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외래어와 함께 우리 삶에 번역 문체가 가까이 있다는 배움했어요.
주변에 번역이 되었거나 단어나 문장이 어려운 책 들여다보며, 어떻게 우리말로 고쳐볼 수 있을지 살펴보고 다시 써봤어요.
일본말에서 건너온 어투와 외래어 덜어내고 담백하게 고쳐지어봐요!
아름드리(상준)
죽기 전의 문익환은 “대낮에 불 켜진 램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죽기 전 문익환은 “한낮에 불 켜진 호롱불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놀라운 역설이다. 1백55마일 휴전선 앞에서도 아랑곳없이 꿈과 직관에 도취되었던 존재.
→ 놀랍다. 멀리 휴전선 앞에서도 꿈을 꾸었던 사람.
늙어서도 소년임을 한껏 과시했던 민물이 그 천연덕스러운 눈동자 속에 자신의 세계를 감쪽같이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은 동시대인들은 분명히 눈치채지 못했다.
→ 늙어서도 어린이임을 한껏 드러냈던 나람이 천연덕스러운 눈동자속에 문익환이 생각하는 세상을 감쪽같이 숨겨놓고 있었다는 것은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임종 시에는 물론 그 후에도 여러 해 째 그의 사상은 은밀히 봉인되어 있는 것이다.
→ 죽었을 때는 물론 죽은 뒤에도 여러 해 째 문익환이 한 생각은 조용히 숨겨져있다.
꿈슬기(환)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트레비스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내가 왜 그랬을까?" 트레비스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것은 트레비스가 가이아에 온 이후로 쉴 새없이 자기 자신에게 던져온 질문이었다.
→ 트레비스가 가이아에 오고나서 부터 셀 수 없이 스스로에게 던져온 질문이었다.
서늘한 밤에 쾌적함 속에서 푹 자고 일어날 때면 이 질문은 자그마한 북소리처럼 그의 마음속에서 고동 치곤했다.
→ 서늘한 밤에 잘 자고 일어나면 이 질문이 북소리처럼 마음 속을 울렸다.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 내가 왜 그랬을까.
이슬마리(재인)
수많은 승객을 태운 여객선 한 척이 바다에서 큰 폭풍우를 만났다.
→ 수많은 손님들이 탐 여행배 하나가 바다에서 큰 바람과 비를 만났다.
밤새도록 계속된 폭풍우에 고장 난 그 배는, 며칠이 지난 후 어느 무인도에 닿았다.
→ 밤새도록 이어지는 비바람에 망가진 그 배는 이리저리 다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에 닿았다.
다행히도 그 섬은 예쁜 꽃과 숲이 우거지고 새들이 노래하는 아름다운 곳이었고, 나무마다 먹음직스러운 과일 풍성하게 열려 있었다.
→ 다행히 그 섬은 꽃과 숲, 새들이 노래하는 곳이었고, 나무에는 먹음직스러운 열매가 맺혀있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다섯 무리로 나뉘었다.
→ 배에 탔던 사람들은 다섯 모둠으로 나뉘었다.
첫번 째 무리는 배에 남아있기로 했다.
→ 첫번 째 모둠은 배에 남아있기로 했다.
맑은물(지현)
야영 채비를 하면서 그가 물었다.
→ 야영 준비를 하면서 산티아고가 물었다.
"그대의 마음이 가는 곳에 그대의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 "자네 마음이 가는 곳에 자네 보물이 있기 때문이지."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하다가도 동요하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 "제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꿈을 꾸는 듯 하다가도 마음이 흔들리고, 이제는 사막의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녀 생각에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 못 들게 합니다."
→ 파디마에게 빠져 있을 때면, 마음은 이것저것 물어대며 숱한 밤을 잠못들게 합니다."
솔바람(이준)
1990년대에는 포스그딱지게임과 매직카드가 등장했고,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선언이 등장했다.
→ 1900년대에는 포그스딱지놀이와 매직딱지가 나왔고, 국립정신건강연구소 보고서에 이런 말이 적혔다.
"별 근거는 없더라도 막연하게 자신의 미래가 낙관적일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혜택이 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상당히 많다."
→ "별 생각은 없더라도 그냥 제 미래가 좋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이 편해진 걸 보여주는 일이 꽤 많다."
밝고맑음(서현)
'이전'으로부터 '이후'를 보는 사건에 대한 예감은 예술의 고유한 능력으로서 사회의 향방을 탐침하는 기능을 맡게 될 것이다.
→ 예술은 사건으로 '이전'과 '이후'를 보는 감각과, 사회가 옳거나 그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헤아리는 힘이 있다.
바꿔 말해, 당장은 눈에 띄지 않기에 존재하지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여도, 지금0여기로부터 그 실존의 잠재성을 끌어내고 구성해가는 능력은 오직 예술가의 예언자적 감각에 의해서만 포착되는 것이다.
→ 단박에 눈에 띄지 않아 없어 보이거나 혹은 있을 수 없어 보여도 예술가의 알아차림은 지금-여기에 숨어있는 본바탕을 이끌어내고, 짜 이룬다.
한 시대의 감응을 추적하고 예기하는 이런 시적 능력은 우리 시대에도 작동하는 것이리라.
→ 시는 지금까지 시대의 두드러지는 기운을 느끼고, 앞으로의 시간을 그려왔다.
문학의 자정능력이나 자기비판에 대한 상투적인 주장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 문학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움직이는 힘이 있다. 버릇처럼 굳은 생각으로 문학을 바라보지 말자.
요점은, 한 시대의 변곡점으로서 '이전'과 '이후'를 갈라놓는 사건이 촉발되었던 발화점은 늘 예술의 한복판이었고, 문학이었다는 점에 있다.
→ 한 시대가 '이전'과 '이후'로 흐름이 나뉘는 사건을 바로 문학과 예술이 맞이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