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13. 알란부사 본생
부인 잊지 못해 출가생활 싫어진 비구 위해 설법
고행·선정에 몰두한 이시싱가, 천녀 유혹에 넘어가 파계
지계·정진·선정의 힘 하늘 세계 닿을 만큼 영향력 크지만
지혜 없이 선정에만 머문 수행은 퇴전할 수 있음 보여줘
아잔타 석굴 16굴에 그려져 있는 알란부사 본생담. 왼쪽의 여인이 알란부사, 가운데는 알란부사에게 명령하는 제석천왕, 가장 오른쪽이 이시싱가다. 이시싱가는 사슴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머리 위에 검은 뿔이 하나 솟아있다.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서 마왕의 공포스러운 군대를 제압하고, 마왕의 세 딸의 떨치기 어려운 유혹을 극복하고 정각을 이루셨다. 그러나 애욕은 수행하는 이에게는 적어도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는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알란부사 본생은 애욕이 수행자를 망가뜨린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의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이 이야기는 출가 전의 부인을 잊지 못해 출가 생활이 싫어졌던 비구를 인연하여 설하여진 것이다. 이 본생담은 아잔타 석굴 16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를 다스릴 때 카시국의 어떤 바라문의 아들이 선인(仙人)의 도에 들어가 숲속에서 나무뿌리와 과일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거기에 있던 암사슴 한 마리가 정수(精水)에 젖은 풀을 먹고 물을 마시고는 사람의 아들을 낳았다. 선인은 그것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여 기르면서 이시싱가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선인은 늙어서 “아들아, 이 설산에는 꽃에 비길만한 아름다운 여자들이 있다. 누구나 그녀들 손아귀에 들면 큰 파멸을 당한다. 그러므로 그녀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일러주고 죽어서 범천세계에 났다.
선정에 유희하는 이시싱가는 그 고행이 과도해 모든 감관이 그 활동을 잃고 말았다. 그의 계율을 지키는 힘에 의해 제석천의 자리가 흔들렸다. 제석천은 그 까닭을 알고 ‘이것이 나를 제석천 자리에서 떨어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는 남자들을 가까이하여 봉사하는 길을 잘 아는 알란부사라는 천녀에게 그 계율을 깨뜨리라고 명령했다.
이 말을 듣고 알란부사는 다음 게송을 외웠다. ‘비록 천왕의 명령이 있다 해도/ 나는 거기 가기 좋아하지 않네./ 나는 그를 범하기 두려워하나니/ 바라문은 그 위광(威光)이 놀랍기 때문이네./ 저 선인들을 범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다 지옥에 떨어져/ 우치(愚痴)의 윤회에 잠기었나니/ 그러므로 내 몸의 털이 일어서네.’
그러나 알란부사는 제석천의 명령을 받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침 해가 오를 때쯤 목욕탕을 청소하는 이시싱가 앞에 갖가지 팔찌를 끼고 귀고리로 장식하고 금빛 전단과 같은 향기를 풍기고 태양 같은 광명을 발하며 나타났다.
고행자 이시싱가의 눈에 밑에서부터 위로 알란부사의 아름다운 미모가 차례로 들어왔다. 그는 그녀의 자태를 보고서, 화사하고 보드랍고 깨끗하며 알맞게 통통한 다리,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리는 너무도 사랑스러운 걸음걸이, 탄력 있고 코끼리의 코처럼 차츰 굵어지는 넓적다리, 도박장의 원반 같이 통통한 엉덩이, 청련화의 꽃받침 같이 고운 배꼽, 줄기도 없이 반형(半形)의 호리병 같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른 유방, 에나 사슴처럼 알맞게 긴 목, 혀처럼 새빨간 입술,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빨, 진쥬카 열매 같이 길고 큰 눈, 전단향이 나는 잘 빗겨진 머리카락을 가진 너는 누구냐고 물었다.
알란부사는 그의 어리석음을 알고 “오너라! 벗이여, 우리 이 도원에서 함께 즐기자. 오너라! 나는 그대 안아 주리. 그대는 향락의 달인(達人)이 되라”고 말하고는, 그냥 있어서는 저 고행자를 자신의 수중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슬쩍 돌아서 떠나는 척했다.
평소에는 기운이 빠져 행동도 느리던 이시싱가는 그녀가 정말 갈까봐 재빨리 뛰어나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아주 아름다운 그 여자는 즉시 돌아서서 그를 껴안아 그의 범행(梵行)을 깨뜨렸다. 그것은 제석천이 바라던 바였다,
그녀는 그를 안은 채 제석천이 50개의 덮개로 덮고 천 개의 일산을 씌워 준비해준 자리로 데려갔다. 그녀에게 안겨 있는 시간은 한 순간 같았지만 3년이 지나갔다. 3년 동안 취해 있다가 그 바라문은 비로소 깨어났다. 나무와 꽃과 새들이 지저귀는 사방을 둘러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일찍이 나를 섬긴다 빙자하고/ 내 마음 유혹한 것 그 누구인가?/ 내가 숲속에 살면서/ 위력으로 내 몸에 쌓아 둔 것을,/ 마치 갖가지 보물을 가득히 실은 배를/ 바다에서 붙잡듯 잡은 이는 누구인가?’
알란부사는 이시싱가의 저주가 두려워 제석천왕이 자기를 보냈다고 실토했다. 이시싱가는 아버지의 교훈을 생각하고 비탄게를 외웠다. ‘여자는 마치 연꽃 같나니/ 젊은이여 그것을 알아차려라./ 가슴에는 두 개의 종기(=유두) 있나니/ 젊은이여 그것을 알아차려라.’
깨어난 이시싱가는 비로소 쾌락을 버리고 선정을 일으켰다. 알란부사는 그 사문의 위광을 보고, 선정을 일으킨 것을 알고 두려워하며 이시싱가의 발에 머리를 대고 참회하였다. 그러자 이시싱가는 그녀에게 “부인이여, 너를 용서하노니, 행복 있으라.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하였다. 알란부사가 하늘세계로 돌아오자 제석천은 기뻐하면서 그녀의 소원을 말하라 하였다. 알란부사는 제석천에게 소원을 말하였다. ‘제석천님, 모든 생명의 주인님/ 만일 내게 소원을 들어준다면/ 다시는 선인을 유혹하러 가지 않는다는/ 이것이 내 소원이네. 아! 제석천님이시여.’
부처님은 이 이야기를 마치고 사성제를 설하시니 그 비구는 수다원과를 얻었다. 알란부사는 출가 전의 아내요, 이시싱가는 출가생활이 싫은 비구요, 그 아버지 선인은 부처님이었다.
이 본생담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 먼저 이시싱가의 고행에 의해 제석천의 자리가 흔들렸다는 이야기는 지계와 정진, 선정 등이 하늘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이 자리의 행위가 주는 여파는 보이는 한계를 벗어나 보이지 않는 영역에까지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는 수행자의 범행을 깨뜨리는 것이 두려움을 동반하는 일이며, 우치의 지옥에 떨어진다는 점을 알란부사가 토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이시싱가는 계율을 지키고 선정을 닦는 것이 배에 갖가지 보물을 싣는 것과 같다고 밝히고 있다. 그것이 바로 위력으로 몸에 쌓은 정신적 재보인 것이다. 물질적 재보는 눈에 보이지만 정신적 재보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 재보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신적 재보야말로 죽은 뒤에 선처에 나게 하는 원동력이며 진리에 이르는 길이다. 네 번째는 선정이 과도했던 이시싱가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리고 말았는데, 이는 지혜가 중요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호수는 바람 불면 다시 요동치지만, 지혜는 날카로운 칼과 같아 번뇌의 싹을 잘라버리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천상의 궁전이 흔들릴 정도의 수행이 있다 하더라도 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계제일 우바리 존자는 “신심(信心)으로써 욕락(欲樂)을 버리고 일찍 발심(發心)한 젊은 출가자들은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똑똑히 분간하면서 걸어가야 할 길만을 고고(孤高)하게 걸어서 가라”고 하였다.
[1640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