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제봉으로 올라
이월도 중순에 접어들었다. 여기저기 매화망울이 꽃잎을 펼치기 시작했다. 지난주 금요일 내가 떠나온 학교에선 졸업식이 있어 하루 출근한 적 있다. 날씨가 무척 추운 날이었는데 뒤뜰을 서성이다 매화꽃을 보았다. 교정에는 여러 꽃들이 피고지고 하는데 수목으로는 매화가 가장 먼저 피어났다. 주말에 올봄 옮겨갈 거제를 다녀왔는데 차창 밖 언덕배기에도 매화가 점점이 보였다.
주초 월요일 이른 아침 배낭은 챙기지 않고 산행을 나섰다. 집 앞에서 101번 버스를 타고 대방동으로 갔다. 대암고등학교 근처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등산로를 올랐다. 대암산이 아닌 용제봉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성주동 아파트단지를 돌아 임도를 걸었다. 지난해 여름 용제봉 계곡에 발을 담가보려고 들리고는 가을과 겨울이 다 가도록 찾지 못했다. 이제 봄이 오는 길목이다.
평일 아침이어서인지 산행객이 간간이 보였다. 산행이라기보다 산책정도로 집을 나선 사람인 듯했다. 길 건너 창원공단에서는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스피커 성량을 높인 투쟁가가 쩌렁쩌렁 들려왔다. 성주동 남향 비탈에는 고급빌라와 대형 아파트가 들어선 중산층 거주지다. 아침마다 강성 노조가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틀어대는 선동 구호들로 느긋하게 늦잠 자 보기는 글렀지 싶다.
아침 햇살은 비치지 않아도 건너편 안민고개와 장복산 산등선으로는 날이 밝아오는 기운이 서서히 비쳤다. 쉼터를 지나 농바위를 거쳤다. 농바위는 장롱처럼 생긴 바위에 불모산동 사람들이 선산 묘역이 어디 위치하는지 바윗돌에 음각으로 새겨놓았다. 백 오십년 전 조선후기 금석문이었다. 비음산과 대암산 허리를 돌아온 숲속 나들이 길은 평바위에서 임도를 따라 상점고개로 갔다.
용제봉과 상점령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다. 임도 따라 계속 가면 상점에 닿아 고개를 넘으면 장유이고 산등선 따라 올라가면 불모산이다. 중간에서 불모산 숲속 나들이 길로 가면 평탄한 숲길을 걸어 성주사에 닿는다. 그 길을 걸어보려다 마음을 바꾸어 산비탈을 계속 올라 용제봉으로 향했다. 참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날 즈음 대암산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여름이면 산비탈이 가팔라 숲 그늘일지라도 땀을 많이 흘렸을 텐데 겨울이라 그렇지 않았다. 고도가 점차 높아지니 산행객은 아무도 없었다. 올라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안민고개와 불모산 송신탑이 아스라했다. 등산로는 사람이 적게 다녀 희미하고 서릿발이 숭숭 솟아 있었다. 오르막 비탈을 갈지자로 오가며 산등선에 이르니 내가 목표한 용제봉이 저만치 나타났다.
산등선 북사면은 설날 이전 내렸던 눈이 녹지 않고 희끗희끗했다. 볼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고 장갑을 꼈지만 손가락 끝이 시려왔다. 드디어 사방이 탁 트인 용제봉 정상에 섰다. 창원 동쪽이고 김해 서쪽인 용제봉(龍蹄峰)은 용제봉(龍祭峰)이라고도 하고 용지봉(龍池峰)으로 불린다. 낙남정맥이 신어산으로 건너가는 혈맥 봉우리다. 남은 한 갈래는 불모산에서 굴암산과 보배산으로 간다.
미세먼지가 적어 시야는 그런대로 괜찮아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었다. 먼저 윤슬로 반짝이는 다대포 바다와 몰운대가 들어왔다. 발아래는 김해 시가지와 들판이고 금정산 고당봉이 희미했다. 진례와 한림을 지난 낙동강이 밀양강과 합류하는 삼랑진 뒷기미가 드러났다. 북으로는 정병산을 지나쳐 천주산과 작대산이었다. 남으로는 안민고개 너머 진해바다와 장복산 산등선이 이어졌다.
한동안 산정 바위에 퍼질러 앉아 온몸에 지자기를 받았다. 산등선 따라 장유사로 내려서니 비구의 독경에 따라 엄숙한 재가 올려졌다. 법당 바깥 여러 켤레 신발과 주차장이 넘쳐 갓길까지 빼곡한 차량으로 미루어 유력 인사의 영가가 안치되는 날인 듯했다. 맑은 물이 고인 웅덩이를 지나 계곡을 내려서니 장유폭포가 나왔다. 대청계곡 들머리에서 창원으로 가는 59번 버스를 탔다. 1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