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원 에세이】
어느 평범한 가정주부의 신선한 ‘역발상’
― 산책길 남편 바지 뒷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넣어주는 이유
― 남편은 이것을 ‘비닐봉지’라 하지 않고 ‘공덕봉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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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ysw235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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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에세이】
어느 평범한 가정주부의 신선한 ‘역발상’
― 산책길 남편 바지 뒷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넣어주는 이유
― 남편은 이것을 ‘비닐봉지’라 하지 않고 ‘공덕봉지’라고 한다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ysw2350@hanmail.net)
‘아니, 저럴 수가…’
산책길에 못 볼 것을 보았다. 어느 여자고등학교 앞길이었다. 60대 남자가 개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개가 갑자기 쭈그려 앉더니 길바닥에 똥을 쌌다. 견주(犬主)의 손에는 배설물 뒤처리 용품이 들려있지 않았다.
개가 ‘볼일’을 마치자 주인은 배설물을 슬슬 발로 밀었다. 길가에는 가로수 나뭇잎이 흩어져 있었다. 남자는 개의 배설물을 발로 굴려 길가로 밀더니, 낙엽으로 살짝 가려 놓았다.
“그러면 안 돼요.”
뒤따르면서 이 광경을 목격한 나는 순간적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도 모르게 감정 섞인 거친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바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못 본 척 지나치기로 했다. 공연히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조금도 득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 앞섰다. 자칫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냥 지나치자니 속이 끓었다.
비양심, 몰상식의 현장을 목격하고도 묵인하자니 더 큰 괴로움이었다. 남자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누군가 뒤따르고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당당하게 개를 앞세우고 걸었다.
이런 일이 흔히 벌어지는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낙엽으로 가렸으니 그 정도면 뒤처리를 잘한 것으로 판단한 듯하다. 학생들이 빈번히 오가는 길이다.
차라리 가랑잎으로 가리지 않았으면 행인들이 ‘무서워’ 비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살짝 가려 놓았으니 이미 배설물이 아니다. ‘지뢰’다.
▲ 길가 낙엽 속에 가려진 배설물은 공포스러우니 행인들의 입에서 ‘지뢰’라는 말이 나올만하다.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오물을 살짝 은폐해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유유히 사라지는 견주. 나는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감정을 다독이기 어려웠다. 행인들이 무심코 걷다가 가랑잎으로 위장된 것을 밟을 것이다.
그것을 밟은 행인들의 낭패감이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도덕과 윤리를 중시하는 아름다운 전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다.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도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분별력을 가졌다고 해서 ‘어른’ 아닌가. 평범한 보통 사람의 기초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어른의 민망한 모습이었다.
산책길 2시간여 동안 ‘얄미운 개 주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 반려견 배설물 처리에 관한 안내문과 위반시 과태료 경고가 곳곳에 걸려 있으나 이를 무시하는 견주가 많다.
요즘 동네 이웃끼리 가장 많이 교류하는 이야기가 ‘반려동물’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이웃 간 가장 활발하게 공유되는 주제가 반려동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개는 ‘동물’이다. 똥오줌 가리지 않는다. 사납게 짖거나 언제 사람을 공격할지 모른다. 돌발적인 피해도 발생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급격히 늘었지만, 외출 시 준수사항을 지키지 않는 일부 견주들 때문에 나는 산책길에 불쾌한 경험을 자주 한다.
▲ 지역 주민이 가로수에 부착해 놓은 경고문 - 오죽 화가 났으면 이런 경고문을 붙였을까. ‘양심’에 호소하는 지역 주민의 화난 얼굴이 읽힌다. (사진 = 필자 윤승원)
집에 와서 산책길 목격담을 아내에게 말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뜻밖에 이런 말을 했다.
“어디 가서 그런 불쾌했던 목격담 꺼내지도 마세요. 개똥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개 주인을 보더라도 감정적으로 나무라지 마세요. 배설물을 발견한 사람이 재빨리 치우면 되잖아요. 다른 사람 피해 보지 않게 먼저 본 사람이 치우면 돼요. 그게 바로 공덕 아닌가요.”
▲ 평범한 가정 주부(미대생 아들이 그린 아내) - 손자를 둔 70대 할머니이다.
아내는 이런 것을 굳이 ‘선행(善行)’이라 표현하지 않았다. ‘선행’이란 개념보다 ‘공덕(功德)’이란 말이 더 듣기 좋았다. 가정주부의 신선한 ‘역발상’에 공감했다.
현실적으로 절실한 문제지만 나는 미처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고마운 아이디어’ 제공이었다.
아내는 평범한 가정의 70대 할머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손자 예뻐해 주고, 재래시장에 가서 건강에 좋다는 식재료 사다가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가정주부다.
법을 공부하지 않았어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법보다 양심이 상위 개념이라는 생활철학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지뢰’와 같은 위험 인자가 곳곳에 숨어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들이다. 이 같은 ‘지뢰’를 미리 발견하여 제거하는 일에는 법적인 단속과 처벌 권한이 있는 사람만의 책무가 아니다.
양심을 바탕으로 한 반듯한 품성이 우리 사회의 ‘지뢰 제거’ 역할을 한다. 이런 일들은 시민의식으로 발전해야 선진국이다.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사람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보여준다.
아내는 내가 외출할 때마다 꼭 챙겨주는 게 있다. 검은 비닐봉지다. 이것을 잘 접어서 내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준다. 이 비닐봉지는 다용도(多用途)다.
▲ 남편 산책길에 아내가 꼭 챙겨주는 비닐 봉지 - 맨발 걷기 산책로에서 깨진 소주병 조각도 주어 담고, 개 배설물도 여기에 담아 치운다. (사진=필자)
산에 가면 깔개로도 사용하고, 얼마 전엔 맨발 걷기 산책로에서 깨진 소주병 조각을 주워 담기도 했다.
길거리에선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는 ‘개똥’도 여기에 담아 치운다. 나는 이것을 ‘비닐봉지’라 하지 않는다. ‘공덕 봉지’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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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카카오톡 대화방 댓글
◆ 김순자(대천사, 대전영성센터장) 2024.03.13.09:57
오랜만에 글을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허경영 신인님도 비닐봉지
여러 개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면서 환경미화하고
계십니다.
따라 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좋은 세상이 빨리 오겠지요.
태평성대 지상낙원이
빨리 오기를 기원합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저의 집사람도 신인님의 평소 명강의와
덕행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밴 덕분에
신선한 발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늘궁 단톡방에 참여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이런 글 대천사님과 개별
공유하니 조금 아쉽습니다.
언론사 칼럼으로 전파되면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양심적으로 발전할 텐데요.
우선 저의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
사회적 경각심 차원의 메시지로
공유합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위해
신인님과 함께 큰 노력 기울이시는
김순자 대천사님. 따뜻한 답장 주셔서
고맙습니다.
♧ 네이버 블로그 ‘청촌수필 이야기’ 댓글
◆ 콩밭아낙(네이버 독자) 2024.3.13.16:01
양심에 호소하면서 지역 주민이 가로수에 붙인 경고문이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옵니다.
개 배설물을 길거리에 그냥 버려두고 가는 몰상식한
개 주인에게는 개를 몰수(?)하는 법안이라도
만들어야 할까요?
피해를 보는 행인들의 낭패감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런 문제는 요즘 곳곳에서 심각하게 벌어집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을 보고도 묵인하는 일은
괴롭고 속상하지만 어쩌겠어요.
누구라도 먼저 본 사람이 대신 치워주면
복 받는 일이지요.
▲ 답글 / 윤승원(필자)
제가 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을
잘 짚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산책하면서 몇 군데에서
개 배설물을 발견했습니다.
그 개 주인이 이런 글 좀 제발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페이스북에서
◆ 박진용(동화작가, 전 대전문학관장) 24.03.13. 23:30
일상에서 아주 못되고 더러운 일을 당했을 때 오죽하면
‘개똥 밟은 기분’이라 하겠어요.
맨발 산책길에 유리 조각은 ‘지뢰보다 더 위험한 흉기’지요.
그렇게 공덕을 쌓는 분들이 계셔서 세상이 그래도 살만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거지요.
마음이 훈훈합니다.
잘 읽었어요.
▲ 답글 / 윤승원(필자)
‘개똥 밟은 기분’이라는 표현을 제가 미처 글에서 구사하지 못했는데
박 작가님께서 참 적절하게도 알려 주셨어요.
‘맨발 산책길 유리 조각 역시 지뢰보다 위험한 흉기’라는 표현도
참으로 끔찍하여 독자에게 강렬한 메시지로 전달될 것입니다.
저의 졸고에 박 작가님 귀한 댓글이 더해지니 비양심 견주들에게
더 큰 경각심이 될 것입니다.
귀한 댓글 옥고로 아름다운 사회 만들기에 큰 공덕을 쌓으신
박 작가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4.03.14.08:49
참 좋은 ‘역발상’입니다.
사회적으로도 좋은 글입니다.
추천합니다.
▲ 답글 / 윤승원(필자)
교수님이 칭찬해 주시니,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살아가면서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달리 생각해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지요. 생활의 지혜를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소박한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