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이생규장전>
◆전체 줄거리
개성에 살던 이생이란 젊은이가 글공부를 다니다 하루는 선죽교 근처를 지나면서 귀족 집안의 최 씨라는 아름다운 처녀를 발견하고 매혹된 나머지 사랑의 글을 써서 담 너머로 던진다. 그 뒤 그들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이생 부모의 반대로 시련을 겪게 된다. 최 씨 부모의 노력으로 결국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이생은 과거에 오른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홍건적의 난으로 여인이 도적이 칼에 맞아 죽고 만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인이 이생을 찾아와 둘은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3년이 지난 뒤 어느 날 여인은 아직도 들에 뒹구는 자신의 해골을 거두어 장사지내 줄 것으로 부탁하며 이생과 작별한다. 이생은 아내의 말대로 시체를 거두어 장사 지낸 후 그 길로 병이 들어 신음하다가 아내의 뒤를 따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해와 감상
작품의 구조
‘이생규장전’은 ‘이생이 담장 안을 엿보다.’란 뜻으로, <금오신화>에 실린 전기 소설이다. 이 작품은 ‘홍건적의 난’을 기점으로 하여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이생과 최랑의 만남 - 이별 - 결혼’으로 이어지는 현실 세계의 이야기이다. 특히 남성이 아닌 ① 여성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 점은 주목할 만하다. 또한 ② 유교적 규율에서 벗어난 자유 연애를 통한 결연(結緣)은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적 안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후반부는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최랑의 죽음 → 죽은 아내와의 만남 → 영원한 이별’로 이어지는 비현실적인 세계의 이야기이다. 죽은 아내의 환신과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은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세계의 횡포’에 맞서는 인간의 사랑에 대한 강한 의지를 형상화하였다는 점에의 의의가 있다.
사건 전개 방식
이 작품은 사건 전개에 있어 주인공들의 만남과 시련 및 이별이 거듭되는 복합 구성의 양상을 보인다. 주인공들 사이에 일어나는 세 번의 시련은 ‘부모님의 반대, 홍건적의 난으로 인한 최랑의 죽음, 삶과 죽음을 가르는 명부의 법칙’이다. 이 중에서 ‘부모의 반대’는 두 사람의 지극한 사랑으로 해결되지만, ‘최랑의 죽음’은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김시습은 절애의 설화에서 볼 수 있는 명혼(冥婚), 즉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사랑과 결혼이라는 화소를 사용해 현실의 제도, 관습, 운명관, 전쟁 등의 시련으로 점철된 상황 속에서도 환상적이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엮어 냈다. 즉, 작품에 설정된 인물들의 결연과 이별의 반복은 ①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절실한 것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두 사람이 맞이하게 되는 ②최종적인 이별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드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인용시의 삽입
‘이생규장전’에서 특기할 만 한 점으로는 작품의 중요한 대목마다 많은 시들이 삽입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는 작중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며 작품을 서정적이고 낭만적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중국의 ‘전등신화’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나, 작품의 배경이나 플롯, 소재의 표현 방식, 문체 등으로 보아, 작가 특유의 개성과 독창성을 발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핵심정리
∙갈래 : 단편소설, 한문소설. 전기소설, 명혼(冥婚)소설
∙제재 : 남녀 간의 사랑
∙주제 : 죽음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
특징
① 한문 문어체를 사용하여 사물을 미화시켜 표현함,
② 글의 내용 중에 시를 삽입함으로써 등장 인물의 심리를 효과적으로전달함
③ 비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내용을 다룸
출전 <금오신화>
◆작품 연구실
작품의 특징
이 작품은 <금오신화>의 한 작품으로, 14세기 중엽의 고려 사회가 그 배경이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고려 말 중앙 구귀족의 딸로 보이는 처녀 최씨와 신흥 사대부층의 아들로 보이는 이생이 어려운 고비 끝에 결합되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선 이들의 사랑은 당시 봉건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들이 관습을 과감히 깨뜨리고 자신의 사랑을 실천한 행위는 작자의 솔직하고 대담한 애정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 이르면, 이생이 홍건적의 난을 당하여 죽은 아내 최씨의 환신을 만나 부부 생활을 하다가 헤어진다는 비현실적이고도 환상적인 이야기가 된다. 이 부분은 이른바 한문 전기소설의 일반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전기 소설이나 몽유록은 모두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작품 속에서 이루도록 한 문학 형식이다. 전기 소설은 현실에서 발생한 욕망이 벽에 부딪쳐서 성취될 수 없을 때, 환상적인 기이함을 빌려 그것을 성취된 것처럼 형상화한 소설이다. 그러므로 전기 소설에서는 인간의 욕망 성취라는 인간적이며 현실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은 전반부의 염정 소설과 후반부의 전기 소설 구조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현실 속의 사랑과 꿈 속의 사건들은 서로 제재가 다른 것이지만, 인간의 진솔한 삶의 욕망과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일치한다.
한 여인의 굳센 의지와 정절
이 작품에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두 사람의 꿋꿋한 사랑이다. 특히 최처녀의 굳센 의지와 정절은 바람직한 한국 여인의 모습, 더 나아가서는 절개 있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둘의 만남에서 먼저 자기 마음을 대담하게 표현한 사람은 최처녀였다. 또 이생이 나중에 부모님의 노여움을 살까 염려할 때도 최처녀는 당당하게 말한다.
"저는 비록 여자의 몸이오나 조금도 걱정함이 없는데 대장부의 의기를 가지고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뒷날에 규중의 비밀이 누설되어 부모님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저 혼자 책임을 지겠습니다."
양쪽 부모님이 알게 되었을 때도 이생은 아무 말 없이 부모님의 명령을 따라 시골로 내려갔지만 최 처녀는 자기 속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도적을 만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그들을 꾸짖는 모습에서도 용기 있고 강인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 같은 한 여인의 의지와 절개는 죽음을 뛰어넘어 못다한 사랑을 이루었다.
김시습은 사랑하는 남녀의 모습을 통해 좌절하지 않는 사랑의 힘을 보여주었고 불의에 꺾이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그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도 평생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산과 들에 묻혀 지낸 김시습의 굳은 절개가 작품 곳곳에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이생과 최처녀가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의 한을 사람과 귀신으로 만나 풀어보지만 그것은 이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엽기적 사랑 이야기(명혼소설)
이 소설은 죽은 시체를 사랑한다는 엽기적 이야기를 담은 시애설화(屍愛說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시애설화에는 여러 유형이 있는데,
1. 사랑하던 연인이 죽었을 때 그 비통을 참지 못해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애무하는 이야기
2. 이미 죽은 연인의 혼백이 나타나서 산 사람과 동거 혹은 동침하는 이야기
3. 우연한 기회에 망인(亡人)의 혼백과 함께 놀다가 그의 유물을 신물로 받는 이야기 등이 있다.
이와 같이 사람과 귀신이 결합하는 이야기를 인귀교환설화(人鬼交換說話)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