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관계 / 박해경
조카가 취업이 되었다. IT 쪽의 기업이었다. 처음 출근하던 날, 그녀를 만난 상사가 “**님, 오늘 첫 출근인데 기분이 어때요?” 했다. 조카는 가슴에 감동이 일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었다. “네, **님이 저의 이름을 불러 주시니 정말 좋아요.” 그녀는 좀 어색했지만 입사 시 안내받은 대로 상사의 직함을 빼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대답했다. 긴장되었던 직장이 좀 편안해졌다. 자기 의견도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집에 와서도 가족들에게 회사 자랑을 했다. 호칭 하나 바꿨을 뿐인데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내 호칭’에 관하여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2000년 CJ를 시작으로 SK텔레콤, Daum, Naver 등에서 사내 호칭에 변화를 주었다. 지금은 몇몇 대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즉 기업의 일부 윗사람을 제외한 조직원이 직함을 사용하지 않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부르도록 했다. 반면에 어떤 회사는 전체 조직원이 예외 없이 이름에 ‘님’자만 붙였다. 그 후에는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는 회사도 생겼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인간관계는 수직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상사의 지시를 받아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면 대체로 성공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다. 바꾸어 말하면 시니어들이 그간의 경험을 통해 축첩 된 정보가 그 기업을 육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에 들어선 우리나라는 이제 세계적인 기업들과 경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축적된 경험과 정보만으로는 경쟁하기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고유하고 독창적이면서도 다양하고 무수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어찌 보면 엉뚱한 생각까지도 열린 마음으로 숙고 하며 연계하지 않으면 당면하게 되는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예전의 상명하복식이나 권위적인 경영으로는 소위 4차 산업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따라서 구성원 전체가 내재하고 있는 가지각색의 다름과 능력을 가감 없이 온전하게 발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는 먼저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어 나간다. 그러면 권위와 직급이 지닌 의식, 무의식 간의 억압구조는 해소될 것이다. 그 첫 번 실천 방안이 바로 ‘호칭의 변화’라 하겠다.
90년대 중반, 나는 우리 단체와 협력관계에 있는 미국의 한 소비자단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책임자를 만나려고 살피니, 윗사람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다 같은 책상과 의자이고 배치도 윗사람이 특별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우리 사무실은 책상의 크기나 위치. 의자의 팔걸이 유무, 의자 등받이의 높이에 따라 윗사람의 자리를 저절로 알게 되어 있던 시절이었다. 그곳 대표와 업무적인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단체가 직원 한 사람을 뽑는데 여성 변호사가 응모했다며, 내일 인터뷰할 예정임을 말해 주었다. 혹시 내가 원한다면 나도 참여해도 좋다고 했다. 각자가 자기 업무에 지장 받지 않고 모두가 참여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먹으면서 하는 인터뷰였다. 나는 그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샌드위치를 준비하여 갔다. 대표에서부터 심부름하는 말단 꼬마까지 모두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아무 때나 자유롭게 묻고 대답하며 진행되는 면접이 나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면접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모습에서 비록 직급과 업무는 달라도 관계는 수평적이었던 것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평상시에는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 영어로 하는 대화는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지난 2002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월드컵’을 대비하기 위해 1년 전에 히딩크를 한국축구 감독으로 영입한 적이 있다. 히딩크에 관해 일화는 많이 있다. 그중에 히딩크가 축구선수들에게 이름에 ‘형’ 이나 ‘선배’라는 호칭을 하지 말고 그냥 이름만 부르도록 했다. 늘 긴박하게 전개되는 다양한 상황을 극복하는데 수평적 소통이 필요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때 한국축구는 지금까지도 불가능한 4강에 진출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수평적 관계라고 하면 ‘야자타임’ 하듯이 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존중하고 존중받는 관계이다. 이것은 인문학적인 최고의 가치이기도 하고 목표라고도 하겠다. 참으로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가 선순환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귀한 가치가 우리나라에서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견인차가 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미래가 서로 존중하고 존중받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