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협 주간소식 2015-4호
2월 2일(월) - 8일(일)
할머니들 때문에 슬프고, 할머니들 때문에 기뻤던 한 주간, 사람들 때문에 아프고, 사람들 때문에 행복했던 한 주간이 이리도 금방 지나가 버렸습니다.
‘우리 활동이 사람들에게 기억 저 깊이 묻어두었던 아픔을 툴툴 털고 일어나 웃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활동이 기억 저 밖으로 던져 버려두었던 잘못했던 일들을 다시 안고 들어와 잘못에 대해 뉘우치게 하고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하루 하루 사람을 대하고, 사건을 읽고, 열심히 뛰어 봅니다. 지쳐서 눕고 싶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주간 소식 속에 그 많은 감정들, 내용들을 담아내기는 어렵지만, 글자 뒤에 깃들어 있는, 문장 뒤에서 뛰쳐나오는 우리 활동가들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네 번째 주간소식을 기록하고, 여러분께 보내 드립니다.
상임대표 윤미향 올림. |
2월 2일(월요일)
1. 세 번째 주간소식을 약 4500 여명에게 보내 드렸습니다. 보내는 일에만 거의 한 시간 이상이 투여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보면서 관계와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 나쁘지 않습니다.
2. 페이스 북에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올리니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칩니다.정대협은 할머니 부고를 올릴 때 유가족들에게 먼저 묻습니다. 이름을 공개해도 좋을지, 장례식장을 알려도 좋을지...또 할머니 사연을 공개해도 될지.
그러나 1월 31일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238명 등록자 둥, 238번째 등록하신 분이시고, 사연도 전혀 공개하지 않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공개할 사항이 없다면서 양해를 부탁드리지만 기자들의 질문은 집요합니다. 지역이 어디신가요? 몇 살에 끌려가서 몇 년 동안 계셨던 건가요? 혼자 사셨나요? 수요시위 등 활동을 열심히 하셨나요? 유언을 남기신 것은 없나요? 밤늦어도 전화를 해서는 마치 유도신문하는 한 신문사 기자. 지난주에는 “정말 돌아가신 것이 맞나요?” 하고 묻는 기자도 있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더니 보도자료가 안와서 그렇다면서 왜 자기 신문사에는 보도자료 안 보내느냐고 따지는 듯이 들리기도 했는데....
기자들의 열정이 고맙긴 하지만, 늦은 시간에는 전화보다는 문자를 보내주시는 것이 차라리 어떨까요? 그리고 보도자료에서 공개가 어렵다고 하면, 그대로 받아들여주시면 안될까요?
2. 오키나와 사키마미술관 관장님이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과 함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하시고 관람을 하셨습니다. 휴관일이었지만, 특별히 시간을 맞춰서 전시 시스템을 열었습니다.
3.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원예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새해 들어 첫 원예치료교실입니다. 황반변성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원예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수업에 참여 할 수 없어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아유 힘들어' 하시면서도 아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노래도 부르면서 직접 다육식물의 받침대에 그림을 그리고 다육식물들을 예쁜 용기에 담아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오늘 할머니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2월 3일(화요일)
1. 쉼터에도 드디어 미용사들이 오셔서 할머니들 머리, 예쁘게 단장해 주셨습니다. 정대협 자원활동가이기도 하시고, 후원회원이기도 하신 인명여고 홍인기 선생님 제자 양미경 님이 “학교 다닐 때 미용자격증 따면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님들 머리 해드리러 가자”고 했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런 제자의 마음에 한국업스타일전문가협회 부회장님과 회원들도 함께 동행자가 되어 주셔서 할머니 머리 깨끗하게 커트해 주시고, 할머니들 기쁘게 해주셨습니다.
기분이 좋아지신 김복동 할머니께서는 나비기금에 대한 이야기며 여러가지 말씀도 해 주시고 길원옥 할머니께서는 점심을 먹었다고 극구 사양했지만 자장면을 사 주고 싶다고 하여 자장면도 시켜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꽃다발과 무릎담요를 선물로 가지고 와서 할머니들께 전달하였고 다음에 또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 오후에 미국에서 특별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조지 워싱턴대학교의 Mike M.Mochizuki 교수님이신데,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의견을 물었습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 있는 평화비에도 다녀오셨다는 교수님은 한일간의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여성인권 문제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 함께 연대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의견도 주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단지 과거 이슈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전쟁중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인식하는 것도 이 문제 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입장이라는 의견도 주셨습니다.
나름, 의미있는 두 시간여 인터뷰 시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여러사람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2월 4일(수요일)
1. 한국성폭력상담소 주관으로 제1164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를 진행했습니다. 1164차 수요시위는 대구에 사시다 지난 주 토요일에 돌아기신 고 박위남 할머니를 추모하면서 시작을 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바위처럼’ 노래에 맞춰 힘차게 춤을 춥니다. 할머니 가신 그 길에 위로의 마음도 실이 함께 춤을 춥니다.
윤미향 상임대표는 일본에서 참석하신 평화위원회 및 여러분들을 환영하고 감사하는 인사로 발언을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새 평화로에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함께 자리를 만들어주고 계시다”면서 1164차 수요시위까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서로 약속을 하지 않아도 이곳으로 향하고 뜻이 통하는 많은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우리는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평화를 위한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이곳 평화로가 바로 그런 공간입니다. 성별, 민족, 인종, 사상을 넘어서서 평화를 위한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이라며 수요시위에 함께 만난 사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합니다.
토요일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238번째,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것을 세상에 밝힌 분이시라면서, 진정한 추모란 “할머니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는 것, 할머니들께서 원하셨던 전쟁없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라 말합니다. “평화비의 소녀 옆 빈자리는 먼저 세상을 떠나신 할머니들의 자리이며, 우리들의 자리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우리 모두가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다.”라며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어떠한 전쟁에서도, 어떠한 폭력도, 어떠한 권력도, 어떠한 돈도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할 수 없다는 것, 여성들을 그런 도구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것을 깨닫게 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달라고 하는 할머니들의 외침, 그 외침을 항상 우리들의 가슴에 새기자고 호소합니다. 평화나비들이 전국 각지에서, 희망나비들이 일본을 순회하면서 울리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명예와 인권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평화롭게 하자는 희망적인 활동에 대해서 나눕니다. 그리고 힘찬 구호로 인사를 합니다.
1164차 수요시위를 주관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한 연구원은 수요시위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무심함을 반성했다면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현재 침묵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많이 부끄럽고 원망스러웠다고 밝힙니다.
오늘 집회에는 일본의 시민단체 평화위원회에서 34명이 참석했습니다. 치사카 준 사무국장은 자유발언에서 "나눔의 집을 방문해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누며 일본군'위안부'는 최악의 인권유린이자,할머니들의 건강과 존엄을 빼앗은 악랄한 범죄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또한 "침략전쟁으로 점철된 지난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아베정권은 일본 국민의 수치라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하루 빨리 진심어린 사죄와 배상을 해야함은 물론이고, 일본 헌법 9조의 개정을 막고 일본이 전쟁 없는 나라가 되도록 전력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쟁과 여성인권대학생동아리 AIESEC도 참석했는데, 그 중 중국인 대학생 야팅 씨가 자유발언을 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는 아시아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할머니들께서는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생각하고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해주시기를 염원한다."고 응원하면서 “할머니 힘내세요” 라고 우리나라말로 수줍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 학생들이 할머니들께 직접 만든 레몬청을 선물로 전해주기도 했습니다. 인천 초은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참석한 학생은 “시험공부를 하면서 역사책을 보았는데 그 책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달란 한 줄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할머니들께서 고통받고 계시고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인데 과연 한줄로 요약해서 정리할 수 있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며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게 해 주었습니다.
이번 1164차 수요시위의 주관단체인 (사)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명서를 통해 "지난 19일 아베 총리는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독일 나치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도,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와 '위안부'문제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었다. 최근 한일 양국의 국장급 협의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난 17일 일본 정부와 극우단체는 워싱턴에 모여 미국 역사교과서의 '위안부'기술에 대해 조직적으로 왜곡을 시도한 것로 확인되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모두 세상을 떠나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듯 왜곡과 은폐를 일삼고 있지만,우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과 인권회복을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고 외쳤습니다.
오늘 수요시위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을 비롯해 일본평화위원회, 춘천 평화나비 기획단, 평화나비네트워크, 극단'끼' 여러분들과 AIESEC(전쟁과여성인권동아리), 울산 삼일여자고등학교 답사반'발가대', 용인 신갈고등학교 역사인권동아리'싸인', 한신대학교,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이 함께해주셨습니다.
2. 2월 4일, 오사카역에서 개최된 수요 시위는 한국에서 희망나비가 함께 참여하여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간사이네트워크 사람들과 함께 진행을 했습니다. 희망나비는 2월 1일부터 10일동안 일본 간사이지역과 도쿄지역을 순회하며 평화기행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일코리안, 일본시민들도 만나고, 재일고등학생들과도 만나고, 직접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 재일조선학교 차별.탄압정책에 대한 행동을 펼치면서 순회하고 있습니다.
화요일에는 오사카부청 앞에서 매주 화요일 재일조선고교무상화실시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는 일본시민들과 재일코리안들의 화요행동과 함께 연대했으며, 수요일에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오사카역 앞에서 열린 101번째 수요시위에 함께 연대했습니다.
101회 수요시위는 희망 나비의 플래쉬몹 춤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팝 아리랑에 맞추어 즐거운 듯이 춤을 추는 희망나비를 보며 일본 시민들도 아주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호소는 101회 수요시위 주최자인 간사이넷에서. 지금의 일본과 한국의 사회 정세의 차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발언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은 간사이넷 [수요시위]춤과 희망나비의 [바위처럼] 춤이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바위처럼 춤을 추니, 춤을 통해 엄청 큰 힘이 느껴졌습니다.
희망나비의 대표는 발언을 통해 “‘위안부’피해자가 최근에도 2 명 사망했다. 해방 후 70 년이 지나도 아직 해방되지 않는 피해자가 있다. 우리는 일본에 반대하지 않는다. 진짜 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길거리에서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조선인 나가라"등 증오발언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이어 희망나비는 최근 사망한 두 명의 할머니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의 카드섹션을 펼쳤습니다. "천의 바람이 되어“에 실은 카드섹션이었습니다. 이것은 일본에서는 볼 수없는 호소방법이었기 때문에 감명을 받았다는 간사이넷 활동가들의 평이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제도와 세월호에 의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것을 마음으로 보고 있던 일본 시민들도 눈물을 억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일본 청년도 발언을 통해 "테러리스트를 불허하는데, 아사히 우에무라 기자와 대학에 대한 강박 행위는 테러가 아닌가!“라며 지금의 일본 정세를 비판하는 호소를 했습니다. 이어서 다시 희망나비의 노래와 춤, 그리고 간사이넷의 노래에 이어 마지막으로 전원이 힘차게 구호를 외쳤습니다.
3. 매주 수요일 땅끝마을에선 해남나비가 공점엽할머니께 찾아갑니다. 같은 지역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주민들이 해남나비 모임을 만들고 이렇게 할머니를 찾아뵌 지도 일 년이 한참 지났습니다. 2월 4일 수요일 해남나비 이나미 님이 보내온 소식을 여러분에게 전합니다.
황사로 세상은 온통 뿌옇고 입춘 추위인지 한기가 스며드는 날 장경도교무님과 생협서 만나 할머니댁으로 향했네요. 방이 썰렁하니 어두운데 누워 계셨어요. 반갑게 맞아 주셨지요. 이젠 제 집에 온것마냥 난로 온도도 올려 놓고 물 끓여서 유자차도 타마시며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답니다. 요즘 부쩍 눈물이 많아지신 할머니.... 오늘도 임진강 건너던 대목과 영감님 회상하시는 대목에서 또 울컥하셨네요. 자상하시고 자식을 엄청 귀하게 여기셨다는....얘기 끝에 정대협에서 제주도 여행 가실 때만 해도 할머니들이 많으셨는데 그새 많이들 돌아가셨다고 애석해 하시기도 하셨습니다.
4. 윤미향 대표는 수요시위가 끝나고 바로 제주도에 계신 이효재 정대협 초대 공동대표를 뵙고 왔습니다. 올해가 분단 70년, 광복 70년이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점에 여성들이 평화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함께 선생님의 제안도 받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며, 다섯 시간 정도 되는 긴 시간을 선생님 댁에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었습니다.
2월 5일(목요일)
1. 국회방송이 광복 70년을 맞아 3.1절 특집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촬영도 하고, 사무실에서 윤미향 대표와 함께 [정대협이 걸어온 길, 남은 과제들,국회와 정치권에 바라는 바 등]에 대해 인터뷰도 하고, 쉼터로 이동하여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 지난 삶의 이야기, 지금의 생활, 앞으로의 바람과 소망 등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2. 서울시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면서 일본군‘위안부’와 관련한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합니다. 이를 위해 정대협과 서로 협력할 일들에 대해서 정책/사무적인 일들을 공유했습니다.
2월 6일(금요일)
1. 한국교회희망봉사단 정기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 일산으로 달렸습니다. 희망봉사단은2012년부터 우리 쉼터 [평화의 우리집]을 정기적으로 후원해주고 있습니다.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총회에 참석해서 우리의 고마운 마음을 감사인사로 전했습니다.
2. 서울에서 아침 일찍 희망승합차를 몰고 경상도 지역을 향해 다시 출발했습니다. 김복득 할머니께서 얼마 전 중환자실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 모두 겁이 덜컥 났습니다. 계속 잇따르고 있는 부고소식에 불안해진 우리들이었기 때문에 할머니를 빨리 찾아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
리한 일정이었지만 무조건 떠나자 하고 출발한 여행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셋입니다. 윤미향, 손영미, 안선미. 운전을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하니 훨씬 피곤이 덜합니다.
다행히 출발하기 전, 할머니가 중환자실에서 다시 고비를 넘기시고 일반병실에 옮기셨다고 해서 조금은 편안하게 올 수 있었습니다.
오후 5시경, 통영에 도착하여 할머니는 죽 외에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지만, 간병인과 찾아오는 분들이라도 드시게 하기 위하여 과일과 음료수를 준비하여 할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통영시내에서 조금은 떨어진 곳, 산 속에 위치해 있는 병원은 요양을 하기에 참 좋을 듯 해보였습니다. 할머니 병실에 들어서니 간병인이 우리를 먼저 반깁니다.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쉬고 계시다가 우리를 보시고는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지만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풀어내며, 할머니의 저 깊숙이 숨어있는 기억을 끄집어 내보려 합니다. 금강산 인권캠프 이야기도 해보고, 제주도 인권캠프 이야기도 해봅니다. 휴대폰에 담겨진 평화비의 소녀상 사진도 보여드리고,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 사진도 보여드립니다. 할머니 눈동자에 힘이 실리고, “아... 얼굴이 기억난다.” 하시며 말문을 여시고, “이제는 멀리 못가” 하시며 따뜻한 봄날에 건강을 회복해서 나들이가자는 이야기에 그렇게 답을 하십니다. 평화비 소녀상 사진을 보여드리자 거제에도 있다고 떨리는 입술 사이로 작은 소리를 내십니다. 조카들이 병원에 자주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잘 되었다고 할머니께 웃어드리니, 할머니도 웃어 보이십니다. 건강하실 때에 조카와 사이가 좋지 못해서 남처럼 살아오실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할머니가 병으로 눕게 되시니 조카가 찾아오니 잃었던 할머니의 가족을 되찾은 것 같아 기쁩니다.
할머니께 꼭 회복해서 다음에 방문할 때에는 이렇게 누워계시지 말고 우리랑 맛있는 것 먹으러 밖으로 나가자고 하며, 약속하자고 새끼손가락 내미니, 할머니 손가락을 거시고, “약속” 하십니다. 복사도 하고 코팅까지 했습니다. 따뜻한 포옹을 해드리고 병실을 나오는데 손을 바이바이 흔들며 잘가라 인사해 주십니다.
누구보다 강인했던 우리 김복득 할머니.... 지난 해 거제평화비 제막식때만 해도 함께 하셔서 기뻐하셨는데, 이렇게 금새 누워버리셨습니다. 우리 할머니들께 건강의 축복을 기원하는 밤입니다.
3. 총회보고서 준비하느라 김동희 사무처장, 이지영 박물관 팀장은 사무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양노자 팀장은 경상도에 오느라 쉼터를 비운 손영미 소장의 빈자리를 대신 채우며 역시 총회보고서 준비를 합니다.
2월 7일(토요일)
1. 우와 이게 어쩐일이람~~!! 몇주만에 다시 남해에 계신 박숙이할머니를 만나러 온 우리는 할머니를 본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기쁨의 탄성을 지르고 말았답니다. 갑작스레 기력이 너무 쇠하고 피부까지 상해버렸던 할머니가 말끔한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시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많이 좋아지신 겁니다. 신나서 할머니 곁에서 종알종알 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풉니다. 남해시장에서 갓 공수해 온 새알콩죽과 과일 등을 풀어놓고 건강을 되찾자고 으쌰으쌰 함께 결의를 다집니다. 당장은 서울로도 어디로도 움직일 수가 없다시는데 몸이 더 좋아지고 날도 따뜻하게 풀리면 콧바람 쐬러 서울가자고 다시 약속을 합니다. 병원 안에 독감이 돌아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지만 기쁨의 기념사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보행보조기를 분실하셔서 옆에 계신 할머니 것을 빌려쓰시고 계신 걸 알고는 달려가 보조기를 사다놓고 할머니 이름도 큼지막하게 써넣으니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다시 마주합니다. 역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우리 할머니들의 모습이 고맙고 감격스러워 이제 창원으로 달려가는 발걸음이 어찌 가볍지 아니할 수 있으렵니까~
2. 박숙이 할머니의 호전된 모습에 한껏 부풀었던 우리의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창원에 계신 이효순 할머니를 뵙는 순간 울컥하고 맙니다. 영양식 호스와 호흡줄을 꽂은 채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할머니는 앉은 모습으로 내내 계신답니다. 호흡이 얼마나 힘드신건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할머니는 아마도 고통 속에 계신 듯합니다. 앉은채로 꾸벅꾸벅 졸고 계시던 할머니의 손을 잡고 그래도 우리의 마음을 열심히 전해봅니다. 동생분과 간병인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쭙고 그 야윈 손을 꼭 잡아 인사를 전하는데 악수를 하잔 말에 그래도 할머니 손에 힘이 제법 들어갑니다. 그렇게 힘을 조금 더 내주길, 다시 할머니에게서 기적을 마주할 수 있길. 마음 속 간절히 바랍니다. 그 마음 아셨는지 할머니는 손을 흔들어 우리를 배웅합니다.
경상도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또 다시 지방방문 계획을 세웁니다. 손영미 소장이 “대표님, 전라도와 충청도 지역을 언제 돌까요?” 묻습니다. “글쎄요... 빨리 돌아야죠...” “전라도, 충청도, 마지막으로 나눔의집 까지 돌면 되는데...”
다음 주 5번째 주간소식에서 언제 방문을 했고, 할머니들 상황이 어떤지를 다시 전해드리겠습니다.그 때까지 궁금해도 조금만 기다려 주시길... |