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싸돌아다니기 수행 이야기
* 몇 가지 기록이 있어 남기니 시간 나신 분만 읽어 보십시요.
10월 16일(목) 서울-양평-청주-칠곡-영산 보정사
일어나보니 6시가 다 되었다. 간단히 생식가루를 과일과 섞어서 만들어준 아침밥을 먹고, 어제 싸놓은 가방과 배낭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배낭에는 주로 옷가지가 들어 있고, 가방에는 노트북, GPS, 사진기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한 가지 더 정토선 총본산 터를 찾으러 가기 위한 자료들이 잔뜩 들어있다.
약속시간인 7시 반에 아차선 역에서 내려 기다리니 마하심 보살과 아들 금천이 봉고를 몰고 나타났다. 이어서 이수동 선생이 도착해 바로 출발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려 9시 반이나 되어서 목적지인 여주군 대신면 옥촌리 봉선사에 도착하였다. 30분 정도 둘러보았는데, 대체적으로 좋은 절이었다. 다만 절터가 362평으로 너무 좁은데, 함께 붙은 산 1400평은 별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교통이다. 양평이나 여주까지 와서도 다시 대신면까지 와야 하고, 또 그곳에서 옥촌까지 오는 데는 택시가 아니면 안 되는데 면 소재지이기에 택시가 없다. 결국 자가용을 갖지 않으면 올 수 없는 절이기 때문에 다른 조건이 좋다고 해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10시가 약간 넘은 시간인데 청주에서 11시에 약속했으니 이미 조금 늦었다. 그런 데다 안개가 짙게 끼어 속도를 내기도 힘들다. 결국 30분 늦게 11시 30분 도착하였다. 김성수 교수 차로 바꾸어 타고 12시 30분쯤 현장에 다다랐다.
주소 :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산 27-11
넓이 53,417㎡(16,187평) / 공시지가 : 1440원 = 7700만원
시가 : 5억 2천만 원
들어가는 길도 잘 닦아놓았고 많이 손을 보아 그냥 산에 비해 상당히 접근하기 쉬웠다. 산세도 뜻밖에 웅장해 상당히 맘에 들었다. 우선 차에 내려 길을 따라 올라가려는 곳에서 첫 번째 혈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건물이 있는데 올라가니 두 번째 혈이 발견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대웅전 자리이다. 대웅전 뒤에도 좋은 혈이 있는데, 산신각 자리쯤 되겠다. 바로 옆에 새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 선생님이 최악의 선택을 한 곳이라 바로 그 집 짓고 이 산을 팔아먹을 일이 생겼다고 한다. 반드시 뜯어내야 하고, 뜯어낸 자재는 기운이 좋은 곳에 3개월 이상 쌓아두었다 써야 할 정도이다. 어쨌든 이곳은 1차적으로 절터가 갖추어야 할 좋은 대웅전 터와 요사채 터를 가지고 있어, 미래의 한국 불교정토선종 총본산으로 마음을 굳혔다.
서쪽으로 올라가 능선을 내려가면서 계속 둘러보았다. 산이 16000평이 넘기 때문에 제법 시간이 걸린다. 능선을 내려가면서도 자주 혈이 나타나지만 아까 대웅전만은 못하다.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자리, 재물을 얻을 수 있는 자리, 심지어는 물이 나는 지역에 있는 희귀한 물명당(물이 흐르는 곳에 있는 명당)까지 찾아냈다. 이곳은 수련원이나 납골묘 부지로 적당하다고 한다.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올라와 넓은 공터에 다시 좋은 혈을 발견하였다. 모두 4곳의 좋은 터를 발견한 것이다. 이곳에 염불당이다 호스피스 같은 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대웅전 터에서 사라수 보살이 싸온 김밥으로 낮밥을 먹었다. 앞으로 대구에 한 곳을 보겠지만 이곳으로 마음을 굳혔다. 이곳은 지난번에 보았던 팔봉리보다 더 좋은 땅이라고 한다. 그동안 팔봉리 딸 구입이 지지부진한 것도 이곳을 찾아오기 위한 것인 모양이다. 며칠 전 이곳을 보러 오기로 하고 이 선생님하고 약속을 했는데, 5억 3천만 원에 이미 계약이 이루어져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도 약속을 그만 두었는데, 2일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사려는 사람의 펀드가 완전히 깡통이 되어버려 계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와보기로 한 것이고, 드디어 주인을 만난 것이다.
“관정 스님 이름과 똑 같은 관정리에 절터를 잡게 되었으니 이것이 어찌 우연이겠는가?”
사라수 보살의 이야기다. 우리가 내려오는데, 4,5명 사람들이 올라온다. 놀러왔다지만 이곳 땅 둘러보러 온 사람들이 분명하다. 차를 타고 내려가는데 또 다른 차가 올라온다. 서둘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불경기라 하지만 좋은 땅은 임자가 있는 법이다.
원래 1시 40분에 대구 가는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이미 2시다. 할 수 없이 김교수가 차로 대전까지 데려다 주었다. 2시 52분 KTX을 타고 3시 35분 동대구에 도착하니 자광거사(010-9450-5533)가 차를 가지고 나와 있다. 높은 한티고개를 넘으니 얼마 가지 않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가 있고,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다다랐다.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 32(전)
우선 교통이 불편하다. 결정적인 것은 짓다 중단된 대웅전이 완전 최악의 자리, 자맥(磁脈)에다 지어 논 것이다. 제법 좋은 자리인데, 토목공사를 하면서 주맥의 혈을 파내버리고, 또 지은 자리도 가장 나쁜 나리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좋은 곳을 선택해 놓았기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다. 자광거사님이 영산까지 택시를 잡아주어(6만원) 편하게 영산까지 와서, 현지 택시로 바꿔 타고 보정사에 다다르니 7시가 다 되었다. 법당에서는 아직도 저녁 법회가 끝나지 않았다. 부처님에게 인사 올리고, 법회마치고 내려와 스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 드렸더니 마하심 보살로부터 이미 전화를 받으셨다고 한다. 내일 7시에 출발하기로 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내년부터 시작될 무문관 문제를 상의 드렸다.
만성위염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마침 방에 있는 유근피(느릅나무) 뿌리껍질을 주신다. 직효약이라고 한다. 배낭을 청주에다 두고 와 약이 없었는데, 잘되었다,
10시 5분쯤 요사채에 내려와 이 글을 마치니 11시 10분, 이제 잔다.
gps waypoint(다음에 gps로 다시 그 자리를 찾을 수 있음)
10 대웅전
11. 요사채
12. 수련원, 납골묘
13~14. 권세혈
15~16. 재물혈(염불당 가능)
18. 물명당
19~21. 염불당. 열반당
22~24. 요사채
10월 17일(금) 청원군 관정리 정토선 총본부 자리 계약
4시 도량석 소리에 잠을 깨 아침 예불을 드리고 한 시간 쯤 쉬었다가 아침 공양을 하고 선용 스님과 함께 보정사를 떠났다. 7시에 떠나기로 했는데, 조금 늦어 7시 반에 떠났다. 상주로 해서 상주-청원간 고속도로를 통해서 가니 경부고속도로보다 더 가까웠다.
10시쯤 도착하였는데, 입구를 찾지 못하고 지나쳐 조금 가니 바로 미원이라는 곳이다 돌아오다 제길을 찾고 보니, ‘상당산성 입구’라는 표지가 있었는데 몰랐던 것이다. 도착하고 조금 있으니 종강스님이 오셨다. 미원 쪽에서 오는데 2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종강 스님의 의견 : 청주에서 시내버스가 있지만 많이 돌고 정류장도 잘 모르니 청주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미원 가는 버스를 타고 미원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3000원 밖에 안 낼꺼야.
어제 코스대로 요사채, 대웅전 자리를 먼저 보았다. 두 스님 모두 아주 만족해하신다.
종강 스님 : 앞의 안산이 너무 좋다.
선용 스님 ; 뒷산의 소나무가 정말 좋다.
다시 서남 능선을 타고 내려오며 다 돌아본 뒤 마지막 새로 잘 지은 전원주택 앞에서 밭으로 가는데 마을 사람이 한 사람 계신다. 내가 인사를 올렸더니, “둘러보니 어떻세요? 하고 관심을 표명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해보니 이 동네에 살면서 바로 그 산을 처음부터 관리해주신 분이라고 한다.
“문 열쇠를 내가 가지고 다 열어줬지,”
“저 집 지을 때 강원도까지 내가 가서 소나무 골라와서 지었지.”
“저 집 뒤하고, 능선에 가묘도 내가 만들어줬지.”
“나무들도 다 내가 심어줬고.”
모든 것을 아는 할아버지다.
“작년에 6억에 내놨는데, 청주 보은 대전까지 하도 많이 내놔 8억 3천만 원에 계약한 사람도 있었지.
결국은 자기를 통해서 거래를 하면 좋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많은 정보를 흘린다. 그 할아버지의 안내로 길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바로 그 길이 가운데 무덤 잘 써놓은 집에서 사서 만든 사설 도로라고 한다. 그 도로는 바로 우리 절 땅에서 끝나 왼쪽으로 꺾어 525번지(전)로 들어간다. 바로 그 끝에 정말 멋있는 소나무가 하나 서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갈려고 했는데 마을에서 막았다고 한다.
“525번지 무덤도 가묘다. 주인이 직접 와서 농사를 지낸다. 그래서 농막을 하나 지었다.”
그리고 남의 말을 안 듣는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 무덤이 안 좋은 자리라고 이야기 했으나 주인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다. 조이상(011-487-8150) 씨로부터 몇 가지 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 땅을 팔 주인이 이름이 신용철이고, 청주대학에서 경리과장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어제처럼 대웅전 자리에서 싸가지고 간 김밥을 먹고 있으니 김성수 교수가 왔다. 빵을 사가지고 온 김교수는 식사 도중 학교에 전화를 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나중에 계약할 때 크게 도움이 되었다.
계약을 하러 청주시로 떠났다. 우체국, 농협에서 돈을 찾아가지고, 복덕방으로 갔으나 땅주인이 늦는다. 그런데 조금 늦게 도착한 땅주인에 흔쾌히 동의를 하지 않는다. 다른 복덕방에서 내일이면 5억 7000만원에 계약한다고 했고, 3개월 뒤에 돈을 주겠다고 한 사람은 6억을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복덕방이 돈을 받아 1억 7000만원을 가지고 도망쳐 잡아서 감방에 넣은 상태이고(이 때문에 이 복덕방이 우선권을 갖기도 하다. 이 복덕방 주인이 그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7억 3천에 계약했는데, 알고 보니 부동산 업자들이 분할에서 팔아 12억을 벌고 미등기 전매를 하려고 해서 3000만원을 물어주고 계약을 파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전번 주에 계약한 뒤 펀드가 반쪽이 되어 계약을 파기하는 등 너무 사건이 많은 상황이다.
그래서 우선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내 명함을 내밀었고, 결정적으로 김성수 교수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해서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스님하고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는 300% 믿을 만한 사람이다. 도의원 교육위원 같은 정치도 했다기에 내가 김진영 의원과 친하다고 했더니, 땅 주인은 물론 복덕방 최사장이 더 친하다고 한다.
“안 할 수도 없으니 그렇다면 5억 2천 500만원을 내고, 1주일 후에 잔금을 모두 지불하라.”
500만원을 더 붙인 것은 우리보다 복덕방 비를 내라는 것이고, 또 계약을 파기하면 안 되니 1주일 뒤 바로 돈을 내라는 것이다. 물론 여기는 다른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배짱도 개입되었다. 모든 계약이 한 달 여유는 주고, 이런 부동산은 2달 여유는 주는 것인데, 이렇게 우기는 것이다.
돈 500만원에 사고 안사고할 수는 없다. 문제는 날짜다. 다행이 새마을금고에 2억이 들어있어 안고 가면 2억 7천 300만원만 융통하면 된다. 나는 일단 최대한 뒤로 미루어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한 달 뒤에 하자고 하면 당장 분위기가 반전되고 계약이 성사되기 어려운 사항이다.
“이사장님도 이런 거래를 많이 해 봐서 아시겠지만 부동산 살 때 큰돈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동산을 처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다음 달 11월 5일까지 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해서 12일 정도 더 말미를 받고 계약을 하기로 했다. 원래 복덕방 사장은 허가가 나려면 15일쯤 걸리는데, 허가 나면 모든 돈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이사장이 “현지에 주소가 없기 때문에 농지는 허가가 나지 않는다.” 이 지역은 투기지역이고 허가지역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만일 허가를 받으려면 스님 주소를 옮기고 6개월 뒤에나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신이사장 스스로 제시한 방법이 차용증서를 쓰고 담보로 그 산을 잡고, 기일이 지나 채권을 갚지 못해 담보가 넘어가는 식으로 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계약이 성립되었고, 계약서도 쓰고 차용증서도 쓴 뒤 계약금을 지불하였다.
김교수는 원래 오늘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학회 회의가 있는데, 무리하게 일을 보고 있는 중이라 계약이 성립되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더 남아, 허가 절차, 허가 가능성 같은 여러 사항을 더 듣고 출발하였다.
저물어가는 해를 뒤로 하고 우리는 보정사로 돌아왔다. 도중에 선용 스님이 말씀하셨다.
“올라갔는데 안 될까봐 걱정, 이제는 되도 걱정입니다. 그러나 부처님 알아서 해 주시겠죠.”
그렇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볼 때, 정말 드라마틱 했다. 원래 오늘 본 청원군 산은 이수동 선생과 함께 가기로 약속까지 해 놓았는데 팔려버려 중단 했다. 그런데 계약이 파기되어 이 땅을 다시볼 일 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이 선생님과 목요일 약속을 했다. 아울러 칠곡에도 절터가 나왔다며 사진을 보내셨는데, 그 속에 여주의 절까지 들어있다. 그런데 갑자기 수요일에 스님이 마산에서 가정법회가 있어 못 오신다는 문자가 왔다.
이렇게 되면 이 선생에게 전화해서 다시 약속을 잡아야 한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우선 우리가 먼저 보고 그 결과를 스님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그 일만이라면 다시 날짜를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정사에 가서 10일쯤 공부하고 오려고 목요일로 일정을 잡아놓았기 때문에 어차피 내려가려 했던 날짜이다.
“그렇다면 이 선생님과 약속을 했으니 내가 3군데를 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스님하고 상의하자.”고 생각하고 어제 현장 답사를 한 것이다. 이처럼 모든 과정이 다 드라마틱하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해명 스님이 전화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시장 봐가지고 보정사 들어오니 6시, 저녁 공양하고, 예불 참석하고 나니 내 배낭이 도착했다. 비로소 이빨도 닦고, 약도 먹고, 전화기 배터리를 바꾸어 집에 전화도 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유달리 방이 따뜻하다.
나무아미타불
10월 18일(토) 보정사 첫날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약을 먹어서인지 천식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다. 새벽 예불은 거의 2시간이 계속되었다. 1시간 절을 했다. 2~3주 몸 상태가 극도로 좋지 않아 절을 못했는데, 역시 이곳에 오니 좋아진 모양이다.
`
“절 이름은 무엇으로 하실 계획입니까?”
“생각해 둔 것이 있습니다. 각황사(覺皇寺)입니다.”
“제 생각에는 정토사가 좋겠습니다.”
“정토사는 너무 흔해서요.”
“바로 그 점이 좋다는 것입니다. 아주 일반적인 상태에 자연스럽게 놓이면서, 수행에 있어서 차별화를 하면, 그 수많은 정토사 가운데 바람을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토종 사찰간의 네트웍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해보시면 알겠지만 사찰들마다 나름대로 주관이 세서 아주 어렵습니다.”
오전에 한 두 시간 해보니 혼침이 심하게 와 공부가 되지 않는다. MP3를 귀에 끼고 마을 구경을 나섰다. 앉아서 조는 것보다 훨씬 집중이 잘 된다. 눈에 보이는 자연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항이 벌어지지 않는 항상 보는 것이라 무심하게 듣는 것에 집중해진다. 낮은 소리로 염불해도 사람 만나기 힘든 마을에서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절 옆 감나무 밭을 딸 올라가니, 이 마을 허씨의 중시조(이곳에 처음 자리를 잡은)의 공덕비가 보이고, 무덤도 아주 잘 만들었다. 집집마다 감들이 주렁주렁 열려 풍요로운 가을 풍경이 가득하다. 마을을 지나 뒷산을 올라가 고개를 넘으니 큰 계곡이 나온다. 등산객들이 다닌 표지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이 길을 통해 정상에 올라가나 보다. 그렇게 다니다 보니 테이프를 두 번(1시간 40분)이나 들었다. 다리 뻑뻑할 정도로 약간 무리를 했다. 최근 거의 운동을 안 하다 갑자기 하니까 그런가 보다.
오후에는 완전히 잠에 빠졌다. 오전 걷는 것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5시에야 정신을 차려 1시간 걸으며 염불을 하고, 저녁 예불에 참여하였다. 좀 힘들어 절을 30분 정도만 했다. 아직 기침이 나오려고 해서 고성염불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누룽지 이야기
어제는 저녁밥을 먹고 예불을 했더니 속이 아주 거북했다. 오늘은 예불 마치고 나오니 8시가 다 되어 간다. 스님이 식사를 하란다. 그러나 그다지 배고프지도 않아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그러나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인가 먹어야 한다. 부엌에 가서 어제 본 누룽지를 찾았다.
“위가 나쁘다면서 딱딱한 누룽지를 잡수십니까?”
“잘 씹어 먹으면 되겠지요.”
이 때 공양주 보살님이 “속 쓰릴 때 누룽지 잘 씹어 먹으면 아주 좋습니다.”라고 응원을 하면 비닐봉지에다 모두 담아준다. 내려와 누룽지를 먹고, 약을 먹었다. 염불하는 동안, 내년부터 3년간 ‘문 없는 집(無門館)’에 대한 여러 가지 준비가 계속 이어진다. 나중에는 3년이 지난 뒤 나와서 열 포교당 이름까지 지었다.
“정토선원”
“한국정토불교연구소”
머리 속에서는 이미 건물까지 완공을 했다.
10시까지 2시간 더 공부하고 집에 전화한 뒤 잠자리에 든다.
10월 19일(일) 싸다니는 염불
새벽 예불하고 아침 죽 먹고, 그리고 오전에는 오늘도 싸다니며 염불을 했다. 아울러 오늘은 사진기를 가지고 보정사 주변 스케치도 하였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더, 2시간 동안 싸다녔다. 염불은 어제만큼 집중하지 못했다. 사진기라는 업통을 들고 나갔기 때문이다.
낮밥 먹고 나서 제에 참석했던 마산의 신도들과 부산에서 온 신도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서 부산의 신도가 불사 이야기를 꺼내자, 마산의 신도들도 모두들 궁금해 했다.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이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스님이 금요일 계약한 사실을 알렸다.
부산에서 온 신도님 차를 타고 영산에 나가 목욕탕을 드렸다 돌아와 한 시간쯤 자고 나니 4시, 다시 나가서 1시간 반쯤 싸돌아다니며 염불을 했다. 이제는 다리에 제법 힘이 붇는 것 같다.
이상한 종소리.......
돌아와 염불하는데, 6시 20분 전인데 종소리가 난다. 오늘은 특별히 무슨 일이 있어 저녁 예불이 일찍 시작되는가보다 생각하고 부지런히 법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종을 치는 스님이 모르는 스님이다. 이 절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종을 치다말고 전화를 받고 있다.
“왜 안 오는 거야?”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참 통화를 하더니 통화를 하면서 또 종을 친다. 시간도 안 되어 종을 치는 것도 이상하지만, 종을 치면서 전화를 받는 모습이 정말로 보기 안 좋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법회를 하고 있는데도 느닷없이 종을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 공부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양주 보살이 나선다.
“종을 치려면 좀 진지한 자세로 하거나…”
전세 내놓고 계속 주인 행세하는 주인장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참으로 인욕을 요구하는 전세살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전에 수련회 때 주인이 와서 아침밥을 함께 먹고, 공사를 한 것을 보았는데, 이번 일은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저녁 예불 절할 때는 처음으로 낮은 음성으로 염불을 했다. 천식이 상당히 좋아진 것이다. 예불 끝나고 누룽지를 먹고 약을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물을 끊어버려 위로 먹을 물을 받으러 가서, 정토선 부지 계약 건 발표문을 보았다. 스님이 정토를 공부하게 된 경위를 들었다.
출가하기 전 음악을 좋아했는데, 염불은 음악적인 흐름이 있어 좋아했다고 한다. 또 93년 바로 관정스님의 극락세계 유람기를 읽고 그 내용을 복사해서 다른 스님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선정에서 청화 스님이 말씀하신 ‘’‘’‘’‘을 보게 된 것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백련암 토굴에 간 것도 보통 인연이 아니었다. 그곳이 바로 만일 염불결사를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백련사의 ’사‘자는 ‘절 사(寺)’가 아니고, 만일결사의 결사(結社)할 때 사(社)자라고 한다. 뒤 산도 만법인데 아미타부처님을 뜻한다고 한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과 쌍벽을 이룬 스님 이야기.
방으로 돌아와 1시간쯤 염불하는데, 많이 졸린다.
김지수 옮김, 『단박에 윤회를 끊는 가르침 -인광대사 가언록 중에서』, 불광출판부, 2000
원황 지음, 김지수 옮김, 『운명을 띠어 넘는 길 -요범사훈』, 불광출판부, 1997
이원정 저술, 서현ㆍ목아 공역, 『불법도론』, 삼보제자, 2005.
10월 20일(월) 보정사
오늘 오전 싸돌아다니기 염불 시간에는 건너편 절을 찾아가 보았다. 염불을 하면서 천천히 절에 들어가니 먼저 제법 갖춘 화장실이 있고, 입구에 지장보살 불사 안내판이 붙어있다. 법당을 보러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승복을 입은 분이 “무엇 때문에 오셨습니까?”하고 묻는다. ‘절에 오는 목적이 부처님께 인사드리는 것이지, 무슨 다른 목적이 있습니까?’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기도하러 왔다가 건너편이 절이 하나 있어 와봤습니다.”하고 들어가 보니 가운데 부처님 세분을 모시고 양편에도 무엇인가 많이 모셨는데, 나는 다른 곳에는 관심이 없으니 부처님에게만 인사를 드렸다. 막 제를 지내려고 하였는지 음식이 정말 많이 올려져 있다. 이곳 부처님은 참 잘 잡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든다. 보살이 방석을 가져다주어 잠깐 앉아 있었다. 남자 스님이 이상한 꽹과리를 긴 채로 두드리자, 조금 있다 보살이 법복을 징을 든다. 큰 북도 있어 4물을 갖춘 것이 무당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절이라는 이름을 붙인 무당들은 천수경이라도 외우는데, 여기서는 전혀 모르는 소리로만 진행이 된다. 큰 굿당이나 마찬가지인데, 불령사라는 절 이름을 버젓이 걸고 있으니, 이곳도 부처님 영역이라고 봐야 할 것인가? 공양주 보살의 말에 따르면,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이 절에 다닌다고 한다. 매일 큰 굿을 하여 나온 음식들을 주민들에게 가져다주니 자연히 친해진다는 것이다. 무당이라고 비하하는 보정사 전 주지(세계 불무도 총본산 산장)보다는 몇 배 더 낫다는 것이다.
오후에는 2시간 염불을 하고 4시 반쯤 다시 싸돌아다니려 나가 1시간쯤 서쪽으로 가보았다. 여기도 토굴 영명사라는 절이 있는데, 무당집 같다.
저녁 예불을 마치자 스님이 할 말씀이 있다고 한다. 계약을 할 때 법인 등기와 인감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데, 우리는 법인 등록이 되지 않아 등록서류를 가져 오셨다고 한다. 보니 사회단체 등록 서류이다. 사회단체는 법인체가 아니라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만일 법인체를 만든다고 하면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좀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정토선은 이미 조동종 지사로 등록이 되었기 때문에 그것이면 된다는 결론이 나왔다. 문제는 고유번호에 82와 89의 구별이 되어 있는데, 89번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내일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계약에도 문제가 있지만 기부금을 내는 신도들에게 발급하는 영수증의 신용도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82는 등록 법인과 그 지부에게 부여하는 것이고, 89는 비법인으로 법인에 준하는 단체에 주는 번호이기 때문에 비과세 대상자로서 대우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참 논의하다 9시쯤 돌아와 염불을 하는데 너무 잠이 와 간신히 마치고, 이 기록도 다음날 아침에 한다.
10월 21일(화) 보정사 - 창영 세무사, 마산 세무서
아침 공양을 마치고 9시쯤 창영 세무사를 찾아갔다. 사찰 부지를 새로 살 때 종교단체 이름으로 사야 세금이 면해지기 때문에 그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세무사가 세무서에 질문을 하더니, 82번이나 89번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 그대로 쓰면 된다는 것이다. 돌아와 스님이 마산 세무서에 전화했더니 거기서도 거의 비슷한 대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89번은 비법인이라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 낮밥을 먹고 나서 서울 이기영세무사에게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종교법인은 반드시 82로 해야 한다. 89번이라는 것은 동창회나 문중처럼 법인체는 아니지만 비슷하게 인정해주는 것이지 종교 법인이 89번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며, 자기가 마산세무서와 상의해 볼 테니 등록증 사본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한다.
팩스가 없어 메일로 보냈더니, 1시간 쯤 뒤에 답이 왔다. “단체로 신청 할 때는 당연히 법인으로 신청해야 하는데, 개인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며, 세무서에 가서 폐업신청을 하고 다시 법인으로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마산 세무서 민원실에 갔더니, 관계 공무원에게 안내한다. 이미 논의가 있었던 모양이다. 역시 다시 신청해야 하는데, ① 본부 등기에 지부로 등록이 되어 있으면, 그것으로 끝나지만, 아니면 ② 정토선을 지부로 한다는 이사회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우선 기본으로 본부의 법인 등기부 등본과 사업자등록 사본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제 일이 명확해지고,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났다. 결국 며칠은 더 기다려야 한다.
오전과 오후 외출을 했기 때문에 ‘싸돌아다니며 하는 염불’은 오전 오후 한 시간 씩만 했다. 오전 싸돌아다니다가 절에 거의 다와 마을을 지나는데, 할아버지 부부가 양파를 심고 있다. 겨울을 나는 식물로 마늘과 양파를 심는데 마늘은 이미 심었고 양파를 심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신체에 들어가는 마늘과 양파는 모두 겨울을 나는 식물이다.
“이거 한 번 들어보시오”
‘창녕 특산품 양파즙(신토불이 무색소 무방부제)’
“고맙습니다.”
“이거 아주 좋은깁니더, 혈압에도 좋고, 당뇨에도 좋고…”
“예, 아주 맛이 있습니다.”
5신체니 뭐니 할 게제가 아니다. 원효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연수할 때 함께 했던 해철 거사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좋은 소식이 있었다.
오늘은 학교 개교기념일 행사를 하고 저녁에 전체 교수 회식이 있다는데, 보나마나 엄청난 양의 육식을 내놓고 잔치를 벌일 것이다. 그 시간 나는 이곳에서 저녁 예불 마치고 조용히 누룽지 2쪽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고 편안한지 모른다.
10월 22일(수) 보정사
오늘은 가을비가 온 누리를 적신다. 아침 예불 마치고 아침 공양 마치고 염불하다가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9시다. 2시간 쯤 잔 모양이다. 비오는 날 따뜻한 방에서 한 숨 자는 것도 참 편안하고 좋다.
오전 2시간쯤 싸돌아다니며 염불하였다. 평소보다 훨씬 집중이 잘 되었다. 오가는 사람들도 없고 우산 속에 푹 쌓여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며 싸돌아 다녔다. 구계리 마을회간 앞에 있는 팔각정에는 가운데 탁자가 있고 소파가 꽉 차있다. 보통 팔각정은 바닥에 앉는 것인데 이곳은 바로 노인당 옆이라 노인들이 헌 소파를 가져다 설치를 한 모양이다. 깨끗하지 못한 바닥보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보니 참 편하고 좋다. 1시간 쯤 앉아서 염불하는데 아주 집중이 잘 된다. 가끔 차가 다녔지만 1시간 동안 단 한 사람도 지나가지 않을 정도로 비오는 날의 마을 센터는 고요했다.
“만일 종단(사단법인)의 지부로서 재산을 취득할 경우 나중에 탈퇴할 때 재산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재산이 개인 것이 아니라 단체 것으로 등록되기 때문이다.”
스님의 이와 같은 문제 제기 때문에 오후에는 온통 이 문제에 매달렸다. 인터넷을 찾아보았으나 뾰족한 수가 없다. 서울의 장현태 변호사님에게 전화해 보았더니, 종단의 종헌에 제산에 대한 규정을 보아야 한다. 만일 지부 재산은 지부 소유로 한다는 규정이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단법인 종단의 소유가 된다는 것이다.
종교 법인에 대하여 가장 잘 안다는 창영의 법무사에게 전화했더니 와서 상의하잔다. 답은 도봉산 성도원에서 나왔다. 내 전화를 받은 스님이
“우리 절은 종단 소속으로 등기를 하지 않고, 임의 법인으로 신청해서 82번 고유번호증이 나왔습니다.”
종단 이름으로 하지 않고 정토선 이름으로도 단체 등록이 되고, 세무서의 고유번호를 받을 수 있다면, 위험성이 있는 법인체 지부로 등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스님과 함께 우선 불교 단체 전문가라는 법무사를 찾아갔다. 결국은 사회단체를 가입해야 된다고 한다. 우리는 더 정확히 알기 위해 등기소를 찾아갔다. 군에 가서 비법인 사단으로 등록하여 그 등록증을 가지고 오면 등기를 해준다고 한다. 문제는 분명해졌다. 우선 법인에 등록하지 않은 사찰도 단체 등록이 가능하고, 단체를 등록하면, 등기가 되며, 그 등기를 가지고 세무서에 가면 사업자등록증이 나오는 것이다.
군이나 세무서에 등록을 하려면 먼저 정관이 필요하다. 성도원에 부탁했더니, 정관을 찾기 힘들다며, 종단에서 나온 사단법인 관계 책자를 보내준다고 한다. 절에 돌아와 결국 처음 스님이 사회단체 등록을 위해 법무사에서 가져온 서류들을 준비하여 내일 등록하기로 하였다.
오늘 오후는 시간이 없어 싸돌아다니지를 못했다. 예불하고 내려와 만화 화엄경 1권을 읽었다. 잠이 쏟아진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니 어느새 저녁에는 일찍 자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10월 23일(목) 창영군청 - 마산세무서
아침 공양 마치자마자 몇 가지 서류를 준비해 가지고, 군청으로 갔다. 정토선을 비법인 단체로 신청하니 그 자리에서 모든 절차를 마치고, 증명서까지 떼어준다.
그 증명서를 가지고 마산세무서 파견사무소를 가니 친절한 직원이 하나하나 잘 가르쳐 주며, 출장소에서는 우편으로 마산 보내서 회신을 받으면 일부일이 걸리고, 또 부족한 서류가 있으면 다시 시간이 걸리니, 마산세무서에 가서 직접 신청하고, 담당자에게 잘 부탁하면 오늘 해 줄 수도 있다고 한다. 아울러 규약은 너무 약하니 정관이 보강되었으면 한다는 의견이다.
우리는 마산으로 가서 먼저 시청으로 갔다. 시청에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관을 만들기 위해 민원실의 컴퓨터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미리 집에 연락하여 고구려연구회 사단법인 정관 파일을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여, 그 정관을 바탕으로 정토선 정관을 만들었다. 시청 민원실에서(지방 단체 민원실 정말 친절하고 시설 최고다) 약 1시간 정도 공을 들여 정관을 만든 뒤 세무서에 가서 신청하니 바로 접수가 완료된다. 담당자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니 두말없이 알려준다. 그러나 이미 점심 공양 때라 담당자가 없어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우리도 가까운 곳에서 점심을 때우기로 하였다.
먼저 찾아간 충무김밥집, 우리는 김밥에서 소시지만 빼고 해달라고 했더니 자꾸 “우리는 충무김밥입니더”라고 한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니, 충부김밤은 김에다 밥만 말고, 김치와 오징어덮밥을 반찬처럼 준다는 것이다. 건너편에 한식 정식을 하는 집이 있어 들어가 이것저것 고르다가 순두부를 시켰다. 오신체,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받고 보니 파가 들어 있다. 결정적인 문제는 순두부 국물이 그냥 맹물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시 좀 넘어 담당자에게 갔더니, 내용을 잘 모른다. 법인세 취급하는 곳이라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만 상대해 보았지, 비법인 어쩌고 하니 잘 모르겠다며 결제를 해 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연락해 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돌아왔다. 돌아오면서 바로 마산 외곽에 있는 거성(?)이라는 곳에 가서 제 지낼 때 쓸 과일을 샀다. 불자 가게인데 싼 곳이라고 한다. 과연 싸다. 12~13만 원쯤 과일을 사니까, 감을 한 상자 더 주고, 또 귤을 더 싸준다. 이렇게 장사하니까 주변 상점들은 조용한데, 이집만 북적거린다. 벽에 수 십 개의 절 달력이 걸려 있는 것만 보아도 이 집의 탁월한 마케팅 전략을 알 수 있다.
과일을 싣고 오려는데, 세무서에서 전화가 왔다. 오후 4시까지는 고유번호증이 나온다는 것이다. 현재 시간은 2시, 우리는 사우나를 하면서 2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스님이 복통 때문에 운전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점심때 먹은 순두부 국물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사우나도 쉬는 날이다. 화장실만 사용하고 바로 세무서로 갔다. 세무서에서는 먼저 89번으로 나온 증명서를 폐업 신청하라고 해서 우선 그 일부터 끝냈다. 아직 3시지만 우리 고유번호가 나왔느냐고 물었더니, 벌써 나왔으니 담당 민원 부서에 가서 찾으라는 것이다. 과연 82번 짜리 고유번호증이 나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일을 하루 만에 끝내버렸다. 이번 일을 하면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뒤 공무원들의 자세가 정말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스님이 편찮으셔서 내가 운전을 했는데, 영산에 와서 바꿨다. 스님은 시장을 봐가지고 절로 가고, 나는 목욕탕에서 목욕을 마친 뒤, 가지고 간 MP3를 귀에 꽂고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하면서 걷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싸돌아다니지를 못했기 때문에 영산에서 절까지 걷기로 결심한 것이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고, 은근이 계속 올라가는 길이었다. 원래는 영산 갈 때 걸어가고 올 때는 택시를 타려고 했는데, 거꾸로 된 것이다. 도중에 고려시대 불상도 보고, 저수지도 보며 보정사에 다다르니 한 시간쯤 걸렸다. 이렇게 해서 오늘도 제법 싸돌아다녔다.
10월 24일(금) 보정사 - 법화사
오늘은 싸돌아다니기의 종점쯤 되는 법화사를 가기로 하고 8시 보정사를 떠났다. 이틀간 비가 온 뒤 갠 날이라 그런지 법화사 뒤 영축산이 아침 햇빛에 아주 선명하게 빛난다. 일주일간 싸돌아다닌 내공이 쌓여서인지 가파른 오름길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었다. 도착하기 전에 목탁정근 한 판(50분)이 끝나고 9시가 되어서야 법화사에 다다랐다. 절은 생각보다 넓다. 대웅전도 새로 짓고, 약사불로 세우고, 불사를 많이 하고 있다. 스님 한 분이 묻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걸어서 오셨습니까?”
보정사에 기도하러 왔는데, 절 구경 왔다고 인사를 드리고, 고려 탑을 비롯하여 사진을 찍었다. 나 올라올 때 지나친 차를 타고 온 처사가 기계톱을 들고 위에 있는 암자에 올라간다고 한다. 법화사에서 훨씬 더 위에 암자가 하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겨 따라 붙었다. 길을 제법 잘 관리하고 있다. 정말 가파른 길을 20분쯤 올라가니, 자그마한 암자가 하나 나오는데, 관음전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여기가 고려시대 때 원래 법화암 터입니다.”
함께 간 처사가 설명해 준다. 관음전은 완전히 새로 지어서 관세음보살 모셔놓고 무엇으로 덮어 놓았다. 내려오면서 주지 스님이 이번 일요일(모래) 점안식을 한다고 한다.
내려왔더니 주지 스님이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초청하여 차담을 나누었다. 이야기가 관정 스님에 미치었는데, 아주 부정적으로 이야기 한다. 첫째, 해인사 암자에서 관정 스님을 따르는 스님이 있었는데, 무슨 우주 기에 대한 도면을 가지고 기공 같은 것을 하고 있는데, 정법이 아닌 것 같다. 둘째, 한국에서 태어난 스님들이 중국 스님에게 우우 몰려가는 것이 한심하다. 셋째, 한국에서 돈을 벌어다 중국에 절을 짓는데 도울 필요가 없다.
① 스님은 중국의 선맥을 이어가는 선승이었지 이상한 것을 하는 스님이 아니다. 이상하다면,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이 왜 염불도 하지 않는 선승을 극락으로 데려다 보여주었느냐 하는 문제인데, 바로 거기에 불보살님의 큰 뜻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최근 화두선을 가지고 오도송을 읊고 견성하신 스님이 몇 명이나 됩니까?”
주지 스님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바로 거기에 불보살님이 선승을 극락에 데려가 염불을 하도록 길을 바꾸어놓은 이유이다.
② 중국 스님이어서가 아니라 바로 정토선이 가진 장점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히려 비판하는 스님들은 내용을 알아보지도 않고 중국 스님이니까 비판하는 것이 더 문제가 아닌가? 그렇다면 부처님은 인도 사람이 아닌가?
③ 관정 스님은 90년대 중반 한국에 오실 때 미국에 계셨다. 오히려 중국에서 고문을 당해 1982년 미국으로 망명한 사례이다. 그래서 미국, 대만, 싱가폴, 홍콩 등으로 행각을 하면서 자기가 극락에 다녀온 이야기를 펴고 다녔다. 한국에서 초청해서 온 것이지 한국에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다. 옛날 관정 스님이 주지로 있던 중국 절은 폐사가 되어버렸다. 중국 공산당이 그렇게 한 것이다. 나중에 중국으로 돌아간 뒤 옛 절을 다시 세웠는데, 한국 신도들의 돈이 많이 도움이 되었다고 해서 절 이름을 한글로 하였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다니며 설법하고 수기를 주고받은 정당한 보수를 그런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야기가 좀 심각하게 이어가자 갑자기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 하고 향을 피운다. 나중에는 “나는 강원 나오고 나서 책을 거의 읽지 않으며, 선도 깊이 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참 불사를 많이 한 스님인데, 아쉬운 점이 많았다. 불교계에서 관정 스님을 비판하는 스님들이 얼마나 근거 없이 구업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보정사에 돌아오니 12시가 다 되었다.
오후에는 서울에서 내려온 불모화 보살과 함께 싸돌아다니며 염불을 하였다.
10월 25일(토) 보정사
오늘 오전에는 완전히 쉬면서 만화 화엄경을 모두 다 읽고, 사진도 다운을 받았다. 어제 등산을 해서 그런지 다리가 뻑뻑하다.
오후에 걸어서 영산까지 갔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영산 장날이다. 간 김에 공양주 보살이 천식에는 밤을 산초기름에다 볶아 먹는 것이 좋다고 해서 산초기름도 사고, 참기름도 사고, 들깨기름도 사고, 우리집 보살과 오후 내내 장을 봤다.
그러다 보니 오후 쉬지 못하고, 철야를 하는데 졸려서 힘들었다. 처음 2시간은 절을 하며 열심히 했는데, 나머지 시간은 졸음을 참으로 간신히 버텼다.
10월 26일(일) 서울로
10시 출발하는 서울행 버스를 타고 인공 자성염불을 들으며 편하게 서울로 돌아왔다. 이번 보정사 공부는 우선 몸을 추스르려고 했는데, 성공적이었다. 아울러 집에서 보다는 공부를 더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정토선 총본산의 터를 잡을 수 있어 아주 의미 있는 나들이였다. 나무아미타불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애 많이 쓰셨습니다 이 무량공덕으로 금생에 꼭 반드시 염불삼매 이루시고 부처님 되십시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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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정토선 다큐멘타리ㅇ 입니다..나무아미타불.()()()
재미있고 감사하게 읽었습니다.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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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천식 특효약 (밤+산초기름) 어떻게 효과좀 보셨는지요?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아름다운 발자국의 향기들이 곱게도 피어납니다. 염원하는 대로 법향으로 지어가는 정토사의 청정함이 밝게 이루어지길 기도 드립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잘 읽으며 그 풍경에 잠겨 봅니다. 건강하십시오._()_ 나무아미타불_()_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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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 잘읽고 갑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짧은 시간 속에서도 새로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 히셨구려1 그저 어안이 멍멍해질 따름입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 진심으로 환희심을 만끽 하셨읍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생활과 수행을 같이 하시는 진지하시고 성실하신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항상 귀감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