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우연히 티비에서 본 영화를 추천한다. 상영시간이 거의 3시간이 되는 긴 영화였지만 새벽까지 티비를 끌 수가 없었다.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주인공은 장국영, 장풍의, 공리로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들이었다. 원작은 이벽화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작가가 각본에도 참여했기에 영화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장국영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되었고 많이 좋아하게 되었다. 만우절 날에 그의 자살은 내게 큰 충격이었으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제발 거짓말이길 바랬다.
장국영은 동성애자였는데 공교롭게도 영화에서 동성애자를 연기했다. 하지만 영화를 직접 본다면 주인공 두지(장국영)가 시투(장풍의)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두지는 매춘부였던 엄마 손에 이끌려 경극학교에 들어오게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홍등가에서 더 이상 애를 키울 수 없었던 엄마는 두지를 경극학교에 버렸다. 손가락이 6개라는 이유로 경극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자 엄마는 그 자리에서 두지의 손가락을 잘랐다. 여리고 내성적이었던 두지는 괴롭힘과 심한 장난의 대상이 되는데 씩씩한 형인 시투(장풍의)가 그를 지켜주게 된다. 마음의 문을 닫았던 두지는 시투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었고 경극 배우가 되는 혹독하고 험난한 과정을 함께 겪으면서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경극에서 두지는 우희 역할을 맡고 시투는 항우 역할을 맡아서 연습했다. 손수 시투의 분장까지 해주던 두지는 우정을 넘어서 어느새 시투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도 주인공의 관계 설정이 패왕별희와 비슷하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던 시기에 둘은 당대 최고의 경극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시투가 창녀 출신의 주샨(공리)와 결혼을 약속하게 되면서 시투와 두지 사이는 틀어지고 만다. 두지는 시투와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지만 모든 것이 주샨 때문인 것 같아 미워하고 차갑게 대했다. 영화를 보다보면 가장 속이 깊은 인물은 주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적인 배경은 1920년대에서 1970년대로 중국의 격동적인 역사적인 흐름과 사건을 통해 주인공들의 삶이 변화하게 된다. 경극은 소재로 하고 있어 경극 공연을 보는 듯 했고 영화는 해피엔딩이 아니고 비극이기에 여운이 남았다.
첫댓글 저도 아주 오래전 tv에서 해준 패왕별희를 보았어요. 영화가 끝난 후 잠에 들지 못하고 한참 뒤척였습니다. 계속해서 극중 두지의 인생은 뭔가? 한 사람의 인생을 시대가 유린해버린 느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제가 볼 때 두지가 잘못한 건 별로 없어보였거든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시대라는 커다란 힘, 운명이라는 힘에 비극을 맞는 두지가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때 막연히 인생사를 뒤흔드는 힘을 느끼고 두렵고 안타까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너무어릴?때 영화관에서 봤는데 그때 그 음악 그리고 못알아듣던 독특한 음색의 대사들이 여직 기억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