 해모수로 북맥족 맥족 자손으로 언어와 민족이 다른 백제족으로 백제왜, 예 와[倭]로 삼국중 가장 혼혈 중화 와 오월로 혼혈족으로 백제왜족이라고 하는 백제=맥제족으로 삼국중 가장 덜떨어진 혼혈 잡종으로 전주 이씨 이성계는 백제왜족 왜소족의 표본으로 韓民族이 아닌 漢族이 된 짱개유태 왜소족으로 민족 혈연계통에서 가장 왜소한 씨족이 전주 木子로 韓民族이라고 하기 보다는 혼혈잡종으로 "백제왜족'으로 예맥족 + 중화 漢族 그리고 倭族이 월지 사람과의 혼혈족입니다.
즉 '삼한족 신라 신한의 삼한족과는 구분이 되고 확실하게 서로 싫어하는 타민족으로 백제왜족입니다, 이에 삼한족을 정복한 것이 백제족으로 기원후 9년부터 4-5세기까지 정복을 완료할 때까지 3-400년의 세월로 정복을 한 민족이 백제족이고 백제입니다, 한반도에 없었다가 정답입니다. 백제왜가 가야를 정벌한다고 기원후 5세기경 호남 거점운운을 해도 이는 거점이지 수도가 있은 적이 없습니다.
이 기준이 내려간 馬韓 사방 4000리가 마치 신라다고 하는데 엉터리다 그런 적이 전혀 없다입니다, 강역으로 사방 4000리 번한 부여를 찬탈당하고 海를 건러 즉 황하로 료하라는 곳을 건너 남하한 후 한수 이남에 흩어져 살게 된 것으로 사방 4000리가 "한반도 3000리인가?" 설명을 하란 말이다는 것으로 史料를 제출하고 "斯盧國"이 신라의 뿌리지가 아니다는 것은 다 알고 신라 건국후에 기원전 57년에 변한, 신한을 차례로 흡수합병한 사실은 있지만 신라가 사로국 대륙신라 출생이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라가 건국한 후에 이미 건국이 된 후에...
. 《국사(國史)》에 이르기를 혁거세(赫居世) 30년(기원전 28년)에 낙랑인(樂浪人)들이 와서 투항하였고,[97] 또 신라의 3대 노례왕(弩禮王) 4년(27년)에 고구려의 3대 무휼왕(無恤王)이 낙랑을 쳐서 이를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이 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 사람들과 함께 신라에 투항하였다
신라시조 혁거세 즉위 19년 임오(壬午)년(기원전 39년)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열두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고, 각 1만 가구였으며, 나라라고 칭하였다.” 라 하였다. 또, 최치원이 말하기를, “신한(辰韓)은 본디 연(燕)나라[120] 사람이 피신한 곳이다. 그러므로, 탁수(涿水)의 이름을 취하여, 거주하는 고을과 마을의 이름으로 불렀다
신한은 진한이 아니고 진나라 노역자가 아니고, "연나라" 사람이 피신한 곳으로 이는 "위만조선"으로 바로 "낙랑지지"로 신한이 낙랑군이 아닌 낙랑지지 사방 1000여리로 이는 "한사군전쟁"지지로 하남성 일대다.
▲ 은허가 발견된 안양음 하난성과 하북성 경계에 있다. © 편집부 |
즉 신한 6부 = 夫餘 6가인 신라와 남삼한 마한내의 진한중 사로국이라는 것은 모욕입니다.
천자국에 대한 모욕으로 국호모독에 국가 팔아먹는 매국노 사이코 새끼역사학이 바로 이 병도 개새끼 사이코학이었다.
"신라"의 전신 신한 6부는 夫餘 6가로 이는 마한내 삼한 지명이 아닌 "대부여의 단군부여 신한 夫餘"로 현재 진국이라고 하는 나라가 바로 "신라 夫餘"다. 광복후 72년동안 도리어 신라말살만 한 사이코 병시도들은 사이코 패스로 중증 정신병자들이다.
新羅는 신한[辰韓] 夫餘로 "단군 부여"라는 뜻입니다.
신한의 신은 神이고 辰으로 "新'으로 "神市"= 신시/신불로 알고 있지만 鄕語 시골말로는 "서울"입니다.
고조선의 초기 首都는? 天坪입니다.
戊午五十七年. 命築天坪外城, 天坪在吉林東部巨野.
戊午(무오, BC2343) 57년. 天坪(천평) 外城(외성)을 쌓도록 명하였다. 天坪(천평)은 吉林(길림) 동부 큰 들판에 있다.[吉林省 吉林市]
定帝都于太白山下天坪曰徐菀, 帝城曰壬儉城
帝(제)의 도읍을 太白山(태백산) 아래 天坪(천평)으로 하였으니 서울(徐菀)이라고 하였고, 帝(제)의 城(성)을 壬儉城(임검성)이라고 하였다.
신한[辰韓]의 신은 "서"로 韓은 나라이름 한으로 이미 쓴 국명으로 이를 那羅의 "羅로 "신의 나라" 徐羅로 "斯盧"로 음차한 향어로 "서라" 서이라 신라로 "신의 나라"라는 신단 - 신한 - 신라의 徐羅伐로 徐羅가 국호로 한 것으로 이러한 것끼지 "짱개나, 쪽발이" 특히 송호정과 임기환 사이코패스 총대장 "노태돈"에게 검토를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아니다입니다.
백제는 후의 문제고 기원전 57년 갑자년에 건국한 신라의 徐羅伐 金城이 왜 경상도 경주인가? 경주는 州로 사방 2-3000리 땅덩어리인 줄은 아는가? 금성이라고 해도 어디에서 韓半島라는 말이 있으며 위서에는 "古朝鮮"은 삼한관경제로 삼한 조선으로 "세걔의 삼한'으로 나눠서 관리한 "지방행정조직쳬게가 있는 나라입니다 인정하시나요?
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星 별〯셔ᇰ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夫餘 = 徐羅, 신한 夫餘다.=신라다.
<夫餘>在<長城>之北, 去<玄 >千里, 南與<高句麗>, 東與<相婁>, 西與<鮮卑>接, 北有<弱水>, 方可二千里. 戶八萬, 其民土著, 有宮室․倉庫․牢獄. 多山陵․廣澤, 於東夷之域最平敞. 土地宜五穀, 不生五果. 其人序大, 性彊勇謹厚, 不寇 . 國有君王, 皆以六畜名官, 有馬加․牛加․ 加․狗加․大使․大使者․使者. 邑落有豪民, 名下戶皆爲奴僕. 諸加別主四出, 道大者主數千家, 小者數百家. 食飮皆用俎豆, 會同拜爵洗爵, 揖讓升降. 以殷正月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食歌舞, 名曰迎鼓, 於是時斷刑獄, 解囚徒. 在國衣尙白, 白衣大袂, 袍․袴, 履革 . 出國則尙繒繡錦 , 大人加狐狸․ 白․黑貂之 , 以金銀飾帽. 譯人傳辭, 皆 , 手據地竊語.
'부여'는 '장성'의 북쪽에 있다. '현토'에서 천리를 간다. 남으로 '고구려'가 있고, 동쪽으로 '읍루'가 잇으며, 서쪽으로 '선비'가 있다. 북쪽으로 '약수'가 있으며, 가히 이천리이고 호수는 팔만호이다. 그 백성은 토착생활을 하고, 궁실과, 창고, 감옥이 있으며, 산과능선이 많으며, 연못이 넓으니, 동이의 지역중에 가장 평평하다. 흙은 오곡에 마땅하고, 오과는 나지 않는다. 그 사람은 과격하고, 크다. 성격은 강하고 용감하며, 삼갈 줄 알고, 후덕하니 도둑질 하지 않는다. 나라에 군옹이 있고, 모두 여섯가축의 이름으로 관직을 명하니,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대사', '대사자', '사자' 가 있다. 읍락에는 호민이 있는데, 신분이 천한 사람들을 모두 노비로 하였다. 여러 '가'의 주인은 각각 사방을 다스리는데, 도가 큰자의 주인은 수가 천집이고 작은자는 백집이다. 음식을 먹음에는 모두 조두를 사용하고, 여럿이 모이는 때에는 서로 절하고 잔을 씻어 술을 마시며, 서로 읍하고 사양하면서 출입한다. '은'의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나라의 큰 모임이다. 연일 음식과 가무를 하는데, 이를 '영고'라 한다. 이때에는 형벌과 가둠이 없고, 죄인들을 풀어준다. 나라에서 옷에 흰색을 숭상하여, 백색 옷에 소개가 넓고, 도포와 바지가 있다. 신발은 가죽으로 한다. 나라에서 나갈때는 비단옷을 입기를 숭상한다. 성인은 여우, 원숭이, 흑색담비 가죽으로 옷을 해 입으며, 금은으로 모자를 장식한다. 통역하는 사람이 말을 전할 때는 모두 꿇어 손을 땅에 대고, 조용히 말을 한다.
무슨 이유로 이 夫餘 6가 = 신한 6부로 신라고 계림주라는 사실을 몰랐다?? 일부러 왜곡한 것으로 참으로 더러운 사이코 패스 이 병도개씨들이다.
② 도종환은 백제가 위례성(다수설은 경기 하남 일대)에서 건국한 뒤, 마한의 맹주 목지국과 치열한 패권 다툼을 하면서 성장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신라가 夫餘면 이야기는 전부 다르다는 것을 모른다? 남삼한은 태륙으로 산서성 구려고 그 남은 마한 54국이고 북부 夫餘가 이미 신라이므로 낙랑 지지에서 "발해" 재동이 신한 12국 변한 12국으로 전부 대륙 신라 支那로 이는 계림주인 夫餘 신라이외에 대륙신라로 그래도 사로국에서 시작이 아니다.
1. 백제족은 삼한족/한족이 아닌 九韓중 "예맥, 穢貊"족으로 맥제라고도 하는 족으로 마한 54국은 삼한인 삼한족으로 기 준은 번한 조선 료하의 변한조선 번한 부여인입니다.
백제건국자 온조왕의 혈통은 두가지로 첫째 해모수의 후손 동부여의 해부루 천제의 "서손" 우태의 아들이다는 설과 고추모 鄒[몽고추나라이름 후] 부족의 아들이라는 설로 이래저래 맥족이다는 소리입니다.
九韓으로 신라가 日本으로 알[●]로 白族이라는 신의 자손 白衣民族입니다 白木이 신라로 시라기로 "이는 신의 알이, 아리로 일랑"으로 하나랑 천지화랑입니다.
백제족이 한반도족?일 수가 없는 이유는 신한조선 [아사달주, 간주, 연해주, 강동주=한반도]의 삼한족 만주원류라는 만주의 재동 시림지 寧南사람이 아닙니다 고구려-백제의 맥족은? 설유/험윤으로 이는 마한조선 재서의 유목 토착민으로 몽고초원/토착민입니다 즉 만주족과도 다른 마한인데 거란과 예맥은 북방초원 몽고토착민으로 험윤/설유를 예맥족으로 후에는 蒙古族으로 발해 말갈 예맥 고구려 등이 蒙古族으로 이름한 것을 말합니다.
온조는 고구려의 졸본부여 졸본주로 "산서성 하남성"일대로 이 하남은 대방 낙랑으로 낙랑 대방으로 한반도가 될 수가 없는 지지입니다.
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기원전 27년)에 대방인들과 낙랑인들이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101] 이는 모두 전한(前漢) 때에 설치한 두 군의 이름인데, 그 후에 주제넘게도 ‘나라’라고 부르다가 이제 항복한 것이다.
조위(曹魏) 때(220~265년)에 처음으로 남대방군(南帶方郡)지금의 남원부(南原府)이다을 두었기 때문에 남대방이라 불렀다. 대방의 남쪽으로 바닷물이 1천리인데 이를 한해(澣海)라 한다후한(後漢)의 건안 때(196~220년)에 마한 남쪽의 황무지를 대방군으로 삼으니 왜(倭)와 한(韓)이 이에 속했다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河南 慰禮城으로 하남이란 곳은 河는 료하로 료하=황하로 알고 있는데 2000년전 물길과는 상당히 차이가 난 곳이 현 중국대륙의 지명으로 하남성인데 "한사군전쟁"지로 낙랑과 대방이 있는 곳이 하남성 하남이다는 것으로 재서가 낙랑이고 제하의 濟는 삼수가 만나는 곳으로 "한군"이 고두막한 졸본주에서 일어나 의병으로 한군을 곳곳에서 이긴 곳이 졸본주보다는 한사군전쟁지 "하남"일대로 낙랑과 대방의 교차점입니다, 남대방으로 "남원부'다 과연 한반도 전주 전라도 남원시, 남원군이 정말 남으로 1천리 한해 호수가 있는가? 전부 거짓말이다.
백제이 발원지 하남 위례성 濟河는 알아는 봐야 하질 않을까?
▲ 은허가 발견된 안양음 하난성과 하북성 경계에 있다. © 편집부 |
馬韓으로 韓지로 사방 4000리로 대륙백제는 마한 54국을 신라는 대륙신라 사로 신라로 무엇을 기준으로 서로 동서로 나뉘나? 바로 남대방군의 "한해 빨 한"으로 渤海로 발해 재서가 마한 54국으로 산동성이라는 곳으로 상당 청주지역입니다, 재동 산동은 "신라"입니다 全州는 구주오소경으로 대륙신라로 무슨 개소리로 "상주, 낙랑, 양주" 경주와 아무것도 없이 가야 강주만? 이건 모욕입니다 남신라로 全州를 기점으로 전부는 대륙신라로 전라도는 무주? 이름만 백제로 저 남쪽 월지까지 다 장악했으나, 주력 대륙신라는 全州라는 곳입니다, 남원경이 바로 남대방군이다.
▲ 하남성과 산동성 사이에 있던 내륙호수 대야택이 바로 고대의 발해였다. 동평호, 남양호, 미산호 등이 그 흔적이고, 양산, 운성, 거야의 땅이 당시 호수로 물이 차 있었다. 그 서북쪽 범현과 복양시 일대가 탁군이었다. ©편집부 |
하남성 왼편 산동성을 가로지르는 호수 한해 발해로 고리짝부터 渤海라고 하고 고구려 백제 신라의 경계로 海로 황하아래로 남은 백제고 고구려 동쪽과 남쪽은 신라고 이는 대륙삼국으로 백제는 한반도에 거점/ 가야를 치기 위한 백제왜군의 거점은 있을 수 있으나, 담로로 제후국의 22담로이름명에는 전혀 한반도 거점명이 없습니다 즉 백제족 맥제족은 지배계층으로 한국인들중 扶餘씨로 徐씨들이 주로 백제 扶餘씨로 백제 중화 중국쪽의 중화성씨들 심백강 등이 주장하는 백제는 저 중화백제로 오월은 절갈성 오흥군으로 남부여로 扶餘씨와 백제 8대성씨는 현재 대륙에서 漢族으로 띵가띵가 잘 사는데 우리가 걱정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윤씨 윤복현은 개소리 그말하라는 소리다, 改宗者가 놀기는 어디서 3처 2첩이나 거느리는 윤치호 반자이는 개종자면 개종자로 개당에서 개똥이나 드쇼잉이다.
배제왜족 예맥족 木子씨와 좃단 좃가등 이좃시대는 역성혁명으로 韓民族이 아닌 外族들로 지금도 이 호나, 이 영훈 등은 왕정복고 운운하고 기독교이상국가 건국?을 주장하는 사이코 패스 백제유태왜족의 전형 "앉으나 서나" 고꼬라지 더러운 산돼지 쪽발년과 혼혈잡족되셨네다, 백제왜족 木子스러운 아이들의 최악의 교배로 그 배치가 최악입니다.
즉 백제는 호남? 충정도에 있은 적도 없는 가상 사이코월드의 가상의 적군입니다, 신라인 가야인을 서로 싸우게 하고 백제왜족이 마치 선량한 한반도족? 쪽각 발음 쪽발이가? 쪽발이가 뭔지를 모르는 개쪽발이들이 놀고 있지요.
즉 료서경략도 "전부 섬서성으로 료하가 료동 료서의 기준으로 이 성계가 료동정벌이 산서서이라고만 했어도 이런 개소리는 없었을 것이다 목자 빵원과 도 등 태종과 세종 최악의 경우수가 나왔다.
③ 도종환은 4세기 중후반 대의 왕 근초고왕 시기에 강력한 대외정책을 추진해서 충청도까지 강역을 확대했음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순 생구라도, 근초고왕의 대외정책은 해양제국으로 22개 담로라고 나오는데 무는 사방 1-200리를 가지고 놀고 있냐고? 남북 2000리로 동서 1000리면 사방 2000리가 백제본토로 오월 절강성에 백제향 등은 월지고 탁라는 대만이고 응유는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대외정복정책이지 한반도 충청도 강역이라고 무슨 개소리냐? 있지도 않은 백제 수도에서 놀고 있냐고?
신당서 구당서의 내용은 대륙삼국으로 고구려 해를 경계로 남으로는 백제 해를 건너 동과 남은 신라가 있다 백제와 신라는 해를 기준으로 즉 渤海다.... 전 강역의 담로국은 몰라도 대강의 강역은 그대로 구당서 ,신당서에 나온다, 고구려 산동 산서, 즉 남북 2000리와 동서 3100리로 사방 6200여리로 산서 료동과 섬서 료서의 주력강역으로 하북성 철국과 맥국은 기원후 551년 전후로 이사부와 거칠부에 의해 신라 명주와 삭주로 편임되었다고 일제히 쓰고 있는데 이게 사방 3-4000여리로 남 신라 3000리와 같은 땅덩어리로 상주라는 계림주와 철국맥국 사방 3000리, 대륙 사방 3000리는 1만리가 넘고 가야 흡수합벼으로 한반도면 사방 3000리로 이는 최대강역이 사방 2만리인 대강역이 나옵니다.
신라
#新唐書卷220-列傳第145-新羅-11/01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東南<日本>, 西<百濟>, 南瀕海, 北<高麗>. 而王居<金城>, 環八里所, 衛兵三千人. 謂城爲侵牟羅, 邑在內曰喙評, 外曰邑勒. 有喙評六, 邑勒五十二. 朝服尙白, 好祠山神. 八月望日, 大宴賚官吏, 射. 其建官, 以親屬爲上, 其族名第一骨․第二骨以自別. 兄弟女․姑․姨․從姊妹, 皆聘爲妻. 王族爲第一骨, 妻亦其族, 生子皆爲第一骨, 不娶第二骨女, 雖娶, 常爲妾媵. 官有宰相․侍中․司農卿․太府令, 凡十有七等, 第二骨得爲之. 事必與衆議, 號「和白」, 一人異則罷. 宰相家不絶祿, 奴僮三千人, 甲兵牛馬猪稱之. 畜牧海中山, 須食乃射. 息穀米於人, 償不滿, 庸爲奴婢. 王姓<金>, 貴人姓<朴>, 民無氏有名. 食用柳杯若銅․瓦. 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 男子褐袴. 婦長襦, 見人必跪, 則以手据地爲恭. 不粉黛, 率美髮以繚首, 以珠綵飾之. 男子翦髮鬻, 冒以黑巾. 市皆婦女貿販. 冬則作竈堂中, 夏以食置冰上. 畜無羊, 少驢․ , 多馬. 馬雖高大, 不善行.
신라는 변한의 후예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자리하여 가로가 1천리이고 세로가 3천리이며 동쪽은 장인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이며 서쪽은 백제이고 남쪽은 바다에 연하며 북쪽은 고려이다.
史料로 이야기 좀 하라고 어디에, 신라가 그리 작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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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도종환은 "마한의 세력이 6세기 무렵까지 전남 영산강 일대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는 학설이 다수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도대체 백제는 어부지리냐? 사방 2000리는 기본이고 오월지도 그리 작은 것이 아니고 탁라만 대만만 해도 사방 2000리는 되는데 무슨 소리인지? 전남 영산강, 즉 호남성 남쪽 차현아래면 호남성 아래 광서자치구 백제향으로 월지로 무슨 이런 것까지 다 한반도라고 하니 ㅉㅉㅉ다. 사이코들이다.
⑤ 도종환은 신라의 초기 국명이 '사로국'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사로국'도 진한 12개국 중 1개국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임 기환 환빠자식으로 도대체 왜 斯盧國으로 국을 붙였다고 질엘하는 백제왜족 쪽발이가 기자고 학자냐?
'한국"은 천자국으로 고랩부터 國대신 나라이름 國名으로 국은 제후국으로 쓰지 않는다, 제후국에만 붙이는 것으로 고구려 제후국 철국, 맥국으로 지방 분권형이고 九州로 신라는 삭주, 명주로 중앙집권형이다.
신한[辰韓]이 신한 조선, 신한 부여로 신한이 국명이다 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동방예의지국의 예법이 아니니 서라벌로 서로 신을 서로 한을 나라의 라로 徐羅로 徐羅伐로 斯盧 斯羅[사라] 등이고 게림으로 한 것으로 .. "신한"이 국호의 원뜻이다.
국호를 서라벌 또는 서벌 지금 세속에서 경(京)자의 뜻을 서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는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이는 신한[辰韓]의 이름으로 향어로 이러한 국호도 마음대로 못 쓰나? 단 ㅇㅇ 國은 안쓴다 써도 중국식이면 徐國으로 해야지 무슨 斯盧國이냐고? 나라나라냐? 이 멍청한 사이코 기자야?
國은 "나라"로 한국형 나라이름 국명을 쓰면 나라나라 할 이유가 있나요?
즉 朝鮮과 夫餘는 천지/누리 천자의 천지 나라를 표상하는 한국의 정체국호입니다.
그이후로는 안쓰고 즉 안쓴다는 것은 조선/부여 아래 나라이름으로 렬국으로 찟어져도 이를 2라로 뒤에 두번째 문을 나라이름으로 정한 2자 국명으로 합니다.
즉 句麗, 高麗 百濟 新羅, 伽倻로 뒤의 두번째자가 다 國名으로 정한 2자국명입니다.
高麗로 이는 고려 조선이다 즉 중국이 가져다 훔쳐서 쓴 大明帝國= 明帝인데 "천자국호'로 조선으로 대명조선 = 明朝, 대청제국= 淸國이고 이를 다시 천자국으로 "대청조선 = 淸朝입니다.
大韓帝國= 韓國으로 실제로는 우리가 대한조선=韓朝여야 하는 이치인데 조선을 국몀으로 국호대신쓰고 속국 국으로 조선국으로 쓴 미친 선비가 모화사상에 찌든 미친 놈들 사이코들이다.
아예 중국에 미쳤으면 황제국명으로 조선국을? 조국[朝國으로 하지 왜?
즉 나라이름이 아닌 鷄林은 림이 나라이름 림이라고 할 수가 없지요 이경우에는 계림국 림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나로 계라 신라가 낫다는 결론입니다, 즉 신의 나라다, 신라다, 즉 신라를 꼭 國을 쓴다면 드라마에서 나오듯이 신의나라다 神國이다 新國이다는 것으로 써야만 중국식 국명법이고 한국식은 國으로 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즉 斯盧國이다 사라국이다 로, 라가 나라라는 이름으로 이미 쓰고 있는데 그곳에 또 나라나라 라고 하는 것이 사이코입니다 사로국으로 사로의 속국 국이다는 뜻이 됩니다.
이러한 국명법도 모르고 한국사를 한다?? 이상한 나라지요 그게 사이코역사학입니다, 자신의 국호를 팔아먹고 좋다고 대명조선의 속국 국이다 ㅋㅋㅋ 유명조선이다 명조선 明朝안의 영의정이에요 노론의 영수에요 ㅋㅋㅋ 송나라 쥐새끼 송자 호정이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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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도종환은 신라라는 국호의 확정 시기는 지증왕 대인 503년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3세기에는 '사로국'이었다. 당연히 '신라'는 없다.
[산] 임기환이나 이 마르크스 쪽발이들은 나라국호 국명 팔아먹는 선수들이냐? 고조선도 오울드 조선으로 위만조선이라고 하더니, 대부여도 인정 못해서 부여 부여 하질 않나, 도대체 어떤나라냐고?
지증왕 503년에는 新羅로 고정한 것이고 干羅 아침해빛날 간(倝)羅는 아냐고? 鷄林州 아침해빛날 간(倝)州 間道로 행정구역명은 아는지? 간성이에요 간도에요 九道로 이는 조선시대가 아니고 대한제국시에 팔아먹은 땅이 간도입니다, 신라가 잃어버린 적이 없다, 신한이에요.
日 나〮ᅀᅵᆯ〮 衆陽之宗人君之表
月 ᄃᆞᆯ〮월〮 太隂之精隂不可抗陽故日圎月缺
星 별〯셔ᇰ
辰 별〯신 日月會次又北辰北極也又미르〮진地支屬龍
辰羅로 "신라" 神羅로 신라인데 향어로 "서이" 서, 신시=서울로 신은 서, 사로 서이 사흘 등으로 이는 우리나라 한국이지 간고꾸한다고 우리가 간고꾸 하냐고? 아니다 우리말소리로 적는 것은 "향찰"이고 언문이다 辰國이 신라로 사라로 사로라는 소리다, 辰那 신라 서나/사로로 이를 향어로 읽어야지 이를 문으로는 神[辰]國입니다. 신단-신한-신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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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도종환은 경북 일대에 진한의 11개국이 있었고, "신라는 삼국사기 기록 상으로 3세기까지 11개국을 복속했고, 실제로 흡수한 시기는 고고학적으로 4~6세기경으로 추정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 웃긴 일로 신한 12개국으로 사로국이 경북일대 11개국을 흡수한 것으로 추정???
《국사(國史)》에 이르기를 혁거세(赫居世) 30년(기원전 28년)에 낙랑인(樂浪人)들이 와서 투항하였고,[97] 또 신라의 3대 노례왕(弩禮王) 4년(27년)에 고구려의 3대 무휼왕(無恤王)이 낙랑을 쳐서 이를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이 대방(帶方)북대방(北帶方)이다 사람들과 함께 신라에 투항하였다.
한반도 낙랑군, 대방군으로는 이를 설명도 못한다, 즉 대륙으로 낙랑지지는 신라의 대륙신라 사로 신라 支那 신라로 들어가는 곳으로 낙랑, 대방인들의 신라에 투항하였다 설명하시오.
북대방(北帶方)은 본래 죽담성(竹覃城)이다. 신라 노례왕(弩禮王) 4년(기원전 27년)에 대방인들과 낙랑인들이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101] 이는 모두 전한(前漢) 때에 설치한 두 군의 이름인데, 그 후에 주제넘게도 ‘나라’라고 부르다가 이제 항복한 것이다.
군이 사방 2-300리로 두 군인데 400-600리가 "국"을 칭하다 이제 항복한 것? 신라 겨우 사로국 사방 100리가 두군이 국을 칭하다 이게 겨우 항복해? 설명을 하라고...
신라시조 혁거세 즉위 19년 임오(壬午)년(기원전 39년)에 변한 사람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마한내 신한이 신라에 투항하고 사로 신라가 됨.
"《후한서》(後漢書)에 이르되, “진한(辰韓)의 어르신들이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의 망명자들이 한국(韓國)으로 들어오니, 마한이 동쪽 경계의 땅을 나누어 이를 그들에게 주었다. 서로를 부를 때 ‘도(徒)’라고 하니, 이는 진(秦)나라 말과 비슷한 점이 있었으므로, 또는 그것을 이름하기를 진한(秦韓)이라 하였다. 열두개의 작은 나라가 있었고, 각 1만 가구였으며, 나라라고 칭하였다.” 라 하였다. 또, 최치원이 말하기를, “진한(辰韓)은 본디 연(燕)나라[120] 사람이 피신한 곳이다. 그러므로, 탁수(涿水)의 이름을 취하여, 거주하는 고을과 마을의 이름으로 불렀다."
후한서의 내용으로 이는 "신한 夫餘" 신라가 아니고 남삼한의 진한/신한으로 12개 소읍이 각 1만가구로 12만 가구로 적지 않은 수로 이것이 일체로 "사로 신라" 즉 대륙신라로 사방 3000리를 이룬다, 신한 夫餘 서라 신라 干羅아래 남으로 支那 신라로 사로 신라다,
신라
#新唐書卷220-列傳第145-新羅-11/01
◉<新羅>, <弁韓>苗裔也. 居<漢><樂浪>地, 橫千里, 縱三千里, 東拒<長人>, 東南<日本>, 西<百濟>, 南瀕海, 北<高麗>. 而王居<金城>, 環八里所, 衛兵三千人. 謂城爲侵牟羅, 邑在內曰喙評, 外曰邑勒. 有喙評六, 邑勒五十二. 朝服尙白, 好祠山神. 八月望日, 大宴賚官吏, 射. 其建官, 以親屬爲上, 其族名第一骨․第二骨以自別. 兄弟女․姑․姨․從姊妹, 皆聘爲妻. 王族爲第一骨, 妻亦其族, 生子皆爲第一骨, 不娶第二骨女, 雖娶, 常爲妾媵. 官有宰相․侍中․司農卿․太府令, 凡十有七等, 第二骨得爲之. 事必與衆議, 號「和白」, 一人異則罷. 宰相家不絶祿, 奴僮三千人, 甲兵牛馬猪稱之. 畜牧海中山, 須食乃射. 息穀米於人, 償不滿, 庸爲奴婢. 王姓<金>, 貴人姓<朴>, 民無氏有名. 食用柳杯若銅․瓦. 元日相慶, 是日拜日月神. 男子褐袴. 婦長襦, 見人必跪, 則以手据地爲恭. 不粉黛, 率美髮以繚首, 以珠綵飾之. 男子翦髮鬻, 冒以黑巾. 市皆婦女貿販. 冬則作竈堂中, 夏以食置冰上. 畜無羊, 少驢․ , 多馬. 馬雖高大, 不善行.
신라는 변한의 후예다. 한나라 때의 낙랑 땅에 자리하여 가로가 1천리이고 세로가 3천리이며 동쪽은 장인에 닿고 동남쪽은 일본이며 서쪽은 백제이고 남쪽은 바다에 연하며 북쪽은 고려이다.
구당서 신당서로 "삼국통일"전의 신라의 강역은 "대륙의 사방 3000리"로 동서 1천리 남북 3000리로 이게 어떻게 한반도 전체로 통일후? 사방 2000리 대동강? 청천강이남으로 쭐어들려고 삼한일통 통일전쟁을 했다???
기본 계림주+ 가야 한반도 등은 기본 신한 신라다 계림주 상주로 보는 곳으로 경북? 녕남은 녕산의 남쪽이 왜 추풍령 낙동강 오리알이야? 말이 되는 사이코짓을 하라고 사방 200리에 사방 3000리르 넣고 질엘하냐고?
만주원류고를 믿어라 마라가 아니다, 한반도는 기본 간도 계림주도 기본 신라땅이다. 물론 가야와 합병한 것이고 대륙신라는 어디있냐고? 사방 3000리.. 없잖아요 구당서 신당서는 중국정사가 아니고 무슨 베드로 성당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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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도종환은 신라가 6세기 초반 법흥왕이 즉위하면서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하는 등 중앙집권 정책을 펼치기 시작해 본격적인 행정력을 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도종환은 임기환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산] 중앙집권 정첵은 九州고 國으로 고구려는 제후국제로 지방분권형제도로 "철국, 맥국"으로 국을 사용한 九國제도고 신라는 "고구려 철국, 맥국"을 정벌한 진흥왕조 기원전 551년 전후로 이를 "명주"로 삭주"로 고구려 땅이라고 하는데 실제는 신한 부여로 신한 =신라땅이었다느 개념입니다, 고구려는 다시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료서로 섬서성 감숙성에 치중한 것으로 구당서 고구려 침공전 남북 2000리 동서 3100여리 사방 6200여리른 산서성과 섬서성일대로 료동+료서로 발해도 료서 사방 6000리를 회복한 것으로 료서위주로 산서성과 하북성일대를 장악했다고 그곳이 주력이 아나고 발해이 경우는 료서지역이다 료나라도 료서다, 산서성일부와 료서다.
그 놈의 율령은 建國으로 단군 8조교는 기원전 24세기다 대부여시절에도 8條다.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이 단군 8조 교를 일일이 설명해주랴? 다른 곳에 자세히 설명했으니 법학자가 아니면 꺼져라, 제발 좀 저런 쓰레기 사이코 패스 기자가 무슨 임기환 반자이라고 놀고 있는지 이해가 안간다 아는 게 전무한 무식한 기자가 사이코 월드사에 사이코 기자사로 뭘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나라꼴이 사이코된 것인가?
불교? 巫敎라고 괄시하네.. 宗敎를 창시한 나라는? 고조선.
辛未四年. 帝復神巿舊規, 創立倧敎, 頒布國中, 以親九族設講𥛠誥于天下, 敎化萬民, 宣告神政于四海, 盖不言而信不怒而威. 無爲而化, 淳厖之治, 熙洽四表. 命三僊官四靈師主治人間三百六十六事, 盖以誠信愛濟禍福報應八理敎人, 人無賢愚, 易於達天理通人理, 無爲而化, 故人化湥於至治之世也. 寔神巿天皇開國, 敎化之神政也.
辛未(신미, BC2330) 4년. 帝(제)는 다시 神巿(신불)의 옛 규범을 되돌리고 上古神人(상고신인)의 가르침을 창립하여 나라안에 반포하였다. 친히 九族(구족)에게 삼일신고를 천하에서 강론하고 만민을 교화하였으며 神政(신정)을 四海(사해)에 널리 알리었으니, 말하지 않고 믿게 하며 화내지 않고 두려워하게 하고 행함이 없이 교화시켜서 淳厖(순방)의 다스림을 四表(사표)에 널리 드날리었다. 三僊官(삼선관)과 四靈[3]師(사령사)에게 명하여 인간의 366가지 일을 주관하고 다스리게 하였다. 대개 誠(성) 信(신) 愛(애) 濟(제) 禍(화) 福(복) 報(보) 應(응)의 8가지 도리로 사람을 가르쳤는데, 사람이 현명하거나 어리석거나 보다 쉽게 天理(천리)에 도달하거나 人理(인리)를 통달하였으며 행함 없이 변화되었다. 그래서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데까지 사람들의 변화가 흘러 들어갔으니 이것은 오직 神巿(신불) 天皇(천황)이 개국하여 교화한 新政(신정)인 것이다.
-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