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의 밥상 / 이정자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찬란한 햇발에 곡식과 과일이 영글어 가는 계절이다. 억새꽃 핀 들녘 풍경을 바라보며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한라산의 정기가 내려온 이곳은 너른 평원에 메밀꽃이 만개하여 은빛 물결이 출렁인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드넓은 메밀밭이다. 저 멀리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에 추자도가 선명히 보인다.
자연의 청정한 공기와 기운을 흠뻑 들이마신다. 들숨으로 메밀꽃 향기에 취하며 흰나비를 쫓는다. 사방을 둘러보니 메밀밭 가운데 포토존에 해녀 동상이 세워져 있다. 큰 수경을 이마 위에 둘러쓰고 테왁을 걸머진 생김새가 다부지다. 해녀와 마주하는 돌하르방은 코가 뭉툭하고 귀가 커다란 형상으로 메밀밭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들녘의 메밀밭에서 해녀 할머니와 이웃 할아버지를 만난 듯 가슴이 뭉클하다.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몸통이 붉은 메밀꽃은 바람을 피하려 작달막하고 옹골차다. 하얗고 몽글몽글한 꽃숭어리가 하늘빛에 반사되어 넓은 염전鹽田을 떠올린다. 꽃을 지탱하는 뿌리는 닭발처럼 갈퀴가 있어 튼튼하다. 메밀은 온화한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흠모하며 하루가 다르게 여물어 갈 것이다. 뒤따라 걸어오는 일행 중 누군가, “야! 꽃길만 걷자!” 하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메밀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메밀은 산에서 나는 밀이다. 예부터 어른들은 구황작물인 메밀 씨를 소중히 보관하며 거르지 않고 재배하였다. 부모님은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 비탈지고 척박한 밭에서 가을 메밀을 거둬들였다. 북풍이 불어오면 마당에 멍석을 펼치고 도리깨로 타작하여 알곡을 손질하였다. 제수용과 식량으로 분리하고 곳간의 항아리에 가득 채워놓았다.
할아버지 제사가 다가오면 어머니는 부엌에 멍석을 편다. 메밀쌀을 돌고래(맷돌) 가운데 구멍에 조금씩 집어넣으며 손잡이를 돌린다. 옆에서 도와드리다 고래의 손잡이를 급하게 돌리면 위아래가 이탈한다. 요령이 부족한 탓으로 벗어난 고래에 발등이 찍혀 울었던 일이 아련하다. 빻아놓은 메밀가루를 손질하여 고운 가루는 제수용으로 보관한다. 느쟁이(거친 가루)는 고구마를 썰어 넣고 범벅을 만들어 맛있게 먹는다. 무를 썰어서 범벅을 만들면 할머니는 속이 편하다며 많이 드셨다. 메밀과 무는 찰떡궁합이다.
메밀쌀의 효능은 다양하다. ‘루틴’이라는 성분은 혈관의 탄력성을 유지하고 혈관질환을 예방해 준다. 몸속 피의 순환을 도와주며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소화가 잘된다. 예전에는 아기를 출산하고 산모가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 메밀가루로 만든 말랑말랑한 수제비였다. 수제비는 치아를 보호하며 자궁 속의 어혈을 풀어주어 원기를 보충해주는 보양식이다.
제사 음식을 만들 때도 우선 메밀묵을 쑨다. 고운 가루로 세미(작은 만두) 떡을 만들어 제사음식상에 올리면 정성을 다한 듯 흡족하였다. 메밀은 조상과 자손을 이어주는 곡물이다. 요즘은 제례 문화와 혼례 문화가 매우 간소화되어간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잔칫집 음식으로 도톰한 빙떡을 손님에게 대접하면 잘 차린 잔칫상이라고 하였다. 친척이 모여서 빙떡을 만드는 정다운 모습은 수눌음 정신을 이어주는 미풍양속이다. 어른이 계신 집에 챙겨서 보내는 빙떡은 인정과 나눔의 음식으로 이어져왔다. 친척이나 이웃들은 메밀 칼국수처럼 서로 엉겨붙으며 힘든 일을 함께하였다
어린 시절의 어느 날, 홍역에 걸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마당을 맴돌았다. 오죽하면 홍역을 치르고 나서야 출생 신고를 하였을까. 나도 홍역에 전염되어 먹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며 눈을 감았다고 한다. 옆집 할아버지가 오셔서 나를 쳐다보고는, “사람 안 될 것 같다.” 하는 말에 어머니는 수건을 얼굴에 덮었다. 그 옆에서 바라보던 할머니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곡기穀氣를 먹인다는 생각에 메밀쌀로 죽을 쑤었다.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가며 조금씩 먹였더니, 힘없이 받아먹은 아이는 오물거리며 잠이 들었다. 할머니는 한참 후 깨어나 우는 아이를 보듬어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안심하였다. 나를 볼 적마다 앞동산에 ‘아기 무덤’이 되었을 손녀라며 애틋한 사랑으로 보듬어 주었다.
몇 년 전, 친정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병마와 싸우는 나날이 적막강산이었다.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절망스러운 순간이 먹구름처럼 몰려와 애간장을 녹였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드시고 싶은 음식을 드리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스러워 가슴이 미어졌다. 담당 의사는 물 종류만 환자에게 허락하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귀에 속삭였다. “아버지! 메밀쌀로 죽을 쑤어 드리겠습니다.” 했더니 실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얼른 집에 달려와 메밀죽을 쑤고 보온병에 담아서 병원에 갔다. 남동생은 아주 조금만 먹이라고 하지만, 쉬엄쉬엄 많이 드시게 했다. 밤에는 아랫배를 쓸어내리며 온몸을 주물러드렸다. 아버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여러 번 들렸다. 다음 날, 오후에 땀을 흘리며 대변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배출되었다. “아버지! 속 시원하세요.”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서둘러 저승길에 입고 갈 고운 한복을 입혀드리며 자식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초라한 메밀 밥상을 받으시고 영원한 소풍을 떠나셨다.
아버지를 유택에 모시고, 어머니는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하여 무당을 청하고 귀양풀이에 정성을 다한다. 귀양풀이는 고인이 저승으로 잘 가도록 인도하는 굿이다. 무당은 고인의 음성으로 장례에 일어난 일들을 풀어내며 애환을 털어낸다. 구수한 입담에 인정(돈)을 걸며 이승에서의 여한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심취한 무당은 나를 향하여, “샛년아! 구진 거 모두 버리고 간다.”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들으니 숨겨놓은 일이 들통난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며 울음이 쏟아졌다. 메밀죽이 뱃속을 휘둘러 많은 대변을 본 것일까. 무당은 눈으로 본 일처럼 구성지게 풀어내며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었다.
메밀로 만든 음식은 기쁨과 슬픔을 위로하는 매개체처럼 친화력이 있다. 메밀로 만든 음식처럼 사람들도 친화력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도 그렇게 노력하며 살아간다. 메밀 밥상에서 만난 사람을 기억하며 따뜻한 메밀차를 마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