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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산과 왕산 등산 (`11.10.18)
몇 번이나 가 보고 싶었던 고향산인 필봉산과 왕산을 대구에서 09:00에 출발하여 구형왕릉 쪽에서 올랐다.
주차장에 주차 하지 않고 곧 바로 유의태 약수터까지 약 2km를 차로 올라 갔는데 차를 비키는 공간이
중간 중간 마련되어 있지 많아 권하고 싶지 않다.
어느 산이나 마찬가지지만 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곳에 있으며 구형왕능, 유의태 약수터를 패키지로 하여
산에 오를 때는 갔던 길로 다시 내려 와야 하고, 한글로 쓰여진 왕산길로 내려 올 수 있고,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사람이 희생할 수 있다면 차를 한방단지에 갔다 두고 한방단지로 내려가는 방법이며,
역순도 똑 같은 방법이다.
필봉산과 왕산에 대한 내력은 인터넷에 많이 올라 있으니 생략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할까한다.
나무가지에 대구사람들이 다녀간 리본이 많이 걸려 있었는데 내가 대구에 사느니만큼,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구형왕능 및 유의태 약수터, 산, 한방단지를 보고 복귀하다가 목욕까지 해야 하니
대구에서 08:00시 이전에는 출발해야만 여유가 있을 것이다.
한방단지에 내려오면 약초 토속 음식점이 있지만, 점심 때 하산하지 못하면 먹을거리를 사전에 준비하고,
유의터 약수터에서 물도 준비해야할 것이다.
산에는 샘터가 없고 산청읍내 외는 김밥을 살 곳이 없다.
복귀중에 가조 온천에서 목욕까지 할 수 있다면 멋진 등산길이 될 것이며 평일은 20:30분,
토/일요일은 21:30분까지고 요금은 5천원이다.
고속도로임에도 일반국도 보다 못한 2차선 88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은 80Km이며 몇십대 줄서서 가는 고향길에 짜증이 나지만 가장 즐거운 길이다.
초행 운전자들은 시간아 엿 먹어라 하고 느긋하게 운전해야함을 경고하는 바이다.
착각으로 중앙선 넘어 추월하는 차들도 많으며 유일하게 낮에도 라이트를 켜고 다니는 도로인데
방귀 뀐 놈이 화 낸다고 마주오는 차가 빵빵 거릴 때가 몇번 있었다.
지금은 4차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그 때는 통행료가 오를 것이므로 자주 다니는 내게는 고향길이 2~30분 단축 되겠지만 안 좋은 부분도 있다.
도시에 사니 가을 깊어가는 것도 몰랐다.
마을 도로가에는 추수한 나락(벼)을 말리고 있었는데 어릴 때 많이 본 모습이다.
중앙에 보이는 돌무덤이 구형왕릉으로 학교 다닐 때 소풍도 왔다.
여러가지 설이 있으며 그래서" 전 구형왕릉"이라고 한다.
유의태 약수터에 오르는 길로 소방도로인듯 싶다.
귀한 약수물이니 담을 수 있는 통에 담아오는 것도 좋겠다.
어릴 때 먹을 음식 넣은 바게스(양철그릇 통)들고 어머니 따라 몇번 왔던 곳이다.
그 때는 샘물이 콸콸 흐르고 냇가 같았는데 물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
상수원이라고 하니 빼 돌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약수터나 마찬가지로 파이프를 통해 졸졸 흐르는 약수터는 특이할 것이 없었다.
이유 있겠지만 옛 형태대로 돌려 놓는 것도 관광자원활성화가 아닐까 싶다.
잘 다듬어 놓은 길 따라 산 정상에 닿도록 잡목 소나무숲은 햇빛을 허용하지 않았다.
내가 만일 고향에 살았다면 이 나무들이 이대로 자라고 있을까? 엄청 땔감 나무로 베다 날랐기 때문이다.
소나무 나이테를 세어보니 30년에서 40년 수령이었다.
그 때는 태어나지않았거나 낫으로 벨 수 있는 솔가지였을 것이다.
필봉산, 왕산 중간 이후는 산불, 땔감채취로 민둥산이었으며 고사한 나무와 그루터기만 나딩굴었고, 눈 왔을 때
토끼몰이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등산로 외에는 길이 없어지고, 지금 생각해 보면 양귀비인듯 싶은데 숲으로 변해
그 분지가 어디쯤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토끼도 보이고 노루도 보이고 늑대도 보고 산사태가 난 곳도 있었고 명당이라고 쓴 무덤도 많았는데,
명당이란 차 가는 곳이고 길가에 있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지금은 나무가 꽉 찬 이유는 아마도 나무가 길을 야금야금 잡아 먹은탓도 있겠지만 전깃줄이 마을에 엉켜 있어
나무를 지고 집에 들어올 수 없어 산에 안 가기 때문이리라.
왕산사지 절 터
안내간판이 풀속에 있어서 뭔가 싶어 가 보았다.
고증을 토대로 정비가 필요하며 좀 아래에 있는 비석(?)들도 도깨비 가시가 옷에 붙을까봐 갈 수 없었다.
붓 끝을 닮았다고 필봉산, 젖꼭지를 닮앗다고 유두봉인데 얼마나 좋은 산이냐?
필봉산 정상
왕산에서 우측 멀리 보이는 산이 천왕봉
태백산맥의 끝자락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명당이기에 특리 강구산은 국새를 만든곳이었다.
못된 놈의 사기로 산청정기를 개판쳐 놓았지만 그렇다고 정기가 어디로 옮겨가지는 않을 것이다.
공사 중단된 시설들을 현명하게 재활용할 것이라 믿는다.
계단 논이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산청에도 있었다.
벼 베기를 모두 하여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고향을 그립게 하는 가를 들판의 모습은 아니지만
참새가 벼를 쪼고 허수아비 바람에 흔들리고 , 고추 잠자리 날으는 들판에 메뚜기 잡는 아이들...
이제는 들판에서 핸드폰으로 다방이나 중국집에 짜장면을 시키겠지?
나의 고향 특리다
강은 남강 지류인 경호강이고 마을과 강 사이에 있는 도로는 대전 통영을 잇는 고속도로다.
고향에 묻어 놓은 추억없는사람이 있을까?
몇 페이지를 그려도 부족할테니 생략하자.
경호강엔 이름그대로 지금도 물이 거울 드려다 보듯 푸르고 맑다.
우리나라의 3대 유명 레프팅 강 중 하나다.
강에 저 다리가 놓여 있지 않고 나룻배로 건너 다닐때 강 건너 아이들과 싸움 많이 했다.
저쪽은 산청면으로 산청 초등학교를 다녔고, 이 쪽은 십리를 걸어서 매촌 총등학교를 다녔다.
6학년 2학기 때 옮겨와서 내가 특곡교 1회 졸업생이며, 농촌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폐교가 되었고,
지금은 학교와 계약한 택시가 산청으로 등하교를 시키고 있다.
동내가 우리나라 지도를 그대로 닮았다.
특리(特里) 이름대로 뭐가 특별한지?
새마을 사업만 안했으면 경주 양동마을 만큼이나 유명했을 텐데 세상이 구경세상으로 바뀌고 옛 모습이 돈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김씨지만 민(閔)씨 집성촌이다.
산청 한방 단지
이곳만 구경하려 해도 두시간은 족히 소비된다.
산에서 보니 좌 하단에 공사를 하고있는데 뭔지 모르겠다.
한방단지내의 길을 따라 올라와서 산에 오르면 된다.
이곳은 고령토 광산지로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일을 했고 그래서 아직도 동내는 그 때의 젊은이들이 객지에 나가지 않고 많으니 빈 집이 타 동내에 비해 적은 편이다.
필봉산에서 본 왕산
많은 약초의 자생지로 널리 알려진 산이지만 내눈에는 피어서 말라 있는 고사리 풀 뿐이었다.
몰래 카메라에 부제로 잡힌 등산인인데 우리도 정다웠지만 보기에 참으로 정다웠다.
통성명 하니 초등학교 후배였고 저 곳과 정상에서 여러장 찍은 사진은 메일로 보내 주었다.
중앙에 있는다리 밑이 레프틴 출발하는 지점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5일장이 서는 산청 장날에 구경 갔다가 길을 잃어 미아가 되어
하룻밤 남의 집에 잤는데 뒷날 아버지가 데리려 왔었다.
전기도 들어오고 차가 밤새도록 다니는 산청이 서울인 줄 알았는데 작다고하면 어폐가 있을까?
있는 것도 문 닫고 지금은 초등학교, 중.고등학교가 각 각 한개 뿐인 아담한 농촌 읍이다.
나를 반기려 했음인지 날씨가 참 좋았다.
하기사 먼곳을 보여주지않으면 필봉산, 왕산은 제만 손해지, 봐주는 인물을 별로라고 할테니까?
해지는 햇빛을 받은 싸리나무의 단풍이 장관이었다.
어리 때 필봉산 정기를 못 받아 보아서 어른 되어서라도 받아 보려고 필봉산 봉우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즐겁게, 건강하게 살거다.
네가지라고 해야할지? 여덟가지라고 해야할지?
저 소나무가 명물인데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
오래 머물면서 저 소나무 사이로 필봉산도 보고, 고향 특리도 보고 필봉산을 쥐어보기도 하고....
그런데 이상하다. 인터넷을 열어보면 사진 올린 사람들의 왕산 소개 글에 이 사진을 보지 못했다.
연기 나는 곳이 나의 외가집이 있는 곳이다.
강 건너 저쪽은 함양군, 강 이쪽은 산청군 금서면이다.
한글로 쓰여진 923m의 왕산만 있는 줄 알았드니 한문으로 쓰여진 923.2m의 王山이 또 있었다.
지도에 나와 있는 906고지는 또 뭔지 고향녀석도 모르겠다.
모든 산이름을 대표하는 봉우리는 단 하나 인데 산청의 왕산을 찾은 많은 등산인들이 유의태 약수터나, 필봉산에서 한문쓰인 王山 쪽으로 가면 한글로 쓰인 왕산은 못 보고 갈 실수를 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1봉, 제 2봉 등 산청을 사랑하는 관계인들의 숙제다.
그리고 923미터 봉우리에서 망경대 쪽 방향으로 유의태 약수터, 구형왕릉 안내 표시판이 추가로 설치되어야할 것이다
출구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올라 왔던 길로 내려 갔다.
확인 안 한 나의 잘못 이지만 왕산/ 필봉산 안내 팜프렛을 주는 곳은 없었다.
시간에 쫓겨 하산 하려다가 싸리나무 단풍이 하도 아름답고, 그 쪽에서도 고향 마을을 보고 싶어 200여미터
능선을 타고 가니 왕산이 또 있었다.
지도 상으로는 923.2미터 산이 진짜 왕산이다.
고향 마을에서 보면 왕산 끝자락에 있는 봉우리다.
멀리 보이는 산은 지리산의 천왕봉이다.
산 정상에 올라 갈 때는 하늘이 보이지 않고 앞에가는 사람의 응덩이만 보이지만 등산길이 잘 다듬어진 가파르지 않는 밋밋한 길은 가볍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나무에 매어놓은 리본을 보니 전라도 , 대구 사람들이 많고 서울에서도 오고 있었는데 왜 필봉산과 왕산을 찾는건지
알 것 같다.
나는 옛 생각에 다른 생각을 했지만 사방이 탁 트인 전경은 가슴이 후련하고 천왕봉, 황매산, 가야산, 웅석봉이 보이고. 굽이쳐 흐르는 남강의 지류와 산청, 함양, 거창이 보이고, 계단논은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그리고 첩첩히 둘러 쌓인 산, 산, 산,.....
산 그늘 속에 있는 것이 산청 한방단지다
좌 상에 보이는 것이 철쭉으로 유명한 황매산이다.
들판에 보이는 마을이 나의 고향인데 이제는 개울 물 퍼서 밥지어 먹는 것은 호랑이 담배 필 때의 옛 이야기다.
동내 사람들이 한방단지 오염정화시설을 잘 확인하고 있는지 염려가 된다.
멀리 보이는 산이 경북 고령의 가야산이고 함양, 거창으로 가는 방향의 전경이다.
이름이라도 지어 줘서 드러내 보이면 이 바위돌도 빼 놓을 수 없는 기념 촬영 장소가 될 것이다.
길가에 바위산을 축소해 놓은 이렇게 잘 생긴 산이 또 있겠는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왕산 사진을 많이 보았지만 이 바위는 보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지만 아내가 심할 정도로 좋아하는 들국화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 갔었련만 꽃이기에 밟지 않았다.
들국화라고 한 것은 수십가지나 되는구절초, 쑥부쟁이, 개망초 등 너무나 종류가 많아서 혼돈되며
아마도 왕산 000도 있지 않을까 싶다.
등산로 길을 사계청소를 말끔히 잘 해 놓았는데 용하게 살아 남아서 반겨 주었다.
산 정상 능선길은 억새 풀이 있었나 본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는지 그대로 두면 운치 있었을 것을 아쉬웠다.
나의 고향 금서면 면장 원님이시다.
등산로 사계청소 작업 확인 및 올레길 구상을 위해 직접 산에 오르니 정말로 대단한 분이시다.
대동한 사람이 나를 보고 군청에 근무하는 000를 쏙 빼 닮았다고 하며 당장에 형임을 알아 봤다.
나의 딸 결혼식 때 하객들이 동생한테 인사하는 바람에 나중에 변명을 하기도 했는데 어리둥절할 때가 많은모양이다.
면장님, 나의 고향 금서면을 위해 파이팅!! 수고 하셨습니다.
산청 읍내
앞쪽은 고속도로, 뒤에 도로는 진주-산청을 경유하는 국도로 산청- 진주간은 국도를 이용해도 좋다.
오늘 날에야 교통이 좋아 졌지만 첩첩히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니 공장 지을 때가 있겠오.
그러니 청와대에 상납한 단감, 약초비빕밥, 약초뿐이지요.
산청에 오시거들랑 쌈지돈 많이 풀어 놓고 가이소.
장인님 산소에 무더기로 피어 있던 "모데미 풀"로 군락을 이루어 피어 있었는데 그전에 몇 뿌리 캐와서 심어 보았지만
꽃이 피지 않았다.
밥머리재.
고속도로나, 지방 국도를 이용하지 않고 금서 매촌에서 성철스님 생가, 예담촌 등 패키지 관광코스를 향해 가는 산골짝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길이다.
다정한 폼을 잡아 보았다.
필봉산 정상 조금 곁에 솟아있으며 앞에 보이는 산은 강구산이다. 강구산에 가려 동내에서 필봉산은 보이지 않는다 .
필봉산 주소는 특리다.
사진은 올리지 못했는데 한방단지를 보고 난 후, 곁에 있는 강구 폭도도 놓쳐서는 안된다.
정각은 세멘트로 짓이겨 놓아 옛모습이 아니고, 폭포는 2미터도 안되지만 비가 왔을 때는 수려하며, 잠시 쉬어 가면서
폭포 밑 계곡에서 위를 보고 정각과 폭포를 배경으로 한 컷 하면 인물이 더 더욱 예쁘게 나올 것이다.
산청 한방단지에서 함양 쪽으로 500m 정도 가면 우측으로 생초 I/C가는 도로가 있다.
산림 감시원하는 나의 형님이 심었을까? 군청에 근무하는 나의 동생이 계획했을까?
아님, 오늘 산에서 만난 면장님이 심었을까?
길가에 핀 아름다운 그 모습을 어더워서 한 눈에 볼 수 없었지만 도로가에,
아니 심심산골 길인 텁지재에서 마을까지 꽃이 심어져 있었다.
인생 등정 / 김성묵
정상에 올라
억겁 배냥에
구름 한바가지 퍼 넣었다
별도 한줌 땄다
한 손에 들어도 될 것을
짊어졌는데도
등은 굽고
다리가 셋이다
주차장에 내려와
펼쳐보니 개똥이다.
언제 필봉산에 또 오르게 될까? 내년 봄에 고사리나 뜯으려 올까?
필봉산, 왕산아 40여년만에 너의 품안에 안기어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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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퍼온것이라 그래도 보기가 좋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