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바람재가복지센터

번듯한 아파트를 짓고 남은 자투리 땅에 낡은 양옥집을 개조한 노인단기보호센터가 있다. 아침 9시가 넘으면 두 대의 차를 타고 할머니 7분이 이곳에 도착하신다. 이분들이 차량에서 내릴 때는 어린이처럼 도움이 필요하다. 차에서 내리면 자칫 넘어질새라 울퉁불퉁 시멘트 경사길을 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내려가신다. 특별히 더 신경써서 도와주실 분이 두어 분 계시지만 도우미들은 총동원되어 모든 분들을 모신다.   먼길을 온듯 안도하며 거실을 개조한 주요한 방에 도착하면 한쪽 벽면에 줄줄이 늘어선 소파에 조심히 저마다 엉덩이를 내려놓는다. 인생의 가을날 아름다운 단풍의 때가 왔는지 느낄 새도 없이 뭉떵 정신의 한쪽을 도둑맞은 채 또 새날을 맞았다. 저녁에 식구들과 단잠을 자고 오셨는지 표정들이 밝다. 요양보호사 선생님과 수다스런 인사를 하며 얼굴에 한껏 웃음꽃도 피운다.   아침잠 깨우던 자명종처럼 때릉때릉 울려대던 목소리는 이제 제시간을 빗나가기 일쑤다. 현재 시간에서 한참 벗어난 과거에서 머물러 밥 때가 되도 모르고 어느집 대문옆 귀퉁이에서 친구와 소꿉놀이에 열중이시다. 큰 소리로 부르는 엄마 목소리에 마안해 하며 끌려가 밥을 먹는다.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은 아까 그 소꿉놀이에 온통 젖어 멍한 표정이다. 하다만 말을 중얼거리기도 한다. 이때 해소기침을 해대는 옆 할머니를 인정사정없이 야단을 친다. 암말도 안 하고 했어. 난 암말도 안 하고 다 해줬어. 6남매 키울적 월급쟁이 남편 벌이로는 어림없었제.. 시골서 올려보내는 애들 내가 다 거뒀제. 그땐 그랬제. 암말도 안 하고 다 했어.   손매듭 굵은 순이 할매는 골백번 더 녹음기를 틀어댄다고 삼개월 일해 온 요양보호사가 힌트를 준다.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을 읽기에 전문가가 된 사람, 그분들 앞에서면 실한 사람의 가슴과 머리도 유리가 되고 만다. 뿐만 아니다. 누가 무엇을 하는지 손가락 움직임 하나도 금방 채킹되고 만다. 그것은 곧바로 관리자에게 네트워킹되어서 짜릿한 자극제가 제조되고 다시 유포된다. 감시자로서의 외로움은 이때 풍선처럼 터져버리고 몽롱한 길에서 현실로 착지하나보다.   8시간에서 단 일분도 더 연장하기를 아무도 원치 않기에 벽 중앙에 붙어 있는 전광판 시계는 더욱 정확하다. 4시가 넘을 무렵 노익장 기사님이 넉넉한 웃음을 만면에 띄우며 들어서면 모두 때가 다 되어감을 감지한다. 화장실 다녀오세요. 차에서 오줌 마렵다고 하지말고. 미리미리 소매도 세이고 목도리 두르고 윗옷 걸치고 신발에 지팡이까지 옆에 붙여놓고 시간을 기다린다. 4시 20분 오늘 하루 일과를 잘 마쳤다고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이라고 그렇게 잠궈진 문을 열고 비로소 밖을 나선다. 또 다른 갇힌 공간을 향해 각자 가야할 길을 떠나는 것이다. 천천히 주렁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두살박이 아이 첫걸음 걷듯 조심조심 걸음을 뗀다. 발밑에 구르는 낙엽을 밟으며 걸음을 떼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