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이사야(102)/치유
제목 : 하나님의 치유
성경 : 사 57:14~21
찬송 : 286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40221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57:14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사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사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사 57:17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사 57:18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사 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사 57:20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사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여호와의 회복의 말씀을 듣는 대상은 자기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은 압제로 짓눌려 있고 마음이 상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죄악 된 삶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토록 패역함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올 대로를 수축하라는 명령은 그들을 회복시키려는 여호와의 결단을 드러냅니다. 지극히 높으신 여호와께서 비천한 자들을 찾아오시고, 스스로 패역의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고쳐 주시고 인도하시며 회복하시리라 약속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결단하신 이상 그가 베푸시는 평강이 미치지 않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셔도 여호와께 돌아오지 않고 여전히 죄악 된 길을 고집한다면 그 사람은 그 평강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힐링’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인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과거엔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는 치유집회가 많이 열렸습니다. 서울 용산에 가면 현신애 권사님이 치유 집회를 하셨던 집회 장소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곳에 심방을 가본 적이 있는데 현신애 권사님은 치유 사역을 할 때 밀가루 떡을 만들어 환부에 붙여주고 기도를 해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내면의 상처를 다루는 치유집회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많아 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만져 주시면 우리 안에 어떤 치유가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소생시켜 주십니다!
사 57:14 그가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이전 단락이 패역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죄악을 폭로했다면, 본 단락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고치시라는 여호와의 약속을 전합니다. 본문에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귀환할 길을 건설하라는 명령을 내리십니다. 이스라엘이 대로를 통해 귀환할 것은 처음 언급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 11:16 그의 남아 있는 백성 곧 앗수르에서 남은 자들을 위하여 큰 길이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
사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사 49:11 내가 나의 모든 산을 길로 삼고 나의 대로를 돋우리니
그러나 ‘길을 수축하라’와 함께 반복된 명령형 ‘돋우라 돋우라’가 사용되면서, 이제 이스라엘의 귀환을 위해 대로의 건설이 긴급하게 이루어질 것을 알립니다.
사 62:10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또한 ‘장애물’을 길에서 제거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안전한 귀환을 약속하십니다.
사 57:15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
대로의 수축을 명령하신 이유가 ‘키’(왜냐하면)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지극히 존귀한 자’, ‘영원히 거하는 자’, ‘그의 이름은 거룩한 자’ 같은 표현은 이스라엘의 회복 주체가 초월자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초월자가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한다’고 선언하십니다.
사 33:5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
사 66: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시 102:19 여호와께서 그의 높은 성소에서 굽어보시며 하늘에서 땅을 살펴 보셨으니
동시에 낮고 비참한 처지에 빠진 자들과 함께 거하신다고 밝히십니다. 여기에 ‘통회하는 자’(다카)로 번역된 단어는 죄와 삶의 무게에 ‘짓눌린 자’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이 겸손한 자’(쉐팔 루아흐)로 번역된 표현 역시 재앙과 고통으로 ‘상심한 자’를 의미합니다. 지극히 존귀한 하나님이 비천한 자들과 함께 거하시는 목적은 ‘상심한 자들의 영’과 ‘짓눌린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성육신하신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몸에 상처를 입으면 힘을 잃습니다. 몸의 모든 기능이 상처를 치료하는 데 집중되다 보니 그만큼 몸은 생기를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영적 침체는 육체적 고갈보다 훨씬 회복이 어렵습니다. 우리 스스로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적 침체의 유일한 해법은 하나님의 개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실 때, 우리는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우리를 소생시켜 주실까요?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통회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영적 문제가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는 치료받는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인정할 때 치료가 가능해집니다.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고집하면 치료 받을 길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상태를 아파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해야 합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마 11:25). 스스로 지혜롭다고 자만하고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사모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며 소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사 57:16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여호와께서 비천한 자들의 마음을 소생시키기 위해 그들과 함께 거하시는 이유는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그의 다짐 때문입니다. ‘내가 결코 영원히 다투지 않으리라.’는 선언은 지금까지 패역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시고 책임을 물으셨던 모습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사 3:13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사 3:14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장로들과 고관들을 심문하러 오시리니 포도원을 삼킨 자는 너희이며 가난한 자에게서 탈취한 물건이 너희의 집에 있도다
사 3:15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냐 주 만군의 여호와 내가 말하였느니라 하시도다
‘내가 결코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하리라’는 선언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품으셨던 노여움을 그치시고 이제 그를 사랑으로 대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사 27:4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사 54: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시 78:38 오직 하나님은 긍휼하시므로 죄악을 덮어 주시어 멸망시키지 아니하시고 그의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의 모든 분을 다 쏟아 내지 아니하셨으니
시 103: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의 태도가 변화한 이유로 이스라엘을 향한 긍휼 때문임이 ‘키’(왜냐하면)로 도입되는 병행구에서 밝혀집니다. 여호와께서 만드신 ‘영’(루아흐)과 ‘호흡들’(네사모트), 즉 인간들이 그 앞에서 쇠약해질까 염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심판을 당해 비참한 처지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여호와의 애정은 ‘내가 만들었다’는 표현에 묻어납니다.
사 57:17 그의 탐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고 노하였으나 그가 아직도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걸어가도다
이스라엘의 ‘탐심의 죄악’에 대한 과거 여호와의 반응은 큰 진노였습니다. ‘내가 노하여 그를 쳤고얼굴을을 가리고 노하였다’는 표현에서 네 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열되고 있는데, 동사 ‘노하다’(카차프)가 첫째와 넷째 위치에 반복해서 나옵니다. 이런 구조는 마치 여호와의 진노가 봇물처럼 이스라엘에게 쏟아졌다는 인상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크게 진노하시며 이스라엘을 대적처럼 공격하셨고(1:4~8; 10:5~6),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하셨습니다(54:8; 6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돌아오기는커녕 ‘패역하게’ 또는 ‘자기 멋대로’ 자기 마음의 길로 갔습니다.
시 78:32 이러함에도 그들은 여전히 범죄하여 그의 기이한 일들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시 78:41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거듭거듭 시험하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노엽게 하였도다
렘 3: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렘 8:5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사 57:18 내가 그의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를 슬퍼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놀랍게도 여호와께서 ‘그의 길들’, 즉 그의 악한 길들을 보셨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멈추시고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사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해 네 개의 동사가 연속해서 나열되었던 것처럼, 본문은 세 개의 동사를 연속으로 배열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내가 그를 인도하리라’, ‘내가 위로를 회복시키리라’는 표현은 고통과 절망 속에 처한 이스라엘을 차마 내버려 두지 못하시는 여호와 안타까운 마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마음 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고립은 우리를 더욱 힘들게 만듭니다. 이는 결국 무기력으로 발전하여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아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18절).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죄로 인해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허물로 인해 곤경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곤경 속에 그들을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받고 있는 징계를 마침내 철회하시고 그들의 곤경을 제거하시며 그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우리가 부당하게 받은 고통뿐 아니라 우리가 못나서 받은 어려움과 그를 인해 우리가 경험한 마음의 아픔까지도 하나님은 헤아려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고후 7:6 그러나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가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고후 7:7 그가 온 것뿐 아니요 오직 그가 너희에게서 받은 그 위로로 위로하고 너희의 사모함과 애통함과 나를 위하여 열심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고함으로 나를 더욱 기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사 57:19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위로하시는 것은 그들의 입술에 애통과 불평 대신에 찬양과 감사를 창조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호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또한 본문에서 동사 ‘창조하다’(바라)를 사용함은 하나님이 창조의 능력으로 이를 이루실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고치리라’는 약속을 다시 확언하시며 평안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평강이 있으리라 평강이 있으리라’에서 같은 표현을 반복하는 것은 심판 중에 평강을 누리지 못했던 백성들을 향한 여호와의 뜨거운 사랑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먼 자와 가까운 자에게’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구원이 미치지 않을 곳이 없음을 명시하는 것입니다.
사 11:11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
사 11:12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사 49:12 어떤 사람은 먼 곳에서, 어떤 사람은 북쪽과 서쪽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사 57:20 그러나 악인은 평온함을 얻지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구쳐 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사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들에게는 평강이 없다.’라는 선언과 함께 등장하는 묘사는 여호와께서 제공하시는 회복의 때가 무한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사 55: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만약 여호와께서 회복과 위로를 주셔도 여전히 패역의 길을 걷는다면(17절), 그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악인들은 진흙과 더러운 것은 늘 토해 내는 ‘요동하는 바다’로 비유한 것은 그들이 끝없이 죄를 짓는 자들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치유는 평강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평강은 단순히 내적 상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주변 환경과 그 안에서 맺는 온갖 인간관계, 아울러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온전함을 평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치유는 단순히 우리 내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의 전인에 관심을 두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치유는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우리의 주변과 우리의 인간관계로 확대되고, 마침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으로 최종 완성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치유에는 도덕적인 열매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사회와 교회를 포함한 모든 삶에서 치유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회복을 통해 세상에 퍼진 악이 소멸되고 우리가 경험하는 영적 유익을 세상이 공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평강의 본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치유는 우리의 내면을 소생시키는 것에서 출발하여 우리와 관계된 세상을 회복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획하시는 치유의 깊이뿐 아니라 넓이까지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유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